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프로젝트 제로의 함정 (5)
***
한편 아지트에서 카이와 셀레나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시점, 레온은 몬스터로 변한 알렉스를 쫓고 있었다.
슈우우-
하늘에서 날 수 있던 몬스터는 뒤에 레온이 쫓아오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방향을 틀어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걸 모르던 레온은 일단 계속해서 몬스터를 쫓기로 생각했다.
“거기 서! 알렉스!”
[너 같으면 서겠냐? 크허허허.]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바람에 레온 역시 쉽사리 잡기 어려웠다. 특히 공중에 날면서 전투를 이어가기란 지금의 레온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쯤이면 되겠군···.]
원하는 그림 그대로 모든 게 딱딱 들어맞아갔다. 알렉스는 미리 계획했던 대로만 움직였다. 중앙 홀을 부수고 왕궁 연구소에 혼란을 준 것도, 계획에 제일 방해되는 토끼 가면을 연구소에서 멀리 끌어내는 것도 모두 그의 일이었다.
[설마 그 토끼 가면이 레온 녀석일 줄이야···.]
그렇게도 옵스큐러의 일을 방해하던 그 가면을 쓴 놈의 정체가 레온이라는 걸, 알렉스는 최근에서야 블러드 리퍼를 통해 듣게 되었다. 그 뒤로 연구소에서 만날 때마다 항상 웃으며 대하긴 했지만, 서둘러서 그를 죽이고 싶었다.
알렉스에게는 옵스큐러가 집이자,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옵스큐러의 위대한 길을 막아서는 레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오늘이야 말로 너 죽고 나 죽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탁-
꽤나 먼 곳으로 날아온 알렉스는 그대로 넓은 공간에 착지했다. 그가 선택한 이 공간은 주위에 아무것도 있지 않은 넓은 공터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래··· 이곳이라면, 너와 승부를 볼 수 있겠지.]
훗날 이곳에는 여러 가지가 지어질 개발지였기에, 아무 고민 없이 알렉스는 이곳을 골랐다.
“알렉스··· 도대체 왜 몬스터가 되어버린 거야?”
[그러게··· 분명 우리는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이었지.]
“그러니까 말이 안 되잖아! 도대체 왜!”
[난 옵스큐러로서 너를 죽일 의무가 있다.]
“크윽···. 정말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거냐···.”
친구.
사실 알렉스와 유진,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그저 같이 한 공간에서 일할 7기사단의 동료쯤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점점 직장 동료를 거쳐 마침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다다랐다.
그렇기에 레온은,
그렇기에 알렉스는,
너무 안타까웠다.
적이 되어버린 이상, 이젠 미룰 수 없이 죽여야만 하는 상황. 알렉스 역시 마음이 있는 인간이었기에 친구였던 레온을 죽이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나아가야 했다.
아니, 나아가야만 한다.
지이잉-
철컥-
“준비는 되었겠지? 알렉스?”
[물론. 끝을 보자, 레온!]
손에 붙어있는 두 개의 칼날을 들쳐 보인 알렉스 아니 몬스터와 던트스톤을 끼우고는 마나를 활성화시킨 레온.
이 둘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짧게는 7미터, 길게는 20미터까지.
서로가 있는 곳의 거리는 멀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바로 코앞까지 와서 붙어있는 것 같았다. 뭔지 모를 흥분감이 조금씩 끓어오르며, 두 사람 모두 일제히 투기를 폭발시켰다.
쾅-
콰아앙-!
보이지 않는 투기가 모든 걸 뚫고 날아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수 십의 공격들이 머릿속에서 움직였다. 어디서부터 공격을 하고 방어를 해야 할까.
주르륵-
몬스터는 땀을 흘리지 않았지만, 레온은 분명 알렉스가 땀을 흘리고 긴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하, 긴장되냐?”
[당근이지.]
“기대해도 좋아, 내 모든 걸 쏟아부을 생각이니까.”
[나도, 내 목숨을 걸도록 하지.]
어느새 레온의 검에는 붉은색과 파란색의 오러가 가득 찼다. 이제는 정말 한 발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레온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크윽···.”
왜냐하면,
[뭐가 걱정이지, 레온?]
흠칫-
“뭐···?”
[왜, 친구였던 놈을 죽이려는 게 겁나나? 고작 그런 새끼가 우리의 앞길을 막아? 하, 나 참. 어이가 없군. 저런 무른 녀석한테 맨날 얻어터지다니.]
“알··· 알렉스?”
[덤벼! 이 개새끼야! 나도 목숨을 걸었으니, 너도 걸고 들어오란 말이야!!!]
피잇-!
그 순간, 알렉스의 외침은 잠자던 레온의 오리진을 깨웠다.
“하··· 그렇네. 그런 거였어.”
놈은 이미 옵스큐러로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실험하는 것에 많은 걸 동조했을 터. 그런데 고작 친구였다는 이유로 죽이기는 아까워했다.
알렉스는 이제 인간의 편이 아닌 악마 같은 옵스큐러로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그럼 인간을 위해, 사랑과 평화를 위해 싸우던 레온은 무얼 해야 할까. 레온 역시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래. 넌 나를 존중하는구나. 그래서 나를 죽이겠다고, 다짐한 것이었어.’
“알렉스!”
레온의 마나가 담긴 거대한 파도 같은 목소리는 알렉스의 귀를 통과해 마음을 지나, 개발지의 곳곳을 누볐다.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반드시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크하하하···. 그래, 그래야 내가 죽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무대가 비로소 되는 거지.]
검을 쥔 손에 최대의 악력을 부여하여, 강력하게 지탱시킨 레온은 눈을 부라리며 알렉스 아니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이젠 진짜 시작이다.
“으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동시에 울리는 고함과도 같은 기합은,
챙-
서로의 무기가 마주치며 일순간 공기가 사라지듯 사라졌다.
*
팅-
금속이 서로 부딪히며 튀겨지는 소리가 잔뜩 울렸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수 싸움은 이 둘의 간극을 보여주기에 아주 좋았다.
“크윽··· 제법이네, 역시.”
[크하하하··· 레온, 너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 토끼 가면. 강하군.]
“농담은 그쯤 하고, 그냥 항복하는 건 어때? 서로 좋게 가자.”
[농담은 네가 하는군. 시시한 장난은 집어치우고 진심으로 들어와라!]
휴우-
한숨이 둘 사이의 공간을 갈라 세웠다. 레온은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웠다.
빠르게 ‘몬스터’를 제거할 수 있는 한 가지의 수를.
“넌 이제 알렉스가 아니야.”
[······.]
“내 안에 알렉스는 죽었다. 이 괴물 새끼야.“
[하하하하··· 좋아, 바로 그거야!!!]
팟-
휘어지는 잔상만을 남긴 채, 레온은 순식간에 알렉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닛··· 어디··· 로!]
슈웅-
챙-!
[크윽···.]
몬스터를 향해 날린 검은 아쉽게도 아슬아슬하게 목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한 뼘의 속도만 빨랐어도 급소를 찢어버릴 수 있었지만, 아직은 속도가 모자랐다.
[헉··· 제법인···. 크윽···.]
힘의 균형은 조금씩 레온에게로 향해갔다.
올바른 정화로 부작용 없이 더욱 강한 힘을 얻는 레온의 던트스톤과 달리, 알렉스의 인조 코어는 그 어떤 평범한 인물조차 강력한 몬스터로 바꿀 수 있었다.
대신, 육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강력한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런··· 젠장···.]
“난 여기서 네놈을 죽인다. 그게 너의 대한 내 진심이야!”
소리치는 레온의 모습은 태양과도 같이 빛났다.
[태양···이라고?]
철컥-
지이이잉-!!!
그 어느때 보다 뜨거운 열기가 개발지에 모든 곳을 처져나갔다.
[그··· 건 대체 뭐냐···.]
“아, 이거? 하하하···. 나도 업그레이드를 하려고.”
[또, 또 새로운 던트스톤인 거냐!!! 레온!!!]
몬스터는 분노를 느꼈다. 어째서 저 놈은 항상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것일까. 그에 비해 난 뭘까.
그래서 그는 선택했다.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기 위해. 또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으··· 으아아아아아!!!!!]
쾅-!
아까보다 더욱 진해진 투기와 어두운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몬스터의 주위를 덮었다. 발 밑에 있던 풀들은 그대로 푹- 시들어 사라져 재가 되었다.
“역시, 몬스터는 재앙이다. 닌 반드시 널 없애겠어! 보여주마, 이것이 내 진심이다!”
사자와 바람이 그려진 던트스톤은 평소와는 다른 밝기로 레온의 마나를 반겼다. 이젠 정말 끝내겠다는 레온의 의지를 받아들인 듯, 동시에 울려댔다.
지이이-
기이이잉-!!!
“우오아아아아!!!!!”
검에는 더 이상 아까와 같은 붉고 푸른 오러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강력한 주황과 청록색의 오러가 이글이글하게 타올랐다.
레온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베스트매치는 적을 향해 폭발했다.
쉬익-
캉-!
[으아가가!!!]
“이야아아!!!”
도약한 레온의 발걸음은 하늘을 날지 않음에도 날 수 있는 것처럼 가벼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땅에서 도약한 레온은 말도 안 되는 오러를 들고 단숨의 몬스터에게 파고들었다.
츠츠츠츠츠즉-
하지만, 몬스터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었다. 이곳에서 레온이 진다고 해도 죽진 않겠지만, 몬스터는 자신이 죽음을 선택하면서 까지 레온을 막기를 원했다.
으아아아!!!
서로의 울부짖음이 부딪혔다. 검과 발톱은 경쾌한 금속의 소리를 만들었고, 즐거운 듯 레온과 몬스터는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어느새 둘의 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순식간에 가깝게 맞닿게 되었다.
“이젠 진짜 작별이다, 알렉스!”
튕-
서로의 힘겨루기는 무승부로써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튕기며 날아간 둘은 서둘러 다음 수를 준비했다.
[크윽···. 쿨럭···.]
이제 몬스터에겐 정점이 없다. 몬스터는 천천히 죽어갈 것이다.
가까스로 땅에 고꾸라지다 겨우 튕겨 올라 착지를 잡았지만, 착지를 하고 자세를 잡고 고개를 올렸을 땐,
이미 늦었다.
[결전기 제6형 - 포효의 분노(咆哮之憤)]
기이잉-
[크륵··· 이런··· 하하하하···. 와라! 레온!]
말도 안 되는 양의 오러가 한 줌으로 레온의 검에 모아들었다. 저걸 제대로 맞는 다면 그 자는 더 이상 눈을 뜨고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몬스터는 자신의 투기와 어둠의 힘으로 막기로 결정했다.
[와··· 저게 마검사인가···. 하하하··· 모든 건 당신을 위한 겁니다. ### 씨. 흐흐흐···.]
포효의 분노는 코어의 최대치를 빼앗아 던트스톤의 마나를 검의 검격 형태로 만들어 적에게 날리는 기술이다.
날아간 검격의 오러는 그대로 적의 품 안에서 폭발한다.
크콰아아아앙-!!!
귀가 터질 정도의 폭격음이 나타났고, 오러가 떨어진 자리는 먼지만 잔뜩 휘날렸다.
“······.”
무심히 몬스터가 터진 그 자리를 지켜본 레온의 푸른 눈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추모할 가치도 없는 그런 인간, 아니 괴물의 죽음이었으니.
볼 가치는 끝났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서려는 차,
느껴졌다.
감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지금 심지어 던트스톤까지 꽂고 있었다.
섬뜩-
등골이 짜릿한 느낌에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던 레온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 지어있었다.
“크크크···.”
“어떻게··· 몬스터의 육체만 소멸시킨 건가···?”
같이 소멸했어야 할 알렉스는 멀쩡히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스윽-
“역시··· 그 사람인가···. 대단한 걸 만들었군.”
“알렉··· 스 무슨 소리인 거냐··· 대체.”
“흐흐흐흐··· 여기서 내 임무는 끝이다.”
“뭐··· 뭐라고?”
“난 말이야 여기에 너를 묶어두기만 하면 되거든. 넌 우리의 일에 엄청난 방해를 하니까.”
“설··· 설마?!”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가 레온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정말로 모든 게 딱딱 들어맞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을 저들은 하고 있던 것이다.
*
같은 시간, 왕궁 연구실은 패닉, 그 자체였다.
-끼야아!!! 살려줘!
-컥
-일단 모두 도망쳐!!! 끄악!
날카로운 가시를 날리며 한 남자가 천천히 판도라 박스 앞에 도달했다.
남자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 천천히 판도라 박스를 봉인하고 있던 봉인의 마법진을 풀어갔다.
지잉-
“드디어···.”
철컥-
잠금장치가 풀리는 동시에 남자는 주머니에서 통신 구슬을 꺼냈다.
통신 구슬은 뱀이 그려진 가면을 쓴 남자에게 향했다.
“리퍼님. 이곳도 임무 완료입니다.”
[수고했다. 하하하···.]
통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점점 연구소와 가까워졌다. 흥분이 가득 담긴 목소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지 하는 듯 울려 퍼졌다.
[자, 이제 들어가 볼까? 흐하하하하!!!]
연구소의 입구에 도착한 블러드 리퍼는 그의 뒤로 쫙 정렬되어있는 옵스큐러 가디언들을 보고는 폐가 터질 정도로 웃었다.
이제 진짜 파티의 시작인 것처럼.
- 작가의말
곧 추석이네요. 얼른 쉬고 싶습니다. (주르륵 ㅠ)
아 물론 추석에도 연재는 계속됩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레온은 어떤식으로 움직일 것인가. 그 점을 주의깊게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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