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설거지 맨으로 취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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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눈알
작품등록일 :
2024.07.08 19:25
최근연재일 :
2024.08.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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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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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


나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내가 하려고 마음먹었던 모든 일 들이

어그러졌으며, 그로 인해 내 인생에 걸었던

모든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며

나는 그대로 추락해버렸다.


그렇게 2년 간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나이, 성별, 자격, 학벌을 따지지 않는 직업은

없을까?


그렇게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알바 앱으로 일자리를 찾아보던 중,

한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3성급 호텔 세척원 급구.

연령, 성별, 학력 무관.'


말은 그럴싸했지만, 사실상 맘대로 부려먹을

설거지할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호텔 정직원이 아닌, 호텔 어용의 중소 용역업체 소속 직원인 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하지만, 나로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밀린 방세도 내야 했고,

앞으로의 생활에 쓸 돈도 필요했다.



그렇게 나는 '라이온 시티 호텔'의 세척원이 되었다.


설거지 자체가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생각보다도 좀 더 많이 힘들었지만

그걸 제외하고 일 자체는 의외로 나와 잘 맞았으며,

관리소장도 좋은 사람이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굉장히 좋은 분들이라, 같이 일하기가 수월했다.


입사 3개월 만에 나는 일에 완벽히 적응했고,

내 일 처리가 빠르고 깔끔했기에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직장동료들과도

친해졌다.


-거의 어머니뻘 되는 아줌마들에겐 이모,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들에게 형님이라고

허물없이

부를 정도로.-



여튼, 그러다가 나는 우리 용역업체 관리소장의

눈에 들어 전보다 급여도 다른 직원들보다도 조금 더 많이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인생에 공짜 밥은 없다는 말처럼,

내 급여가 올라간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일반 세척직원에서 연회장 담당 세척직원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를 아주 확실하고 효율적으로

부려먹기 위해, 이미 큰 그림을 그려두었던

관리소장은,


"너 일 잘하니까 연회장 담당으로 들어가 주라.

그래만 주면 급여도 올려줄게."


-라는 말로 나를 꼬드겨, 내가 자발적으로 연회장 담당이

되도록 유도했다.


대개 호텔 연회장이 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 호텔 연회장은

세척 일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이곳을 담당하는

모든 부서의 일이 힘들기로 유명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개같이 빡센 업무 강도를

고려해서 급여를 올려준 것이었다.



계속 호텔 내에 있는 업장들만 돌면서 설거지만 할 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만은 편했는데,


연회장 담당이 되니 단순히 설거지만 하는 게 아니라,

홀서빙 팀이 연회장에서 들고나오는 각종 설거지 거리들-,

접시며 와인잔, 그리고 실버라고 부르는 식기들을

전부 철제 은색 카에 실어서 세척장까지 나르는

허드렛일까지 해야 해서 몸과 정신이 전부 피곤했다.


대체로 홀서빙을 하러 오는 알바생들은

나보다 한참 어린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친절하고 착했지만


그 애들을 관리하고 총지휘하는 홀서빙 팀 매니저들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불친절한 놈들 뿐이어서

우리 세척팀과 충돌이 잦았고, 어쩌다 보니

내가 항상 이 홀서빙 팀과 우리 세척팀 사이를 중재하고

협상까지 하는 피곤한 역할을 맡게 되어버려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피우지 않던 담배에까지

손을 대었고, 어느 순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있었다.



**


"후-, 오늘은 진짜 개같이 빡셌다.."


원래 이 일이 다 그렇지만,

하다 보면 유독 힘든 날이 있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연회장에 웨딩 4건과 그 외 총 5건의 기타 소규모 행사들이 한꺼번에

들어올 줄이야.


정말 일하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쓰러질 만큼 개같이 일을 해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지친다...진짜로... 후-."


나는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은 다음,

퇴근하기 전, 아주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호텔 흡연장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태웠다.


"크으-, 죽이네. 이 맛에 산다니까."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아저씨 같은 멘트를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옆에 누군가 앉길래

별다른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오늘 연회장에서 일할 때 몇 번 마주쳤던

홀서빙 알바로 왔던 여자애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나름 외모가 깔끔해서 전혀 담배를 피울 것 같지 않은,

어딘지 좀 우아하면서도 귀여운 느낌을 주는 애였는데,

이런 애가 담배를 피우러 여기로 왔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얘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항상 웃고 계시는 모습이

인상에 강하게 남아서, 정말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나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 여자애는

잠시 자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 살짝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건네었다.



"저, 죄송한데 혹시 라이터랑 담배 한 개비만

빌릴 수 있을까요?"


되게 난감하겠군. 흡연자가 라이터랑 담배가 없다니.

최악의 상황이네.


나는 친절하게 웃으며 라이터와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여자애는 미소를 띠면서 그것들을 받아들고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저도 오늘 너무 일이 힘들어서

계속 담배가 땡겼거든요. 아, 저 여기 라이터 잘 썼어요."


여자애가 환하게 미소지으면서 내게 라이터를 건네는 그 순간,

나와 여자애의 손끝이 살짝 닿았다.


-어라?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담배 탓인지, 아니면 일을 마치고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여유로워져서 그런 탓인지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여자애가 갑자기 엄청 예뻐 보였다.


젠장, 얘는 나한테 관심도 없을 텐데.

이래 봤자 아무 소용도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마저 태우고 있을 때,

갑자기 여자애가 연기를 훅 뿜고는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저...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예상치 못했던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여자애를 바라보니,

그 애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여자애의 그 반응에 나는 순간적으로


어라. 쑥스러워하네?

이런 애가 나한테 마음이 있었나?


하는 모자란 생각이 들었다.


내심 기분은 좋았으나,

나는 내 현재 처지도 그렇고,

내가 그다지 여자들에게 어필되지 않는 평범한 외모란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애써 기쁜 기색을 숨기며 답했다.


"네? 아... 아니요. 없어요."


나의 그 말에, 여자애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저는 어때 보여요?

남자친구 있을 거 같아요?"


그 말에 나는 얘 뭐지? 싶어서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예. 있을 거 같아요.

뭐랄까...되게 우아하면서도 귀여운

흔치 않은 스타일이시라.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아 이런 제기랄. 너무 속내를 드러냈나 싶어서


당황하고 말았다.


혹시 실수했나 싶어서 그 여자애를 바라보니,

그 애는 뭔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후후후, 혹시 저한테 호감 있어요?

저를 되게 예쁘게 보셨나 본데."


그리고 나는, 다음 순간 그 애가 내뱉은 그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근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는 아직 연애할 생각이

없어서요. 후후후후."


뭐지?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그냥 심심해서 날 놀려본 건가?

아무리 내가 겨우 호텔에서 설거지나 하는

한심한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확 짜증이 솟구쳤다.


나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 살피던 그 여자애는,

피우던 담배를 흡연장 재떨이에 휙 던져넣은 다음,

내가 굳이 묻지도 않은 자기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 맞다. 제 이름 아직 모르시죠?

제 이름은, ‘우주영’이라고 해요.


뭐, 당신 이름은 별로 안 궁금하니까

굳이 물어보진 않을게요~후후후후후."


그러고 나서, 그 이상한 애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담배랑 라이터 고마웠어요~,

그럼 담에 또 봐요~."



그렇게 그 여자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빠르게 역을 향해 걸어갔다.


기분 나쁘네. 이건 뭔가 내가 고백했다가 까인 기분이잖아.


아니, 아직 딱히 내가 뭘 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잔뜩 불쾌해진 나는 내가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던

가장 독한 담배를 골라 한 번에 두 개비를 피웠다.


"젠장,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기분 좋다가 잡쳤네."



그렇게 그날 밤은 뭔가 집에 돌아가서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일이 이 정도로 힘들었으면 몸이 녹초가 되어서

눕자마자 바로 쓰러져 잠들 텐데.


제기랄, 다 그 망할 여자애 때문이야.


그리고 며칠 뒤, 연회장에

가장 비싼 일식 도시락 세트가 500개나 들어왔다.


차라리 양식 코스 세트나 한식 코스 세트가

들어왔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도시락은 백사이드에서 받을 때도

카에 싣기도 힘들었고, 잘 쌓았어도

혹시 쓰러질까 봐 조심해야 해서

짜증 났고, 설거지조차도 굉장히 힘든 종목이었다.


보통 이런 호텔 도시락은 일회용 도시락 용기를 쓰는 게 아니라,

모두 분해하고 닦아서 세척기에 넣은 후,

전부 수건으로 남아있는 물기를

빡빡 닦은 다음, 전부 다시 조립을 하고,

그걸 또 큰 카에 실어서 창고까지 옮겨야 했는데,

이 과정이 매우 귀찮고 힘들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정말 싫어했다.


여튼, 이렇게 짜증 나는 도시락을 대규모로 시킨 녀석들은


이름도 못 들어본 어떤 다단계 업체였다.


대체 얼마나 순진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내길래

호텔을 예약해서 가장 비싼 도시락을 500개나 시킨 걸까.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홀서빙 애들이

정신없이 날라오는 도시락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대체로 애들이 착해서 도시락 안에 있던

식기류는 알아서 빼주었기에 그나마 그건 괜찮았지만,


얘네들을 관리하고 지휘하는 홀 매니저 놈들은

식기를 빼지도 않은 상태로 카 위에 휙 던지고 가버렸다.


그렇게 되면, 내가 일일이 식기를 빼서

카 제일 아래쪽에 설치한 식기판에 그것들을

던져 놓아야 했다.


가뜩이나 바빠죽겠는데 더 일이 힘들게 되는 거라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매번 홀 매니저들에게 말을 했고,

얘네보다 더 직급 높은 대리급 홀 매니저들에게도

사정사정했지만, 그때뿐이었고

대리급들이 쉬는 날엔 이런 식으로

개판을 치는 것이었다.


짜증 나는 자식들. 지들도 우리랑 회사만 다른 용역이면서 되게 갑질하네.


언젠가 한 번 뒤집어엎어야지.


나는 애써 화를 꾹꾹 참으며 일에 집중했다.


그때, 전에 흡연장에서 내게 빅엿을 선사했던

그 여자애가 손님들이 먹어치운 빈 도시락들을 들고 연회장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전에 그 사건도 있었기에 걔가 가지고 나오는 도시락을 받아주고 싶지 않아

알아서 카 위에 놓고 가라고 말하려 했으나,

그 여자애가 굉장히 불쌍한

표정으로 내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걸 보자

어이없게도 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런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굳이 건네받아 카 위에 실려있던 도시락들 위에

쌓아주었다.


그러자, 그 여자애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저, 사실은 제가 그쪽을 일할 때마다

쭉 지켜봐 왔는데... 되게 정리도 잘하시고, 설거지도 잘하시고

체력도 좋고 근력도, 순발력도 보통 이상이신 것 같은데,

혹시 더 규모도 크고 급여도 많이 주는 업체에서

일해보지 않을래요?"


뜬금없이 다단계 판매사원 같은 말을 던지는

이 여자애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뭔가 내 입장에선 좀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라

그 바쁜 와중에도 궁금해졌다.



"...그 업체가 이름이 뭔데요?

어디 호텔인가요? 아니면..."


나의 물음에, 그 여자애는 살짝 예의 그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제 친오빠가 운영하는 업체인데,

음... 여기서 그 이름을 말하긴 좀 그렇고..

혹시 생각 있으시면 여기로 연락 주세요."


나는 나도 모르게

여자애가 내 앞으로 슬쩍 내미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뭔가 지구의 물질이 아닌 것만 같은

기묘한 광택을 내는 재질의

그 명함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주 세척]


대표: 우해룡


Phone: 010-xxx-xxxx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더 멋진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 바랍니다.


-설거지 맨 상시 모집 중-


뭔가 쎄한 느낌에 미심쩍은 얼굴로

그 여자애를 바라보니,


갑자기 그 애가 내게로 바짝 다가와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여기로 이직해 주시면...

그땐 제가 사귀어드릴게요."


그 말에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더 급여도 좋고 이런 예쁜 애랑 사귈 수 있다고?

시X, 내 칙칙한 인생도 이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나는 그만 그 여자애가 던져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젠장,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나는 거의 납치당하다시피

끌려가 우주의 세척원인 '설거지 맨'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젠장.......




"으아아아아! 살려줘! 이게 뭐야!"


나는 나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커다란 자루 달린 냄비들과

괴상한 재질로 만들어진 접시들을 피하며

소리쳤다.


허무만이 존재하는, 이 시커먼 심연과도 같은

이 우주 공간 어딘가에 박혀있는

이름 모를 행성 위에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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