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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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문
작품등록일 :
2024.07.24 08:06
최근연재일 :
2024.07.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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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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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독

DUMMY

소총을 든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M16A1, 지금은 K2로 바뀌었지만 한때나마 대한민국 군대의 핵심 소총이었다.


‘나이가 많다.’


K2는 생각보다 오래 전에 개발되었다.

미국인 체형에 걸맞게 만들어진 M16과 달리 더 사용하기 편하기에 전방사단부터 천천히 교체되어왔다.


그럼에도 저걸 썼다는 건 둘 중에 하나다.


나이가 많거나, 최근까지도 교체되지 않은 후방 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다는 것.


“소, 손 들어!”


답이 두 개임에도 나이가 많다고 생각한 이유는 저 사내의 행동 때문이다.

손을 이미 들었는데 어떻게 또 든단 말인가. 발이라도 들까? 그럼 넘어지는데?


“···.”


허나 총을 든 사람을 상대로 그런 행동은 위험하겠지.

대신 고개를 숙이고 이미 들고 있던 손들을 더 높이 들어올렸다.

거친 들숨과 날숨을 뱉으며 사내가 다가왔다.

앳된 얼굴. 솜털이 부숭부숭하다.

군대는커녕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 나이로 추정된다.


‘만든 놈이 약았군.’


무슨 능력일까.

이런 기묘한 환상 혹은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미 마력의 인장을 먹었다는 뜻이다.

겸사겸사 환영이나 제작의 인장을 얻었을테지.


‘제단부터 확보했어야 하는데.’


제단 근처는 좀비 밭이니 당연히 사람들이 피할 거라 생각한 내 오판이다.


“따, 따라와!! 이, 이 새끼야···.””


총부리를 겨누는 학생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잡아!!”


멀찍이 떨어져있던 젊은 사내들이 급히 달려와 내 팔을 묶었다.


“움직이지 마라. 목을 날려버릴 수도 있어.”

“칼 조심해, 나한테 겨누지 말라고.”

”미, 미안.”


행동들이 느리고 어설프다.

그럼에도 나름 조직적이다. 역시 총수는 나이가 많은 놈이다.

노련함이 느껴진다.

기묘할 정도로.


‘뭐하는 인간이지.’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이 보인다.

군대를 모방해 만든 개인용 삼각텐트와 지휘부로 사용할 생각인지 꽤 거대한 천막까지.

사방에 널린 시체와 사로잡힌 인간들만 아니었다면, 군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비슷했다.


‘군인이군.’


곧 천막 안에서 군복을 갖춰입은 중년의 사내가 걸어나왔다.

질끈 묶은 말총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국방색 군복의 가슴팍 명찰에는 ‘김구산’이라는 이름이 파란실로 박혀있다.


“다들 칼 치워. 말 잘 듣는 분들은 손님으로 대하라니까.”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작군.”

“죄송합니다!!”

“좋아. 얼마나 듣기 좋나? 다들 돌아가서 일 들 봐. 너는 따라오고.”


김구산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학생을 지목하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가 제일 먼저 보였다.


“호오.”


내 얼굴을 유심히 보고 있던 김구산이 피식 웃더니 들고있던 지휘봉으로 탁자 옆을 가리켰다.

안내를 따라 빈 의자에 앉자 그가 고개를 까딱거렸다.

말꼬랑지 같은 머리끝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방정맞아 보인다.


“신기한 친구군. 어디 출신이지?”

“증평입니다.”

“아, 증평 좋지. 그 뒤에는? 어느 부대를 나왔나.”

“면제입니다.”

“증평이라면서?”

“고향입니다. 제2의 고향.”

“흐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또다시 피식 웃었다.

입술 사이로 새는 소리. 웃음이 많은 사내였다.


‘이 사람이군.’


입고 있는 옷도 사방을 채운 도구들도, 전부 환영이 아닌 진짜다.

애초에 내 손목을 묶은 밧줄도 이 사람이 만든거겠지.

제작의 인장이다.

환영이라면 의자에 앉을 수도 손을 묶을 수도 없다.


“그래, 여긴 왜 왔나? ···아, 가방. 줘 봐.”


더플백을 살핀 김구산이 활짝 웃었다.


“손님이었군. 제단 이용료는 알고 있겠지? 식료품 일주일 치. 노동. 여자. 셋 중에 뭐로 하겠나.”

“정보를 팔고 싶습니다.”

“···정보?”


지휘봉이 탁자를 가리켰다.

지도 한 켠이 찌그러진다. 잘 만든 도구다.

내가 쓰고 싶을 정도로.


“친구. 난 정보가 필요없어. 여기서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없거든. 내가 팔면 모를까. 나한테 팔겠다고?”


김구산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놀렸다.


“제단에 머리를 올리면 인장이 나옵니다. 사람의 머리는 효과가 없습니다.”

“나도 알아. 해봤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변이개체를 잡으면 그만큼 특별한 인장을 줍니다.”

“그것도 알고 있네.”


김구산의 얼굴이 따분함으로 물들어갔다.

시선이 내게서 멀어진다.

등뒤의 고등학생에서 입구를 지키는 사내 둘, 이어 바닥에 널브러진 헐벗은 여인들을 향한다.

그제야 여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였군.’


내가 여자보다 지도를 먼저 봐서 이상하다 생각한거군.

이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보통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범죄에 휘말린 사람부터 확인하고 놀라는 게 당연할테니까.


“이봐 친구.”

“예.”

“다 아는 정보말고. 다른 걸로 계산하지? 식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눈길이 활짝 열린 가방을 향한다.

저 안에는 일반 남성 한달치의 식량이 들어있다. 저걸 먼저 확보하느라 제단에 늦게 온 것도 있다.

1스테이지 중반부터 식량이 급격히 중요해지니까.

겸사겸사 파밍할 좀비들도 물색하고.


‘완전 사기꾼이군.’


예상은 했지만, 일주일 치라면서 그 몇배를 받아먹는군.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통칭 ‘시가’다. 시가.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아포칼립스에서는 흔한 일이겠지.


“노동으로 갚게. 마침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한 일이 있었거든.”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도 좋아. 그 친구들이랑은 달리 아주 올바른 친구야! 마음에 드는구만!”


김구산이 껄껄대며 내 어깨를 쳤다.

그가 웃자 여자들을 힐끔거리던 문지기 두 명이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고등학생만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예의주시한다.


“밧줄 풀어줘.”

“감사합니다.”

“아직 안 풀어줬는데?”

“같은 편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구산 ···대령님.”

“내가 대령인 줄 어떻게 알았나?”

“무궁화 세 개면 대령 아닙니까?”

“하하하.”


껄껄 웃던 김구산이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손길이 끈적하다.

귓가로, 씨발 내 귀 근처로 다가온 중년남성의 입술이 열렸다.


“다음부터는 거짓말 하지 말게. 자네도 사정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난 거짓말쟁이를 매우 싫어하니까.”

“예. 주의하겠습니다.”

“좋아.”


묶여있던 손목을 빙빙 돌렸다.

상태는 나쁘지 않다. 역시 제작의 인장. 쓸만하다.

하지만 그 상위등급의 룬이 있다는 건 모르겠지.


“그럼 시키실 일은.”

“일단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하지. 우리도 일정이 있거든. 그때까지 쉬어둬.”

“예, 쉬겠습니다.”

“역시 마음에 드는 친구야. 식량은 가지고 가. 제단도 쓰게 해주지. 선불이야. 대신 우리 사람이 같이 봐야해.”


좋은 인장이 나오면 지가 먹겠다?

뭐, 좋아.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여자도 필요하나? 하루치면 충분하네. 세 끼에 하루 빌려주는 걸로. 망가지지만 않게 적당히 쓰고 돌려주면 돼.”

“괜찮습니다.”

“여자 싫어하나? 특이하군. 원하면 남자를 붙여주지. 어린애도 있고.”

“피곤해서 그런지 생각이 없습니다. 좀비를 잡느라.”

“아, 그렇군.”


천막을 나와 내게 배정된 텐트로 향했다.

안에는 말라붙은 핏자국과 정체를 알지만 알고 싶지 않은 하얀 백탁액이 여기저기 늘러붙어 있었다.


“여기가 제일 깨끗한 곳입니다. 쉬세요.”


고등학생이 적당히 고개를 숙였다.

들고 있는 총부리가 자기 얼굴을 향한다. 너무 미숙하다.


짐을 풀고 텐트 앞에 앉았다.

옆텐트에서 신음과 고함소리, 그리고 사람 패는 소리가 들렸다.


음.

상황 살피면서 고민 좀 했는데.

정했다.

다 죽이자.


***


농사를 지어봤나?

아니, 그렇게 거창하게 갈 것도 없다.

식물을 키워봤나?

그럼 비료나 물, 햇빛만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거다.


그건 바로 식물을 갉아먹는 해충.

달팽이나 벌레 같은 것들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해충이 괜히 해충이겠는가.

살충제 몇번으로는 박멸할 수가 없다.

농약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뿌리고 또 뿌려도 어디서 그렇게 기어나오는지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민다.


그래서 특별한 대책이 없는 후진국에서는 아예 불을 지르거나, 심하면 폭탄을 터트리기도 한다.

뭐 폭탄까지 가는 경우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불어난 메뚜기나 새떼 정도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그 폭탄을 터트리는 타이밍이다.

놈들이 자고 있을 때.

다른 말로는 방심하고 있을 때다.

그게 가장 위험부담이 적고, 적에게 주는 피해도 극심하다.


‘다 됐군.’


밧줄을 팔목에 보호대처럼 감았다. 이럼 눈에 띄지 않겠지.

좀비에게 물릴 때를 대비해 교과서를 팔에 감은 놈도 간간히 보이는 곳이니까.


“끄륵.”

“끄으으.”


인기척에 가방 안에 있던 좀비 머리가 눈을 치뜬다.

아직 제단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건 조합식에 맞춰 사용할 생각이다.

사람 대가리는 인장으로 바꿔주지 않지만, 과정을 한 번 거치면 나온다.

그걸 여기에 섞으면 특별한 룬이 나온다.

사람까지 잡을 생각은 없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으니 해야지.


그래서 일부러 잡혀왔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탈출할 자신도 있었고, 무엇보다 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으니까.

겸사겸사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거두려 했다.


지금이야 솔플이 가능하지만, 이후는 힘들다.

믿음직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된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온갖 욕구로 점철된 걸 봐라.

이런 쓰레기들을 어떻게 믿고 등을 맡길까.


텐트를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경비들이 다가왔다.

야영지 안을 순찰하는 이들이다.

전원 2인조다.

역시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다.

하나가 잡혀도 다른 하나가 소리를 지르겠지.

살아있는 사이렌이 용도의 전부기에, 당연히 그들을 뽑는 요건도 그리 박하지 않다.

상태가 다 안 좋다는 뜻이다.


“어디 가십니까.”

“화장실.”

“아, 그거. 잠은 잘 잔 모양이네요. 다녀오세요. 저깁니다.”


기분 나쁘게 웃은 경비가 가리킨 곳은 여인들의 비명이 들리는 곳이었다.

거기 아니야 이 미친 새끼야.

밖이었으면 벌써 대가리를 세 번은 뜯어놨을 놈을 등진채 진짜 화장실로 향했다.


삐걱.

대충 땅을 파서 가림막만 설치해둔 푸세식 화장실이다.


‘더럽네.’


팔목을 묶은 밧줄을 풀어 안에 담궜다.

처음에는 약하게, 하지만 이내 확실하게 오물이 늘러붙는게 보인다.

사람을 죽이는데 가장 좋은 건 역시 독이지. 그리고 똥독도 독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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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총 24.07.25 3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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