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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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작품등록일 :
2024.07.31 20: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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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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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섯 번째 영웅 (2)

DUMMY

잘려 나간 검성의 팔.

바닥에 떨어진 랜턴.

그걸 적시는 비비안의 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거기 있던 그 누구도.


쩌적.


랜턴을 감싸고 있던 돌이 깨지며 기이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한걸.


***


맑고 투명하지만 일렁임 없는 호수.

울창하지만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숲.

떠 있지만 흘러가지 않는 구름.

숨 막히게 조용하고 고즈넉한 성채까지.


‘아름답지만 기괴한 곳.’


그곳에 거주하는 4명은 이 장소를 그렇게 불렀다.


“호록.”


예쁘고 아담하게 꾸민 식당.

그곳에 2명의 남자와 2명의 여인이 있었다.


후웅! 후웅! 후웅! 후웅!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

사자 갈퀴 같은 갈색 모발.

땀이 흠뻑 나도록 검을 휘두르는 성난 등 근육.

그의 이름은 다리우스 브라이어.

그의 내려치기는 유명한 무용수가 예술을 표현하듯 고절하고 아름다웠다.


“적당히 하지?”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

얼음처럼 투명한 눈동자와 머리칼.

그녀의 이름은 노노아 프로즌.

그녀가 얼음처럼 싸늘하게 다리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웅! 후웅! 후웅!


다리우스는 훈련을 계속했다.


“야!!!”


결국 참지 못한 노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쩌적.


다리우스가 내려치던 검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뭐 하는 거지?”


다리우스가 ‘이게 무슨 행패냐?’라는 표정으로 노노아를 바라봤다.


“여기 사람들 쉬는 거 안 보여?!”


“계속 쉬면 되지 않나?”


“정신 사나워서 못 쉬겠다고. 어쩜 그렇게 네 생각만 하니? 지겹지도 않아? 매일 미친놈처럼 검만 휘두르고.”


“아직 부족하다.”


“풉.”


둘의 모습을 보며 풉 웃는 사내.

검은 머리칼.

검은 눈동자.

그것과는 상반되는 하얀 피부.

차를 마시던 룬디아 네크로가 두 사람의 다툼을 보며 웃었다.


“웃음이 나와?”


“노노아. 너도 정말 대단하다. 안 지겨워?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다리우스한테 화낼 수 있냐.”


“그러게 말이다. 마음을 조금만 더 착하게 먹어라.”


“뭐??”


노노아가 다리우스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리우스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만해라. 나 경고했다.”


노노아의 몸 주변으로 고드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리우스는 검을 휘둘렀다.


“하! 진짜 저 검밖에 모르는 병신!”


결국 자기 혼자 화나고 제풀에 지친 노노아.


“하~ 그래. 화내봐야 나만 지치지!”


룬디아는 그럴 줄 알았다며 킥 웃었다.


“잘했어요. 노노아.”


따듯한 태양을 생각나게 하는 노란 머리에 노란 눈동자.

수녀복을 입은 마리아 케이틀린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노노아를 칭찬했다.


“분쟁은 좋지 않답니다. 여러분. 이럴수록 평화롭게 풀어야죠~? 그리고 다리우스. 남한테 피해를 주면서까지 수련하는 건 좋지 않답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뿜어내는 기운만큼은 그 둘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크흠.”


다리우스가 검을 내리고 의자에 착석했다.

노노아의 말은 무시하다시피 했지만

마리아 케이틀린의 말만큼은 잘 듣는 그였다.


“그래. 싸울 만큼 싸운 사람들이 뭘 또 싸우려 그래. 와서 한잔해. 향이 기가 막혀.”


그때


쨍그랑.


룬디아가 들고 있던 찻잔이 허공에서 박살 났다.


“무슨 일이에요?”


마리아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


노노아가 룬디아의 손을 가리켰다.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마리아는 염려했고


“무슨 일이지?”


다리우스는 담담했으며


“뭐야? 이거 설마 그거야?”


노노아는 놀랐고


“그게 맞는 거 같아.”


룬디아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


우웅.


랜턴이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불꽃에서 피어난 연기가 뭉치며 악령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 뭐야 저거!!!”


홱.


전쟁기념관을 밝히던 횃불이 꺼지고


끼익. 탁.


율리안이 나가기 전 철문이 닫혔다.


“뭐···. 뭐야?”


“저하를 보호해라!”


마이트의 외침에 호위병들이 율리안을 에워쌌다.

그들은 긴장했다.

숨 막히는 정적.

주변에 병사들이 있음에도 너무 조용했다.

잠시 후


촤악!!!


악령이 율리안의 앞에 나타났다.


“뭐···. 뭐야? 오지 마!!!”


율리안은 검을 뽑아 싸우는 것보다 도망을 택했다.

하지만


철컹.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뭐야! 이거 왜 안 열려! 마이트! 우선 문부터 열어! 빨리!”


“저하! 섣불리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율리안이 열리지 않는 문을 계속 흔들었다.


“야! 밖에 있지! 열어! 열라고!”


율리안이 문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 사이, 악령은 율리안의 지척에 다다랐다.


“꺼져! 저리 안 꺼져!”


율리안이 검을 뽑았다.

그건 적을 베기 위함이 아니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패닉에 빠진 것.


“저하! 고정하소서! 저하!”


“마이트! 이것 좀 치워! 빨리!!!”


율리안이 악령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후웅.


검은 허공을 통과하듯 악령을 통과했다.


“저하? 뭘 치우라는 말씀입니까?”


“눈앞에 이거! 안 보여?”


율리안이 악령을 가리켰다.

하지만 병사들은 율리안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이는구나]


지하 저 깊숙한 밑바닥에 사는 생명이 이런 목소리일까?

가장 깊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의 목소리가 이럴까?

율리안은 악령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네가 좋겠구나!]


악령이 율리안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어? 뭐야 이거! 나가! 나가!”


벗겨지지 않는 옷을 벗으려는 듯 율리안이 발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털썩.


율리안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저하! 저하!!!”


마이트가 율리안의 맥을 짚었다.


“살아계신다! 저하를 모셔라! 어서!”


부관이 소리쳤다.


“그럴 필요 없어.”


쓰러졌던 율리안이 눈을 떴다.


“장난 한번 쳐봤어. 놀랐어?”


율리안의 얼굴에 장난기가 다분했다.

병사들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와중에 장난질이라니.


“다행입니다. 저하! 몸에 이상은 없으십니까?”


“응. 괜찮아. 아주 좋아.”


율리안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저깄지? 나타샤 아리아의 후손.”


“예. 그렇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아. 아니야. 얼굴이 보고 싶어져서.”


율리안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전쟁기념관을 뒤덮고 있건만

그는 마치 앞이 보이는 것처럼 거침없이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아이 깜짝이야! 죄송합니다.”


칼을 들고 있던 조장이 갑자기 나타난 율리안에 화들짝 놀랐다.


“여기 너무 어둡다. 그치?”


율리안이 바닥에 있는 랜턴을 집었다.


화륵.


희미하기만 했던 랜턴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새 또 마음이 바뀐 거야?’


사내가 그렇다.

어찌 눈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지금은 전시 상황도 끝난 상태.

억눌렸던 욕망이 폭발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율리안이 랜턴으로 바닥을 훑었다.

그리고


“오랜만이네.”


바닥에 떨어진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사연 있는 눈으로 손거울 바라보기를 한참.


“네가 이랬어?”


율리안의 시선이 조장에게 향했다.


“예?”


“네가 이랬냐고?”


“아니. 대장께서 직접···.”


조장은 미칠 지경이었다.


“대장···. 자네 이름은 뭐지?”


“톨입니다. 톨 파토.”


“톨 파토. 내 이름이 뭐지?”


“율리안 듀발론 황자 저하입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율리안의 지랄은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조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황자? 내가 황제의 아들이야?”


“예! 그렇습니다!”

“첫째야 둘째야?”


“3 황자십니다.”


“그렇구나. 뭐 하고 있었어?”


조장은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놨다.

그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장단에 맞춰준 뒤 자신은 돌아가 논공행상을 받으면 그만.


“마무리 지으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을? 어째서?”


“뭘 물어 개새끼야! 네가 그렇게 하라며!”


‘아···.’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

그는 참지 못하고 그간 쌓아온 울화를 쏟아냈다.

가슴속 용광로를 뱉어내자

피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은 조장.


“헙! 죄송···.”


하지만 그가 사과도 하기 전,


촤악!


율리안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조장이 율리안을 노려봤다.


“끄르르륵. 이 개새.....”


조장이 뒤로 넘어갔다.


“유언이 너무 저급하구나.”


“.......”


호위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병사들을 못살게 굴긴 했지만, 죽인 적은 한 번도 없는 그였으니까.


“전시 중에 상관한테 하극상을 하면 쓰나?”


조장을 처리한 율리안이 랜턴을 비비안의 곁에 놓았다.


“조금만 참거라.”


그리고 오직 그녀만 들리게 뱉는 나지막한 귓속말.


“거기 너.”


“네!”


조장의 죽음에 그곳에 있던 병사들의 군기가 순식간에 충전됐다.


“이 건물 안에 몇 명이나 있나?”


“저하를 포함해 총 13명···. 아니 12명이 있습니다.”


“나 빼고 11명. 고마워.”


“아닙니... 끄르르륵.”


병사의 보고가 끝남과 동시에

율리안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시작되는 살육.


“끄악!”


“으악!”


“저하! 제발 고정하소서!”


“살려줘!!!”


위에서 아래로.

비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3층에서 2층.

2층에서 1층.


뚜벅. 뚜벅. 뚜벅.


비명이 사라진 뒤,

고요한 공간을 한 남자의 발소리가 가득 채웠다.


화륵.


그 사이, 횃불을 살린 마이트가 전방으로 불빛을 비췄다.

그곳에 서있는 율리안.


“누구냐?”


마이트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율리안이 주변을 살펴봤다.


“나머지는? 네가 내보냈나?”


‘대장이 아니다!’


전장을 수천 번 구른 그다.

지금 눈앞에 남자는 자신이 아는 율리안이 아니었다.

걸음걸이.

검을 잡는 자세.

마주 보고 있지만 경계를 최대로 한 자세.

이 모든 것이 율리안이 아님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율리안 황자 저하는 어디 갔지?”


부관이 질문이라는 낚싯대에 의도라는 밑밥을 숨겨 바다로 던졌다. 이제 부관은 가늠하면 된다. 미끼를 무는 고기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알았어?”


“저하는 병사를 괴롭힐지언정 베는 사람은 아니거든.”


“병사를 괴롭혀? 망나니였구나.”


이 대답을 통해 마이트는 알 수 있었다.

율리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저하는 어떻게 됐나?”


“저기.”


이제는 새롭게 태어난 율리안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


마이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율리안의 눈엔 보였다.

패닉 상태에 빠져 허공을 헤매는 진짜 율리안의 혼령이.


챙!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검과 검이 충돌했다.


‘강하다!’


한 합만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미끼를 문 놈은 민물고기가 아니라 고래였다.

생각이 정리된 즉시 마이트가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몸을 잘못 선택했구나. 악령아. 그 몸뚱이는 마나를 쓸 수 없는 몸이거든.”


제아무리 드워프가 만든 명검이라도 마나를 머금은 철검을 이길 순 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율리안은 반격이 아닌 회피를 선택했다.


‘저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하지만 마이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십 번의 걸친 공격.

하지만 단 한 번도 그의 공격이 율리안의 몸에 닿지 않았다.


“그거 아나?”


그의 검술을 지켜보고 있던 율리안이 드디어 검을 뻗었다.


“결국 닿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네.”


율리안이 검을 휘둘렀다.


‘됐다!’


마이트는 다가오는 검을 박살 내며 율리안의 몸에 치명상을 입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걱!


“?”


다가오던 검이 갑자기 궤도를 틀며 목을 물어뜯었다.

그렇게 마이트마저 쓰러지고 난 뒤 율리안이 혼백을 바라봤다.


“절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제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율리안이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아무리 안하무인인 그라도 눈치는 있었으니까.

율리안은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그와 동시에 혼백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원주인이었던 율리안은 사라졌다.


“억울해하지 마라. 뺏고 뺏기는 게 전쟁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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