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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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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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운동 가방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나다가 끊어졌다.

물기만 대충 닦고 나와 휴대폰을 보니 전화만 수십 통이 와있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했다.

마침 또 전화가 울렸다.

누나였다.


받자마자 수화기 안에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알았어. 금방 갈게!”


강혁은 머리도 말리지 않고 옷부터 입었다.


한걸음에 달려간 한강병원에는 이미 가족들과 경호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가족들을 다독이고, 경호팀장이며 1조장인 케빈을 찾았다.


그러자 2조장 아놀드가 대신 대답했다.


“케빈은 혼수상탭니다. 아니, 그자에게 당한 전부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도대체 그자는 누굽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상태가 많이 심각한 겁니까?”

“외상은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의사 말로는 중독되었다고 하는데 해독제도 안 듣는답니다.”


순간 강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분명 자신과 겹치는 부분이었다.

살인청부업자들이 독을 쓰는 것이 흔하다지만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청무겸!’


귀환하고 처음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강혁의 분위기가 갑자기 살벌해지자 아놀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강혁도 그것을 의식했는지 화를 가라앉히자 무거워진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병원이었고, 이들에게 이런 기분을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독이라면서 왜 해독이 안 된다고 합니까?”

“반응으로 보아 신경독처럼 보이는데 해독제로도 증세가 호전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데···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동료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자, 경호원들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혁은 일단 밥이라도 먹고 오라며 가족들과 경호원들을 내보냈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강혁은 아버지와 경호원 세 명이 나란히 누워있는 곳으로 갔다.


호흡이 점점 힘들어지는 게 느껴졌다.

해독제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면 혼합 독일 가능성이 높았다.


몇 가지의 독이 서로를 보완하며 돕고 있는 것이다.

절대 해독되지 못하도록···.


하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이 도착할 때까지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


불괴기는 자가 치유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인다.

그리고 내부에 침입한 부정한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


몇 가지 독을 배합한 혼합 독이던, 아니면 그보다 더한 극독이든 상관없었다.


강혁은 한 명 한 명 손을 잡아 서클에 축적된 불괴기를 조금씩 풀어 그들의 몸 안으로 넣었다.

자신이 힘이 줄어드는 일이었지만, 다시 채우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이들을 살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자 조금씩이지만 들리는 소리에서부터 호흡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불괴기는 독을 다 잡아먹고 신체 기능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나면 알아서 소멸될 터.

물론 강혁이라는 본체가 아니라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었다.


걱정인 것은 청무겸이 다시 습격해 올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블랙아고라 경기는 사흘 뒤였다.


* * *


다음 날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기적이라며 난리가 났지만, 불괴기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혁은 병원에서 먹고 자며, 가족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경기 당일이 되었다.

일이 있어 몇 시간 외출한다 말하고 경기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JH백화점이었다.

아무래도 주주 측에서 경기장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은 거기서 치러지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백수범과 만나 함께 들어갔다.

역시나 안내자가 있었고, 엘리베이터까지 동행했다.


대기실도 그때 쓰던 그곳이었다.


“정말 자신 있어?”


백수범은 걱정이 되는지 조금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물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강혁의 시선과 마주치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장난기가 사라진, 어둡게 가라앉은 눈이었다.

마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코치님, 이번에는 그냥 대기실에 있으실래요?”

“왜?”


잠시 숨을 고르던 강혁은 나지막이 대답했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놈입니다. 죽일지도 모릅니다.”

“뭐?”


이정석 의원이 습격당했다는 말은 전해 들었다.

현직 국회의원이 아니라 뉴스에서 메인으로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나오기는 했다.


그 때문에 경기가 코앞인데도 백수범은 경기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강혁이 걱정하지 말라며 백수범을 안심시키며 경기 당일 보자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오늘 경기 상대가 이정석 의원을 죽이려고 했다는 건 지금 처음 들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이런 개 쌍놈의 새끼! 개호로 새끼! 내장을 꺼내 모가지를 돌돌 말아 나무에 매달아 버릴라! 감히 부모를 건드려! 신경 쓰지 말고 오체분시를 해서 죽여 버려!”


강혁보다 더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백수범의 욕설을 듣고 나니 속이 시원해지고 있었다.


순간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성을 잃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치님 고맙습니다.”

“응? 뭐, 뭘 이 정도로··· 경기나 이겨.”


잠시 뒤 스피커에서 입장하라는 말이 나왔다.

대기실에서 나오자 짧은 복도 끝에는 환한 불빛이 비추고 있었다.


예전의 그 케이지가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복도가 끝나고 나간 곳은 이전과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유리 벽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경기장이 케이지가 아니었다.


아니, 경기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었다.

케이지가 사라진 공간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바닥은 흙바닥에 얇게 모래가 뿌려져 있어, 신발은 물론 맨발로 밟아도 상관이 없었다.


강혁은 신발을 벗고, 티셔츠와 바지도 벗었다.

엄청나게 잘 발달한 근육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에타이 팬츠 하나만 입은 상태로 제자리에서 바닥을 탕탕 튕겨가며 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반대편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청무겸이 조용히 나타났다.


* * *


“명성건설 조장원 사장이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유리 벽 안, 이강철 회장은 김선우 실장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강철 회장은 블랙아고라 경기에 자주 나오지는 않았다.

이강혁의 데뷔전에서도 떡밥 매치라는 소문을 듣고 참석했다.


마음이 쓰여서 돈을 잃어도 손자를 선택했고, 생각지도 못한 큰돈을 얻었다.

이후로 블랙아고라 경기가 있어도 참석하지 않다가 이번에 이강혁의 경기 때문에 다시 참석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명성건설 조장원 사장이 방문한다고 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놈이 우리를 떠보려는 것인가?”

“조 사장이 모르는 척을 한다면 그럴 겁니다.”


김 실장의 보고로 너튜버 마빡이 올린 영상을 보며 명성과 손자의 충돌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아들의 습격 소식까지 들었다.

물론 지금은 잘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까지도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나올지 떠보려는 거라면, 아예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나을까?”

“조 사장이 방문하겠다는 것을 보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 무슨 이유로 여길 온다는 거지?”

“알 수는 없지만,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때 유리 너머로 강혁이 등장하자 방 안에 있던 베팅 타이머가 시작되었다.

김 실장은 제자리에서 탕탕거리며 뛰고 있는 강혁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번에도 언더독입니다. 승부 예상에서 처참하게 밀리고 있습니다.”

“상대가 청무겸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놈에게 죽은 재벌가 사람들이 꽤 많을 거야. 그래도 나는 내 손주를 선택해야지.”

“아론 가르시아 때보다 더 가망이 없는 경기라고 하는데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다. 그때 손주에게 받은 용돈을 아직 쓰지도 못했어.”


이번 베팅 금액은 데뷔전의 두 배인 이백억 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베팅을 마치는 순간, 벨이 울렸다.


문이 열리자 조장원 사장이 들어오며 고개를 숙였다.


“회장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오랜만이군. 조 사장을 보니 안부를 물을 것도 없겠어.”

“하하! 아닙니다. 요즘 골치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엄살이 심하군. 그런데 갑자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온 건가?”

“일이 꼭 있어야 오겠습니까?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방은 넓었다.

이 회장과 조 사장은 긴 소파에 떨어져 앉았고, 그 뒤로 각각 김선우 실장과 차태민 실장이 호위하듯 서있었다.


처음 보는 차태민이 예사롭지 않자, 이 회장이 슬쩍 물었다.


“전에 있던 비서실장이 아니군.”

“아! 바뀐 지 몇 년 되었습니다. 차 실장, 인사드리게.”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한 차태민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차태민입니다.”


더 이상 말이 없자, 김선우 실장과도 눈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회장님은 누구에게 베팅을 하셨습니까?”

“조 사장은 누구에게 했나?”

“저야 당연히 정배로 갔습니다. 과거에 작은 인연도 있고 해서···.”

“후후··· 나는 역배를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그럼 저와 내기 한번 하시겠습니까?”


순간 뒤에서 듣고 있던 김선우의 눈이 번쩍였다.


‘이거로군. 이것 때문에 여기 온 거였어.’


조장원을 가만히 쳐다보던 이 회장은 순간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조 사장이 이 늙은이와 내기를 하고 싶었던 게로군. 무슨 내기인지 한번 들어 볼까?”


짐작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기를 바로 받는 모양새였다.


‘늙은이가 벌써 노망이 들었나? 어쨌든 이렇게 나오면 나야 고맙지.’


조장원이 뒤로 눈짓을 하자, 차태민은 태블릿을 열어 김 실장에게 가져갔다.


“나중에 사옥으로 쓰려고 판교에 지은 건물입니다. 원래 있던 땅에 공사비만 사천억 조금 넘게 들어갔습니다. 준공만 남겨두고 있는데, 제가 지면 이거 그대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정확한 땅값을 모르니 계산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까지 해왔다면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조 회장이 허락한 일인가?”

“이 정도는 제가 가진 재량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천억이 넘는 일이네. 정말 괜찮겠는가?”

“대한그룹은 사천억 정도로 휘청거리는가 봅니다?”


회삿돈으로 노는 놈에게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강철 회장은 개인재산으로만 베팅을 하기 때문에 천억대는 많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크흠··· 좋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조장원은 이 회장이 넘어왔다고 생각했는지 비릿하게 웃었다.


“회장님이 가지고 계신 빌딩 중에 테헤란로 도로변에 있는 21층짜리 빌딩을 원합니다. 알아보니 시가로 약 삼천억 중후반 정도 되더군요.”

“예전에 팔라고 했던 그 건물을 말하는 것이로군.”


건물의 위치도 그렇고, 각 층마다 입점해 있는 업체들도 대부분이 유명한 곳들이었다.

특히 1층과 2층을 터서 층고를 높인 지상층에는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가 입점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나무랄 곳이 없는 알짜 중에 알짜 건물이었다.


“제가 금액적으로 손해 보는 거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건물이라 감수하고 하는 겁니다.”


어설픈 거짓말임을 알지만 이 회장은 그냥 웃어넘겼다.


조장원이 판교의 건물을 쉽게 내놓은 것은 청무겸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승부 예상도 너무 압도적이었고, 청무겸이 지금껏 블랙아고라에서 보여준 것이 너무 막강했다.


그리고 과거에 대림을 통해 많은 청부를 했고, 백이면 백 모두 성공했다.

이번에 이정석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한 실수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청무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도둑 촬영으로 찍은 영상에서 강혁이 아무리 잘 싸운다 한들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조장원은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청무겸을 선택한 것이었다.


“좋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블랙뱅크에 맡겼으면 합니다.”

“그러지.”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블랙아고라 베팅 이외에 개인적인 내기에서도 주주들은 블랙뱅크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수수료 하나 떨어지지 않지만 블랙뱅크 또한 책임지고 일을 마무리했다.


블랙뱅크 직원이 다녀가자 조장원은 비릿하게 웃으며 유리 너머에 있는 청무겸과 이강혁을 보았다.


곧 이강혁도 죽고, 원하는 건물까지 얻는다고 생각하니 영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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