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전함이 일제를 찢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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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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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DA 함대

DUMMY

자바섬, 수라바야항.

ABDA 연합군 해군 작전 사령부.


동남아시아를 방위하는 연합 세력, ABDA(American, British, Dutch, Australian) 연합군의 함대 지휘관이자 미 해군 아시아 함대 사령관 토마스 하트 제독은 날로 악화하는 전황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남아시아 해역이 나타난 작전 지도에는 이미 절반 이상이 일본 제국의 영역으로 표시되었다.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일본군.


이미 개전 이후 첫 달 동안 필리핀의 주요 거점이 함락되었다.


무주공산인 인도차이나도 함락당하며 영국 식민지군은 말레이반도에서 절망적인 방어전을 치르는 중이다.


이제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북쪽에도 일본군 상륙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끔찍하군.”

“제공권도, 제해권도 이제 저들의 것입니다.”


참모장이 한숨을 내쉬며 제독의 말에 동조한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희망은 오로지 그들에게 달려 있었다.


각 섬에 분산된 방위군은 제해권이 장악당한 와중에 다른 섬으로 옮기기 어렵다.


항공력은 섬 사이의 비행장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이쪽은 어디든 수량이 너무 부족하다.


남은 희망은 해군력.

함대였다.


바닷길을 통해 연합한 세력이 일본의 제해권 장악을 막고 상륙함대를 직접 요격하는 수밖에 없다.


“태평양 함대가 진주만에 도착했다고 했나?”

“요크타운, 사라토가 전투단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샌디에이고에서 준비 중이라고···.”

“그래서 도대체 언제쯤 온다는 건가?! 우리가 더 가라앉고 나서인가?”


묵묵부답인 참모장.

하트 제독은 답답한 듯 한숨만 내쉬었다.


본래 미군의 계획은 희망차기 그지없었다.


북방에서 강력한 전함을 보유한 대한제국 해군이 현존함대로 일본 전함 부대를 견제하고,


동남아시아의 서방 연합군이 지연전을 펼치고,


그렇게 방어선을 구축하면 파나마 운하를 건너고, 진주만을 경유하고, 마침내 태평양을 건너온 미 주력 함대가 일본 연합함대를 몰아낸다는,


굉장히 희망적인 작계.


꿈같은 소리다.

하트 제독은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일본 전함 부대를 견제할 대한제국 해군은 당장 기뢰 지대와 항공기 세력에 막혀 대련에 봉쇄당했다.


뒤늦게 전운을 감지한 태평양 함대는 보급로 문제로 이제 막 무거운 발을 움직이는 참이다.


필리핀은 속수무책으로 포위당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4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일본군을 막을 수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소식이 날아들기 전까지는.


<제1항공함대 전멸.>


<전함을 중심으로 한 대한제국 기동부대가 일본 항공모함 세력을 격멸.>


<남중국해 방면의 일본 해상 항공력이 다소 저하될 것으로 예상됨.>


가뭄 중 단비 같은 소식.


하트 제독은 숨이 멎을 듯이 기뻤으나 이어지는 연합군 사이의 논쟁은 오히려 그의 고뇌를 가중했다.


“당장 함대를 총동원해 적의 상륙함대와 결전을 벌여야 하오!”


기세를 타서 결정적인 전투를 주장하는 네덜란드군 사령관, 헬프리히 제독.


“아직 비행장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해상 항공력은 상당수 남아있습니다. 더군다나 적의 전함 세력도 온전한데, 순양함 몇 척으로 그들과 대결할 수는 없습니다.”

“야간을 틈타 적의 수송함대만 박살 내고 돌아온다면 문제없소! 제아무리 강력한 함대라도 해군만으로 지상을 점령할 수는 없지 않소?”


수상함대를 통해 적의 수송함대를 차단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동의했다.


하지만 어떻게 할지가 늘 문제였다.


지속적인 통상파괴전으로 출혈을 강요하느냐.

한 번의 결정적인 타격으로 일거에 섬멸하느냐.


하트 제독의 생각은 전자에 가까웠다.


고전적인 함대결전 이론에 투자하기엔 ABDA 함대는 너무나 약하다.


굳이 적의 전함까지 나타나지 않아도, 강력한 중순양함과 구축함 세력만 해도 충분한 위협이었다.


그나마 대한제국 잠수함들이 후방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지만 일본 측도 재빨리 이에 대응했다.


다수의 항공기가 이 잡듯이 뒤지며 잠수함이 부상할 틈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장시간 잠항할 수 없는 이 시기의 잠수함은 항공정찰에 너무나 취약하다.


결국 수상함대가 무언가 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제공권도, 제해권도 넘어간 마당에.


고작 순양함 몇 척과 구축함 십여 척으로.

저 강력한 연합함대를 막을 수 있겠는가?


고뇌를 거듭하던 하트 제독이 답 없는 한숨만 쏟아내고 있을 무렵,


한 소식이 그에게 전해졌다.


“제독님! 동맹국 전함이 본 수역으로 접근 중이라고 합니다.”

“동맹국 전함이라고?”


부관의 보고에 순간적으로 영국 왕립해군을 떠올린 하트 제독이었다.


그가 아는 동맹 중 전함을 파견할 정도로 전력이 많은 건 그들뿐이었으니. 하지만 왕립해군은 당장 히틀러의 침공에서 본토를 지키느라 급급할 터이다.


대체 어느 동맹이 전함을 파견할 여력이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어지는 부관의 목소리에 하트 제독은 경악하며 일어섰다.


“이순신함입니다!”


1940년 9월 초.

제13기동부대가 남방에 도착했다.


***


그 시각, 뉴기니섬 북방 해역.

전함 이순신의 전탐실.


한시라도 빨리 일본 해군의 남하를 막아야 하는 지휘관의 입장에서, 함의 전투 능력 복구를 최우선적으로 지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CPO실이나 사관실, 함장실의 에어컨 설비 등 전투 능력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시설은 우선순위에서 빠져야 한다.


‘정말로 괜찮나?’


‘함의 작전 능력 복구가 최우선입니다.’


함저 격실이나 배관, 전자 회로 등의 복구가 더 중요하다는 건 함장이라면 누구나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니 트럭 기지 사령관의 조언도 무시하고 에어컨이 망가진 채 한여름의 남방으로 진입하게 된 건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다.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로,


전자기기의 냉각을 위해 에어컨이 정상 작동하는 전탐실에서 1시간째 부하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도 엄연히 함장의 업무라 할 수 있다.


“전탐실 에어컨은 고장 난 적 없지?”

“예? 예···.”

“그래, 이렇게 중요한 설비에 냉방기가 고장 나면 안 되지. 그지? 함장도 신경 쓰여서 와 본 거야.”


온갖 전자 기기가 비프음을 울리는 가운데, 전탐사 옆에 앉은 나는 레이더 화면을 바라보았다.


미니맵 같은 화면이 아니라 병원에서 흔히 보이는 오실로스코프 같은 모양새.


아직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그런 식의 화면은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전탐병들의 숙련도가 특히 중요하다.


“여기 보이는 신호는 언뜻 항공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입니다.”

“어떻게 구별하는 거야?”

“속도와 고도 등을 잘 살피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육안 보고도 더해졌지만 말이죠.”

“흥미롭구먼.”


물론 우리 전탐 부사관들의 실력은 관제사의 지휘 아래 해군 일류라고 할 만큼 상승했다.


나는 그걸 확인해보기 위해 전탐실로 내려온 참이다.


“함장님, 그··· 함교는 괜찮은 겁니까?”

“레이더를 통해서 조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절대로 전탐실에 에어컨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아니 시발,

항해 함교에 에어컨이 안 닿는 걸 어쩌라고.


애초에 거기는 뒤쪽이 뚫려 있어서 에어컨이고 자시고 의미 없지만.


이런 일을 대비해 마련해 둔 제2함교는 폭탄 맞고 작살난 후로 제대로 수리도 못 했고.


이럴 줄 알았으면 어뢰 파공 막을 인력 좀 돌려서 제2함교 복구 좀··· 아니, 이건 욕심이겠지.


하여간 에어컨 없이 남방에서 작전하는 건 자살 행위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는다고!


더운 것만 문제가 아니라 습하고 후덥지근하고, 아무튼 꿉꿉하고 기분 나쁜 것만 잔뜩인 상태.


그나마 이순신함은 사정이 낫다.


태평양에서의 통상파괴를 염두에 둔 덕에 이런 열대기후에 대비한 시설도 마련되어 있으니.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의 활동을 가정하고 설계한 나대용함이나 정운함, 구축함 같은 배는 지금 떠다니는 사우나나 다름없을 거다.


거기에 이순신함도 함교 쪽은 그나마 양반이지.


터빈과 보일러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관실은 그야말로 지옥불 반도다.


“언제 왜적이 들이닥칠지 모르거늘! 더위에 맞서 심신을 단련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찌 마음부터 굴복하려 하느냐!”

“기관장님, 그러다 진짜 죽습니다···.”

“갈! 기관사는 배가 침몰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는 법! 본관은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보일러실에서 차력쇼 하는 기관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원들은 몇 개조로 나누어 번갈아 올라갔다 내려가는 중.


저 찜통 속에서 기관실에 24시간 상주하는 건 자살 행위다.


아무리 기관실이 배의 심장이라도 그렇지.

지금 사람 심장이 먼저 멈추게 생겼어.


이 남방의 기후가 우리가 맞서야 할 첫 번째 적이다.


정말로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듣기로는 원역사에서 영국 동양함대가 개전 초에 허무하게 무력화된 것에 이런 열대성 기후 문제도 한몫했다고 했지.


날씨로 인한 비전투손실로 싸우기도 전에 뻗어버리면 그거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


염병할 쪽바리 새끼들 진짜.

하필 전쟁해도 이딴 데서 하고 지랄이냐고.


“함장님. 보고 사항입니다.”


그 순간,


전탐실의 문이 열리며 에어컨 바람이 빠지는 동시에 누군가가 들어온다.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얼굴의 작전관이 들어온다.


“작전관은 또 왜 여기로 왔어?”

“레이더를 통해 전황을 살피는 편이 상황 파악에 훨씬 유리하여···.”

“그거 이미 통제관이 써먹었어.”


멋쩍게 얼굴을 붉히는 작전관.


이윽고 통신실로 나가 있던 통제관이 방 안으로 돌아오며 어이없다는 듯 우리를 바라본다.


“여기 뭐 정모 장소입니까?”

“지금 함교 당직 누구냐?”

“포술장님이십니다.”


나는 조용히 전탐실을 돌아보았다.


전탐사, 전탐병에 통제관 따라 들어온 통신관.

동기들 따라서 몰래 들어온 조타병들.


전탐 쪽하고는 1도 관계없으면서 구석에 꼽사리 낀 갑판병들.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표정으로 벽에 주저앉은 기관병들.


자그마한 전탐실이 어느새 온통 북적거리며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장교들, 이게 맞아?”


절대로 사람 너무 많아서 덥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전함에서 포술장이란 부장, 기관장에 이어서 배의 4번째 선임이나 다름없는 존재.


나는 전탐실이 비좁을 만치 옹기종기 모인 장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배에서 4번째 선임이, 전우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당직 서는데. 누구는 에어컨 바람 맞으며 앉아 있겠다고? 다들, 이게 옳다고 생각하나?”

“저, 저는 전탐실 당직인데···.”

“다들 쉬고 싶으면 CPO실이나 사관실 들어가면 될 거 아니야. 그러라고 있는 곳인데. 엄연히 작전 중인 공간인데 이렇게 아무 사람이 와서 앉아있어도 되겠나?”

“함장님. 부장님이 잠깐 오셔야 할 거 같다고 하십니다.”

“···10분만 더 있다 가자.”


이러다 다 죽어.


***


“아시아 함대 쪽에서 온 연락입니다.”


5분 같은 20분이 지나고.


부장의 연락을 받아 사관실로 향하자 영어로 된 전보용지를 내민다.


미합중국 해군 아시아 함대.


현재 태평양 방면에서 작전 행동 중인 유일한 미 해군 전투부대.


본래는 필리핀 방위가 임무지만 이미 연합함대의 공세에 밀려 인도네시아까지 후퇴한 지 오래.


보급항은 아예 호주의 다윈항으로 옮겼단다.


상태에서 알 수 있듯 전함이나 항모는 1척도 없고 중순양함 휴스턴과 경순양함 마블헤드, 구축함 12척, 잠수함 일부가 유일한 전력이다.


“우리보고 합류하기를 바란다고?”

“연합 사령부 휘하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해본에서 따로 연락 온 건 없나?”

“현장 사령관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합니다. 다만···.”


묘한 얼굴로 말을 잇는 부장.


“지휘권을 양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작전 사령관께서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대련항에서 보았던 냉혹한 얼굴이 눈앞을 스친다.


과연 어떤 의미인지 알 거 같다.

대한제국도 자존심이 있다는 거지.


당장 아시아의 유일한 주력함이 우리뿐인데.

열강들 입맛대로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겠다는 것.


지금 연합군 산하로 들어가면 상급대령에 불과한 나는 별이 3개, 4개씩인 제독들에게 휘둘릴 염려가 있다.


당장 태평양의 주도권과 영향력이 걸린 문제라 쉽게 양보할만한 건 아니다.


아마 머지않아 교통정리에 들어갈 듯싶은데,

어차피 우리는 관계없이 행동하면 그만이다.


“입항 허가는 내려왔나?”

“미 해군과 영국 해군 측에서 협조 의사를 밝혔습니다. 싱가포르항에 이순신함이 정박할 시설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 그쪽으로 향하지.”


니들이 제독이면 뭐 어쩔 건데.

꼬우면 전함 보내든가.


“아, 그리고···.”


아 또 뭐야,

전탐실 가야 하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부장이 뒤이은 소식을 전했다.


“아시아 함대 사령관, 토마스 하트 제독이 수라바야 앞바다에서 이순신함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

이건 좀 중요한데?


***


며칠 뒤,

수라바야 앞바다.


푸른 바다 위로 이순신함이 닻을 내린다.


구축함에 좌승한 그 근처로 다가간 하트 제독은 곧이어 단정으로 갈아타 이순신함에 올랐다.


현문 사다리 앞에서 고개를 들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함교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어마어마하군.”

“이 정도면 정말 세계 최대의 전함입니다.”


동행한 부관이 맞장구치며 말한다.


고작 열강에도 못 끼는 극동의 중견국이 만들었다고는 상상이 안 가는 모습.


하지만 그 이면에 미합중국의 손길이 적지 않게 개입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트 제독은 오늘 그 빚을 받아내러 온 것이기도 하다.


“···가지”


웅장한 함교를 말없이 바라보던 제독이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대한제국 해군 상급 대령, 이순신 함장 정운룡입니다.”

“반갑소, 함장.”


갑판 위로 오르자 훤칠한 얼굴의 함장이 경례를 올렸다.


이 자가 바로 세계 최대의 전함, 이순신함의 함장.


정운룡.


1개 기동부대를 지휘해 일본 해군 항공모함 4척을 지옥으로 보내버린,


해상력의 정점이 아직 전함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전 세계에 가르쳐준 인물.


제독은 손을 맞잡으며 유심히 그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젊은 인상이다. 지난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의 유명 인사였던 ‘데이비드 비티’ 제독이 떠오를 정도.


다른 이들 같으면 고작 구축함 함장이나 하고 있을 나이에 벌써 1개 기동부대를 섬멸한 업적을 세우다니.


심지어는 그 상황에서 무사히 빠져나가기까지 했으니.

필시 어마어마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이만한 인재가 고작 대한제국 해군 따위에 묶여 아직도 별을 달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엄연히 서구 열강 해군에 속하는 일원인 하트 제독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윽고 갑판 위의 시설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말로··· 크군. 내가 본 그 어떤 전함보다 말이지.”


주변을 빼곡히 뒤덮은 수많은 대공포대는 뒤로하고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3연장 주포탑 2기가 함교 앞에 나란히 정렬해있다.


미 태평양 함대 최강의 전함인 ‘웨스트버지니아’의 주포탑도 여기에 비하면 부포로 느껴질 정도다.


겉으로는 경탄에 빠진 얼굴.

하지만 동시에 제독의 머리에선 복잡한 계산이 오고 갔다.


과연 일본 해군을 상대로 얼마나,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항속력은 어느 정도이고 호위 세력은 얼마나 필요할까.

제공권은? 대잠 수단은 충분한가?


하지만 이내 사관실로 발을 디디자 그런 잡념은 씻은 듯 사라졌다.


‘에어컨도 없다고?’


피부를 찌르는 듯한 뜨거운 열기.


경악한 심정을 표정으로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제독은 자리에 앉았다.


남방에서 필수나 다름없는 편의시설이 제거되었다니.

이자들은 정말로 전투 이외에 모든 걸 포기한 셈인가?


이런 장비를 들고서 남방에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정말로 무시무시한 집념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욕심이 생겼다.

이런 전사들이 함께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단순히 에어컨이 고장 났다는 뒷사정을 알 리가 없는 하트 제독은, 우선 이순신함 승조원들의 감투정신에 경의를 표하며 본론을 꺼냈다.


“긴말 안 하겠소, 함장. 우리를 도와서 작전 행동에 협조해주시오.”


아시아 함대의 반격 작전에 힘을 보태라는 소리.


현재 ABDA의 당면 과제는 일본 수송선단의 격멸이다.

식민지군의 육상 병력으로 일본군을 몰아내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정운룡 함장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그건 어려울 거 같습니다.”

“본국의 명령 때문이오? 하지만 함장, 이 배를 건조하는 데에도 우리 미 해군의 도움이 있지 않았소!”


당장 전함 두 척 만든 게 전부인 한국 따위가 어떻게 18인치급 주포를 만들었겠는가?


대일 견제라는 미합중국의 전략적 투자가 아니었다면 이순신함은 바다로 나오지도 못했을 거다.


아니 용골조차 놓을 수 없었겠지.


물론 이순신함의 건조 과정과 운용 경험이 미합중국의 차기 전함들의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되었지만, 제독의 입장에서 그런 건 당연한 부수적 결과에 불과하다.


그거와는 별개로 때가 왔으니 투자한 대가를 회수하겠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저는 본국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함장의 태도는 단호했다.


여기까지 오자 하트 제독도 내심 심기가 불편했다.

감히 별도 안 단 함장 주제에 제독인 자신의 말을 거역하다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순신 함장에게 명령을 내릴 순 없었다.


동맹국이라 한들 13기동부대는 ABDA 사령부가 아닌 대한제국 해군 작전 사령부의 명령을 따르는 입장이니까.


결국 조금은 치사한 방법을 들이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협조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요? 당장 13기동부대의 연료 보급도 우리 함대가···.”

“만일 우리 기동부대와 ABDA 함대가 같이 활동할 경우, 오히려 양측의 작전에 지장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어지는 함장의 반론에 하트 제독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시아 함대의 수상 전투함 중 전함 간의 교전에 도움이 될 전력이 있습니까?”


냉정한 질문에 제독은 입을 다물었다.


분하지만 없다.

있었다면 진즉에 필리핀으로 가서 뭐라도 했겠지.


하지만 고작 삼류 국가에 불과한 대한제국 해군 앞에서 이를 시인하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독이 입을 다물자 함장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본 기동부대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연합함대는 유력한 주력 전투함을 통해 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전함을 투입해 견제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좋든 싫든 이순신함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른다면 그들은 계속 예비대로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일종의 공세적 현존함대라고 해야 하리라.


거기까지 생각하던 중 번뜩이는 발상이 하트 제독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가, 바로 그거였나.


제독이 13기동부대의 계획을 이해한 순간,

이순신 함장은 양손을 마주 잡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가 ABDA 함대가 나설 때가 아니겠습니까?”


무더운 방 안에서 하트 제독은 노련한 눈동자를 마주하며 생각했다.


이 남자,

정말로 보통내기가 아니다.


***


그 시각,

일본, 요코스카 앞바다.


“이순신이 남방에 나타났다고?!”


연합함대 총기함 나가토의 함상에서, 야마모토 제독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제1함대를 준비하게. 이번에야말로 결전이다.”

“예, 제독!”


누군가의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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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말레이 해전 (3) +22 24.08.21 12,328 448 15쪽
26 말레이 해전 (2) +25 24.08.20 12,184 413 16쪽
25 말레이 해전 (1) +15 24.08.19 12,236 392 14쪽
» ABDA 함대 +17 24.08.18 12,285 400 20쪽
23 비밀 기지 +21 24.08.17 12,402 398 14쪽
22 웨이크 섬 +16 24.08.16 12,251 416 15쪽
21 추격 +19 24.08.15 12,562 422 11쪽
20 위대한 항로 +20 24.08.14 12,977 419 18쪽
19 운명의 5분 (2) +29 24.08.13 12,888 421 16쪽
18 운명의 5분 (1) +18 24.08.12 12,633 4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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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폭풍 속으로 (1) +16 24.08.10 12,555 403 12쪽
15 불타는 하늘 +23 24.08.09 12,728 365 22쪽
14 This is not a drill +22 24.08.08 12,388 383 12쪽
13 폭풍전야 +17 24.08.07 12,413 39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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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동부대 (1) +11 24.08.04 14,010 381 12쪽
8 에이스 +19 24.08.03 14,515 394 13쪽
7 자진 입대 +12 24.08.02 15,094 397 13쪽
6 찾아라 드래곤볼 +19 24.08.01 16,079 396 14쪽
5 최고의 복지 +29 24.07.31 17,737 435 12쪽
4 안전운전 +18 24.07.30 19,776 469 15쪽
3 전함 이순신 (2) +27 24.07.29 21,417 515 15쪽
2 전함 이순신 (1) +29 24.07.29 25,015 557 12쪽
1 프롤로그 +47 24.07.29 30,978 58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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