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가 억세게 운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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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8.08 19:08
최근연재일 :
2024.08.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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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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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돼지꿈은 사천오백원

DUMMY

1 돼지꿈은 사천오백원



‘시발,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싶다.’


알바 나온 지 5분만에 든 생각.


내 이름은 최현기. 스물 세살.

동네에 유일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일 한 시간 5분, 남은 시간 6시간 55분. 시발.


“이거 계산해 주세여.”

“야, 잠깐만!! 우리 라면도 먹자.”

“미친, 돼지야. 또 늦으면 혼나!!”


지금 초딩들 학원가기 전, 편의점 피크타임.


그래 맞다. 니네는 다 돼지 새끼들이다.

분명히 다들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고 왔을 텐데?

라면에 삼김에 샌드위치···니네가 사람이냐.


삑-

삑-

삑-


깔깔거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앞에서 조용히 고개숙이고 바코드를 찍는다. 그래, 좋을 때다. 세상 걱정 없을 때. 학원 숙제 못하는 게 제일 큰 걱정일 때.


작지 않은 편의점에 가득 찼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전투적으로 먹고 떠난 자리를 정리해야 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 아. 시발. 빨리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


편의점 앞 버스 정류장에는 마을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퇴근시간이다. 후. 또 한번의 피크타임이다.


“아, 여기 알바는 손님이 들어오는데 인사도 안 하네.”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며 큰 소리로 중얼거린다.

나 들으라는 말인가?


거지같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삑-

삑-

삑-


그래도 편의점 알바의 좋은 점도 많다.


나 혼자 일하는 것.

말할 필요가 별로 없는 것.

부모님과 집에서 마주칠 일 없다는 것.


그 중에도 제일은 바로


‘폐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손님이 뜸한 시간, 유통기한이 20분 남은 것들은 폐기로 등록하고 내가 먹어도 된다.


나는 흥얼거리며 진열대 앞에 섰다.

역시나 오늘도 맛있는 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샌드위치 하나, 김밥 한 줄. 바나나 우유.


챙겨서 돌아서는 데, 언제 들어왔는지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서 있었다.


“아우씨!!!”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하마터면 욕 할 뻔 했네······


“저기···젊은 총각···미안하지만 버리는 것 좀 없나?

내가 워낙 배가 고파서.”


한 눈에도 비쩍 마른 할머니가 퀭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벨 소리도 안 났는데 언제 기척도 없이 들어온 거지?


“내가···원래는 폐지를 줍는데, 요 며칠 아파서 일을 못해서 굶었더니···당최 기력이 안 나서 일도 못하겠구···그래서 이렇게 구걸을 하러 왔다우···”


할머니는 불쌍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내 맘대로 폐기한 음식을 줄 수는 없었다.


“우···우유라도···”

할머니는 내 손에 쥐여진 바나나 우유를 바라봤다.


꼬르르륵-


매장 가득 할머니의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정말 안됐다. 그치만 나는 뭐라해야 좋을 지 몰랐다.


내가 온정이 가득한 사람이라거나 친절한 사람은 아니지만, 약하고 늙고 배고픈 사람에게 매몰차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이 좀 긴장되기도 했다. 혹시 뭘 줬다가 저 할머니가 자꾸 찾아와서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계절에 맞지 않는 구멍난 옷을 입고서 내 눈치를 보는 할머니에게 나는 뭐라고 거절해야 할지 고민했다.


‘폐기된 제품을 드리면, 제가 잘려요?’

‘할머니 죄송하지만···음, 죄송한 일을 아니지···’

‘식사를 못하신 건 안됐습니다만···놀리나?···’


10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고민한 내 입에서 튀어나간 말은 뜻밖에 가장 쓰레기 같은 표현이었다.


“안 살 거면, 나가세요.”


어라, 이···이게 아닌데.


내 앞에 선 할머니의 작은 눈이 깜짝 놀라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서둘러 돌아섰다.


“아···아이고··· 미안해요.”


출입문으로 도망치듯 나서는 할머니를 보고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그게 아니라···”

또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뭐든 상상했던 것보다 최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놈.

답도 없는 놈.


나는 뭐라 중얼거리며 당황한 듯 허둥거렸지만, 사실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놓칠 것이다.

그래서 내심 벌써 안도하고 있었다.

불편한 상황은 곧 끝날 것이다.


그때였다. 돌아선 할머니의 신발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할머니의 운동화는 밑창이 튿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튿어진 신발 사이로 할머니의 뒤꿈치가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나 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알량한 동정심···아마도 그런 이유겠지.


“할머니! 잠깐만요!”

나는 크게 소리쳤다. 놀란 할머니가 멈춰서 돌아봤다.


진열대에 놓여있던 불고기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어느 여배우가 광고하는, 양이 푸짐하기로 유명한 도시락이었다.


『제가 실수했네요. 이건 제가 사과의 의미로 드리는 거에요.』


물론 그런 매끄러운 문장이 내 입에서 나올리가.

“이...이···이거···”


나는 얼어붙은 할머니 앞에 도시락을 내밀어 쥐어짜낸 목소리로 ‘이거’라는 말만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두 손으로 도시락을 받아 들더니 나를 봤다.


“이건, 버리는 게 아닌 것 같은데···”

“···”


할머니가 방긋 웃었다. 앞니가 없는 할머니의 미소는 어린아이같이 밝았다.

“고마워. 잘생긴 총각. 비싼 도시락 같은데······”


4500원이다. 내 시급의 절반.


“내가 어제 돼지꿈을 꿨다우.”

“···?”


갑자기 왜 꿈얘기를 하지? 당황스럽네.

하지만 할머니는 쿡쿡 웃었다.


“홍수가 났는데! 물이 아니라 똥인거야 똥!

근데 저기서 돼지떼가 둥실둥실 떠내려오고~

하늘엔 용이랑 주작이 날더라고.”


“···아···”

뭐지. 미친 할머닌가.

벌써 후회가 된다.


“내가 돈이 없으니 꿈이라도 팔아, 도시락 값을 하라고 그런 꿈을 꿨나보우··· 맘씨 좋은 총각. 복 많이 받으시게.”


할머니는 내게 꾸벅 인사를 했다.

당황한 내가 같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자, 할머니는 가고 없었다. 이번에도 문에 달린 차임벨이 울리지 않았다.


“벨이 고장났나?”


문을 열자 시끄럽게 차임벨이 울렸다.


“이상하다···고장 안 났는데.”

나는 몇 번 더 문을 여닫으며 확인하고선 카운터로 돌아왔다.


‘으이그···미친놈.’


답지 않게 선의를 베푼 게 영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냥 폐기 된 샌드위치 하나 몰래 드릴 걸 그랬나?


나는 김밥을 먹으며 게임을 켰다.

이제 마감까지 조용하다. 적당히 폰겜이나 하다가,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해야지.


얼마전 서비스를 시작한 흔한 가챠게임. 좋은 카드는 극악의 난이도로 뽑을 수 있어서 돈 없는 나는 그림의 떡.


그래도 초반이라 이벤트를 많이 하니 잠시 하긴 좋지 뭐.


핑그르르- 룰렛이 돌아갔다.

보나마나 별 한 개나 두 개 짜리 카드겠지.

나는 빠르게 다시 돌리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에픽 카드 ‘쿠루미의 여신’을 뽑으셨습니다!』


“뭐?! 뭐라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려 에픽카드.

500장은 뽑아도 뽑기 힘든 카드가 바로 나오다니???


“현기님은 천하대운을 얻으셨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뭐···뭐야??”


두 손으로 잡고 있는 폰 너머로 작은 돼지저금통 같은 게 날아올랐다. 황금색 돼지는 공중에 둥둥 뜬 채로 핑그르르 돌더니 제법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시..시발···이게 뭐야!!”

나는 눈을 비비며 허공에 뜬 돼지를 바라보았다.


황금색으로 반짝반짝거리는 돼지의 등에 동전을 넣는 구멍은 없어 보이니 저금통은 아니었다.


“너···넌 뭐야!!”


“제 이름은 크리스티나. 세계 행운 은행 직원입니다.”

“뭐? 크..크리스티나? 세계 행운 은행이라고?”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날아다니는 복돼지가 생긋 웃으며 족발을 들자, 눈 앞에 화면처럼 반투명한 영상이 떠올랐다.

화면 속에는 네잎 크로버 로고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세계 행운 은행’이라는 글자가 여러 언어로 나타났다. 아마도 홍보영상인 듯했다.


이어지는 화면을 따라 자신을 크리스티나라고 소개한 돼지가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희 은행의 존재를 모르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통장에서 꺼내 쓰듯 자신이 타고난 운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현기 고객님께서는 방금 전 거래를 통해 엄청난 양의 운을 가지게 되셔서 저희가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그런 말도 안되는?”

“최현기님은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천하대운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빰빠라밤빰 빰빠라밤빰~빰!


어디선가 굉장히 구린 팡파레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띵동-!

차임벨이 울리며 남자가 들어왔다.


“말보로 레드 하나요.”

“아···아···저기···.어라? 어디갔지?”

“예?”


나는 당황해서 두리번 거렸지만 돼지도 화면서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말보로 레드요.”

“아···네···신분증 주세요.”


담배를 산 손님이 떠나자 갑작스레 끊겼던 음악소리가 다시 울리며 화면이 켜졌다.

돼지는 정말 은행직원같이 공손한 포즈로 설명을 계속했다.


“천하대운이란 사람이 타고날 수 있는 최고의 행운으로···”

“아니, 잠깐! 잠깐만!!!”

“네? 왜 그러시죠?”

“방금 어디갔다 온거야?”

“아하. 저는 현기님 눈에만 보인답니다.

아직 익숙치 않으실 테니 아까 손님 앞에서 실수하지 않으시게 제 모습을 숨겼습니다.”

“그럼, 지금 누가 내 모습을 보면 혼잣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거야?”

“네, 정확하십니다. 이해가 빠르시네요.”


돼지가 상냥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근데. 행운이라니···”

“현기님이 가지신 운은 세상 최고의 천하대운이십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입을 벌리고 생각에 잠겼다.


“키···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는데. 살도 좀 빼고.”

“아뇨. 현기님 저희는 소원을 들어드리는게 아니라···방금 전에 이해가 빠르시다는 말은 취소드립니다.”


돼지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젠장. 헷갈릴 수도 있지! 공손하게 재수없긴······

돼지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어서 설명했다.


“현기님은 이제 전과 다른 삶을 사시게 될 겁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온 우주가 현기님을 도울거에요!”

“날? 날 어떻게?”

“그러니까···귀인을 만나고. 일이 잘 풀리고, 사업이 잘 될겁니다.”

“나..난···그런 거 필요 없는데?”


갑자기 나와 허공에 뜬 돼지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꿈이나 야망, 평소에 하고 싶던 일···그런 거 없으세요?”

“아···그···그다지?”


이 돼지···뭔가 당황하고 있었다. 아깐 프로처럼 굴더니 설명 되게 못 하잖아?

“그···그럼···로또 1등 같은 건?”

“네 로또 1등도 가능하십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제한이 걸려 있어요.

아무리 천하대운이셔도 매번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평생동안 1000만달러 이상의 당첨금은 총 3번 100만달러 이상은 일곱번까지 받으실 수 있습니다.

카지노, 로또 등등 모두 포함되는 횟수입니다. 자세한 건 제가 그런 상황이 오면 다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천만 달러면 얼마지? 나는 뭐라고 더 설명을 하는 돼지를 앞에 두고 속으로 돈을 가늠해봤다.


최대한으로 받으면 돈을 얼마 땡길 수 있지? 그런 계산을 해보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행운이라.


오히려 그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좋은 운이 내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로또보다 무서운 행운의 힘을 알게 된 건 바로 다음 날의 이야기.



작가의말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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