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에 미친 성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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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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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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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DUMMY

"세실, 좀 도와줄래?"


나는 양손을 모아 그릇 형태로 만들고 그 중앙에 사면체를 올려 둔 뒤 세실에게 부탁했다.


"응! 나 엄청 기대돼...!"


그런 세실은 물주머니를 열고 내 손바닥에 조심조심 물을 부었다. 정 사면체가 가득 잠기고도 흘러넘칠 때까지.


'이러고 있으니 어릴 때 생각나네. 그땐 컵이 있어도 손에다 정수기 물을 받아먹고 그랬는데. 그게 뭐가 그리 재밌었는지.'


세실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 순간부터 사면체가 내뿜는 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세실이 '오오...' 하는 탄성을 흘렸다.


사면체가 내뿜던 녹광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졌다가 찬찬히 줄어들더니 이윽고 사면체의 형태가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종래에는 물에 녹은 눈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사면체가 녹아내린 물에선 한동안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진 않았다.


"어... 이러고 끝인가? 더 기다려야 돼?"


당황한 건 잔뜩 기대했던 세실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라라... 이, 이 다음은 나도 잘..."


나와 세실이 한동안 벙쪄있는 가운데 이변이 일어났다.


내 손바닥에 담긴 물이 저절로 뭉쳐 동그란 탁구공같은 모양을 만들더니 둥실 공중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돼, 됐다! 진짜 됐어! 물의 하급 정령이 됐어! 어떡해! 꺄! 너무 신기해...!"


세실은 아주 방방 뛰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뭐 열네 살이면 어린애 맞지.


아무튼 그 탁구공만한 물덩이는 공중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내 주변을 몇 바퀴 돌더니 다시 손바닥 위로 살포시 올라왔다.


마치 나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 같은 모습.


아, 이름을 지어 주는것까지가 이 계약의 과정이구나.


나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그 사실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물의 정령 이름짓기라...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어떤 이름.


'비데.'


하지만 그런 이름을 지어줬다간 왠지 자식 이름 잘못 지은 죄로 평생토록 자식에게 저주받는 부모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룰루, 네 이름은 이제부터 룰루야. 어때, 마음에 드니?"


우우우웅.


룰루는 물로 된 몸을 찰랑거리면서 말랑하고 부드러운 탱탱볼같은 몸으로 통통 튀어 오르며 기쁨을 표했다.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로써 계약이 끝났다. 계약이 완료된 순간 나는 룰루와 내 의식 일부가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룰루의 상태와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룰루가 물의 정령으로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자연스레 깨달았다.


난 이 작은 물의정령 룰루의 친구이자 동반자요 부모가 된 것이다. 그것도 영혼으로 이어진.


또 그와 동시에 나, 델리시아, 룰루의 영혼이 무언가 공명하는 게 느껴졌다.


낯설고 생소한 감각이었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델리시아의 영혼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이게 물의 정령의 힘인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델리시아가 조금이라도 일찍 깨어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비록 영혼이 치유되는 속도가 그리 빠른것 같진 않지만 언제 깨어날지 기약조차 없던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


나는 진심으로 기쁨을 담아 말했다.


"룰루야, 너 완전 복덩이구나?"


룰루는 통통 튀어 오르며 매우 기쁨, 그리고 행복함, 즐거움 등을 뜻하는 감정을 내게 정신파의 형태로 전해 왔다. 텔레파시를 쐈다는 거다.


"아이고 그래그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나는 룰루를 보며 세실 같은 댕댕이가 늘어난 기분을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세실은 거의 흥분으로 기절초풍 직전이었다.


"너, 너무너무 귀여워엇...!"


입을 틀어막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실을 보며 난 룰루에게 실험삼아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나도 룰루에게 정신파를 보낼 수 있을까? 왠지 될 거 같긴 한데.


'얘는 내 친구 세실이야. 좋은 사람이니까 경계하지 않아도 돼. 같이 즐겁게 놀아주렴.'


룰루는 내 텔레파시를 알아듣곤 세실에게 날아가 그녀와 어울려 줬다. 될까 싶어 해본 건데 텔레파시가 통하는구나.


"엄청 신기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그 뒤론 잠시 룰루의 능력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상 그냥 세실과 재밌게 놀았다고 보면 된다.


유능한 조수이자 보모 세실리아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와 엄청 상쾌해! 시원해졌어!"


주변 습도 조절.


"와! 델리시아! 물이 엄~청! 맛있어! 심지어 완전 시원해! 나 이런 물은 처음 마셔봐! 진짜 대박이야!"


물 정화와 물 온도 조절.


"앗 차거! 룰루야, 그만 봐줘~ 힝"


물 응집, 물줄기 쏘기. 거의 어린이용 물총급인데 정확도와 지속력이 상당했다.


이 정도면 상대의 시야를 집요하게 방해해 집중력 하락을 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젖은 게 순식간에 말라버렸어...!"


물 기화, 물에 대한 통제력.


"어? 사라졌다. 다시 나왔네!"


영체화, 그리고 실체화.


룰루는 영체화 상태로 남의 눈을 피해 숨을 수도 있고 언제든 실체화 하여 나타날 수도 있었다.


영체화 상태에선 쓸 수 있는 힘이 줄어들긴 하는데 타인의 눈을 속일 수 있다는 점은 아주 마음에 든다.


심지어 영체화 상태에선 내 손도 통과해 버리더라고. 내 눈에만 보이는 유령같은 느낌.


종합적인 평가는... 다음 세실의 감탄과 동일하다.


"룰루 완전 대박이야...! 엄청나!"


위력 자체가 뛰어난 건 아니었지만 가진바 능력이 아주 다채롭고 뛰어났다. 아주 꽉 찬 육각형 정령 이라고 해야 할까.


"룰루야,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하니? 찝찝해서 좀 씻고 싶은데..."


나는 작은 기대를 품고 룰루에게 '샤워'를 요청했다. 솔직히 너무너무 찝찝했거든.


마실 물도 아껴야 해서 얼굴만 겨우 닦아냈을 뿐 전신은 여전히 피범벅이다. 땀이나 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세실이 냄새라도 난다고 했으면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거다. 맘씨 좋은 세실이라 아마 티 내지 않고 참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샤워는 중대 사항이다. 하지만 그 누가 던전에서 샤워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나는 큰 기대 없이 룰루에게 '샤워'에 대한 텔레파시를 보냈고 룰루는 '까짓거 한번 해보죠.' 하는 느낌의 정신파로 답했다.


그러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라 공기 중의 수분을 밀집해 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물을 만들어내고 공중에서 물을 뿌려 줄 셈인가? 그게 샤워가 맞긴 하지.


하지만 농구공 크기만큼 몸집을 불린 룰루는 그대로 나에게 쇄도했다.


"어어?"


촤학!


나는 순식간에 룰루를 뒤집어쓰게 됐는데 룰루는 마치 물로 된 옷처럼 내 몸과 옷을 감싸고 그대로 나를 이리저리 쥐어짜며(?) 세탁하기 시작했다.


물론 쥐어짠다는 건 표현이 그럴 뿐 전혀 고통스럽진 않았다. 차라리 간지러웠지.


순식간에 머리칼, 얼굴, 목, 옷, 가슴, 겨드랑이, 팔, 손끝, 다시 겨드랑이, 가슴, 배를 지나 점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룰루.


나는 간지러움을 참으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히익! 간지러워! 거, 거긴...! 잠깐...!"


그러나 룰루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내려가 민감하고 소중한 부분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거침없이 세탁해 버렸다.


이윽고 룰루가 내 몸에서 분리해낸(?) 오염원들이 모인 검은색 물덩이를 저 멀리 날려 보내는걸 마무리로 세탁이 끝났다.


분명 전신이 물에 젖었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탈수까지 싹 끝내버린 룰루.


"후아, 이, 이건 샤워가 아니라 세탁이야..."


"데, 델리시아, 괜찮아?"


세실이 걱정하는가운데 난 손을 저었다.


"응, 괜찮아. 휴. 우리 룰루가 아주 시원시원 하구나. 완전 효자야 효자. 어때? 냄새는? 좀 덜 나는 거 같아?"


"킁킁, 와 대박인데? 거의 안나는 거 같아! 옷도 엄청 깔끔해졌고."


"이야... 우리 룰루 정말 대단하구나. 그럼 룰루야, 세실도 나처럼 씻겨줘."


엑. 세실이 놀란 토끼눈을 떴다. 하지만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룰루, 출동."


"히, 히야아악! 난 괜찮은데엣...! 간지럿...! 거, 거긴 안 돼엣...!"


후후. 소방관 모드의 룰루는 빨간불에도 멈추지 않아. 내가 멈춰달라고 해도 멈추지 않았다고...


정령인 룰루도 불결함을 구분할 수 있구나? 지식이 늘었다.


"후, 후에에... 고마워 룰루야. 덕분에 깨끗해졌네..."


세실의 세탁도 끝났고 룰루는 뿌듯한 마음으로 세실의 몸 위를 또르르 굴러다니거나 통통 튀어 오르고 있었다.


기쁨, 즐거움, 보람참, 깨끗함, 만족감 등의 기분이 흘러넘치고 있다. 참 의욕과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다.


세탁이 끝난 상태의 세실은 확실히 미소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예뻤다.


피부도 아주 깨끗하고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되니 아주 보기 좋군.


"맞다, 델리시아. 나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봐도 돼?"


머리에 룰루를 얹은 세실의 질문에 난 뭐든 물어봐도 된다고 대답했다.


"다른 원소의 힘을 부여할 수도 있는데 왜 물의 원소를 택한 거야?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좋은 질문이다. 내심 언제 질문하나 기다리기도 했고. 난 성심성의껏 질문에 대답해줬다.


"세실, 네가 알려 준 정보들을 종합해 봤을 때 물의 정령이 가장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았어."


나는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고 세실과 룰루는 내 말을경청하기 시작했다. 둘 다 너무 귀엽군.


"우선 물의 정령은......"


내 기나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물의 정령이 다른 정령에 비해 가장 '만능'에 가까울 것 이라 추측했다.'


물론 정령 자체가 매우 희귀하므로 나나 세실이나 각각의 원소 정령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이미지, 그리고 오타쿠적 판타지 지식으로 추측건데 물의 정령은 그 자체로 사상 최강의 올라운더가 될 가능성을 타고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환경과 상황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고, 언제 어디서든 대부분의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솔직히 다른 거 다 제쳐두고 던전이든 어디든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선 당장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물의 정령 뿐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아주 깨끗하고 맛있기 까지 하지. 마법사인 세실도 그런 물은 처음 마셔봤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불, 바람, 대지의 정령이 물을 만들어줄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조금 회의적이다.


어찌어찌 가능하다고 쳐도 영...


어쨌든 세실과 룰루는 납득한 것 같았다.


"델리시아는 생각이 엄청 깊구나...!"


세실은 날 치켜세워 줬고 룰루는 자신이 물의 힘을 지니고 태어난 것에 대해 깊은 만족감을 내비쳤다.


네 이름마저도 아주 유서 깊은 이름이란다 룰루야.


이밖에도 룰루는 물의 화살을 날리거나 물의 방패를 만든는 것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린 하급정령에겐 꽤 무리를 시키는 일이라 당장 실험해 보진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그때 실험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지금껏 보여 준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따로 물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언제나 아주 깨끗하고 맛있는 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압도적인 장점이다.


물은 의외로 무겁다. 심지어 생존을 위해선 상당히 많은 양을 필요로 하며 던전에서 얻기도 어려운 것이 물이다.


마법? 물어보니 물을 만드는 마법이 있긴 하지만 마법은 사용횟수 제한도 있고 정령에 비하면 아주 비효율적이라고.


반변 룰루만 있으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물이 없거나 부족해 고생할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룰루는 불침번을 설 수도 있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 접근하면 물을 뿌려 깨워줄 수도 있지.


이렇듯 룰루의 합류로 조금 불안 하던 파티가 순식간에 안정화 됐다.


최소 2인분 이상 가능한 전열인 나, 탐지 및 다양한 공격 마법을 여러 번 쓸 수 있는 세실, 여러 유틸이 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공격과 방어도 가능한 룰루까지.


사실상 일반적인 3~4인 파티 그 이상의 포텐과 변수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실에게 듣기로 마법사라는 존재 자체가 아주 희귀하다고 했으니까.


동료들을 보니 아주 든든하기 그지없다. 달랑 식칼 하나만 들고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


사실 지금 당장 던전을 나가도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 같다.


'혹시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사실 죄인이라 어떤 벌을 받기 위해 던전에 가둬진게 아닐까?' 라고 물어본 질문에 세실은 이렇게 답했다.


'죄수들을 던전에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어. 연금술사 조합에 보내는 경우는 있어도.'


이 알뜰한 중세랜드는 극한의 효율추구를 위해 죄수를 던전에 밀어 넣기보단 연금술사들의 인체실험을 위해 제공하는 win-win 전략을 택한다고.


죄수 그거? 그냥 죽여도 뭐 없잖아. 연금술사들한테 넘기면 돈도 주고 고통스럽게 죽여도 준다는데? 당장하죠.


그런 논리로 내 과거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더라.


죄수였으면 던전이 아니라 연금술사들의 공방에서 깨어났을 테니까.


새삼 휘틀러가 전해준 회복 포션의 부작용이 없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대체 인체실험을 얼마나 했으면 미개한 중세에서 부작용 없는 약을 만들 수 있겠는가.


'시발 무서운 중세랜드...'


연금술사 놈들과는 절대 엮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남은 식량을 체크했다.


둘이서 배부르게 먹어도 3일은 먹고 남겠군.


"아, 세실, 그 스승님이란 분이 걱정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지금 당장 나가도 될거 같은데."


"음... 스승님이라면 분명 걱정하고 계실거야. 그러니까 델리시아랑 좀 더 던전을 살펴보고 싶어."


"?"


뭐지. 혹시 스승님 싫어하니?


세실은 내 눈을 바라보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 두근거리고 무섭긴 해. 하지만 델리시아도 있고 룰루도 있잖아. 특히 델리시아랑 같이 있으면 뭔가 진정? 되고 용기가 나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마음속이 편안 해지고 따뜻해져. 괜히 힘이 나는 것 같달까."


어... 이거 기습 사랑 고백은 아니지?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가 그만큼 의지가 되고 든든하다는 거겠지.


"그래서 무섭기 보단 두근거리고 기대돼. 이렇게 든든한 동료들이 있는데 제대로 된 탐사도 안 해보고 가긴 아쉬울 정도로...!"


"스승님이 걱정하고 계신다며?"


"그분은 걱정좀 하셔도 돼. 평소에도 날 얼마나 놀리시는지... 무슨 재능만 믿고 노력도 안 하는 둔탱이라고 말이야. 난 항상 열심히 하는데...! 차라리 잘됐어...! 혹시 알아? 막 엄청난 보물을 발견해서 돌아갈지도 모르고...!"


애다. 애는 앤데... 중세의 맛이 난달까. 아주 싹싹하고 강하다. 성격이 단순하고 긍정적인 것도 마음에 들고.


"좋아. 그럼 가 볼까? 그래도 위험하다 싶거나 식량이 떨어질거 같으면 바로 돌아가자."


"응! 탐지마법을 사용하면서 갈게. 앞에 뭐가 나오면 미리 말해주면 되는 거지?"


"세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구나. 부탁할게."


그렇게 우리는 어두운 통로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


"앞쪽에 생명체가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숫자는... 셋 정도...? 이쪽으로 오고 있어. 천천히 걸어오는 것 같아."


세실의 말에 우린 걸음을 멈췄다. 일자형 통로인지라 피하려면 한참을 되돌아 가야 하는데 그런 헛고생할 순 없지.


"고블린이든 인간이든 혹시 모르니까 공격주문을 미리 준비해 둬. 할 수 있겠어?"


끄덕. 세실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을 외웠다.


룰루는...


"룰루는 세실을 지켜줘. 혹시나 뭐가 날아오면 물의 방패로 막아주고."


우우우웅. 세실의 머리 위에 안착한 룰루가 몸을 찰랑였다.


"세실, 고블린이면 바로 공격해 줘."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홉 고블린이 있네?'


1층 고블린 구역에서는 주로 정예방에서 등장하는 녀석이 홉 고블린이다. 밖을 나다니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지.


'설마 휘틀러때처럼?'


근처에 정예방에 누군가 들어가 홉 고블린을 내쫓기라도 한 건가? 그래서 다른 고블린들을 모으러 돌아다니는 거고?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놈들을 잡는 거다. 또 어차피 고블린이면 암시야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까...


"세실! 공격해! 그다음 녀석들이 가까이 오면 우리 뒤쪽에 빛을 터트려 줘!"


"응!"


세실의 대답과 함께 옆에서 주먹만 한 불덩이가 날아갔다. 세실이 화염탄을 날린 것이다.


파학!


"케에엑!!!"


운 좋게 한 놈이 얼굴에 화염탄을 처맞고 땅바닥을 굴렀다. 죽진 않았지만 효과는 충분했고 나머지 한 마리와 홉 고블린이 격분해서 달려들었다.


"케르랴악!"


하지만 놈들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왔을 때 우리 뒤쪽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


"케약!?"


섬광처럼 터져 나온 빛에 그대로 노출된 고블린들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경직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확히 목을 베어내는 두 번의 검격.


섬광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나의 깔끔한 이연격에 놈들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저 멀리 화염탄을 맞고 기어 다니던 놈도 똑같이 저세상에 보내주는 걸로 상황은 종료.


생각 이상으로 아주 수월하게 끝났다.


심지어 조금 튄 피마저 룰루가 즉시 멀끔히 씻어내줬다. 아이고 말 안 해도 척척척 아주 장하구나.


"세실, 엄청 대단한데? 고블린들이랑 싸워 본적이 있는 거야?"


"응. 예전에 스승님이랑 여행할 때 몇 번... 던전에선 처음인데 정말 다행이야. 델리시아랑 룰루가 든든하게 지켜 주니까 떨지 않고 할 수 있었어. 고마워."


세상에, 이렇게 겸손하기까지? 난 세실에게 마구잡이로 볼뽀뽀 해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가라앉혔다.


대신 텔레파시를 통해 룰루에게 시켰다. 내가 하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니까.


"룰루도 감격했나 봐. 잘했다고 뽀뽀해주려나보다."


"아앗. 고마워 룰루. 앗, 시원해."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군. 귀여운 거 더하기 귀여운 건 최고다.


어디... 이번엔 뭐 안주나?


그렇게 생각할 타이밍에 홉 고블린 시체가 사르르 흩어지더니 그 자리에 웬 막대기가 하나 나타났다.


30cm 정도 되는 길이에 손가락만 한 굵기, 끝단엔 앙증맞은 엄지손톱만 한 푸른 보석같은 게 박혀 있는 막대기라면 영락없이 마법 지팡이다.


"세실, 이건 아무래도 네 거 같은데? 마법 지팡이 아니야?"


"음... 마법 지팡이 맞아. 이 끝에 박혀있는 건 아마 하급 마석일 테고. 지팡이는 마나가 통하는 재질이야. 마법의 위력보단 정확도를 약간 높여주는? 그런 지팡이 같아."


"그래? 마침 잘됐네. 그럼 세실 네가 쓰는 게 낫겠다. 난 어차피 마법 못 쓰니까."


세실은 감동한 표정이었다.


"응, 고마워. 나 열심히 할게...! 아 참 이건 나가면 델리시아가 가져가. 은화 몇 개는 나올 거야."


아니 세실리아 너는 정녕 물욕이 없는 것이야?


넌 안 되겠다. 넌 내 거다. 앞으로 내 파티 마법사 자리는 세실리아 네가 최우선이라고. 영원히...!


솔직히 탐지 마법만 써도 1인분이라 생각했는데 공격 마법도 잘 쓰고 전투 센스까지 좋다 보니 아주 탐난다. 가능하면 고정 파티원으로 꼬시고 싶군.


"아 맞다 세실. 혹시 나도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 마법이라는 거 나도 쓸 수 있나?"


휘틀러도 마나 관련된 수련을 한다고 했었지. 마법사인 세실이라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


마검사는 보통 똥캐지만 쓸 만한 생활 마법 같은 걸 배울 수 있다면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세실의 대답은...


"미안해. 마법사의 재능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후천적으로 마법사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고 아주아주 어렵다고 들었어. 보통은 이론공부를 못 해도 십수년을 해야 겨우 견습 마법사가 된다던가..."


쩝. 어쩔 수 없지. 역시 쉽게 쉽게 되는 건 없구나. 나는 마법에 대한 생각은 깔끔하게 접었다.


이론공부 할 시간에 검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는 게 낫다는 건 세계를 넘어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군.


그렇게 우린 통로를 나아가다 정예방을 발견했다. 이거 왠지 이 안에 홉 고블린이 아니라 모험가가 있을 거 같은데 말이지.


내 추측을 들은 세실도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럼 어떡해...? 그냥 가는 게 나을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만 해 보자. 정예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이면 뭐 그냥 가야지. 일단 섬광 마법 정도는 미리 준비해 둬."


나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혹시 몰라 룰루에게 여차하면 물 방패를 펼쳐달라고 텔레파시를 보내면서.


그리고 열자마자 확신했다. 절대 고블린이 아니라는걸.


고블린은 저렇게 크고 풍만하지 않다. 심지어 아름답지도 않다.


그곳엔 두 명의 엘프가 있었다.


한 명은 자기 키만 한 지팡이를 지닌 아주 아름답고 풍만한 여인, 나머지 한 명은 휘틀러처럼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남자애.


남자애는 몰라도 저 여자는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복장부터 장비, 분위기까지 절대 이런 쪼렙 던전에 있을 레벨이 아니라는 게 바로 느껴졌다.


"선객이 있었군요. 그럼 저흰 이만."


이럴 땐 빠른 퇴각이 답이다. 하지만 그때-


"응? 축복교단의 성녀님을 여기서 뵙네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말이 날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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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증명 24.08.12 37 1 17쪽
12 변수 24.08.10 42 1 17쪽
11 듀얼 24.08.09 42 1 20쪽
10 성녀 24.08.08 42 1 23쪽
» 룰루 24.08.07 44 1 22쪽
8 친구 24.08.06 45 1 19쪽
7 정산 24.08.05 42 1 18쪽
6 죽음의 경계 24.08.02 45 2 18쪽
5 '그거' 24.08.01 51 1 18쪽
4 괴물 24.07.31 57 1 15쪽
3 빙의 24.07.30 67 2 13쪽
2 24.07.29 115 2 12쪽
1 프롤로그 - 검극 24.07.29 103 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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