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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비오사
작품등록일 :
2024.08.09 19:43
최근연재일 :
2024.08.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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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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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룡(地龍)의 아이(막간의 이야기)

DUMMY

여름이 찾아왔다.

어미에게 이어받은 지식 덕분에 정보는 있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날씨에 리아트리스는 곤황을 겪고 있었다.


“아, 정말.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더운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을 버리고 아침부터 모습을 감춘 파리스 때문일까.

딱히 그가 그녀와 오늘 약속 한 것도 아니지만 늘 있는 시간, 있던 자리에 말도 없이 사라진 그에게 리아트리스는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며 벌써 한 시간 째 성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라? 리아트리스님.”


등과 가슴팍 사이 차오른 땀이 느껴져 불쾌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라피오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아, 라피오!”


리아트리스는 묶은 머리를 등 뒤에서 통통 튀기며 라피오 앞으로 달려갔다.


“파리스가 오늘 하루 종일 보이지 않는구나.


분명 늘 이시간이면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느냐?“


“아.. 파리스라면..”


모른다고 말해.


오늘 아침 일찍부터 자신에게 신신당부 하고 간 파리스의 한마디가 라피오의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처음 겪는 여름인데도 그를 찾아 땀에 푹 절여진 리아트리스를 보면서 그 한마디를 어떻게 내뱉겠는가.


적어도 라피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내였기 때문에.


‘미안하다 파리스..’


“오늘 기사들 교육이 있어서 남쪽 감시탑 앞에 있는 훈련소로 갔어요.”


“교육 말이냐?


파, 리스가 그런 걸 한단 말이냐?“


파리스는 대부분 생활을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로 지냈다.

그녀는 그 모습을 최근 계속 지켜봤으니 파리스가 교육을 한다는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하니 라피오는 큭큭 웃어댔다.


“안 어울리긴 합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원탁의 기사들의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모셔다 드리..“


리아트리스의 날카로운 시선이 라피오에게 박혔다.

그 시선을 받은 것은 에델바이스에서 돌아온 이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는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뒷머리를 쓸었다.


“경어는 빼거라.


정말 못 고치는구나.“


“드릴게요.


하하..“


라피오가 말투를 고치자 리아트리스는 웃으며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리아트리스님은 정말 파리스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 그렇느냐?”


리아트리스는 파리스가 화장실 갈 때, 잠잘 때를 제외하면 늘 옆에 붙어 다닌다.


“늘 둘이 붙어 다니시니 말이에요.”

미래를 약속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벌써 성 안에는 쫙 퍼졌어요.“


금시초문이었던 리아트리스는 손가락을 꼼지락 대며 입술을 내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곤 얼굴을 붉혔다.


“가, 가뜩이나 더운데 낯간지러운 소리는 하지 말거라..”


“하하핫.”


리아트리스는 그가 다시 입을 열기 전 황급하게 주제를 바꾸었다.


“수,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느냐?”


“늘 하고 있죠.


하지만 정진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원탁의 기사가 되면 그 이후의 길은 자신이 개척해야 하니까요.“


9위계의 기사부터 1위계의 기사까지는 강해지기 위한 길이 주어진다.

자신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 위에 사람을 보고, 질문하고, 배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원탁의 기사는 달랐다.


자신의 위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과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보고, 질문하고, 배우는 것이 힘들다.


풍(風)을 사용하는 원탁의 기사는 라피오를 제외하고 단 한명.

그것도 그 마법과 검술의 노련함이 제일 많을 마자리스였지만 그는 라피오에게 어떠한 가르침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는 정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보통 인간이 원탁의 기사가 되었을 때 보통의 이야기이다.


“뭔가 라피오는 대단하다고 느끼니라.


매일 새벽부터 나와서 밤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만 하니 말이다.“


“그런가요.


뭐, 부족한 몸이니 따라가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이후 평소에 파리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둘은 감시탑에 도착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빼곡한 의자에 수많은 기사들이 앉아 있었고, 그 중심으로 단상 위에 파리스가 서 있었다.


“어.. 그러니까 결국 요약하자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거지.


송충이가 솔잎 말고 다른 걸 먹으면 탈나는 것처럼 되는 만큼 하다 가면 되는 거야.


머리에 너무 열 낼 필요 없어.


어차피 평범한 인간은 3위계 기사가 고작이고, 머리 살짝 빠질 정도로 노력하면 2위계 까진 가려나.“


“이게 무슨..”


독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기사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파리스는 아까부터

대충 살자.

인간의 한계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

같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적당히 해 뭐든지.


탈나기 싫으면.“


이야기를 들은 기사들은 대놓고 그의 앞에서 말은 못하겠지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수많은 불만이 가득한 가면 속에서 손 하나가 치솟았다.


“마음대로.”


파리스가 허가하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붉은 생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것이 부자 집 아가씨 같은 외모를 가진 기사였다.


“5위계 기사 마리골드 프렌치입니다.


지금까지 하신 말을 토대로 보면 일반적인.. 즉, 범인들은 원탁의 기사 그 아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원탁의 기사가 된 파리스님이 보았을 때 저희 중 대다수는 무슨 수를 써도 원탁의 기사가 될 수 없는 겁니까?“


“있지.”


그 한마디에 감시탑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되는대로 적당히 살아가라는 말을 해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말을 바꾸었으니까.


막말이나 내뱉고 있다고 치부하는 대부분의 기사들과 달리 마리골드를 포함한 몇몇 기사들은 다음에 그가 할 말을 기다렸다.


“있지만 그것에 목 메여 괴물이 되면 안 되는 거잖아.”


“파리스..”


라피오는 측은한 표정으로 그를 동정 하는듯한 표정을 하였다.

그는 파리스가 왜 이런 답을 내놓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자자, 질문 끝났으면 앉고, 질문 더 있냐?”


마리골드가 질문 한 이후로 더 이상 손은 올라오지 않았다.

다른 기사들이 이야기 할 때에 비하면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다 못해 침몰 할 정도의 분위기가 지속되고, 파리스는 할 말을 적어온 수첩을 덮었다.


“그럼 끝.”


그의 말이 끝나자 감시탑에서 기사들이 빠져나갔다.


“뭐야, 정말.


어려서 그런가? 재수 없어.”


“다신 오지 않을 거야.”


“건져갈게 하나도 없네.”


대다수의 기사들은 집중하면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파리스를 욕하며 밖으로 나갔다.


기사들이 다 빠져 나가자 구석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던 라피오와 리아트리스가 뒷정리 중인 파리스에게 다가갔다.


“첫 교육인데 고생했어.”


“아, 라피오랑 리아트리스냐.”


리아트리스는 파리스의 앞으로 뛰어가 그의 가슴팍을 약하게 주먹으로 내리치며 올려다보았다.


“이 몸에게 말도 없이 재밌는 것을 하러 오다니 무슨 짓이더냐!”


“재밌는게 아니라 교육.


애초에 나도 오기 싫었어.“


“흠흠..


아, 이 단상 꽤나 오래됐네..”


파리스는 눈을 반쯤 뜨며 따가운 시선을 라피오에게 보냈다.

쬐여오는 시선에 라피오는 눈동자를 굴리며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아..”


‘하긴, 이 녀석을 누가 막겠어.’


“변명이라도 해 보거라!


거기다 이 엉망진창인 교육은 무엇이더냐.


내 아무리 산 날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정도는 알고 있느니라!“


“뭐가?


분수에 맞게 적당히 사는 것이 몸에 좋다고 한 게 뭐가 나빠.“


리아트리스는 작년 겨울부터 올해 여름까지 반년이 지날 동안 기사들이 얼마나 다음 위계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 봐왔다.


그들이 노력해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그것을 얼마나 갈망하는지 봐왔다.


그러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노력하는 그들에게 파리스가 내뱉은 잔인한 말이 리아트리스는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리아트리스님 그건..”


라피오가 말리기도 전에 리아트리스는 언성을 높여 파리스를 몰아붙였다.


“파리스!


네가 쉽게 올라왔다고 해서 그 자리가 쉬운 것이 아니니라!


다른 기사들이 그 자리를 얼마나 동경하는지 아느냐!“


“알아.”


돌아온 대답에 리아트리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냐..?”


“다르게 말하면 무리하지 말고 틀 안에서만 살아가라는 뜻인데 뭐.”


그의 뻔뻔한 태도에 리아트리스의 눈동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이 정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파리스에게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럼.. 그대는 왜 나를 구해 줬느냐?


그때 그대도 죽을 뻔 하지 않았느냐.


무리를 하지 않았느냐.”


“아, 진짜 그 이야기가 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돌아보자 볼 아래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대는 리아트리스의 모습에 파리스는 그제 서야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 어이.


이게 울 일이야..?“


“되었느니라!”


리아트리스는 파리스에게 소리를 지르고는 감시탑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안이 벙벙한 파리스가 정신 줄을 놓고 있으니 어느새 기둥 뒤에 숨었던 라피오가 걸어 나와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아.. 뭐, 네가 오늘 최악의 교육을 했다는 것은 나도 부정하지 않아.”


“너까지 그러냐.”


파리스는 이마를 짚으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직 그날의 일들을 마음에 담고 있는 거지?”


“...”


라피오의 말에 파리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긴 파리스를 바라보던 라피오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우와악!?”


“자, 어쨌든 오늘 일은 끝.


나도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오랜만에 기사들 시켜서 고기나 먹자고!“


“야, 야. 안 나와!?


너랑 내가 몸무게 차이가 몇인데..


넘어진다,


넘어진다고!“



“훌쩍.”


감시탑에서 뛰쳐나와 리아트리스는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파리스가 언행과 행실이 좋지 않아도 리아트리스는 그가 좋았다.


그날 파리스는 분명 자신이 위험한 것을 알고 있었다.

최후의 최후에서 궁지에 몰렸지만 검을 놓칠지언정 그녀를 놓지 않았다.

두고 도망갔다면 분명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파리스가 좋느니라.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심하게 말하는 파리스가 너무 싫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는 것이 너무나도.

그 자신에게 화를 낼 정도로.


“파리스는 바보이니라.


바보라서 훌쩍..“


“어머, 왜 울고 계십니까?”


선율 같이 아름다운 목소리에 리아트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보랏빛 꽃이 가득한 정원.


정원의 앞에는 벤치에 앉아있는 아나모네가 리아트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


리아트리스는 황급히 손목으로 흐르던 눈물을 감추었다.


“여기 앉으시죠.”


아나모네는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에 리아트리스는 천천히 옆으로 향했다.


그녀의 옆에 앉으니 밀려오는 향긋하고도 달콤한 향기에 리아트리스의 흥분된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대는 얼굴 보기.. 훌쩍, 무척 힘들구나.”


“저도 파리스만큼 방에 있는 걸 좋아한답니다.


이거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리아트리스는 그녀가 건넨 보라색 꽃이 가운데 박힌 떡을 받아들었지만 손에 쥐고 있을 뿐 입에 가져가지는 않았다.


“떡 말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리아트리스가 떡을 먹지 않자 아나모네는 가죽 주머니에서 쿠키를 찾기 시작했다.


“아, 이것도 제가 만든 것인데 꽤나 맛있답니다.


한번 드셔 보시고 평가를..“


“그대는 파리스를 잘 아는가?”


리아트리스는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하십니까?”


리아트리스는 오늘 겪었던 일에 대해 아나모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파리스의 교육 내용.

그리고 자신과 싸운 파리스.

자신이 무엇에 화났는지.


“나는 왜 파리스가 그렇게 말한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느니라.


혹시 파리스는 그저 자신이 하늘이고 나머지는 다 땅이라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 인 것이냐?


그렇다면 그 날 나를 구한 것도 단지 오만에서 온 것이고 내가 생각한 것과는 틀린..“


“리아트리스님.”


“..?”


아나모네는 말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원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가가 작은 꽃 봉우리를 손으로 꺾어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


“제가 들어도 정말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입니다.

리아트리스님이 혼란스러울 수 있죠.


하지만 겉만 보고 속을 맞추려는 것 역시 오만한 행동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람에 짧은 녹 빛의 머리카락과 로브가 흔들렸다.

아나모네는 잠시 아련한 눈빛을 짓더니 이내 리아트리스의 손에 꽃 봉우리를 쥐어주었다.


“내가 오만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더냐..?”


황당한 표정을 짓는 리아트리스에게 아나모네는 웃어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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