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가 억세게 운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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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8.08 19:08
최근연재일 :
2024.08.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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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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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산다는 것은

DUMMY

『‘운도 실력’이라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으세요?』


하늘을 나는 돼지저금통의 말이

나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


자신을 크리스티나, 줄여서 티나라고 불러달라는 요상한 돼지는 집에 와서도 운과 대운, 귀인 등 별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하아- 현기님, 듣고 계세요?”


티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말야, 은행 직원이라며 고객한테 그렇게 한숨을 쉬어?

이름 뒤에 ‘님’자만 붙이면 되는 줄 아나···”

“아···아니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것과 별개로 티나 녀석은 끝까지 덧붙였다.

“별로 집중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참, 나.”


녀석말대로 나는 그다지 이해력이 좋은 편이 아니니까······

앞으로 그냥 궁금할 때마다 물어보기로 했다.


다 귀찮았다.


“현기 왔니?”

집에 들어서자 안방에서 엄마의 인사.


“어-“

나는 무심하게 내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같으면 알바 가기 전 하다 만 게임을 하겠지만,

오늘은 피곤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돼지도 달고 왔고.


“너, 내가 씻을 때도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요! 절 뭘로 보시는 거에요?

저도 본사에 다녀올거라구욧!”


녀석은 발끈하더니 뿅하고 사라졌다.


“뭐라고? 현기야?”

안방에서 또 엄마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냐 엄마. 자~”

“그래, 늦었다. 너도 어서 자렴.”

“어···”


엄마는 아침 7시, 아빠는 8시에 출근한다.

난 한잠을 자고 있을 시간.


세 가족이 모이는 건 이 시간 뿐이지만, 이렇게 방문 너머로 안부를 확인하는 편이 더 편리하다.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면 더 숨이 막히니까.


열 두시 전에 침대에 누워 보는 게 얼마만인지.

중학교 때도 한시는 돼야 잠을 잤는데.


나는 눈을 감았다.

잠들기 전 아까 티나의 말이 떠올랐다.


『‘운도 실력’이라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으세요?』


“들어봤지. 겪어도 봤고···충분히···”

나는 중얼거리다 잠에 들었다.


***


꿈속의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 날로 돌아가 있었다.


커다란 교실에 커다란 책상, 의자마저 커서

낯설고 긴장되었던 교실.


가슴에는 엄마가 달아준 튤립 모양의 이름표를 단 어린 나.

내 짝궁도 같은 모양의 이름표를 했다.


노란 튤립 안에 적힌 그 아이의 이름은 ‘강서하’

서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안녕? 너 우리 아파트 살지?”

“어?...으응”

나는 서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강서하야 친하게 지내자. 최현기.”

똘망똘망한 얼굴의 서하가 날 보고 미소 지었다.


장면이 바뀌어 3학년 교실.

2학년 때 헤어졌던 우리는 다시 만났다.


“최현기! 안녕? 축구 할 건데 너도 껴!”

“어? 나?”


내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다른 녀석이 껴든다.


“강서하, 너 최현기랑 친해? 왜?”

“왜라니? 얘 우리 아파트 살아. 1학년때도 친했어, 그치?”

“···으···응···”


어린시절에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거리감.

강서하는 인싸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성실하고, 공부 잘 하고, 운동 잘 하고.

키 크고 잘 생기고.

깔끔하고 반듯한 아이.


3학년 때는 강서하 덕에 나도 아이들과 어울리는 날이 많았다. 같이 게임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군것질도 하고.


“현기네 마트에 가서 뽑기 하자!”

“스마일 마트가 현기네 집이야?”

“어!”

“와, 현기 좋겠다. 과자도 실컷 먹겠네”


강서하와 내가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가면 카운터를 지키던 아빠가 우리에게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주시곤 했다.


“우리 현기 친구들이구나~ 뽑기 하러 왔니?”

“”네~~~””


그 맘 때의 우리 아빠는 꽤 재밌고 다정했다.


아이들은 가게 앞에 놓인 커다란 뽑기 상자에서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카드를 뽑았다.


“아, 난 또 별 한 개짜리야···”

“너 뭐 나왔는데?”

“야, 강서하 별 다섯개짜리 나왔다!”

“대박!!!”

“역시 강서하!”


‘역시라니?’


어린 마음에도 의문이 들었다.

‘역시’라고? 아무리 강서하라도 저건 그냥 운이 좋은 거잖아.


내 손엔 별 하나짜리 볼품없는 은색 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또 꿈 속 장면이 바뀌었다.

지옥 같았던 중학교 2학년.

당연하지만 강서하와 나의 간극은 별 다섯개짜리 카드보다 더 멀어져 있었다.


서하는 늘 운이 좋았다.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때도,

밴드부 친구들과 재미삼아 만든 유튜브 영상이 대박날때도,

중학교에 방송국이 촬영을 왔을 때도 그랬다.


그 아이는 족족 별 다섯개짜리 카드를 뽑았다.

그럴 때마다 나와 강서하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그래, 분명히 운도 실력이었다.


“꺅- 강서하 선배 지나간다.”

“나 저 오빠랑 같은 학원 다니지롱-!”

“야···야···저기.”

“뭐야, 재수없어.”


강서하를 보고 난리 치던 여자후배들이 날 보더니 갑자기 똥 밟은 표정을 지으며 쑥덕거린다.


‘시발, 얼굴도 못 생긴 것들이······’


강서하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다.

존예라고 소문난 3학년 선배와 사귀는 걸로도 유명했다.


‘존나 웹툰처럼 사네’


나는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웹툰이나 볼 뿐이었다.

가끔 집 근처에서 마주쳐도 우린 서로 인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친구들이 스마일 마트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우리 마트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항아리 상권이라 망할 일은 절대 없다던 아버지는 바로 옆에 새로 생긴 중형 마트에 손님을 그대로 빼앗겨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 가게를 망하게 했던 중형마트도 폐업한 후 또 몇 년.

스마일 마트가 있던 자리에 강서하네 아버지가 편의점을 열었다.


서하네 편의점은 아직까지 잘 되고 있다.

아니, 유흥가에 낸 지점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망할 리 없는 항아리 상권이니까.


운도 실력이다.

그리고 어쩌면, 운은 유전일지도 모른다.


***


‘아이씨···무슨 개 꿈을···이렇게 연대기 적으로···’

눈을 뜨자 눈 앞에 황금 돼지가 날아올랐다.


“굿-모닝이에요~ 현기님! 오늘도 운/수/대/통!!!”

“으악-!”


쿵-!

나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야야-!”

“어머! 죄송해요. 저 때문에 너무 놀라셨나봐요······”


황금색 돼지 티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방금의 응원을 위해 머리띠와 치어리더들이 쓰는 반짝이는 술을 양 족발에 든 채였다.


“아······이거 안 좋은데.”

“많이 아프세요? 현기님?”

“아··· 아니. 아직은 아니야.”

“네? 아직이라뇨?”


나는 어릴 때부터 허리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허리에서 이런 신호가 올 때는 싫어도 해야 하는 게 하나 있었다.


“어머! 운동을 가시다니. 전혀 몰랐어요. 몸만 봐선···”

티나가 헬스장으로 향하는 내게 말했다.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못하는 돼지 같으니라고.


“···시···싫어도 해야 해. 안 하면 삐끗해서 며칠 누워있어야 하거든.”

“와, 그래도 대단하세요~현기님~”


늘 그렇듯, 조금만 운동하고 가야지.

나는 사이클에 앉아 폰에 집중했다.


등록한지는 오래 됐지만, 개인 PT를 거절하니

아무도 말을 안 걸어서 오히려 편하다.


“저 회원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최근에 등록하셨나요?”


“예?”

나는 놀라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내게 말을 건 트레이너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 이어폰··· 제가 회원님 처음 뵙는 것 같아서요. 운동 오랜만에 나오셨나요? 아니면 최근에 등록하셨나요?”


트레이너가 친절하게 웃으며 또박또박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젊고 활기찬 인상 짧은 스포츠 머리.


내가 놀란 건 그의 얼굴 옆에 뜬 황금색 화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귀인’이라고 적힌 반짝이는 글자.


“아, 제가 운동하시는데 방해를 했나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이번에 좋은 프로모션이 있어서···”


그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빛나는 상태창에 적힌 특이사항을 읽고 있었다.


『 차은오 (22)

축구 특기생으로 명문 K대에 진학했으나 부상으로 헬스트레이너로 전향.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 휴학 후 트레이너 활동 중.

성실하고 전문적인 관리로 인연을 맺으면 훌륭한 신체를 갖출 수 있게 도와준다.


★인연을 맺으려면?

→ 차은오가 제안하는 불법 PT수업을 승인하자』


상태창 옆으로 티나가 붕 날아올랐다.


“오~ 귀인이 등장했네요!”


돼지 녀석 구경났나?

‘오, 귀인이 등장했네요?라고???

오, 귀인이 등~~장~~했네요오~~~????’


별 쓸데없는 이야기만 어제부터 내내 하더니.

정작 중요한 상태창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잖아?


옆에서 깐족거리는 황금돼지를 슬쩍 노려보자, 티나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말했다.


“앗···현기님···’귀인’이라는 건···어쩌구”

“회원님, 이 프로모션이 이번 주까지인데···저쩌구···”


오디오 겹쳐서 안 들린다. 시부럴···

나는 흐린 눈을 하고 다시 양 귓구녕에 이어폰을 쑤셔넣으며 중얼거렸다.


“제가 바빠서···”

“아···회원님, 그게!”


나는 다시 폰에 정신을 집중했다.

차은오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리니 더 이상 상태창도 보이지 않았다.


귀인이라면서 무슨 이벤트가 ‘불법 PT를 승인하자’야?

문장 한 번 존나 쓸데없이 경쾌하네.

성실하다는 놈이 관장 몰래 그런 짓을 해?


차은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내 옆에서 얼쩡거렸다.

티나가 폰 위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현기님!! 귀인은 대운을 꽃피우는 데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냥 이렇게 무시하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어서요! 이러다 저 사람 가겠어요!”


오, 크리스티나. 이 무익한 황금빛 돼지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내가 바라는 일이란다.


나는 말없이 사이클 페달을 밟았다.

차은오도 포기했는지 한참을 서성거리다 사라졌다.

그는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다시 한 번 반색을 하며 말을 걸려고 했지만 나는 모르는 척 헬스장을 빠져나왔다.


“현기님! 이런 식으로 하시면 돌아가실 때까지 가지고 계신대운의 10%도 못 쓸 거에요! 진짜 대운은 사람을 통해 흐른다구요!”


거 참 시끄럽네.

사람 만나는 게 제일 귀찮고 피곤한데, 사람을 사귀라니.


내가 눈길도 주지 않자, 티나는 짧은 다리를 붕붕거리며 내 주의를 끌었다.


“이런 천하대운을 얻으시고도 로또나 몇 번 당첨돼서,

가까운 사람도, 성취한 업적도 하나 없이!

쓸쓸하고 의미없이 혼자 돈만 쓰다가 죽고 싶으세요?”


나는 우뚝 멈춰 서서 티나를 바라보았다.


“···좋은데?”

“아이참! 현~기~니~임!!!!”


아, 좀 그만 불러.


그런데 잠깐 사이에 상대의 이름과 나이, 살아온 내력까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네.


다른 사람을 쳐다봐도 아까처럼 상태창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귀인이 아니면 안 보이나 보다.


축구 특기생으로 K대에 입학할 정도면 엄청 노력했을텐데, 부상이라. 안 됐네··· 게다가 빚까지 있다니···쩝···


‘에이, 누가 누굴 걱정하냐···아, 이제 난 걱정 없나?’


머리를 긁적이며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딱 봐도 몸이 좋아 보이는 남자들 몇 명이 우르르 서 있었다.


“아까 헬스장에 있던 사람들 맞죠?”

‘별 관심 없는데···’


티나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지하철 역 앞에 홍보를 하러 나온 트레이너들이었다.

손에 들린 전단지를 보니 내가 다니는 곳도 맞고.


그러나 아까 내게 말을 건넨 차은오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낄낄거리며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아···차은오 새끼 표정 봤어요? 크큭. 회원 뺏기더니 이를 으득, 하고 갈던데?”

“내가 그거 이 달 안에 관둔다에 100만원 건다.”

“꼴 좋다. 지가 선수였으면 뭐 어쩔건데. K대면 다야?”

“아니 근데 회원한테 무슨 이야길 했길래, 샘을 바꿔?”


한 명이 귓속말로 뭐라뭐라 속닥거렸다.


“푸핫-! 미쳤어!!! 너 인마, 그거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와~ 이거 진짜 나쁜 새끼네?

요봐라 요거, 요사스런 새끼~~권모술수 새끼~~~푸하하.”


티나가 슬쩍 내 눈치를 봤다.

“현기님···방금 저 사람들···”


역겹다.


한 눈에도 알만한 놈들. 근육만 키우면 뭐해?

지들 열등감 때문에 어린 후배 하나 괴롭히는 놈들이······

그냥 다 죽어버렸으면.


그렇다고 정의를 구현하고 싶진 않다.

내가 뭐라고 정의를 구현하겠나.


교차로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

나도,

비겁한 새끼들도,

세상이 억까하는 불쌍한 차은오도,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그것 뿐이다.

산다는 것은.


작가의말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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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딱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24.08.11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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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돼지꿈은 사천오백원 +2 24.08.09 4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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