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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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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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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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의

DUMMY

난데없이 웅크린 채 죽어 가던 소녀의 몸에서 깨어난 나는 전신에서 밀려드는 끔찍한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허윽, 햑..!"


주변엔 누가 봐도 고블린같은 것들이 '나'를 둘러싼 채 낄낄 거리며 날 비웃고 있었다.


놈들은 사냥감을 가지고 놀듯 온몸을 할퀴거나 발로 차곤 했고 전신은 이미 상처투성이라 곧 죽어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였다.


난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당장 뭘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고블린은 총 세 마리.


소녀의 작은 손에는 감자나 겨우 깎을 법한 식칼이 꼭 쥐어져 있었고 몸 상태는 최악.


헌데 왠지 몸에 조금씩 힘이 돌고 전신의 고통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죽기직전의 엔돌핀 같은 건가?


어쨌든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뭐든 간에 고작 고블린들 따위에 당하고만 있을 이유는 없다.


비록 다친 몸에 무기라곤 조막만 한 식칼 하나 쥐고 있는 게 전부지만 날붙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칼질 만큼은 내 전문 분야였으니까.


"이 개새끼들아!"


기습적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벌떡 일으키자 고블린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깜짝 놀라 굳어 버렸다.


그리고 숙련된 검사는 절대 빈틈을 놓치지 않는 법이다.


짜리몽땅한 키, 볼품없는 악력, 줄어든 보폭이 주는 괴리감과 이질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지만 이를 악물고 칼을 내리찍었다.


푹!


"키엑!!!"


가장 앞에서 낄낄거리던 놈의 목에 칼을 꽂아 넣음과 동시에 거칠게 비틀며 뽑아냈다.


촤학!


반사적으로 상처를 막는 놈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왈칵 쏟아지는 것이 다시 볼 필요도 없는 확실한 치명상이다.


남은 건 두 마리.


이놈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믿기 어렵다는 듯 눈알만 부릅뜨고 있다.


하긴 좀 전까지 신나게 가지고 놀던 빈사 상태의 사냥감이 순식간에 맹수같은 기세로 동족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그 멍청한 뇌로 빠르게 이해하긴 어려울 것이다.


뭐 상관없다.


몸으로 이해하게 해주면 그만이니까.


타닥!


바로 오른쪽 놈에게 뛰어들자 놈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놈들에게 무기라곤 더럽고 길쭉한 손톱 뿐이다.


찰나간의 대처라고 해 봐야 손을 어정쩡하게 내뻗는 게 전부.


칼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내뻗은 손을 쳐 내자 놈의 몸통이 훤히 드러났다.


푹! 푹! 푹!


"끄에엑..."


순식간에 복부를 세 번 찔렀다 뺀 뒤 마지막 한 마리를 향해 내달렸다.


"키, 키엑!"


놈은 겁먹은 표정으로 허겁지겁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쪽도 몸 상태가 그렇게 좋진 못해서 쫓을지 칼을 던질지 고민하던 찰나 바지 주머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감자?'


적당한 중량감과 안정적인 그립. 바로 투척했다.


빡! 켁!


운이 좋았는지 오금에 감자를 직격당한 고블린은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고 나는 재빨리 달려가 일어나려는 놈의 뒷목에 칼을 꽂은 뒤 무자비하게 비틀어 목숨을 끊었다.


"허억, 이게, 뭐라고, 힘드냐. 아오, 손목, 시큰하네."


이 현실감은 아무리 봐도 절대 꿈이 아닌 거 같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세계 전생? 아니, 빙의?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야 키 190cm의 남자 김검수가 150cm 즈음 될법한 앙증맞은 여자아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여기가 이세계인지 아닌지조차 모르겠다.


'제가 수련중에 탈진으로 쓰러졌는데 제 영혼이 고래를 타고 우주를 넘어 낯선 행성에 빨려 들어가 이 소녀의 몸에빙의한 거 같습니다. 이거 꿈 맞죠?'


이 정도 망상이면 정신병을 의심해야 할 수준 아닐까.


어쨌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백날 고민해 봐야 알 수 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는 것보단 눈앞에 닥친 현실에 집중하는 게 백만배 낫다.


꿈에서 깨어날수도 없고 당장 돌아갈 방법도 모른다면 지금은 이곳이 내 현실이다.


태평하게 잡생각이나 하고 있기엔 너무 위험하다.


잡생각은 우선 살아남고 안전을 확보한 뒤에 실컷 하자.


돌아갈 방법도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소녀의 체격과 무장수준으론 고블린 이상의 몬스터들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어려우니까.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주변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적막.


다행히 당장 주변에 다른 몬스터들은 없는 것 같다.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문 하나가 달린 어떤 방처럼 보였고 벽과 바닥은 돌로 된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벽에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횃불들이 듬성듬성 비치되어 심연같은 어둠을 간간이 밝혀주고 있었다.


각성자 김검수의 육체면 모를까 이 소녀의 가녀린 육체는 어둠 속을 꿰뚫어 볼 방법이 없다.


그러니 가능하면 횃불을 하나 챙겨 가도록 하자.


'신기한데.'


횃불은 마치 형광등처럼 열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손을 대도 뜨뜻 미지근 할 뿐이었고 연기도 나오지 않았으며 무게감도 거의 없는 듯했다.


무언가를 불태울 수도 없고 무게감도 없어 무기로 쓰기엔 부적합할 것 같다.


그저 던전의 빛을 밝혀주는 일종의 오브젝트 같은 느낌.


어쨌든 횃불을 하나 챙겨 그 불빛으로 고블린들의 사체를 살펴봤으나 딱히 아이템 같은 게 나오진 않았다.


던졌던 감자나 겨우 찾았을 뿐.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생감자 정도면 양호하지.'


그밖에 소지품이라곤 젖은 피가 굳은 걸레짝에 가까운 옷과 식칼, 양손을 모아 기도하는 여인의 형상이 양각된 철제 목걸이 뿐이었다.


무슨 아티팩트는 아니고 그냥 평범한 종교적 상징같다.


당장 몸 상태는... 믿어지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완벽했다.


어느샌가 전신의 상처도 전부 나아 있었고 이제는 고통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몸 상태가 최상인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물과 식량을 찾는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탈출하는지, 탈출에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는데 먹고 마실게 없으면 굶어 죽는 수밖에 없다.


고블린... 을 먹는 방법이 있긴 한데 지구에 서도 괴식을 즐기는 인간들마저 고블린으로 만든 음식은 먹고 토하기 일수였다.


하물며 생으로 먹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일단 이 방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여기가 던전의 마지막 방일지도? 어차피 출입구가 하나뿐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고 소녀의 체격에 비해 상당히 거대한 통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성인 남성 넷정도는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너비.


잠깐 걷는 동안 이 소녀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 죽이는 고블린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면 아무리 봐도 던전인데 이런 곳에 여자아이가 홀로 들어올 이유가 대체 뭘까.


옷도 딱히 고급져 보이지도 않고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 일행들과 함께 온 것 같지도 않다.


설마 이곳은 말 안 듣는 아이는 던전에 가둬버리는 터무니없는 세계라도 된단말인가?


그렇게 몇 분 정도 걸었을까 나는 긴장감이 치솟는걸 느꼈다.


앞쪽에 무언가가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체격을 봐서는 고블린같은데...


'누군가 있다.'


고블린이 고블린을 죽였을 확률보단 다른 무언가가 고블린을 죽였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처음 지나온 곳은 출입구가 하나뿐인 막다른 방이었기에 다시 돌아간다 한들 제대로 숨을곳 조차 없다는 뜻.


즉, 저 고블린을 죽였을 무언가와 마주칠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


몬스터라면 고블린보다 강할 것이고 인간이라면...


'던전에서 마주치는 인간 셋중 둘은 살인자 혹은 강도.'


지구에서도 게이트 내부에서 약탈만 전문적으로 일삼는 쓰레기들을 얼마나 많이 도룩냈었는지.


그리 생각하니 이 작은 소녀의 육체가 뻣뻣하게 굳어 버리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예측일 뿐 무엇 하나 정해진 것은 없다. 우선 확인이 먼저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발소리와 숨소리조차 죽인체 신중하게 나아갔다.



어차피 숨을곳도 없으니 겁쟁이처럼 정체조차 모를 무언가를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다.


'고블린 사체가 둘.'


우선 사체를 살펴보자.


사체에 남은 상처를 살펴보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몬스터에게 죽은 건지, 어떤 무기에 죽은 건지, 어떻게 싸우다 죽었는지.


횃불이 뿌리는 너울 거리는 빛에 의존해 살펴본 상처는 꽤 이질적이었다.


아니, 기시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동물의 날카로운 송곳니 혹은 뾰족한 무언가로 마구잡이로 찍고 비틀고 헤집어놓은, 마치 이 식칼 같은 걸로..?


'응..?'


잠깐 사고가 정지했다.


설마.


이 소녀가, 죽였다? 고블린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고블린들은 이 소녀보다도 작은 체구에 무기라곤 더러운 손톱 뿐이니까.


소녀가 150cm 정도 된다면 고블린들은 100~120cm 수준이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해서 절대 쉽게 해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단검도 아니고 감자나 깎을 법한 식칼은 살생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다.


또한 살과 뼈를 지닌 생물을 죽이는데는 독심과 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악력이 부족하면 금방 손목이 나가거나 제 손아귀를 베어 칼을 놓치고 만다.


식칼로 나무 베기를 하다 손아귀를 몇번 베어먹어봐서 잘 안다.


심지어 여자아이란 점을 감안 하면 고블린에게 힘으로 밀릴수도 있다.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이다.


'어쩐지 얘 몸에서 깨어날 때 칼을 아주 꽉 쥐고 있더라니.'


죽기 직전까지 검을 휘두르다니.


실로 대단하구나 이름 모를 소녀여.


세계 최강의 검사 김검수가 너를 인정하...


-델리시아···

-내 이름···


"뭣..!!!"


갑작스레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녀의 목소리에 나는 마치 갓 태어난 관우처럼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데,델리시아..!? 내 말이 들리니..?!”


- 응··· 근데··· 졸려···


“델리시아! 잠깐만! 델리시아!”


- 잘래···


하지만 마지막 목소리 이후로 한참을 불러봐도 델리시아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빙의나 지금 상황에 대해 무언가 아는 게 있을까 물어볼 틈도 없었다.


이 소녀의 영혼은, 의식은 이대로 사라져 버린 걸까? 아니다.


난 느낄 수 있었다. 사라진게 아니라는걸.


그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쇠약해져 잠들었을 뿐.


생소한 감각이었지만 나의 의식 한 켠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던전에서 홀로 괴물들과 싸우며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것이 빙의의 원인중 하나 아닐까?


델리시아가 언제 다시 일어날지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안도했다.


‘다행이다.’


어쩌면 최악의 결말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학창 시절의 나는 오타쿠로서 무협과 판타지를 즐겨 봤고 소위 말하는 회빙환도 즐겨봤다.


하지만 그중 빙의를 가장 싫어했다. 빙의를 싫어하는 이유? 간단하다.


일단 누가 됐건 남의 몸과 삶을 완전히 강탈한다는 게 영 찝찝하고 주변인 다수가 알게 모르게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멀쩡히 잘 살고 있던 가족 입장에선 빙의만큼 꺼림칙한 게 없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과 육체를 멋대로 강탈하고 주변인을 기만하게 만드는 빙의따윈 절대 사절이다.


그런데 빙의에 TS라니 젠장, 이보다 더 최악일 순 없다.


빙의 하나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성별과 체격까지 바뀌었으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과장 좀 보태면 거의 신에서 개미로 추락한 기분이다.


단순한 육체적 차이만으로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주인이 어딘가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게 아니기에 몸을 돌려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겠지.


난데없이 타인의 몸에 들어왔다면 분명 되돌아갈 방법도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나를 먼저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만약 언젠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영혼이 빠져나간 시체나 다름없을 몸만 놔두고 떠나게 되는 일 따윈 절대 없게 할 것이다.


그런 최악의 엔딩따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모두에게 끔찍한 비극일 뿐이니까.


지금은 어쨌든 살아남고 정보를 모아야 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원치 않은 빙의와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깨어나길 기다리마.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델리시아."


비록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통로를 나아갔다.


나도 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델리시아에게 이 몸을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최고의 엔딩이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터무니없는 목표일수도 있지만 나는 바다마저 가른 사나이다.


목표가 높다면 그만큼 노력할 뿐이다.


그런 각오를 품고 통로를 탐색하던 중 이번에도 고블린 사체를 발견했다.


숫자는 무려 넷.


나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아니겠지. 이번엔.'


나는 고블린 사체들을 살펴보고 잠깐 얼이 나갔다.


고블린 네마리는 좀 전의 고블린 두 마리 처럼 처절하게 난도질 당해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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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성녀 24.08.08 42 1 23쪽
9 룰루 24.08.07 43 1 22쪽
8 친구 24.08.06 44 1 19쪽
7 정산 24.08.05 42 1 18쪽
6 죽음의 경계 24.08.02 45 2 18쪽
5 '그거' 24.08.01 50 1 18쪽
4 괴물 24.07.31 56 1 15쪽
» 빙의 24.07.30 67 2 13쪽
2 24.07.29 115 2 12쪽
1 프롤로그 - 검극 24.07.29 102 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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