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로 돌아왔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7.24 08:06
최근연재일 :
2024.07.26 17:47
연재수 :
3 회
조회수 :
72
추천수 :
3
글자수 :
11,783

작성
24.07.25 12:12
조회
30
추천
1
글자
11쪽

소총

DUMMY

“윽.”


머리가 깨지는 것 같다.

거인이 내 머리를 깨려고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박살난 호두처럼 머리가 쪼개질 듯한 엄청난 격통이 치밀었다.


“끄어어.”


생전 처음 뱉어보는 신음소리가 입밖으로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바닥을 구르고 머리를 벽에 박았다.


“허으. 헉. 흐으으으.”


그런 짓을 얼마나 했을까.

억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머리가 개운해졌다.


“어으으···.”


침이 줄줄 흘러 윗옷을 적셨다.

하지만 그따위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격통은 단순한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다.

온갖 지식들이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방금 전까지 하고 있던 신들의 요람에 관한 지식, ···아니 진실.


‘진짜였다고?’


그 게임은 누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

나는 그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로 채택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 세상, 내가 속한 세계 전부가 그 일에 휘말려버렸다는 것.


‘아.’


하지만 스스로를 한탄하고 자책할 시간도 없었다.

게임이 시작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첫 스테이지, 투기장 1관의 테마는 좀비다.


***


“이게 뭐야!!”

“씨발! 개새끼들아! 이거 뭐야! 장난 쳐?”

“꺄악! 자기야!!”


수백명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넓은 실외.

서울 도심에 자리한 공원 중 하나를 본 뜬 모습.

하지만 생긴 것만 그럴뿐이다.

완전히 다른 곳이라는 걸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이한 형태의 식물과 바닥을 뚫고 올라온 철사. 독특한 악취를 풍기는 시체들까지.

영화 세트장에 잘못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괴팍한 풍경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공포를 새겼다.

하지만 이내 그 미지는 더 이상 미지가 아니게 되었다.


“너 뭐라 그랬어!?”

“왜 지랄이야.”

“씨발놈이, 평소부터 좆같다 싶었더니 이때다 싶어서!!”


여자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던 사내들 중 하나가 갑자기 눈을 깜빡였다.

멱살 잡은 상대를 보는 게 아니었다. 그 어깨너머.

멀리서 다가오는 조용한 그림자.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수백, 수천의 그림자가 맥아리 없이 천천히 걸어왔다.


스윽. 슥.

아스팔트를 대걸레로 훑는 것 같은 소리.

낡고 해진 바짓단이 바닥을 쓸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반쯤 파먹은 사체 또한 그들을 따라 몸을 흔든다.

동물의 사체였다.

배를 파먹힌 고라니가 퀭한 눈으로 마주봐왔다.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


곧바로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뒤돌아 도망쳤다.

빠른 판단이 그를 살렸다.

비명을 듣고도 바로 반응하지 않은 사람 대다수가 그림자, 아니 좀비들에게 붙잡혔다.

팔다리가 뜯기고 생살이 씹힌다.

걸쭉한 피가 여러 체액과 뒤섞여 아스팔트를 물들였다.


“크르르!”

“끄어! 쿠적! 크흐으으···.”


오랜만에 먹는 신선한 피와 살은 좀비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살가죽만 남아 말라붙어 있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기분탓이 아니었다.

좀비들의 기분이 좋아서 동작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점점 더 근육이 붙고 살가죽에 윤기가 돌았다.

바람 빠진 풍선에 새바람을 밀어넣은 것처럼.

그렇게 되살아난 좀비들이 생존자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1이 시작됐다.


***


“끄르르르르!!”


벽 너머로 낮은 괴성이 들려온다.

사람을 여럿 잡아먹고 경험을 쌓은 좀비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간혹 사람 목소리나 비명을 따라하는 놈들도 있다.

장산범처럼.


‘게임과 똑같다.’


이건 게임이다. 아니 현실이다.

하지만 게임에서 사용된 지식은 모두 진실이다.

아르칸이 내게 알려줬다. 주입했다.

머릿속에 직접.


‘경험 부족.’


그 지식을 기반으로 파악한다면, 옆방에 있는 저놈은 경험이 적은 놈이다.

사람을 먹기는 했는지 소리는 꽤 활기차지만.

설익은 모습.

그럼 사냥하기도 쉽다. 경험이 부족한 사냥꾼은 더 이상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법이니.


“···.”


딸깍.

들고있던 나무토막으로 벽을 쳤다.

좀비가 곧바로 반응했다.


“끄아아!”


벽을 후려치다 이내 밖으로 뛰쳐나와 내가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낡은 문짝이 거칠게 흔들렸다.

쿠작. 퍽.

거침없는 손길에 맥없이 흔들리다 이내 피 같은 부스러기들을 떨군다.


“끄르르!”


부서진 잔해 사이로 놈과 눈이 마주쳤다.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눈을 찔렀다. 놈이 바로 목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빠르네.’


생각보다 더 많이 잡아먹은 놈이다.

머리는 나쁜 놈이 이렇게 몸이 날랠 줄이야. 이건 특이개체일 수도 있겠다.


‘그럼.’


곧 손에 들어올 보물을 생각하자 입이 바짝 말랐다.

사태가 벌어지고 24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도망다닌 사람들이 대다수겠지만, 피지컬과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은 되려 좀비를 사냥했을 터.


그럼 당연히 인장(印章)을 찾았을 거다.

나도 이미 몇 개 얻었다.

목을 휘감아 도는 작은 인장들. 내가 인식하는 순간 곧바로 눈앞에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이 인장들은 사람의 신체를 게임 캐릭터처럼 만들어준다.

능력 자체는 심플한 것부터, 복잡하고 특별한 것까지 다양하다.


‘체력, 민첩, 근력.’


내가 얻은 것들은 전부 신체능력을 강화시켜주는 인장.

원하는 건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 인장이다. 마력의 인장이나 기력의 인장 같은.


“끄르륵. 끄륵!”


떡두꺼비 같은 소리를 내는 이놈 같은 특별한 녀석들을 잡으면 나온다.

이 녀석이 진짜 특별하다는 전제 하에.


“흡!”


들고있던 쇠파이프로 다시 한 번 눈을 노렸다.

놈이 잽싸게 피하더니 이제는 고개를 숙인 채로 계속 문을 두드렸다.

그리 크지 않은 단신임에도 무슨 힘이 그리 좋은지 문이 비명을 지르며 부스러졌다.


꾸드득. 퍼억!!

문이 쪼개지며 좀비가 달려들었다.

부스러진 잔해 사이로 쏜살같이 튀어나온 좀비가 덜컥하고 멈추더니 거칠게 쓰러졌다.


“휘유.”


바닥에 나뒹구는 머리를 슬쩍 피해서 몸을 뒤집었다.


‘머리 나쁜 놈은 이래서 쉽다니까.’


깔끔하게 잘린 단면이 보인다. 하얗고 끈적거리는 살가죽과 동그란 목구멍.

벽에 설치해둔 와이어에 달려들며 목이 날아간 것이다.

내 힘으로 잡는 것보다는 이렇게 함정을 이용하는 게 손쉽다.


‘사람은 머리를 써야지.’


개인의 용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1관의 벽이 너무 높다.

이전에도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해당 스테이지에서 포기했을 정도로.


“끄륵. 끅.”


잘린 머리가 침을 흘리며 바닥을 뒹군다.

평탄하지 않은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다 구석에 자리잡았다.


잘리고도 바쁘네.


머리에서 시선을 떼고 동작이 멈춘 몸을 뒤적거렸다.

대부분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어디에 쓰일지 모를 철제 키 하나와 입고 있던 옷을 수거했다.

더럽기 때문에 내가 입거나 붕대로 쓸 수는 없겠지만, 장작이나 함정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 가능하기에 수거했다.


“으윽.”


성인남성, 그것도 좀비의 옷을 벗기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몇번이나 반복한 덕인지 동작은 빠르고 긴밀했다.


사실 이게 제일 이상한데.


내 정신.

그러니까 내 머리가 좀 이상하다.

난 분명 이런 상황이 처음이고, 이것과 비슷한 극한 상황에 빠진 경험도 없다.

특수부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정신이 멀쩡할까.


‘아르칸 덕분인가.’


적룡 아르칸.

날 이곳으로 밀어넣은 천외천의 존재.

신에 근접한, 사실상 반신이었던 그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애초에 세계 전체를 이렇게 만든 것도 아르칸 아니던가.


‘아니면 고렙 전용 특전일지도.’


물건을 가방에 밀어넣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잘린 머리를 들어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입은 이미 놈이 입고 있던 옷으로 막아뒀다.


"···.”


창밖에서 불빛이 비춰들어온다.

머리와 그걸 잡고 있는 내 손이 기름으로 번질거린다.


‘제단을 찾아야 해.’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 바치면 특별한 인장으로 바뀔 터.

가능하면 마력이나 기력이기를 바란다.


아니라면, 이놈이 꽝인거겠지.


두번째 가방인 큼직한 더플백을 열고 머리를 넣었다.

안에는 이미 잡아둔 머리가 하나 더 들어있다. 아직 살아있다.


눈을 뜬 머리가 입을 우물거린다.

물고 있던 천조각이 거칠게 찌그러진다.


방금 잡은 이놈처럼 특별한 놈이다.

피지컬만 믿고 달려들던 놈과는 달리, 머리를 쓸 줄 알던 진짜 사냥꾼.


잡느라 고생했다.

사실 막타만 치기는 했는데, 서로 돕고 사는 사회 아니던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니 불평도 못하겠지.


가방을 어깨에 맸다.

식료품과 잡템이 들어있는 책가방은 가슴팍에, 머리가 든 더플백은 어깨에 걸쳤다.


‘그러게 왜 겁없이 덤벼서.’


처음에는 도와주려고 했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난 사람이다.

같은 사람을 막 죽여댈 정도로 미치지 않았다.

평소에 광기를 억누르고 살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허나 어려운 사냥감인 좀비 대신 나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이에게도 온정을 베풀만큼 나약하지도 않다.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모자란거다.

더 이상 법적보호를 받을 수 없는, 모든 사회규범이 붕괴된 사회에서 착하기만 한 것은 죄악이다.

그러고 싶으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옆에 있는 사람을 지킬 수 있고, 따르지 않는 자를 강제로 착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

그게 가능한 건 게임내 캐릭터 중에서도 특별한 NPC였던 몇몇뿐이다.

그들조차 극후반에는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자기가 지키던 이들에게.


“읏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 집에서 건질 수 있는 건 모두 파밍했다.

혹시나 열쇠가 들어갈 곳이 있나 살폈지만, 역시 처음과 똑같이 아무것도 없었다.

좀비가 있던 방에서 나온 건 빛바랜 가족사진이 전부였다.


딸깍.

반쯤 무너진 건물을 등진 채 빛을 따라 걸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헤드라이트 불빛.

저건 생존자들이 아니다.


“피곤하겠네.”


모든 맵을 뒤지며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한다면, 저 장소에 희생의 제단이 있다.


“쯧.”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제단이 있었다.

3m쯤 될 큼직한 석관과 그 주변을 둘러친 돌조각. 희생의 제단이 맞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틀렸다.

좀비 소굴일거라 생각했던 곳에는 생존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사람이다!!"

"경비! 경비이!!!"


수십명으로 이루어진 남성들이 갱단처럼 제단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지!!”


고함소리와 함께 총부리가 이쪽을 겨눴다.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총이라.’


이 스테이지에는 총이 없다.

그런 밸런스 붕괴 아이템이 벌써 드랍될 리가 없지.

저건 가짜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멸망한 세계로 돌아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 맹독 24.07.26 17 0 11쪽
» 소총 24.07.25 31 1 11쪽
1 플래시백 24.07.24 25 2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