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버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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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꿀호빵
작품등록일 :
2024.07.10 12:19
최근연재일 :
2024.07.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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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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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하여 밑으로 들어온 부하

DUMMY

“누나? 안 가게요?”


최예린은 몸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현호를 바라봤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현호는 겁간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에 대머리를 단번에 죽이는 솜씨도 분명 보통이 아니었다.

크게 심호흡하고 최예린은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현호야. 아까 내가 말이 너무 심했지? 미안해.”

“아. 방금 전 그거요? 괜찮아요. 어쩌면 그게 누나의 본성일지도 모르죠.”

“괜찮다면 여기에 조금만 더 있어도 돼?”

“맘대로 해요. 단, 밤에는 묶어놓을 거예요.”

“어째서니?”

“내가 자고 있을 때 누나가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런 짓 안 해!”

“그렇게 말해도 안 믿어요. 마음에 안 들면 떠나요. 가는 건 누나 자유니까요.”


최예린은 잠시 고민이 들었으나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내일 아지트를 옮길 거예요. 여기 있는 식량도요.”

“왜? 여기도 괜찮은 것 같은데······.”

“여긴 안 돼요. 창문으로 밖에서 다 보이고 편의점이라 표적이 되기 쉬워요.”


현호는 밖의 반쯤 무너져있는 아파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내일부터는 저기가 우리 아지트예요.”

“아파트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니?”

“그래서 좋은 거예요. 저런 폐허에는 사람이 없을 확률이 높아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죠.”


하늘이 붉게 물든다. 밖은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세상이 부서졌어도 노을은 역시 아름답다.


“누나. 배 안 고파요?”

“아니. 난 됐어······.”


현호는 한 줄 김밥을 뜯어먹었다. 전기가 끊겨서 문이 없는 냉장고(open showcase)는 작동하지 않는다. 미지근하지만 그래도 맛있다.


“누나. 계속 그러면 오래 못 버텨요. 입맛이 없어도 살아남으려면 먹는 게 좋아요.”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하얀 다리를 끌어안으며 최예린은 고개를 숙였다. 현호는 한숨을 쉬며 김밥을 삼켰다.


“누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은 거예요?”


초거대 재난은 한 달 전에 일어났다. 최예린은 현호가 보기에 생존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진이 일어난 뒤로 숨어있었어.”

“물은요? 물이 없으면 사 일도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요.”

“집에 있는 생수로 버텼어. 햇반 먹으면서. 나중에는 다 떨어졌지만······.”

“그렇군요. 눈물겨운 이야기네요.”


현호는 최예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줬다. 카운터 뒤로 걸어간 현호는 밧줄을 가져왔다.


“해가 지기 전에 묶어야 되요.”


최예린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무슨 말을 하든 현호가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이 머리를 스치자 입을 다물었다.


“알았어.”


현호는 밧줄로 최예린의 손과 발을 꼼꼼하게 묶었다.

해가 저물자 사방은 완벽히 어둠에 잠겨버렸다. 안도 밖도 아무것도 어두워서 안 보인다. 전기가 사라진 세상의 밤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어둡다.

현호는 주머니에서 손전등을 꺼냈다. 현호가 식칼만큼이나 몸에서 가장 가까이 두는 물건이다. 밤에 사물을 분간하려면 필수적으로 손전등이 필요하다.

손전등이 있어도 아직은 킬 수 없다. 창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면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창문이 없는 시야가 차단되어 있는 곳에서 켜야만 한다.


“누나. 저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요.”

“현호야. 너 설마 나 버리고 가려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지?”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니 최예린은 겁이 났다. 지금 손과 발은 밧줄로 묶여있다. 그래서 그녀는 더 무서웠다.


“안 그럴 거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밧줄은 미리 풀어주고 갈게요.”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농담도 그런 말은 하지 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현호는 창고로 걸어갔다. 포유류의 야간 시력은 다른 동물보다 낮지만 그래도 못 쓸 정도는 아니다.


“누나. 금방 돌아올 테니까 조용히 하고 얌전히 있어요.”

“알았어. 꼭 돌아와야 돼. 약속이야······.”


현호는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손에 있던 손전등을 켜자 밝은 불빛이 앞을 비추었다.

창고에는 사람이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 앳된 인상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재고가 쌓여있는 선반 앞에서 여자아이는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현호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아이가 놀라서 눈을 큼지막하게 뜬다.


“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들었지?”


재킷 주머니에서 현호는 칼을 꺼냈다. 칼에 두르고 있던 붕대가 스르르 풀리며 떨어진다.

정보의 노출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처럼 거의 망해버린 세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제거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조금 떨어진 거리에 넙죽 엎드리며 절을 올렸다.


“현호 님! 앞으로 현호 님의 충실한 부하가 되겠습니다!”


단번에 달려들어 죽이려던 현호는 엎드려서 절을 올리고 있는 여자아이를 흥미롭게 내려봤다.


“너. 이름은?”

“조가은입니다!”

“나이는?”

“17세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무기가 있는지 확인해보겠다.”

“예······.”


조가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는 스타킹과 치마를 벗었다. 하얀 속옷만을 남겨두고 그녀는 맨발로 섰다.


“뒤로 돌아.”


움찔움찔 거리며 그녀가 뒤로 돌자 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확인 끝. 이제 옷을 입어도 좋다.”

“예에······.”


옷을 입은 조가은은 현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정말로 너는 나의 부하가 될 생각인가?”

“예! 목숨을 다 받쳐 충성하겠습니다!”

“흠.”


현호는 고개를 숙이고 조가은의 눈을 내려봤다. 그녀의 눈은 의지가 불타고 있는 강렬한 눈빛이다.

알아서 밑으로 들어오겠다는데 싫지는 않다. 단지 아직은 100% 신뢰할 수 없을 뿐이다.


“가은. 나는 아직 너를 믿지 않는다. 밤에는 손발을 묶어둘 거야. 그래도 상관없어?”

“예!”

“좋다. 너는 오늘부터 나의 부하다.”


혈서를 쓴다던지 신에게 하는 맹세 따위는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런 것은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변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충성한다면 서약은 필요 없다.

창고를 나간 현호는 카운터 뒤로 가서 밧줄을 챙겼다.


“현호야? 창고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리던데.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도 있니?”

“네. 한 명 숨어있었어요.”


창고로 들어간 현호는 손전등을 켜고 가은의 손과 발을 밧줄로 묶었다.


“불편해?”

“아뇨! 괜찮습니다!”


창고를 나간 현호는 최예린을 품에 안고 들어 올렸다.


“혀, 현호야! 갑자기 뭘 하는 거야?”

“여기서 자는 건 위험해요. 오늘 밤은 창고에서 자야 돼요.”


창고로 들어가자 현호는 최예린을 구석에 내려놨다.

선반에 등을 기대고 있던 조가은과 최예린의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언니!”

“반가워. 난 최예린이야.”

“저는 조가은이요. 현호 님의 충실한 부하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부하라고? 현호야.”

“제가 시킨 거 아니에요. 부하가 되고 싶다는데 어쩌겠어요.”


창고 문을 잠그고 현호는 바닥에 앉았다. 선반에 등을 기대며 손은 재킷 주머니에 있는 칼의 손잡이를 잡는다. 만일의 사태를 자면서도 항상 대비해야 한다.

다리와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동한 조가은은 현호의 옆에 앉았다.


“왜?”

“혹시라도 위협이 닥친다면 제가 대신 총알받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잖아. 난 아직 너를 못 믿어. 그러니 저기로 가서 예은이 누나랑 같이 자.”

“저는 여기가 편해요.”


눈을 감으며 현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조가은의 몸에는 무기가 없다. 만약 갑자기 돌변하더라도 지금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러니 현호는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현호 님?”

“왜?”

“오늘은 제가 현호 님의 부하가 된 첫 날이네요.”

“그래서?”

“그냥 그렇다구요.”

“이제 조용히 해. 예은이 누나가 우리 때문에 못 자잖아.”

“예! 조용히 하겠습니다.”


창고는 무척이나 어둡다.

눈을 감고 최대한 잠을 자기 위해 애쓰고 있던 최예린은 조가은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현호한테 관심이 있나?’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분위기나 말투에서 느껴진다. 이를테면 여자의 감이다. 자기 위해 애쓰던 최예린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또 이상한 애가 늘었어.’



현호는 눈을 떴다.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자 시간은 아침 7시다. 이 시간만 되면 언제나 저절로 눈이 떠진다.

조가은은 현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었다. 참새처럼 숨을 고르고 자고 있는 조가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선반에 기대놓으며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고 문을 조금 열자 밖에서 빛이 흘러들어온다.

가볍게 스트레칭과 쉐도우 복싱을 하며 현호는 몸을 풀었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몸 관리는 필수다.


“하아암. 현호 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잘 잤어?”


현호는 조가은의 손과 발에 묶여있던 밧줄을 풀어줬다.


“네! 푹 잘 잤어요!”

“그럼 다행이고.”


현호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조가은은 눈을 감으며 베시시 미소 지었다.


“음. 으으으응······.”


최예린은 얼굴을 찡그리며 다리를 앞으로 쭉 뻗었다. 실눈을 뜨며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누나. 잘 잤어요?”

“으응. 잘 잤어.”


빈말은 아니었다. 비록 쭈그려 앉아서 잤어도 현호가 근처에 있으니 안심하고 잘 수 있었다.

최예린의 몸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준 현호는 손발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오늘은 아지트를 변경해보죠! 다 함께 힘을 합쳐서 새로운 아지트로 식량을 옮기자구요!”

“오! 새로운 곳으로 이사가는 거군요!”


조가은은 눈을 똘망똘망하게 빛내며 현호를 올려봤다.


“모두 아침 먹고 시작하죠.”


현호는 둘에게 김밥을 건네줬다. 배가 고픈지 최예린은 어제처럼 안 먹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목을 축였다. 수분은 인간에게 있어 필수적이다. 목으로 넘기는 미지근한 김밥이 제법 맛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현호는 창고를 나왔다.

창고를 나오던 조가은은 창문 밖으로 시신 넷을 보더니 멈칫하며 멈춰 섰다.


“다 현호 님이 죽인 건가요?”

“그래.”

“굉장해요! 저렇게 덩치 큰 사람들을 죽이다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꽤 성가신 놈들이었어.”


겁을 먹었는데도 조가은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용기를 내어 현호를 추앙했다. 현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쓰다듬어줬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위험하니 서두르죠. 둘 다 가방에 식량을 담아요. 보존 기간이 긴 통조림이나 필수적인 생수를 가장 우선으로 담으세요.”


현호가 카운터 뒤에서 커다란 가방을 가져오자 조가은과 최예린은 돌아다니며 식량을 가방에 넣었다.

20kg은 거뜬히 담을 수 있는 가방이 식량으로 가득 차자 현호는 손을 들어 둘을 제지했다.


“멈추세요. 아지트로 가서 한 번 비우고 오죠.”

“현호 님! 제가 들겠습니다!”


양손으로 커다란 가방의 끈을 손에 쥔 조가은은 온힘을 다하여 위로 잡아당겼다.


“으그그그극!”


조가은의 근력으로는 가방을 위로 조금 당기는 것이 한계였다.

현호는 조가은의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식량은 내가 옮긴다. 예린이 누나는 가은이랑 같이 제가 짐을 옮길 때 좌우에서 보호해줘요.”

“보호? 난 사람은 죽이고 싶지 않아······.”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을게요. 적이 나타나면 위협이라도 해주세요. 알았죠?”

“응···.”

“가은아. 너도 할 수 있지?”

“네! 현호 님을 위해서라면 총알받이라도 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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