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새글

오천자
작품등록일 :
2024.07.24 23:30
최근연재일 :
2024.09.17 20:0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261,693
추천수 :
5,843
글자수 :
245,233

작성
24.08.07 22:16
조회
6,916
추천
139
글자
12쪽

스타성을 알아챈 응원단장

DUMMY

특유의 파랑/검정 투톤 염색.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서 응원석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녀는.

K리그 팬들 사이에서 ‘MZ 단장’으로 유명한 ‘정유미’ 단장이었다.

귀엽게 생긴 외모도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이긴 했으나-.

그보다는 정유미 단장이 해왔던 일들로 인해 유명세가 형성된 것이었다.

대체로 평이 좋지 않았던 ‘블루 가이즈’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한 장본인.

다소 거칠고 보수적이었던 팬덤 문화를 전면 개편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했을 정도였다.

정유미의 당돌하고 꼼꼼한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인천 유나이티드 자체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고.

그녀의 SNS 팔로워도 백 단위에서 천 단위로 치솟는 등, 웬만한 선수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팬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이후로 팬을 유입하기 위해서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팬 문화고 뭐고 간에, 경기력이 좋아야 가능한 부분이었다.

오늘의 친선 경기도 그러한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양상이었다.


“아오! 원터치로 빠르게 연결하면 뭐하냐고! 마무리가 안 돼서 역습 당하는데!”


쯧─


“그래도 누구보단 낫네. ‘라볼피아나’ 어쩌구 하면서 공만 돌리는 팀도 있는 마당에.”


그녀의 식견은 웬만한 남성팬 이상이었다.

단순한 선수 응원을 넘어서, 축구 자체를 면밀히 뜯어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천 유나이티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윤정수 감독의 전술을 선수층이 못 받쳐줘.’


팬으로서는 참 곤란한 지점이었다.

윤정수 감독이 온 뒤로 그나마 공격이 화끈해지기는 했는데-.

역습 위험도나 실점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보는 재미가 있더라도 이기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였다.

사람들은, 연고지를 떠나서 강팀을 좋아한단 말이다.

특히 새로 유입되는 팬들은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스트라이커가 필요해. 스타성 있는 스트라이커가.’


팬이 많은 구단을 보면 하나같이 ‘스타 공격수’를 가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뛰다가 왔거나, 아니면 아예 외국인이거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공격수는 한 골을 넣어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이었다.

반면에 인천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교체 명단에 올렸지 않은가.


에휴─


‘이진우? 아, 이번에 테스트로 영입했다던 그 선수구나.’


팬들이 27번, 이진우를 궁금해한다는 소식은 들은 바 있었다.

호기심이 생기기는 정유미도 마찬가지였지만, 현실적으로 큰 기대를 갖기란 어려웠다.

역시, 직접 보고 나니까 기대는커녕 걱정과 불안만 앞섰다.


“이게 맞아?”


27번 선수는 응원단장인 정유미 보다 축구를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것 하나 축구 선수 같은 면모가 없었단 말이다.

달리기가 느린 것은 기본이었다.

체격이 작은 데다가 무게 중심이 잡혀있지 않아서 뛰는 자세가 불안정했다.

저 정도의 실력으로는 어렵사리 공을 잡더라도 버텨주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대망의 ‘발바닥 슈팅’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철썩~!

삐이이익──!


“어?”


우와아아아!!!


“미, 미친···.”


상황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태권도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뒤 후리기로 득점을 하는 선수는 태어나서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저게 맞아···?”


특이한 선수는 많이 있다.

다만, 특이하면서 잘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후자를 ‘천재’로 부르곤 하는데.

정유미에게는 아직 그런 판단을 내릴 근거가 부족한 상태였다.


‘좀 더 봐야겠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하던가?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27번은 자세히 볼수록 웃음만 나올 뿐이었으니.


하하하하!


“어머.”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가 밀치자마자 철푸덕 넘어졌다.

상대의 반칙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냥, 툭 쳤는데 퍽 넘어진 느낌.


“허약해도 너무 허약한데? 보약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오죽하면 상대 선수가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줬을까.

작은 키와 수수한 얼굴이 상대에게 죄책감을 유발하는 모양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27번은 엄지를 세우며 한 마디를 건넸다.

입 모양을 보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 훤히 보였지만.


유 굿.

나이스.


“푸흡!”


어딜 보아도 동네 친한 동생 같은 모습이었다.

기성 선수들에 비하면 작고 소중하고 귀엽다는 인상만 가득한─.

공을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물가에 애를 내놓은 듯한 몰입감과 긴장감!

그럼에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어쨌든 공을 잡기만 하면, 아까처럼 뭔가 보여줄까 싶어서.

다른 팬들도 그녀와 같은 마음인지, 손을 꼭 모으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이윽고 27번이 박스 안에서 공중볼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블루 가이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또 한번, 듣도 보도 못한 득점이 나타났다.


철썩─!

우하하하하!


“헤딩 빗나간 거 아니었어?”

“어깨로 넣은 건가?”

“가슴 아니야?”

“핸들로 봤는데?”

“골이야? 골 맞아?!”

“대체 어디에 맞은 거지?”


정유미는 경기장 가까이에 있었기에 똑똑히 보았다.

필사적으로 헤딩을 시도했던 27번이 의도치 않게 어깨로 골을 넣은 장면을.

겉으로는 헤딩에 실패했다가 운이 좋게 어깨에 맞고 들어간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본인이 뻔뻔하게 세레모니를 하니까, 의도였는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깨로 슈팅을 한다고···? 그게 가능해···?”


분명 기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대 1로 끌려가던 경기를 3대 2로 뒤집었지 않은가.

마침 후반전도 추가 시간에 접어들었기에 사실상 승리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팀의 승리보다 27번의 기행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일부러 한 거야? 진짜로?”


정유미 뿐만이 아니었다.

소수의 팬들도 자기들끼리 열심히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어깨 슈팅’이 운인지 아닌지를 주제로.

직감이 좋은 응원단장으로서는 토론이 한창인 관중석을 통해서 일종의 영감을 얻었다.


‘이거, 쇼츠랑 릴스에 올리면 댓글 많이 달릴 것 같은데.’


정유미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곧장 구단 홍보팀에 연락해서 영상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친성 경기는 끝이 났고.

정유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27번이 담겨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찾은 사냥꾼처럼 의지를 불태우며.


“딱 기다려요, 내가 스타로 만들어 줄게.”



············.











하아─하아─하아─


광저우와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광저우 선수 중에 하나가 달려와서 유니폼 교환을 요청했고.

동료들은 엄청난 활약이었다며 칭찬을 마구마구 해주었다.

이번 경기에서 느낀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마침 감독님이 라커룸에서 나를 지목하셨다.


“진우가 아주 잘해줬어! 공을 세 번 잡았는데 그중 두 번이 골로 연결될 줄이야. 두 번째 골은 키퍼가 반응도 못하더라.”

“하하, 감사합니다.”

“뛰어보니 어땠어? 친선이긴 해도 실전은 처음이었는데.”

“으음.”


벌떡 일어서서 라커룸 분위기를 살폈다.

몇 명 빼고는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나한테 관심도 없던 선수들이 이제는 내 생각을 궁금해하다니.

문득 신이 나서 느낀 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엄청 떨렸습니다.”

“그렇겠지. 처음이니까.”

“네, 그런 것 같아요.”

“끝이야?”

“아, 아니요.”


하하하핳!


“뭔가, 훈련 때와는 다른 게 많았습니다.”

“어떤 게?”

“긴장해서 그런지 몸이 더 무거웠고요. 몸싸움도 훨씬 거칠었고,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부담감도 컸던 것 같습니다.”

“맞아. 그게 실전의 어려움이자 매력이지.”

“확실히 양면성이 있는 것 같아요. 골을 넣었을 때 그만큼 기쁘기도 해서요.”

“리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한번 연습한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때는 오늘보다 지켜보는 눈이 훨씬 많을 거니까.”

“알겠습니다.”

“동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으음.”


다시 한번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면면들을 살펴보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제가 공을 제대로 못 잡거나 뺏기는데도 계속해서 연결해주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해서 연계를 더 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그리고.”

“““?”””

“원톱 자리에 서보니까 스트라이커가 받는 견제와 압박이 얼마나 엄청난지 알게 됐어요. 김재열 선배나 다른 선배들이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말에 김재열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


살짝 놀란 표정으로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습을 보니까 안심이 되었다.

언급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어서.


“앞으로 김재열 선배랑 다른 선배들을 보면서 플레이 노하우를 배우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피식─


김재열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결코 기분 나쁜 웃음은 아니었다.

그마저도 감독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묻혀버렸지만.


“푸하하하! 우와, 얘는 말을 왜 이렇게 잘하냐?”

“대학교 다닐 때 발표를 몇 번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공부를 좀 했나?”

“그, 그건 아닙니다.”


하하핳!


“아무튼, 다들 고생 많았다. 짜릿한 역전승이었어. 그렇다고 너무 취해있지 말고. 정규 경기 전에 간단하게 몸 풀었다고 생각하자.”

“““예!”””



············.













구장에서 샤워를 한 뒤에 곧장 택시를 탔다.

‘지누호프’에서 내리니까 아빠가 이미 마중 나와 계셨다.


“아빠가 차 한대 해 줄게. 계속 택시 타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저 조금 있으면 계약금 받아요. 그걸로 사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인마, 아빠 마음이 그게 아니잖아.”

“알겠어요. 감사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님이 얼마 없었다.

덕분에 엄마 아빠한테 오늘 경기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해 줄 수 있었다.

원래 일상을 낱낱이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긴 한데-.

요즘 겪는 일들이 워낙 비일상적인 데다가, 부모님이 엄청 궁금해하셔서 이렇게 됐다.


“그래서, 리그 경기가 언제라고 했지?”

“8월 12일이요.”

“12일. 알았어.”

“저 때문에 가게 쉬어도 돼요? 황금 주말인데.”

“우리한테 황금은 주말이 아니라 이진우, 너야.”

“억.”

“경기 뛰어서 힘들지? 치킨 한 마리 먹을래?”

“아니요. 저 구단에서 식단 해주고 있어서요.”

“그럼 먼저 들어가서 쉬어. 운동 선수는 잘 쉬어야 돼.”

“알았어요.”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니까 얼마나 포근하던지!

이제는 에어컨을 틀 때에도 전기세 걱정이 되지 않는다.

곧 나한테 들어올 돈이 얼마인지 들었기 때문이다.


“하, 좋다.”


핸드폰에는 연락이 이만큼이나 쌓여있었다.

주말마다 같이 축구하던 애들도 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더라.

분명 그런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까 톡 내용이 예상과 달랐다.



[인스타 릴스 올라온 거 봤어???]



친구들이 죄다 그 소리였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확인해보니 인스타그램 링크가 걸려있었다.

오늘, 내 득점 장면이 담긴 짤막한 영상으로 향하는 링크였다.

나로서는 핑거풋볼 화면으로 이미 많이 봤기 때문에 익숙한 구도였다.


풉!


“다시 봐도 웃기네. 팬 계정인가?”


해당 릴스에 달린 댓글 갯수가 꽤나 많았다.

댓글을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참지 못하고 손가락을 움직였다.


‘너무 궁금해서 안 되겠어.’


톡─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축구공 궤적을 손으로 그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화수금토 / 오후 8시 (내용 없음) 24.08.16 5,413 0 -
41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면 NEW +14 7시간 전 1,738 86 14쪽
40 오늘만큼은 골만 생각하기로 +12 24.09.16 3,393 142 16쪽
39 웃음과 희망을 주는 존재 +12 24.09.14 4,376 146 14쪽
38 챔피언스리그에서 브라질리언킥을...? +9 24.09.13 4,629 142 13쪽
37 거칠게 밀쳐도 넘어지지 않는 +16 24.09.13 4,650 143 14쪽
36 분명 치밀하게 연구했는데 +8 24.09.11 5,046 134 13쪽
35 골 사냥꾼이 살아남는 방법 +9 24.09.10 5,226 155 13쪽
34 내가 누군가의 뮤즈라니 +10 24.09.09 5,331 153 14쪽
33 힐 패스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17 24.09.07 5,664 161 14쪽
32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의 영향력 +14 24.09.06 5,551 157 12쪽
31 축구왕 슛돌이에 버금가는 +12 24.09.04 5,991 160 14쪽
30 저는 오버헤드킥 못하는데요 +13 24.09.03 5,826 160 13쪽
29 AC밀란의 검은 머리 10번 +11 24.09.02 6,047 158 15쪽
28 이 정도면 이적해도 괜찮겠지? +14 24.08.31 6,008 142 14쪽
27 백스핀 어뢰슛 +10 24.08.30 5,879 141 13쪽
26 슈팅과 패스에 가려졌던 재능 +10 24.08.28 5,954 135 14쪽
25 '그 선수'의 부모님이 하시는 호프집 +8 24.08.27 5,918 132 14쪽
24 페널티킥을 찰 때 바람이 불면 +5 24.08.26 5,953 139 14쪽
23 정말로 식사가 목적이었을 줄은 +10 24.08.24 6,080 135 14쪽
22 패널티 박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11 24.08.23 6,225 136 14쪽
21 프리킥은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7 24.08.21 6,367 132 12쪽
20 내 인기가 이 정도였다고? +7 24.08.20 6,424 134 14쪽
19 귀가 잘 들린다고 말할 수밖에 +4 24.08.19 6,432 146 13쪽
18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봤자 +7 24.08.17 6,572 143 13쪽
17 별 거 아닌데 다들 고장나네? +6 24.08.16 6,647 140 14쪽
16 페인팅 모션을 하나만 익혀도 +9 24.08.14 6,719 140 12쪽
15 몸값을 높이는 방법 +7 24.08.13 6,846 135 13쪽
14 무자비한 중거리 폭격 +7 24.08.12 6,860 147 13쪽
13 사실상 술래잡기 +6 24.08.10 6,777 14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