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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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천맨
작품등록일 :
2024.07.29 13:26
최근연재일 :
2024.09.1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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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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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DUMMY

"꺄아아아아악!!!"


내 우렁찬 비명이 던전의 통로를 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했다.


"사, 살아 있어요? 언데드 아니지!? "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녀는 힘겹게 눈을 뜨고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무, 무... 무울..."


나는 주저 없이 물주머니를 꺼내 그녀의 입가에 대었다.


어지간하면 놀라는 일이 없는데 정말 간 떨어질 뻔했다. 무슨 언데드로 부활한줄.


변명하고 싶진 않지만 여자아이 같은 비명은 내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이건 그저 반사적으로 나온 거다...


"천천히 마셔요. 천천히. 옳지. 체해서 죽으면 죽여 버릴 거야."


그녀가 체하지 않도록 뒷목을 받히고 물줄기를 조절하는 등 신경을 썼고 이내 그녀의 안색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근데 발육때문에 정확히 몇 살 인지는 모르겠다. 흉부가 워낙 대단해야지.


"하아아아아. 고... 고마워요. 당신은..."


"제 이름은 델리시아예요. 그나저나 어쩌다 여기서..."


그 순간, 멀리서 고블린들의 괴성이 들려왔다.


아, 비명을 너무 시원하게 질렀나보다. 어그로를 왕창 끌어 버렸군.


"설명은 나중에 해요. 지금은 여기서 벗어나야 하니까.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사색이 되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죄, 죄송해요... 몸에 힘이 하나도..."


에헤이. 어쩔 수 없지. 뭐 이젠 고블린들 따위야 전혀 문제없다.


스릉.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검성 김검수로 돌아갈 시간이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던 아밍소드가 이젠 딱 좋은 무게감만 느껴진다.


"걱정 하지마요. 내가 지켜 줄 테니까."


기껏 살려놨는데 죽게 둘 순 없지.


얼마나 몰려올진 모르겠지만 수십 마리 수준만 아니라면 문제는 없을 거다.


걱정 가득한 그녀를 뒤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이 나타났다.


통로를 따라 떠오른 붉은 안광을 세어보니 총 다섯 마리.


놈들은 우릴 발견하고선 신나게 달려오다가 점점 속도를 줄이더니 애매한 거리에서 딱 멈춰 섰다.


"케케케케! 케륵...?"


뭐지? 내 자신만만한 미소를 본 것일까? 동물적인 감각으로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어서 와라. 다섯 마리면 딱 좋네."


빙의 이후로 몇 번의 전투를 거치며 어린 소녀의 육체에 충분히 적응한 나다.


심지어 힘까지 더 강해졌으니 이제 고블린 따위야 어렵지 않게 도륙을 내 버릴 수 있을 터.


어서 손맛을 좀 느끼고 싶었다. 그런데...


"케, 케르...?


"케르륵... 케륵... 케르...."


"엥? 이 새끼들 왜 이래."


놈들은 충분히 달려들 수 있는 거리임에도 머뭇거리며 저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고수를 알아보고 전략회의라도 하는 건가? 웃기지도 않다.


"안 오면 내가 간다!"


팍!


"케륵!! 케륵!!!"


후다다다다닥.


그저 한 발 앞으로 뻗었을 뿐인데 놈들은 왔던 통로 그대로 혼비백산하며 도망가 버렸다. 뭐지?


그때 뒤편의 그녀가 중얼거렸다.


"기, 기합만으로 몬스터들을..."


기합? 일리 있는 추측이다. 근데 내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혹시 그냥 가까이 와서야 동족의 짙은 피 냄새를 맡은 게 아닐까.


고블린들을 죄 썰어 죽이고 그 사체들 사이에서 잠까지 잤으니 냄새가 베어버릴 수밖에.


고블린 입장에선 숙련된 고블린 살인마를 마주친 느낌일 거다.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테스트 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고블린들 따위야 앞으로도 지긋지긋하게 만날 테니까.


우선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보자.


"일단 먹을 것좀 줄게요. 꽤 오래 굶은 거 맞죠?"


"...네. 정말 감사해요..."


나는 그녀에게 물주머니와 건량을 내밀었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체하면 큰일이니까. 알겠죠?"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물과 건량을 먹기 시작했다.


내 말대로 급하지 않게 차분히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그녀의 행색을 살폈다.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고급스러운 옷, 조금 푸석해졌지만 잘 관리해온 것 같은 밝고 긴 웨이브 머리, 어린 것 같은데 무시무시한 발육을 보여주는 미드까지.


종합하자면...


'귀한집 딸내미?'


조금 꼬질하긴 해도 꽤 예쁘장 해서 보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남의 먹방을 얼마나 구경하고 있었을까, 그녀가 먹고 남은 물과 건량을 내게 건네줬다.


"하아, 정말, 정말 감사해요. 정말로.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뭐 별거 아니예요. 그나저나 어쩌다가 혼자..."


"흐윽, 훌쩍. 흐어어엉. 가, 감사, 감사 해요...! 정말, 흐엉, 감사해요...! 흐끅,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흐어엉. 엄마아, 아빠아, 흐윽."


오잉?


그녀는 이제야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듯 엉엉 오열하기 시작했다. 살아났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기라도 한 걸까.


하긴, 평범한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절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것이 당연하다.


삼도천에 다이빙 하고 돌아왔으면 감정이 터져 나올 수밖에. 그러고도 무덤덤한 내가 좀 이상한 거겠지.


으음. 어쩐다. 나는 어랜애 달래주듯 주저앉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여줬다.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 여기 검성이... 아니, 내가 구하러 왔잖아요. 내가 있으니까 안심해요."


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내게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다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이젠 나를 포함해 신까지 찾아며 감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흐엉, 신이시여,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흐어엉."


이게 중세 랜드인가. 극적으로 살아난 건 알겠는데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가만히 놔두면 감동의 무제한 감사 모드를 다음날 아침까지 유지할 기세라서 이쯤 그치게 해야겠다.


"우는 아이는 던전에 버리고 갈거예요? 이제 그만 뚝."


"히, 히익. 아, 알겠어요. 그, 그만할게요... 훌쩍. 다 울었어요..."


"진정됐으면 이제 차분히 이야기 좀 해 보죠. 어쩌다 여기서 쓰러져 있었는지?"


그녀는 눈물을 닦고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기소개부터 시작했다.


머리를 정리하고 차분하게 입을 여는 모습을 보니 역시 꽤 예쁘장 하다.


키는 한 160cm쯤 되는 것 같네. 근데 무슨 가슴이.


"저, 저는 세실리아 프릴린. 던전도시 백색마탑의 견습 마법사예요... 나이는 열넷이구요. 그냥 자러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이포탈이 열리는 바람에 이곳 던전에 떨어졌어요...."


"전이포탈?"


"네, 아무 때나 나타나서 사람을 던전에 집어넣는 그거요... 전 정말 운도 나쁘죠. 하필이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이런 일을 겪다니...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전이포탈에 던전도시라. 뭔가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그래도 탐지 마법으로 고블린이나 약탈자들은 잘 피해 다녔는데 물도 식량도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어요? 결국 한계가 찾아왔죠. 그때 그쪽이..."


"델리시아."


"네, 델리시아가 절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정말 꼼짝없이 죽어서 던전을 떠도는 망령이 됐을거예요.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렇게 된 건가. 그나저나 전이포탈이라... 이거 지구에 서도 비슷한 일이 종종 있었다.


우리는 차원 불안정 현상으로 인한 무작위 게이트나 기습 게이트라 불렀지.


전조도 없이 나타나 사람이든 사물이든 주변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이거나 반대로 몬스터들을 뱉어내고 사라지곤 하는.


그럼 델리시아도 역시 전이포탈에 휘말린 건가? 감자바구니를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꽤 높은 것 같다.


어쨌든 세실리아는 구해 준 보람이 차고 넘칠 정도로 쓸만한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견습 마법사라더니 과연.


세실리아에게 이세계 위키백과 칭호를 양도하기로 하자.


"그런데 델리시아는 고층 탐험가인가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아무리 1층 이라지만 혼자서 다니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흠. 어디까지 말해 줘야 할까. 나는 적당히 진실을 각색해 설명하기로 했다.


'나 사실 빙의자야' 했는데 밖에 나가서 '이 여자 사탄들렸어요!' 하면 곤란하니까.


"사실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냥 저도 깨어나 보니 던전이었고 머리가 엄청 아프더라구요. 어디에 세게 부딪히기라도 한 건지... 제 이름 빼곤 전혀 기억이 안 나네요."


과연 세실리아는 이 말을 믿어 줄까? 다행히 그녀는 날 의심 없이 믿어 주고 되려 걱정까지 해주었다.


"어, 어떡해... 전이 후유증인가 봐요. 그 정도면 중증인데... 혹시 다른 기억은 전혀 없나요? 아니면 가지고 있던 물건 중에 기억을 떠올릴 만한 거라도..."


전이 후유증?


지구에 서도 게이트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각종 이상한 영향을 받곤 했는데 그건 이곳도 비슷한가 보다.


설마 두 세계가 어떤 연관이 있는 건가?


어쨌든 지금은 세실리아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걸 갖고 있긴 했어요. 혹시 뭔지 알아보시겠나요?"


나는 배낭에서 델리시아의 목걸이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줬다.


기도하는 여인이 양각된 철제 목걸이. 세실리아는 횃불에 비춰 목걸이를 살펴보고 다시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그거네요. 기도하는 여신이라면 축복교단의 상징이예요. 델리시아는 축복교단의 신도였을지도 몰라요."


오... 축복교단이라?


이전에 고블린 수십 마리와 싸우다가 죽기 직전 델리시아가 일으킨 기적을 난 똑똑히 기억한다.


당장 죽어도 이상할게 없던 수준의 상처와 체력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경험은 잊고 싶어도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때 분명 프레시아의 축복이라고 했지.


"프레시아... 여신?"


"네 맞아요 프레시아. 축복과 기원의 여신. 다행이예요 델리시아...! 모든 걸 다 잊어 버린건 아닌가 봐요...!"


"음, 그래도 아직 다른 기억이 떠오르진 않네요. 아무튼 고마워요 세실리아. 아 참, 우리 친구 할까요? 말도 편하게 하고. 나이도 비슷한 거 같은데."


세실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론-


'내가 더 언니 같은데...? 게다가 나이는 안 알려 줬고...'


하지만 소심한 세실리아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차마 그런 딴지거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응 그냥 친구 하지 뭐.


던전에서 목숨을 구해 준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도 썩 낭만적인 일이다. 딱히 친구가 없기도 했고.


"그럼 편하게 세실이라 불러요... 가 아니라 불러."


"그래 세실. 그럼 앞으로 어떡할 거야? 네가 원한다면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좋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었어. 델리시아 넌 정말 신께서 보낸 천사구나...! 정말 너무 고마워. 프레시아 만세...! 나는 던전이 처음이니까 네 말만 따를 게. 명령만 내려 줘...!"


좋아. 아주 활기차군.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가 양 주먹을 올려쥐고 기뻐하는게, 마치 시골집 백구를 동료로 영입한 기분이다.


머리도 웨이브 진 은빛인지 흰색인지 아무튼 밝은색 같은데 이거 던전 속 횃불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내 머리도 금발인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나가서 제대로 확인해 보자.


물론 당장 나가진 않을 거다. 밖이 안전하다는 확신이 아직은 없으니까.


그러니 우리의 지식주머니 세실을 탈탈 털어보도록 하자.


일단은 견습 마법사 세실이 지닌 동료로서의 역량 파악이 먼저다.


견습 마법사는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영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남은 식량이 아깝긴 해도 그냥 나가는 쪽으로 생각해야겠다.


식량따위야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좋아, 세실. 그럼 우선... 세실은 어떤 마법들을 쓸 수 있어?"


세실은 팔짱을 끼고 한 손은 턱을 괸 채로 골똘히 생각하곤 대답했다.


그 와중에 팔짱을 끼니 안 그래도 엄청난 발육의 미드가 훨씬 부각된다. 저 정도면 무겁진 않을까 싶을 정도.


"일단 탐지마법과 몇 가지 공격 마법을 쓸 수 있어. 각각 마법들의 범위와 위력, 사용 가능한 횟수는......"


잠시간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내린 결론은 '합격 그 이상' 이었다.


위력이 대단히 뛰어나진 않아도 그녀는 여러 종류의 기초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사용 횟수도 상당히 넉넉한 편이라고.


탐지마법도 약 전방 50m 내의 생명체를 탐지할 수 있다고 하니 생각 이상으로 준수하다.


지금 수준으론 생명체의 종류와 형태, 숫자를 세세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일단 누군가가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강점이다.


적어도 기습당할 일은 없어지는 거니까.


이 세계의 견습 마법사들은 다 이 정도는 하는 걸까?


이후로는 이곳 1층 던전과 던전도시, 전이포탈, 축복교단 등에 대해 물어 보다가 문득 다른 곳에 생각이 닿았다.


어쩌면 세실이라면 이 특이한 돌멩이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선 귀환석을 꺼내 세실에게 보여줬다.


"세실, 이건 귀환석이야. 홉 고블린을 잡고 얻은 건데 이걸 사용하면 우린 언제든 밖으로 나갈 수 있어. 그래도 아직 물자가 넉넉하니 던전을 조금 더 탐색해 보고 싶은데 넌 어때?"


"응, 난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날 구해줬는데 그정도쯤이야. 사실 난 엄청 무섭고 떨리는데... 델리시아는 완전 강심장이구나?"


뜻밖에 정신적 회복이 상당히 빠른 거 같아 다행이다. 세실이 범상한건지 이게 중세인 평균인건지.


보통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나가자며 발작적인 PTSD를 호소했을텐데.


어쩌면 내 장비나 물자, 태도 등을 보고 꽤 믿을 만 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달려온 고블린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모습도 있었고.


좋아, 어쨌든 함께 다니기로 한 이상 귀환석에 대한 것은 숨기기 껄끄러운 주제였다. 그럼 이건 넘어가고...


"그리고 이것도 홉 고블린 한테서 얻은 건데 혹시 뭔지 알겠어?"


야광처럼 빛나는 정사면체를 꺼내 세실에게 보여주자 세실은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빛나는 삼각형 돌멩이...? 이, 이건...!"


음 익숙한 반응이네. 역시 얘도 모르는 거겠-


"정력석! 이건 정령석이야! 헙. 내 목소리, 너무 컸지? 미안 해..."


자기 입을 막으며 자책하는 모습이 퍽 귀엽다. 그나저나 정령석이라.


"이거 엄청 귀한 건데...! 이게 정말 홉 고블린한테 나왔어? 스승님이 구라친 게 아니었구나...!"


"그래? 얼마나 귀한 건데?"


"값을 메길 수 없을 정도? 이거 하나면 황금을 이따~ 만큼 줘도 부족할걸?"


흠. 그 정돈가?


고작 사면체 야광 주사위 같은 게? 양팔을 활짝 벌릴 정도로 황금을 가져와도 부족할 정도라고?


생각해 보니 지구에서도 정령사는 극히 드물었던 것 같기도하고.


게이트 타고 넘어왔던 엘프들도 딱히 정령을 부린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다.


"이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잘 모르겠는걸. 정령이라는 게 그렇게 엄청난 거야?"


내 질문에 세실은 여기가 던전이라는 것도 잊은 듯 눈을 빛내며 정령과 정령석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정령 자체가 엄청 희귀하고 설령 정령을 만난다 하더라도 계약하거나 다룰 수 있는 경우는 더 희귀하다 했어. 게다가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정령석을 통해 계약한 정령이 계약자와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무슨 하급 정령이 나중엔 상급 정령이 되고 그런 거야?"


세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강아지 같군.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이런 개쩌는 보물을 밖에 들고 가서 처분할 수 있을까?


아무런 뒷배도 없이 보물을 들고 있다면 강탈당하거나 후려치기 당하기 딱 좋을 텐데.


"세실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대로 가지고 있다가 밖에 나가서 처분해야 할까?"


세실에겐 미안 하지만 난 세상 물정 모르는 척 연기하며 세실을 떠보기로 했다.


상대가 어리고 예쁜 미소녀라고 해도 당장 완전히 신뢰할 수준은 아니다.


내 신뢰를 얻으려면 적어도 휘틀러처럼 보이지 않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과연 세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남의 것에 욕심을 부릴 만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난 잠자코 세실의 대답을 기다렸고 세실은 내 시험을 가볍게 통과해 버렸다.


"음...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아마 어른들은 어떻게든 그걸 뺏거나 잘 구슬려서 가격을 후려치려 할 거야. 스승님께 도와달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네가 그걸 사용하는 것도 엄청 좋다고 생각해."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당장 정령석을 팔면 엄청난 부자가 될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어떤 정령이든 정령의 힘과 도움이 있다면 언젠가 부자가 되는 건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해. 게다가 계약한 정령은 빼앗을 수도 없다고 들었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중요한 건?"


"정령이 엄청 귀엽다는 거야...!"


"응?"


왠지 매우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은 세실은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스승님한테 들은 건데 정령은 엄청 귀엽대...! 새끼 강아지나 고양이 보다 더...! 애교도 엄청 많고 계약자를 주인이나 부모처럼 엄청 잘 따른다는 거야...! 심지어 말도 잘 통한대...! 어쩜 좋아...! 상상만 해도 엄청 기분 좋지 않아?"


흠. 그 정돈가?


개나 고양이가 내 말을 아주 잘 알아듣고 언제나 애교를 떨며 여러 유용한 능력을 사용하기도하고 수명 걱정 없이 오래 살면서 나중엔 엄청 강해지기 까지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못 참을 정도로 대단한 것 같다. 인정.


"그럼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스승님께선 정령석 안에는 순수의 정령이 잠들어 있고 네 가지 원소중 하나의 힘을 부여해 깨울 수 있다고 하셨어. 이 각 면에 새겨진게 각각 물, 불, 바람, 대지를 뜻하는 고대 정령어야. 정령을 깨우는 방법은..."


세실이 설명한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했다.


순수의 정령이 물의 정령으로 깨어나길 원하면 물을 주고, 바람의 정령을 원하면 바람을 불어 주는 것이다.


근데 불의 정령을 원하면 불이 필요한데 이거 던전의 횃불로 해도 되는 건가? 그건 그냥 미지근한 수준인데.


아니면 내 손에 불을 지져야 하나? 세실에게 불 마법을 부탁해서?


대지의 정령도 난감하다. 여긴 온통 벽돌 뿐이라 흙을 구할 수 없으니까.


세실도 흙을 만들진 못한다. 그럼 벽돌로 해도 되는 건가?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세실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델리시아는 어떤 정령이 좋을 것 같아? 생각해 본적 있어? "


"나는 잘 모르겠는걸. 아, 정령을 깨우기 전에 다른 걸 먼저 알려줄래? 아직 정보가 더 필요한 거 같아."


나는 순수의 정령에게 어떤 원소의 힘을 부여할지 신중하게 결정하기 위해 세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로 던전과 던전도시, 모험가들에 관련된 여러 정보를 추가로 물어 봤고 그녀는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성실히 알려 줬다.


한참 정보를 듣고 충분히 숙고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이 사면체 속에 잠들어 있는 순수의 정령을 깨울 시간이다.


내가 부여할 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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