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자가 억세게 운이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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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돌이
작품등록일 :
2024.08.08 19:08
최근연재일 :
2024.08.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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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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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과의 재회

DUMMY

4 악연과의 재회


“현기님! ‘악연’은 피하는 게 이득이에요!

악연이 주위에 있으면 대운의 효과가 급감해요.”


얼어붙어 있는 나와 박로라 사이에 티나가 붕하고 날아오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 놈의 대운이 그렇게 조건이 많아?

피할 수 있었다면 피했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


중학교라는 공간이 으레 그러하듯,

교실안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고

굳이 누군가를 괴롭혀 힘을 과시하는 포식자와,

쥐새끼처럼 떨어야 살아남는 사냥감이 있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도 그러했고, 나는 사냥감 쪽이었다.


“푸핫, 이름이 최현기? 아,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냥 그런 시시껄렁한 장난 같은 말이 시작이었다.

곧 아이들은 나를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고, 정도는 점점 더 심해졌다.

반 아이들이 나를 뺀 단톡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내 학교생활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어, 현기증 새끼 또 만화 본다.”

“보나마나 또 씹덕후 같은 거 보고 있겠지.”


내 만화책을 뺏아간 포식자 몇몇이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섹시한 캐릭터들을 본 녀석들은 자기들도 얼굴이 벌게진 주제에 교실이 떠나갈 듯 소리질렀다.


“아!!!!! 현기증!!!! 이 씨발, 변태 새끼!!!”


현기증, 만만이, 씹덕후, 어머니 잘 계시냐로 불리던 내게 ‘변태’라는 호칭이 덧붙여진 날이었다.


“어, 근데 이건 너 닮았다. 로라야.”

내 책을 가지고 간 녀석이 거울을 보고 있던 박로라한테 들이밀었다. 그녀도 교실 내 최상위 포식자들 중 하나였다.

조금은 결이 달랐지만.


“이것 봐. 긴 머리에 니삭스. 딱 박로라네.”

알록달록하고 순둥한 이미지의 여캐들 사이에 눈에 띄는 차가운 외모의 검은 긴 머리 캐릭터. 사실 나도 읽으면서 박로라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 캐릭터가 박로라와 진짜 닮은 부분은 외모가 아니라 천재적인 두뇌와 지랄맞은 공격성, 그리고 엄청난 싸가지라는 점.


“싸물어.”

박로라가 말했다.


“아···뭐야···존나 냉정하네.”

일진 녀석도 자존심 상한 듯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는 못했다. 아마 그 녀석도 사실 박로라를 좋아하고 있었겠지.


방금 내가 ‘그 녀석도’라고 말했던가?

그렇다.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저지를 가장 큰 실수는

박로라를 마음에 둔 것이었다.


솔직히 박로라를 좋아하지 않을 중2짜리 남자애가 어디있을까? 예쁘고 몸매는 터질 듯이 좋으면서, 또 옷은 보란듯이 꽉 끼게 입고 다니고···... 고양이를 닮은 냉미녀.


박로라는 공부도 잘하는 문제아 스타일이어서 성적도 전교권이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외교관인 아버지가 일하시는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지내며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매일 파티를 다닐 거라고 했다.


이미 당시에 박로라의 인스타 팔로워는 몇 만명이었다.

근데 나 하나쯤 남몰래 좋아하는 게 뭐, 그다지 큰 일인가?


그 후로도 몇 달. 내가 그 놈의 심심풀이가 되는 동안 박로라는 나에게도 그 놈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때까지의 학교생활이 사실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2학기가 시작되기 이틀 전이었다.


“최현기”


현기증이 아니라 최현기라는 말에 나는 멈칫 걸음을 멈췄다. 눈 앞에는 외국에서 신나게 놀았는지 그을린 박로라가 꽉 끼는 테니스복 스타일의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너 내 인스타에 댓글 달았더라?”

“···내···내가? ··· 나 인스타 안 하는데.”


박로라의 목소리는 8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늘할 정도로 차가웠다. 나는 이미 망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아닌 척, 발 뺌을 할 수 밖에······


“좆까고. 나한테 댓글 단 아이디 구글에서 검색해보니까. 00초등학교 3학년 2반 네이버 카페가 나오더라고? 같은 아이디를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까 몇 가지 웹문서가 나왔는데.

00초등학교 3학년 2반 출신이면서, ‘엄마랑 서코에 가고싶은데’라고 자신을 붓타무스메 팬이라고 소개한 잼민이, ‘초3인데 일본 애니 자막 없이 보는 사람 흔함?’이라는 질문 겸 자랑 글 등등이 나오더라고···”


“···나···나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박로라는 틴트를 바른 새빨간 입술로

내가 그 아이의 인스타 사진 밑에 싸질러 놓은 댓글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외워서 말했다.


“『박로라 학교에선 완전 개 싸가지에 일진임. 만만한 선생은 얘 앞에서 뼈도 못 추리는데 여기선 댕냥이상 ㅇㅈㄹ. 실제로는 웃지도 않고 지나가면 담배+향수냄새 어지러움』

이거 니가 썼잖아.”


시발. 망했다. 멍청한 놈!!!

아이디를 왜 옛날 아이디 그대로 썼던 거지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한 걸음, 한걸음.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내게로 다가올 때마다,

그 아이의 주름진 짧은 미니스커트 자락이 찰랑였다.


“담배랑 향수.”

“···으..으응?”

“나한테서 담배랑 향수 냄새가 지독하다며.

낼 모레 개학이지? 내 책상 위에 올려 놔.”

“그···그게 무슨! 무슨 담배랑 향수를 사란말이야?”

“그건 네가 알아서 사 와야지. 안 그래?”

“내···내가···도대..체···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면 그 아이가 여자라서,

조금은 만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따-악!

“윽-!”


맞은 머리통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 아이가 손에서 툭, 모난 돌멩이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담배랑 향수. 틀릴 때마다 다섯 대 씩이야.”

새빨간 입술이 한쪽 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시켜서 하는 짓이란 걸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진짜로 널 죽여버릴거야. 알겠어?”

“어?...어···어···”


사실 이해 못했다.

다른 사람이 알게 하지 말란 말이 무슨 소린 지.


박로라가 피는 담배는 레종.

그건 일주일 안에 찾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쓰는 향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일진 셔틀이나 하는 찐따 주제에

매일 박로라에게 향수와 담배를 선물하는 병신이 됐고.

매일 주제도 모른다는 이유로 더 괴롭힘 당해야 했다.


매일 다섯 대.

향수 하나에 아무리 작은 거라도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몇 십 만원.


어느 순간부터 향수를 사지 않고 그냥 맞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빈 손으로 가서 더 맞기도 많이 맞았다.


1년이나 계속된 괴롭힘이 끝난 건,

다행히도 박로라의 유학 때문이었고.


나는 그 후로 일진들의 괴롭힘 정도는 가뿐하게 생각하며 남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


“야···현기증”


PTSD라는게 이런건가? 8년. 자그마치 8년이 지났다.

카운터를 향해 또각또각 걸어오는 구두소리 하나에 어째서 다시 8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건지.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던 그 때로.

손바닥이 축축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현기형, 아는 사람이에요?”


어?

옆에 선 차은오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그 선하고 순둥한 차은오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아···그게.”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로라가 차은오를 아래 위로 훑으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동창이에요. 그쪽이랑은 상관없지만.”

“글쎄요. 동창이란 건 그 쪽 주장이고. 제가 본 건 한결같이 무례한 언행 뿐인데요? 저야 말로 현기 형이랑 친한 동생으로서 굉장히 불쾌하네요.”


‘현기형?’ ‘친한 동생?’

나야 말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처음 본 사인데 무슨 소리세요······

헬스장 PT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아···저···저기···”

이 상황을 중재하고자 뭐라도 말해보려고 나선 나를 막은 건 뜻밖에 날아오른 황금돼지 티나였다.


“쉿! 현기님! 잠깐 가만히계세요!!

운이 귀인님 쪽으로 흐르도록 그냥 두세요.”


아니 왜?


박로라는 가볍게 차은오를 무시하고 내게 따졌다.

“아 네. 그럼 계속 불쾌하세요.

와···살다살다. 편의점 알바 불쾌한 것도 내가 알아야 해?

야 현기증. 니가 말해봐 너도 불쾌하냐?”

“···”

나는 반사적으로 아니라고 대답할 뻔 했지만,

티나가 눈 앞에서 족발을 X자로 크로스하고

완강하게 고개를 젓고 있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야···내 말 안 들려?”

어금니를 꽉깨물고 당장이라도 날 할퀼 기세로 노려보는 로라에게 차은오가 말했다.


“모욕죄로 신고하기 전에 나가시죠. 학교에선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성인들 아닙니까?”


로라는 부들부들 떨며 차은오의 우락부락한 몸을 노려보았다. 차은오말대로 아무리 막 나가던 로라라고 할 지라도 스물 셋이나 되어서 맞짱을 뜨겠는가. 아니면 잘나가는 오빠들이라도 부르겠는가.


“하, 끼리끼리···꼴값들을 떠네.”


로라가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박차고 나가자,

차은오가 ‘귀인’이라는 글자를 번쩍번쩍 머리 위에 단 채로 내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후···.하······응···괘···괜찮아.”


조일듯이 멈춘 것 같았던 심장이 스스륵 풀어진 것 같았다.

털썩···나는 의자 위에 주저 앉았다.


“···”

고맙다고 해야하나?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나는 차은오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대형견마냥 친근한 척하며 일을 배우고

PT를 권유하던 차은오는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였다.


그는 뭔가 울컥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는데

더욱 말 걸기가 어렵다고나 할까···


‘박로라가 나랑 차은오보고 ‘끼리끼리’라고 해서 화났나?’


띵동-!


“어서오세요!”

차은오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쩌렁쩌렁 울렸다.

이번엔 어째 울분이 섞인 것 같은데···.쩝···


“아···아···네···안녕하세요···”

놀란 손님이 카운터를 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안경잡이 단골 여자다.

(아마도) 나 만큼이나 내향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맨날 똑 같은 맨투맨.

상투처럼 틀어 올린 머리까지. 누가 봐도 딱 폐인의 몰골.


늘 늦은 오후, 이른 저녁 사이 애매한 시간에 와서

저녁에 먹을 도시락이나 야식류, 맥주 등을 사간다.

아마도 맛있는 걸 미리 선점하려고 그 시간에 오는 듯.


오늘도 어김없이 스파게티 하나, 맥주 두 캔, 오다리 하나.

늘 미묘하게 저렴한 조합으로 편의점 식사라니 백수가 분명하다.


삑-

삑-

삑-


“저녁식사 이신가봐요.”


뭐? 이 미친놈이.

단골한테 그런 말 걸면 안되는 건 국룰이라고!

아저씨도 아니고 편돌이가 뭔 아는체야?! 미친거아냐?


여자도 당황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예···새···새로 오신 분이신가···”


‘으이그 망했다. 이제 저 손님은 안 올거야. 나라도 안오지.’


이 바보 같은 놈. 여긴 헬스장이 아니라고.

그리고 애초에 헬스장에도 너처럼 친절한 트레이너는 없어!


“아 네! 전 낮시간이라 오늘은 배우러 왔어요. “


차은오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물건들을 봉투에 담았다.


‘아 저거 담아줄 필요 없이 그냥 봉투만 주면 되는 건데.’

나는 또 한번 혀를 찼다. 이 녀석 아직 배울 게 많구만.


“아..안녕히 계세···”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띵동-!

오늘이 이 편의점 마지막 방문이었을 여자손님이 나간 뒤,

나는 한심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퍽이나 또 오겠다···”


“네? 뭐라구요? 형?”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그리고 봉투는···”

“네? 뭐라구요?”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냈다.

“봉.투.는 그냥 주면 돼. 일일이 안담아 줘도 된다고···”

“아···네···”

“···”

“···근데 담아 줘도 되죠?”

“..어?”

“어···안 바쁘고 그냥 담아주고 싶을 땐···”

“어···그···그치···”


또 다시 한참.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물론 차은오의 눈에는 안보이겠지만 티나가 계속 날아다니며 그를 칭찬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조용하지는 않았다.


근데 이 새끼는 헬스장 출근 안하나?

피곤하다. 혼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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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연과의 재회 24.08.12 16 0 12쪽
3 딱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24.08.11 23 1 12쪽
2 산다는 것은 24.08.10 34 1 13쪽
1 돼지꿈은 사천오백원 +2 24.08.09 4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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