윤동주, 별을 살아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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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카프로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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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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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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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7화

EP0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송송태에게 소설 쓰기를 제안한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사실 녀석에게 소설 쓰기를 제안한 것은 다 나름의 꿍꿍이가 있었다.


‘같이 소설을 쓰면 적어도 함께 조용히 쓸 거 아니야?’


송송태가 내 소설 쓰기에 뭐 큰 도움을 주지야 못하겠지. 하지만, 입을 다무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그래서 송송태가 내 제안을 받아들였냐고?


이곳은 다시 문학실.

송송태와 나는 고개를 처박고 원고지에 묵묵히 글을 적어나갔다.

나의 계산은 적중했다.


글쓰기에 몰입한 송송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저렇게 집중하는 게 가능한 녀석이었다고?’


교과시간에도, 일과시간에도 차분함과는 거리가 먼 송송태였다.

뭐, 녀석에게 큰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송송태는 늘 인생이 따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몰두할 무언가를 계속 찾았던 건지도 모르겠군.’


내가 녀석을 바라보던 그때, 송송태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뭘 그렇게 변태처럼 보고 있어.”

“아니. 그냥 네가 뭘 그렇게 집중하고 좋아하는 건 처음 본 것 같아서.”

“너 같으면 사람 죽이고 감옥 와있는데 기분이 좋겠냐. 인생이 지옥이지.”


녀석의 말에 달리 대꾸해 줄 말이 없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큼. 크흠. 무슨 소설을 쓰는데 그렇게 재미있어해?”

“학폭 가해자를 학폭 피해자가 응징하는 소설.”


그, 그건 그냥 자기 삶을 쓰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송송태에게 물었다.


“네 얘기 쓰냐?”

“아니. 얘는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어. 학폭 응징한 다음에 감옥도 안 가고.”


나 지금 너무 많은 tmi를 들은 것 같은데.

그러니까.


“송송태 네 말은 네가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거지?”

“신기하냐? 여기 감옥에 널린 게 부모 없는 애들인데 뭘.”


송송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애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소년원에 들어온 죄수의 대부분은 부모가 없거나, 편부모 가정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거나 보육원에 사는 아이들도 흔했다.


엄마, 아빠, 형, 누나까지 있는 나는 이곳에서 거의 금수저 취급이었다.


‘부모만 있어도 괜찮은 삶이라니.’


송송태를 지그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유동주로서 보는 녀석의 퉁명스러움은 짜증났고.

윤동주로서 보이는 녀석의 퉁명스러움은 안쓰러웠다.


시니컬함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품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 같은 거니까.


녀석의 차가운 태도가 자기를 좀 도와달라는 발버둥처럼 느껴졌다.


나는 송송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쓰는 건 좀 어때? 잘 써지냐?”


녀석은 대답 없이 자신의 원고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나는 송태에게 물었다.


“너 누구한테 뭘 어렵다고 말하는 게 힘들어?”


송송태는 들켰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애에게 다시 물었다.


“어려운 부분 있으면 물어봐. 그러라고 멘토링 하고 있는 거잖아. 혼자 끙끙대서 어디다 쓰냐.”


송송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나를 때렸다에서 ‘제’라고 쓰는 게 맞아?”


나는 녀석이 쓴 원고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나를 때렸다고?


자아와 자아의 대결인 것인가?

내가 나를 때렸다니?

이것이 무슨 철학적 표현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가 아니라 ‘쟤’, 제가 나를 때렸으면 내가 나를 때린 거야! 푸, 푸풉. 이건 ‘쟤’라고 쓰는 거다!”


송송태의 낯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 애가 내게 벌컥 성질을 냈다.


“아씨, 물어보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난리야!”


그 애와 벌이는 이런 사소한 투덕거림이 나쁘진 않았다.


**


멘토링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유동주, 멘토링은 잘 되어가나?”


늙수그레한 인상의 남자는 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 강정운이었다.


“아-주 잘 되어가죠. 재밌어 죽겠네요. 팔자에도 없는 멘토링이니 뭐니를 맡아서요.”


나는 반쯤은 불평불만을 담아 대꾸했다.

소설 쓸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달랬더니 혹까지 붙이면 어쩌란 말인가.

강정운은 너털웃음을 지어보이며 답했다.


“허헣허헣. 재밌다니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에요.”

“그래도 이 무진소년원 안에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생겼지?”


강정운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생겼’냐고? 이 아저씨 나를 무슨 왕따로 생각했나.


“친구가 아니라 소설 쓸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던 거라고요.”

“공간도 시간도 줬잖아. 왜 불평이야.”

“공간과 시간과 함께 떨거지도 같이 주셨으니까요.”


나의 떨거지란 표현에 강정운이 다시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헣허. 그래. 모든 친구는 사실 다 떨거지지.”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뭐가 그렇게 혼자 웃겨요?”


강정운은 대답 대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송송태라면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뭔 소리예요.”

“너 죽상을 짓고 주변 애들이랑 어울리지도 않잖아. 독방까지 가질 않나.”


독방은 내가 글을 쓰고 싶어서 자청해서 간 거다.

죽상을 짓고 어울리지 않는 건 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6개월이 지나면 이곳을 나간다. 다 죄 짓고 들어온 나쁜놈들 뭐가 좋다고 어울린단 말인가.

강정운이 내 생각이라도 읽은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글을 대충 읽어보면 알지. 네가 또래보다 깊은 생각을 한다는 거 말이야. 하지만 그런 사람도 친구는 필요하지 않니.”


강정운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아이들은 다 죄를 지은 아이들이지. 하지만 여기가 교도소가 아니야. 나도 교도관은 아니지.”

“그러면요?”

“나라고 너희를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문제아지. 그것도 범죄를 저지른 최악의 문제아. 하지만 네가 꿈을 갖고 있듯이 다른 애들도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지 꿈을 품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곳에서 그걸 좀 얻어가면 좋겠어.”


강정운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송송태는 꿈이 좀 생긴 것 같아?”

“그거야 저도 모르죠. 요즘엔 저 따라서 소설을 쓰고 있긴 해요.”

“그거 좋은 일이구나. 뭐든 열심히 하면 좋지. 걔는 인생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만 있거든. 착하게 말 잘듣는 것 같지만 아니야. 딱 보면 알지. 걘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거야.”


나는 강정운의 두 눈을 쳐다봤다.

뭐야, 이 아저씨.

그러니까 그냥 나한테 글 쓸 시간과 공간을 준 게 아니라는 거잖아. 다 꿍꿍이가 있었구먼.


“그래서 송송태를 제가 챙겨주라는 의도로 보낸 거예요?”

“아니지.”

“뭐가 아니예요. 지금 딱 그 말인데.”


강정운이 갑자기 나의 머리를 헝클었다.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글을 쓴다는 건 여러모로 외로운 일이지. 고독한 작업이기도 하고, 남들이 이해를 안 해 줄 때도 있으니까. 특히 너처럼 천재들은 더 그렇지 않니?”

“전 천재 아닌데요.”

“아니, 너는 천재다. 내가 본 모든 문인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천재 아니라니까요.”


강정운은 그저 희미한 미소를 띠어보였다.

어떤 기분인지 알아채기 힘든 그런 웃음을.

그가 내게 말했다.


“나는 네게 또래와 어울리고, 치고박고 하는 경험을 주고 싶었어. 독방과 시간을 요구했을 때 고민했다. 너를 그냥 혼자 놔두는 게 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그는 잠시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결심 같은 게 보이는 몸동작이었다.


“하지만 아니었지. 내가 너에게 특혜를 줄 수가 없는 것도 맞지만, 너를 위해서도 혼자 놔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 조용한 방, 여유로운 시간에서만 훌륭한 문학이 나오는 건 아니잖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와 무언가를 나누는 것도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강정운의 눈은 진지했다.

나는 문득 가슴 아래께가 저릿해졌다. 또래와 무언가를 나누는 것.


나는 전생에 절친한 벗 몽규와 함께 우애를 다지고 시와, 소설, 삶에 대해 끝없이 얘기를 나눴다.


몽규 뿐은 아니었다.

심지어 일정의 교도소에서조차 내게 손을 뻗어주는 교도관이 있었다.


나를 키운 것은 그저 원고지를 벗삼아 혼자 글을 쓴 시간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과 나눈 우정이 있기에 나는 일제에게 온갖 모진 일을 당하면서도 소설을 놓지 않았다.


윤동주로서의 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환경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이 소년원의 모든 환경, 송송태와 나누는 투덕거림마저 말이다.


그런데 문득.

나의 생각은 다른 쪽으로까지 급히 옮아갔다.

나는 강정운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꿈이 없어요?”

“응?”

“아이들이 무언가 꿈을 갖고 이 소년원을 나가길 바란다면서요. 근데 왜 정작 원장님은 꿈이 없냐고요.”

“다 늙은 마당에 무슨 꿈이냐.”


나는 강정운을 바라보았다.

송송태에게 따분한 표정을 짓는다고 표현했지만, 진짜 인생 귀찮다는 표정으로 돌아다니는 건 바로 강정운이었다.


그야말로 인생핵노잼이란 표정으로 좀비처럼 소년원을 배회하지 않는가.

나는 강정운에게 다시 물었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거 아니예요? 시인이라면서요? 근데 왜 뭘 쓰는 모습은 한 번도 안 보여주세요?”


내 질문을 들은 강정운의 눈에 무언가 회한이 묻어있는 게 보였다.

그는 쓸쓸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범재야. 그것도 엄청나게 미련한 범부에 불과하지. 너는 천재지만 말이다. 나는 너 같은 재주가 없다. 특별하지 않아. 지금은 다 늙어빠졌고 말이다. 소일거리로 1년에 1, 2편 쓰면 그만인 거다.”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 차가웠다.

마치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는 강정운을 향해 말했다.


“원장님이 왜 특별한 게 없어요.”

“없지. 나도 살면서 많은 작가를 봤어. 세상에 얼마나 날고 기는 재주가 많은지 너는 모르겠지. 그리고 어쩌면 넌 평생 모를 수도 있겠지. 너는 그중에서도 특출나니까. 하지만 난 아니야. 난 너처럼 특별한 게 없다.”

“아니예요. 원장님이야말로 정말 특별한 걸 갖고 있잖아요.”


나는 강정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가 황당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특별해? 나를 놀리는 거냐?”

“아니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뭐가 특별한데?”

“몇 십 년간 이 소년원에서 저 같은 아이들과 부대낀 경험. 그 경험만큼 특별한 게 어딨어요? 문학에서의 재주가 그냥 글빨이에요? 자기 삶이 특별하면 문학인으로서도 특별한 거 아니에요?”


강정운은 내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말문이 막히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읊조렸다.


“내 삶이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구나. 사실 나는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해서 여길 온 것 뿐이야. 행시를 계속 떨어져서 교정공무원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뿐이고 말이야.”


나는 강정운의 팔을 쓸며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작가의 큰 자산이죠.”


그것은 유동주이자, 윤동주의 말이었다.

그리고.

강정운과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쓸 소설에 무엇을 써야 하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말이다.





작가의말

7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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