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가 억세게 운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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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8.08 19:08
최근연재일 :
2024.08.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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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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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딱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DUMMY

운이 좋다는 건, 기분이 좋다는 것.


처음 간 식당이 늘 맛집이라는 것.

식당에서 두 메뉴를 고민하면, 알바생 실수로 주문이 잘못 들어가 둘 다 나오는 것.

주방장이 그냥 하나 값에 둘 다 먹으라고 주는 것.


다른 지역에선 구하기 힘든 게임팩이

우리동네 마트에는 넘치게 쌓여 있는 것.


아이돌 연습생 같이 예쁜 알바생이 주문을 받아주는 것.

그녀에게 받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속이 꽉 차 있다는 것.


최애 브랜드에서 최애 애니메이션과

콜라보한 티셔츠를 파는 것.

근데 그게 안 팔려서 특가 세일하는 것.

거기에 내 사이즈만 하나 남아있다는 것.


폰을 확인하며 뛰어가지 않아도 딱 맞게 지하철을 타는 것.

버스를 놓쳐도 바로 다음 버스가 오는 것.

그 버스에 더 앉을 자리가 많은 것.


운이 좋은 것이란 그런 것.

이렇게 살면, 제 기분이 조크든요.


***


아무도 없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니 세상이 달라보인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고, 약간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으세요? 현기님?

제육이랑 떡갈비랑 둘 다 먹어서 좋으시냐구요.”

티나가 틱틱거리며 쏘아 부쳤다.


“안 좋을 게 뭐야···”


나는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버스엔 기사아저씨와 나 뿐.


“진심이세요? 귀인을 그렇게 놓치시고도 좋으세요?

아까 상태창 못 보셨어요? 차은오와 인연을 맺으면 건강하고 멋진 신체를···”


“소원은 안 들어준다며.”

“네?”

한탄하던 티나가 나를 바라봤다.


“운이 좋은 거지 소원은 안 들어준다고 했잖아. 네가.

날씬해지고 싶다고 했지. 노력하고 싶다곤 안했어. 나는.”


내가 2XL를 입지 않았으면 오늘 하나짱의 멋진 기어가 그려진 티셔츠도 못 구했을거라구.


“예?... 네~에? 그게 무슨?”

“아무리 귀인이라도 나 대신 운동해주진 않을 거 아냐?”


티나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아무런 변화도 안 받아들이시고 로또만 하실거에요? 정말로?”

“로또도 당분간은 할 계획 없어.”

“그건 또 왜요오?”

“횟수에 제한이 있다며. 좀 더 생각해보고 써야지.

당장은 급할 것도 없고,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이제 말 그만시켜. 아까부터 기사아저씨가 자꾸 흘끗거리니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아저씨는 불안한 눈치였다. 하긴, 내가봐도 미친 놈 같겠네.


‘로또라···받긴 받아야 되는데···’


빚이 생긴 후 대화가 사라진 우리 집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부모님을 위해 돈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건넨 후 가족의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렇게 약간 업그레이드된 일상만으로도 충분해.’


천운을 얻었다고 뭐라도 하겠다고 설치면 그건 내가 아니다. 난 그런 대단한 놈이 못돼.


난 본래 그릇이 작다. 아빠가 매일 내게 말 하듯이.


『저놈은 당신을 닮아 손도 작고, 그릇도 작아서 큰일이야.』


그러면 늘 엄마는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당신 닮아 큰 손으로 빚을 안 져서 효도하는구만 뭘.』


공부 좀 못하고 야망이 좀 없다고 해서 내가 뭐 피해를 주는 것도 없잖아? 내가 못났다면 부모 닮은 탓이겠지.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두 사람 사이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나라고.


오랜만에 좋았던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


띵동-!


“어서오세요! 아! 우리 현기로구나.”


편의점의 차임벨이 울리자 점장님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어색하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우왓, 점장님! 엄청 잘생겼어!

꽃중년이시네요!! 마스크가 꼭 배우 같으시다~”


티나의 눈이 하트가 되어 점장님 앞을 둥둥 날아다녔다.

쳇, 돼지도 얼굴을 따지는 더러운 세상.


“현기야. 이리 와 봐. 아저씨가 할 말이 있다.”


강서하의 아버지는 서하 만큼이나 나와는 다른 부류다.

티나의 말처럼 생긴 것도 꼭 배우같았고,

좋은 목소리로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꼭 드라마 대사 같았다.


나를 아들 친구라도 ‘우리 현기’라고 다정하게 부르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우리 현기’라니. 아빠도 엄마도 날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자연스럽기는 점장님이 제일 자연스러웠다.


“아저씨가 말야. 교회에 새로 온 가족이 있는데. 형편이 좀 안 좋다고 하더라고.”


그걸 왜 나한테? 이번 건 강서하 아빠라도 영 이상한 이야기였다.


“집이 사업이 망해서···지금 가족이 다 뿔뿔이···어쨌거나 더 자세히 말하긴 그렇고, 내가 이걸 우리 현기한테 이야기하는 이유는···그 아들이 직장이 여기 지하철 역 앞이라 지금 가족들이랑 같이 지방으로 갈 수가 없다고 그래.

그래서 아저씨가 우리 편의점에 일하면서 여기 뒤에 창고에서 당분간 지내라고 했거든? 걔가 참 성실한 애야.”


“아···네···”


방금도 집안이 망한 창창하고 성실한 청년을 보고 온 입장에서 기분이 묘했다.

“걔가 이제 12시에서 4시까지 타임을 맡기로 했어. 곧 오면 네가 인수인계도 해주고. 그런 사정이니까 좀 모른척 해줘. 아저씨말 무슨 말인지 알지? 아마 너 마감할 때쯤 와서 잘거야.”


“네···”


“그래. 우리 현기가 속도 깊고 하니까 아저씨가 든든하네. 너보다 한 살 어리니까 친하게 지내.”


한 살 어리다면 스물 두 살.

방금 보고 온 걔도 이름 옆에 괄호치고 22라고 쓰여있었던 것 같은데 설마.


“아 마침, 저기 오네!”


띵동-!


차임벨 소리에 돌아보니 그곳에는 몇 시간 전에 헬스장에서 봤던 앳된 얼굴의 차은오가 서 있었다.

머리에 반짝거리는 ‘귀인’이라는 글자를 달고.


“어머나! 역시 천하대운의 기운은 강하군요!

보세요! 현기님! 차은오님이에요!!”

감탄하지 말라고 돼지녀석아.

게다가 이 녀석 아무리 봐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엇? 안녕하세요?”

차은오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자 점장님이 놀라 물었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네.”

“아니오.”


나와 차은오의 대답이 엇갈렸다.

밝았던 차은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러려던 건 아닌데.

머쓱하네.


“제···제가 다른 분이랑 착각했나봐요.”

“그래? 그럼 난 일이있어 이만 가봐야하니 은오는 현기한테 잘 배우고. 알았지?”

“네···”


점장님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알지?’하는 듯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꾸벅 어색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순도 높은 찐한 어색함은 점장님이 떠나고 우리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아···그···뭐지···뭐부터 가르쳐야 되나···”

난 점장님한테 배웠고 인수인계를 해본 적도 없는데.

이런 선배역할은 진짜 못해먹겠다.


“포···포스기는 할 줄 알아?”

“얼마 전까지 호프집에서 일했는데 그거랑 좀 다르죠?”

“아···이건···어떻게 하냐면···”


차은오는 헬스장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는 듯 내게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었다.

폰을 꺼내서 메모장에 메모도 해 가며···

일머리가 있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알아서 물어보는 덕분에 쉽게 인수인계를 마칠 수 있었다.


“어···음···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어? 어···그···그래···”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편의점으로 몰려들어왔다.

띵동-!


“어서오세요!”

우렁찬 차은오의 인사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더욱 놀란 것의 그의 인사에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니네, 인사라는 걸 할 줄 아는 동물이었니?


“인사···소리가 너무 컸나요?”

차은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아니···인사···굳이 안해도 되는···”


“아저씨 새로 온 알바에여?”

초딩이 내 말을 끊고 차은오에게 물었다.


“네.”

차은오가 웃으며 대답하자 몇몇이 되물었다.

“어, 그럼 이제 아저씨가 해요?”

“아니. 난 다른 시간에 하고 오늘 배우러 온 거야.”

“에- 그렇구나.”

아이들은 나를 쓱 올려다보더니 관심이 식은 듯 돌아섰다.

부들부들···사회성이 덜 발달된 애들이 더 잔인하다더니.

외모로 알바를 차별하다니 못된 것들.


***

초딩들이 몰아치고 나자 매장은 다시 한산해졌다.

오늘은 차은오가 도와줘서 정리가 훨씬 빨리 끝났다. 내가 평소에 너무 여유있게 하나? 빠릿빠릿 움직이는 그를 보니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차은오가 말했다.


“저···아까 헬스장에서···”

“···?”

“제가 운동하시는데 너무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그래도 이렇게 또 만나다니 형이랑 저랑 인연인가 봐요!”


짝.짝.짝.

티나가 감동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그럼요! 암요! 은오님과 현기님은 인연이시고 말구요!”


나는 티나의 주접은 가볍게 무시 한 채 차은오 머리위에 노래방 간판처럼 반짝이는 글자를 빤히 바라봤다.


‘머리 위에 ‘귀인’이라는 글자를 달고 그런 얘기 하지말라고 이 놈아···’


“아, 물론···아까 말한 PT를 권하려고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니에요!!!”


내 시선이 불편했던지 차은오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근데···진짜 괜찮은 기회라···”

이 새끼,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더니···역시 아직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구만.


“그래요 현기님! 한번 들어나 보자구요!”

티나는 추임새 넣듯, 은오 옆에 나란히 떠서 나를 바라봤다.


“저희 헬스장에서 이벤트를 하는데 다음주부터 세 달 동안 PT를 받으시는 회원님들 중에 체지방 감량을 가장 많이 한 회원님들을 순위대로 뽑아서, 1등은 PT비용이 전액 무료고···”


차은오는 회원들을 상대로 수십번은 반복했을 설명을 줄줄 읊었다.


‘아···그러니까 다이어트 대회를 한다는 거군. 그래서 나의 이 뒤룩뒤룩한 몸뚱이를 그렇게 탐냈던건가...’


“회원님···아니아니···형은!

20대 초반이라 높은 대사량에, 체지방도 있지만 근육량도 충분하니 3개월이면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질거에요.

제가 보장해요!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할게요!”

“그래요! 현기님! 당장 귀인의 손을 잡으세요!!”


아···티나 제발 닥쳐.


“그게, 미···미안하지만···나는···”


띵동-!



“어서오세요-!”

차은오의 목소리가 또 다시 쩌렁쩌렁 울렸다.

짜식. 축구했다더니 운동한 티가 나네···


‘살았다. 이젠 더 이상 이야기 안 하겠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살았다는 무슨.

들어온 여자손님을 보는 순간 나는 온 몸이 경직되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박로라’


거기엔 내 중학교 시절을 지옥으로 만든 여자가 서 있었다.


“어라, 현기님···이 손님···”

티나가 뭐라했지만 들을 정신 따위 없었다.


“레종 주세요.”


로라는 고양이 같은 눈을 폰에 고정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날 못 알아봤나? 8년이 지났는데 피는 담배도 똑같네.’


다행히 로라는 폰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 날 못 본 듯했다. 그래, 쇼츠에서 눈을 떼기 어렵지. 전두엽 살살 녹이는 유튜브 만세다.


내가 고개를 처박고 가만히 있자 옆에 서있던 차은오가 응대했다.


“신분증 주세요”

“4500원입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다 들지 못한 채 곁눈질로 로라의 손이 담배를 받아 작은 백에 담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녀가 몸을 돌려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리가 났다.


“안녕히가세요-!”

여전히 시원시원한 차은오의 목소리와 함께 ‘띵동-!’하는 차임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문을 잡은 채 나를 보는 박로라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마같은 얼굴이었다. 물론 서큐버스처럼 치명적인 아름다움 또한 그대로였다.


“존나, 병신 같은 건 여전하네. 너 왜 서하네 가게에서 일해?”

“···”


아 그래, 그럴 리가 없지.

맹수가 사냥감의 냄새를 맡지 못할 리가 없지.


“풉···푸하하하···표정봐···”


세상에서 가장 얼빠진 표정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내 표정일 것이다. 나는 등신같이 그저 서 있었다.


8년 전과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아니지. 이제 난 천하대운을 가졌다. 그건 확실하다.


그 애의 머리 위에 ‘악연’이라는 글자가 검은 색으로 빛났다.


작가의말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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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24.08.11 23 1 12쪽
2 산다는 것은 24.08.10 34 1 13쪽
1 돼지꿈은 사천오백원 +2 24.08.09 4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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