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의 복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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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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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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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 맨체스터의 아이

DUMMY

002 - 맨체스터의 아이


트렌트와 함께 고스 힐 프라이머리 스쿨에 입학했다. 별 이유는 없다. 집과 가까웠으니까. 지역 커뮤니티 시민 농장 바로 아래 위치한 집이다.


할아버지는 6.25 시기에 영국으로 넘어오신 이민자셨다. 물론 불법 이민자이셨지만 전쟁 속에서 피어난 우정은 어떠한 것보다 강력했기에 끈끈한 전우애로 극복하셨다. 그렇게 새로 얻으신 이름인 제임스 한.


제임스 한은 일용직 노동자 생활을 전전하며 기술을 배웠고, 그렇게 얻은 기술로 열차 정비공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맨체스터는 제임스에게 모든 걸 선물했다.


약간의 인종 차별이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돈과 가족, 친구를 선물한 도시이다. 돈을 벌고 결혼을 했으며 마침내 집을 사서 완전히 정착했다.


즐거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딸이 멍청한 콥한테 꿰여서 결혼한 건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콥인 점을 제외한다면 성실한 청년이니 큰 불만은 없었다. 심지어 꿈을 찾아 영국에 정착한 주제에 우리 딸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말하자마자 한국으로 가서 자리 잡는 모습은 높은 점수를 부여할 만한 태도였다.


아들놈들은 장성해서 떠난 지 오래고 남은 건 늦둥이 딸이었다. 그 딸도 이제 결혼하고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니 이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보며 여생을 즐기기만 하면 될 줄 알았건만.


“아빠, 저 왔어요.”

“잘 왔다. 유신이와 유진이는?”

힘없이 걸어오는 손자들의 모습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항상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마당을 뛰놀던 아이들이었다. 첫째는 재능이 부족해 보였지만 그것이 중요하겠는가? 영국에 살며 축구를 사랑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하지.


리버풀이 최강이라며 나에게 소리치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의 다리 한 쪽에 숨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일자리부터 구해야죠. 취직하면 살 집 알아보려고요.”

“애들은?”

“그래서 잠시만 얹혀살아도 괜찮을까요?”

“딸아, 내가 사랑하는 딸아. 평생을 살아도 괜찮단다.”

역시 그 콥 자식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캐링턴 유스 아카데미


“유진, 긴장 안 돼?”

“여긴 리버풀 사투리를 놀릴 놈들이 별로 없을 걸?”

나야 이곳저곳 잡식이었기에 어투로 특정 지을 수 없었지만 트렌트는 달랐다. 저 아이는 완전 토박이니까.


“유진.......”

“어차피 우리가 축구를 제일 잘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9살짜리를 괴롭혀 봤자 아닐까.


“나, 너 알아. 너 리버풀에서 뛰던 놈이잖아.”

벌써 시비가 걸린 걸까?

“뒤에 너도 리버풀에서 뛰었었잖아. 둘이 뭐야? 리버풀 촌놈들이 여길 왜 온 거야?”

“뭐? 리버풀 촌놈?”

“트렌트, 그냥 무시해.”

저 놈도 나중에 잘 하긴 하지만 네가 더 잘할 거니까.


“다들 모여 봐라.”

코치가 필드로 나와 선수들을 모았다.


“여긴 트렌트와 유진이다. 대충 얼굴들은 알지? 이번에 맨체스터로 이사 오게 돼서 합류했다니까 잘 지내라. 이제 해산, 연습하자.”

저런 설명이 도움이 될까? 꿈 속 아니, 두 번째 인생이기에 이런 편의주의적인 방법으로 쉽게 넘어가는 부분도 생기는 걸까?


“리버풀보단 맨체스터가 좋지?”

“역시 리버풀에선 못 살겠어서 나온 거지?”

“잘 왔어. 원래 팀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최고 아니겠냐.”


나이가 몇인데 벌써부터 지역차별이냐. 나중에 인성교육도 필요해 보였다.


“트렌트, 몸 풀자.”

“응.”

처음에나 어그로 끌렸지 몇 번 반복되자 트렌트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린 여기에 온 목적이 있고 저런 건 장애물 조차 되지 않으니까.


가볍게 뛰고 리프팅 좀 하고 공을 주고받았다. 큰 틀에선 차이가 없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유스 아카데미라던데. 그냥 동기부여 차이인가? 이름값?


“세팅하자.”

“네.”


눈치껏 애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움직였다. 전에도 비슷하긴 했다. 코치들이 훈련을 준비하긴 하지만 세팅은 함께한다.


볼과 콘 등 훈련 장비들은 이용하는 선수들이 직접 가져온다. 팀워크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고 선수들이 아닌 팀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1군에 가서도 훈련 준비는 선수들과 함께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볼 수 있으니 유소년 단계에서 이러는 건 특이한 일도 아니다.


크루이프가 뛰기 싫어서 고안했다는 론도 훈련. 한국에 불리는 다른 별칭을 생각한다면 퍽이나 이름과 어울리는 훈련이었다.


코치가 훈련할 팀들을 구성했다. 시작할 때의 구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계속 인원을 바꿔가면서 하니까.


하지만 나와 트렌트에겐 문제였다.

“헤이, 볼!”

몇 번을 말했는데 오질 않는다. 삼각형 속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게 둘이 주고받다 뺐기고 술래가 바뀌고 이런 모습을 계속 반복한다. 심심해서 트렌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지켜봤더니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처음에 만난 래시포드 놈이 발언권이 센 건지 우리가 원래부터 유명한 건지 잘 모르겠다. 둘 중 하나는 답이기에 이딴 짓을 하는 거겠지?


코치들은 딱히 개입을 하지 않았다. 흔한 클리셰를 생각하는 걸까? 땀 흘리고 실력으로 인정받고 그렇게 우정을 쌓아가는?


“가볍게 한 판 하자.”

한국과 비교하자면 유소년들의 훈련 강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래서 유소년 대표팀끼리 붙으면 한국이 이기는 경우가 흔한 편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어린 나이에 그런 성과를 중요시하는 편이 아니었다. 물론 성과가 좋으면 좋지만 일단 재미를 붙이는 걸 우선시한다. 프로로 향하기 위해 몸을 갈아 쓰는 걸 허용하지도 않고.


팀을 나눴다. 기억이 맞는다면 리버풀에 있을 때도 자체 경기는 자주 했었다. 기초가 없는 시절에도 말이다. 그게 최고의 재미이었고 최고의 동기부여이기도 했으니까.


시비인지 관심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걸 보인 래시포드 놈이 상대팀 트렌트와 나는 한팀으로 묶였다.


“트렌트, 재랑 붙겠네?”

고개를 까닥거리며 래시포드를 가리켰다.

“잘하겠지?”

“너 재 생각 안 나지?”

“오늘 처음 봤는데 어떻게 생각이나?”

소심한 척하지만 저렇게나 대범한 놈이다.


“딱 그 정도라는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자신감 있게 해.”

말을 건네고 포지션을 잡았다.


중앙 미드필더. 내 평생의 축구 생애를 함께 해온 포지션이다. 사실 전생 기준 8살까지긴 하다.


코치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지금은 사실 복습하는 시간과 같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금 전까지 배운 것을 코치의 지시 없이 반복 숙달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흥미를 돋운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그런 거고 그걸 떠나서 필드 위에서 뛰어다니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했다. 여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그런 걸 하기위해서 온 애들이기도 하니까.


우리 팀 골키퍼가 볼을 앞으로 전달했다. 전술 연습을 겸하기도 한 것이라 굳이 가운데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U자 형태의 빌드업이 이어졌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8명이 뛰는 경기이지만 331의 포지션에서 중앙 미드필더 두 자리를 나와 트렌트가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나름 열심히 뛰며 우리를 배제하고 빌드업을 이어갔지만 쉽게 상대팀에게 빼앗겼다. 이어지는 상대의 전개는 간결했다. 우리처럼 배제하는 포지션이 없었고 가장 앞에 있는 놈의 킥이 나쁘지 않았으니까.


“나이스 슛, 마커스!”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네!”

“지금처럼만 하자!”


여전히 코치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애들 일은 애들끼리 풀어라 일까? 나도 나름 서른까지는 크흠.......


“너무 치사해 보이지 않아?”

“그래?”

“지는데도 우리한테 패스를 안 하잖아.”

“더럽게 못한다, 그지?”

“그렇긴 해. 우린 둘만 했어도 이미 골을 넣었을 테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 맨체스터 놈들이!”

“이제 우리도 뛰자. 오늘 땀이 하나도 안 난 것 같아.”


트렌트의 등을 살짝 토닥여주고 필드에 자리 잡았다. 내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면서 그저 의리 하나로 리버풀을 배신한 친구다. 동갑이지만 사실 나보다 어린 친구. 내게 거대한 의리를 보여준 어린 친구이니 내가 잘 챙겨야겠지.


“헤이, 볼!”

다시 볼을 요구했지만 공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줄 곳은 뻔했으니까.


수비수 셋과 키퍼까지 포함 넷이 볼을 돌리다가 우리 팀의 또 다른 미드필더 맥토미니에게 볼을 찔러 주었다. 여기다. 유일한 패스 길이. 롱볼은 코치가 금지시켰으니까.


재빨리 뛰어가 볼을 뺏었다. 당황하고 화를 내는 모습들이 보였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짜증낼 거면 지들이 잘하던가.


“트렌트!”

트렌트와 발맞춰 뛰었다. 트렌트와 함께 했을 땐 굳이 상대 수비를 뚫기 위해 드리블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친구는 정말 나와 마음이 잘 맞았으니까. 1대1 패스를 서로에게 주고받으며 가다 보면 상대 골대가 금방 나온다.


지금은 많이 참아준 내 친구에게 기회를 양보했다. 진짜 많이 참았을 테니까.


트렌트는 유진이 알맞게 굴려준 볼을 강하게 후려 찼다. 언젠가 꿈꾸던 모습이다. 안필드에서 스티븐 제라드처럼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골을 넣는 모습. ‘이젠 스콜스라고 해야 하나? 난 제라드가 좋은데.......’


“트렌트, 어떻게 할래?”

“개인 연습해야지.”

단체 연습이 끝나고 하고 싶은 사람은 개인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갔다. 원인은 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저 짜증을 팍팍 내며 우리 연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


“너희 딱 1시간이다.”

“네.”


“킥부터?”

“그러자.”

특별한 훈련은 아니었다. 공을 넓게 배치한다. 위치마다 살짝 띄워서 공 두 개씩. 골대를 향해 찬다. 왼쪽에선 왼쪽, 가운데에선 가운데 그런 방식으로.


트렌트와 유진은 가장 친한 친구이고 한 팀에서 함께 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경쟁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진사람 아이스크림 사기.”

“난 너 때문에 맨체스터까지 왔는데?”

“돌아가던가.”

“너무하네.”

“나부터.”


김유진은 패널티 에어리어 왼쪽 모서리에 있는 공을 찼다.

“샷. 트렌트.”

“아, 좀.”

투덜거렸지만 그런 태도가 무색하게 트렌트는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둘의 훈련을 보면 훈련이 아닌 몸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쉽게 성공을 시켰기에 그래보였다.


“저기, 둘은 누구지?”

“네?”

유진과 트렌트의 훈련을 감시하던 코치는 발짝하며 일어났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브라이언 맥클레어 유스 총괄 디렉터였기에 그런 반응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아, 네. 저 둘은 김유진과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입니다.”

“못 보던 애들 같던데?”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들입니다.”

“아, 리버풀에서 넘어온 애들?”

“네, 네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구먼. 저런 원석들이 우리에게 넘어오다니.”


훈련을 잠시 지켜보던 총괄 디렉터는 껄껄거리며 자리를 떴다.


“흠.......그 정도인가?”

다시 자리에 앉은 코치는 총괄 디렉터의 말을 곱씹으며 두 소년의 훈련을 지켜봤다.


***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

“그럴까?”

트렌트는 유진의 제안을 즐겁게 받았다. 유진의 집에선 항상 다양하고 이색적인 음식을 즐길 수 있었기에 식사가 기대되는 건 당연했다.


“아들, 오늘 어땠어?”

밥상을 차리며 한민아가 김유진에게 물었다.

“그냥 별 차이 없던데?”

“아니에요. 리버풀 사투리 사용한다고 시비 거는 놈이 있었어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몰래 엿듣고 있던 제임스 한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맨체스터에서 리버풀 것들은 조심하긴 해야지.”


“아빠!”

“응? 왜 그러니?”

“그런 지역 차별적 발언은 옳지 않아요!”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니?”

제임스 한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식사를 하던 사람들 모두 웃음이 터졌다.


[즐거운 분위기가 참으로 보기 좋구나.]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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