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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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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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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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의사의 권유와 달리 강혁은 퇴원하기로 했다.

의식을 차리고 석 달에서 조금 더 지난 시점이었다.


서클을 만드는 시간만 석 달이 걸렸는데, 서클을 완성하고 불괴공이 생성되자 몸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기까지 보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의사들은 퇴원을 막고 학회에 보고해야 한다며 난리를 쳤지만, 강혁은 싹 다 무시하기로 했다.


퇴원하고 집으로 가서 앞으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몸을 추스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나, 학업이나 취직 같은 것은 아직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었다.


현실의 병상에 누워 있었던 시간은 고작 이 년이었지만, 차원을 떠돌며 보낸 시간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육체적으로 가장 강인한 이십 대의 모습으로 평생을 떠돌며 힘을 기르고 세력을 만들어 싸웠다.

투쟁의 연속이었고, 항상 긴장된 상태로 삶을 채워 나갔다.


거기서 죽으면 그냥 그대로 끝이었다.

진짜 죽는 것이었다.

생존에 대한 엄청난 스트레스가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그렇게 신이 부여한 임무를 끝내고 평화로운 현실로 귀환하자 강혁은 맥이 탁 풀렸다.

몸을 회복시키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것은 몸을 거의 다 추스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몸은 완전하게 회복시킨다. 그리고 마법을 쓸 수 없으니 조금씩이라도 육체 단련을 해야 한다.’


현대에 있는 대기의 마나로는 마나 축적이 힘들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개미 눈물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양은 그 정도로 적었다.


이것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불괴공 때문에 자신만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심장에 비정상적으로 작은 크기의 서클을 만들어 불괴공을 적용시킨 것은 강혁도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대기의 마나가 적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마법을 쓸 수 없고, 내공도 기약이 없다.’


강혁이 가진 힘의 대부분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힘에 대한 지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일단 몸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아무리 평화로운 시대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라도 힘을 먼저 되찾아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정을 내리자 퇴원을 앞두고 그동안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생각났다.


의식을 차린 다음 날 소식을 접한 수많은 기자들이 방문하려 했지만 강혁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특실이 있는 층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몰래 들어오려다 보안에 걸려 끌려 나간 기자들도 꽤 되었다.


덕분에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정계 인사들과 지인들을 만나서 대화도 하고 덕담도 들을 수 있었다.


소식을 들은 엘리올슨이 시간을 내 한국으로 오려던 것을 건강해지고 있으니 바쁜데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전화 통화로 말리기도 했다.


이것과 더불어 엘리올슨의 팬들이 보내온 선물들이 병실에 쌓여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사고 당시 엘리올슨을 인터뷰 한 아나운서 정은혜도 찾아와 고마움을 전했다.

정은혜는 두세 달에 한두 번씩은 꾸준히 찾아왔다고 한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그녀는 티비에서 보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뜬 강혁을 보며 정말 다행이라며 지금껏 참아온 눈물을 흘렸다.

가족 이외에 처음이었고 절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처음 정은혜가 강혁을 보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을 때, 그녀는 강혁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야만 했다.


특실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혁의 누나가 이강희인 것을 알고 연락을 취했다.


이강희와는 예전에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얼굴도 알고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러자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이강희와 같이 가면 특실도 무사통과였다.


이 일로 연락을 자주 해서인지, 둘은 부쩍 친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밤늦은 시간에 누군가가 병실로 들어왔다.

강혁은 이들이 병실 앞을 서성일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냥 자는 척을 했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이들은 강혁의 짐작과는 조금 달랐다.

이들은 정장을 잘 차려입은 사십 대 초반의 사내와 칠십 대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자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노인은 강혁의 손을 살짝 잡으며 “고생했다.”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는 일어섰다.

노인이 나가자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내는 강혁의 베개맡에 명함 하나를 슬쩍 밀어 넣었다.


그들이 가고 강혁은 눈을 떴다.

이들의 행동도 그렇지만, 의도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대한그룹 비서실장 김선우]


그런데 상상도 못 한 대한그룹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전의 했던 생각들이 전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남은 건···.


‘후원이라도 해주려는 건가?’


명함을 남긴 것을 보면 연락을 하라는 뜻 같은데, 강혁은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돈 달라는 뜻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꺼림칙하기도 했고, 귀찮았다.


‘용건이 있으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겠지.’


이제 겨우 돌아와 몸을 추스르고 있는데 새로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은 그냥 집에서 운동이나 하면서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 외에도 지인들을 비롯해 찾아오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를 만날 수는 없었다.

재활치료가 먼저였고, 퇴원해서 보면 될 일이었다.


* * *


강남 길거리 한복판에서 격투 오디션 ‘스파르타쿠스’가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다.


격투마스터(현역 프로선수)와의 스파링에서 살아남으면 생존한 참가자들끼리 토너먼트가 열린다.

총상금이 무려 5억에 신청자만 네 자리 수가 넘었다.


이미 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참가자들 대부분이 격투기를 수련하는 일반인이거나 아마추어 선수, 전직 조폭, 일진들이었다.


상금이 크다 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시청률도 올라갔다.


오늘도 시작은 좋았다.

마련한 자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뒤에서 까치발까지 해가며 구경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태 PD의 입술은 바싹 타들어 가고 있었다.


‘길거리 섭외가 전혀 안 되잖아!’


이러면 밖에서 오디션을 할 이유가 없었다.

길거리 오디션은 투쟁으로만 가득한 프로그램에서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었다.


뻔한 레퍼토리였지만 격투기 선수와 일반인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장치였다.

또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숨은 강자나 흥미로운 캐릭터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혹시라도 그 의외성이 나타난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더 커질 것이었고, 그것은 그대로 시청률에 반영이 된다.


그리되면 자신이 만든 격투 오디션 프로그램 ‘스파르타쿠스’의 성공에 커다란 동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외성은 고사하고 길거리 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박정태 PD는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꾸준하게 격투기 흥행이 일어나는 시기였고, 그에 걸맞게 남자들은 자신의 힘을 뽐내거나 시험해 보고 싶은 심리도 커졌다.


더군다나 말도 되지 않는 이벤트 상금까지 있는데도 신청자가 없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오디션 1부가 끝나고 이벤트 스파링이 있을 예정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박정태 PD의 속이 바싹 타들어 가는 그때였다.


“박 선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학교 후배이자 같은 방송국에서 일하는 이강희가 히죽거리며 서 있었다.

순간 표정이 찌그러진 박정태 PD는 머리가 더 아파 왔다.


“아이고, 머리야! 갑자기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그 태도 무엇? 나는 기껏 생각해서 왔더니!”

“왜 왔어?”

“섭섭하게 왜 이래요? 응원도 할 겸 해서···.”

“응원은 무슨··· 지나가다가 들렸겠지.”


그 말에 이강희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선배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야.”

“내가 너, 학교 후배만 아니었으면 손절 치고도 남았어.”

“아! 미안해요. 나도 방송 사고로 그렇게 크게 징계를 받을지 몰랐죠. 아니 회사도 좀 그래. 나만 자르면 되지 왜 선배까지 자르냐고!”


식물인간이었던 동생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강희는 라이브 방송 중에 난입해서 방송 사고를 아주 거하게 쳤다.


패널로 있던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지만, 방송 관계자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좋은 일이었기에 시청자들은 좋게 넘어갔지만, 방송국은 아니었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이었기에 재발 방지를 위해 본보기 삼아 강력하게 처벌했다.


프로그램 하차와 6개월 정직.


그때 박정태 PD는 징계가 너무 과하다며 매일 같이 실드를 치다가 자신도 같이 프로그램 하차 통보를 받고 짧은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아··· 내가 미쳤었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왜? 후회되셔?”

“크크크, 내가 너 실드를 좀 격하게 치긴 했지. 그러다 미운털 박혔는데 누구를 원망하겠어.”

“그러게 좀 하다가 안 되면 말라고 했잖아요.”

“젠장, 내가 메인 PD인데 진짜 자를지 몰랐지.”

“선배, 고맙긴 한데 그 막 나가는 성격은 이제 좀 고치도록 하죠.”

“관심 끄쇼. 이렇게 살다 갈란다.”


작게 웃으며 답한 이강희는 아직도 다리를 떨고 있는 박정태를 보며 다시 물었다.


“근데 무슨 곤란한 일이 있어요?”


그러자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박정태가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 못 본 사이에 관심법이라도 배운 거야?”

“그 다리 떠는 버릇 좀 어떻게 해요. 선배만 모르지 방송국 사람들은 다 알아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 그게 말이야···.”


그제야 박정태의 다리가 멈췄다.

그러고는 길거리 섭외가 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하자 듣고 있던 이강희가 어이없다며 입을 열었다.


“아니, 선배. 사람들이 왜 스스로 들어와서 굴욕을 당해 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거야 상금도 크고 TV에도 나오니까. 그리고 격투기나 싸움에는 ‘붙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말도 있잖아. 남자라면 힘자랑을 하고 싶은 심리도 있고,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경험이 있으면 자신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알고 싶어서라도 도전을 하지 않겠어?”

“사람들이 바보예요?”

“엉? 그게 무슨 말이야?”


박정태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한심하다는 듯 이강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은 틀렸어요. 모르긴 뭘 몰라요! 일반인이 선수를 어떻게 이겨요!”

“그, 그건 그렇지.”

“그리고 상금도 그래요. 라운드를 버티고 다운을 시켜야 준다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려우니까 상금이 있는 거지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면 상금을 왜 줘?”

“그러니까 신청자가 없는 거예요.”

“아!”


박정태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아무것도 얻어가는 것 없이 선수에게 매만 맞을 텐데 그걸 왜 해요? 나 같아도 안 하죠.”

“그, 그럼 어떻게 하지? 이제 1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바쁘니까 돈으로라도 해결해야죠. 참가비라도 걸어봐요.”

“참가비?”

“네. 참가만 해도 무조건 돈을 준다고 하면 용돈벌이 삼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장담은 못해요.”

“그럼 참가비로 얼마 정도면 될··· 어?”


참가비로 얼마가 좋을지 묻던 박정태는 이강희의 등 뒤로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이채를 띠었다.


사내는 마치 외국의 피트니스 모델 같았다.

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옷 위로 드러난 몸은 아예 인종이 다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격투기 광팬인 박정태 PD는 아주 오래전부터 격투 오디션 스파르타쿠스를 기획해 왔다.

다른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말이다.


격투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얼마나 많은 격투기 대회와 선수를 보고 만났는지 모른다.


화면 안에서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대회를 직관하기도 했고, 직접 체육관에 가서 운동도 하고 선수들을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기획도 기획이지만 격투기 팬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선수마다 어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박정태는 그것이 강자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

즉, 기세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는 달랐다.

분위기의 질이, 아니 격(格)이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가리키는 많은 단어가 있지만, 사내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에는 이 단어가 가장 어울렸다.


아우라(Aura)


극상의 예술 작품에서나 느껴진다는 고고한 분위기가 사람에게서 느껴졌다.


190cm 정도 되는 키에 마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두껍지도 않은 탄력적인 근육이 티셔츠 위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생김새도 괜찮았다.

물론 모델이나 배우처럼 눈에 확 띌 정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멀끔한 생김새에 시원시원한 인상이었다.


편안한 인상에서 그나마 자꾸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강혁의 눈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두 눈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마치 심연처럼 어둡고 깊게 느껴졌다.


박정태는 확신이 들었다.


‘뜬다! 이 사람이라면 무조건 뜬다!’


조금은 귀찮아하는 듯한 사내의 표정마저 카메라에 담고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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