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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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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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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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DUMMY

거의 끝까지 밀린 석두철이 타격으로는 안 되겠는지 거의 본능적으로 태클이 들어갔다.

수많은 연습으로 몸이 기억하고 있는 무의식적인 태클이었다.


이번만큼은 강혁도 막지 못했다.

단숨에 허를 찌르고 들어온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스파링을 하면서 처음으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간 태클에 강혁은 허리와 두 다리를 그대로 내주어야 했다.

그런데···.


!!!


어깨로 복부를 압박하며 양손으로 다리를 잡아들어 넘어트리려던 석두철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마존 열대우림의 집채만 한 거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놀란 마음에 석두철은 강혁에게서 부리나케 떨어졌다.

이건 아예 넘어트리려고 힘을 쓸 마음조차 들지 않았던 것이다.


“너, 너 뭐냐? 뭐 하는 놈이야!”

“홈트한다고!”

“뭐?”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홈트레이닝이 갑자기 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통증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릿했던 통증이 지금은 송곳이 되어 주먹과 손등을 푹푹 찌르고 있었다.

아마 부러진 것 같았다.


주먹 부상은 석두철도 한두 번 당해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때는 주먹이 부러진 줄도 몰랐다.

경기 중에는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아픈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주먹이 얼마나 엉망이 되었는지 통증이 심각하게 올라왔다.

아드레날린 때문에 고통 없이 때리다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사람의 육체가 얼마나 단단했으면 때린 사람 주먹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는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주먹을 썼다가는 복귀를 언제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자신은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석두철은 쓰지 않으려던 주먹을 다시 올렸다.

그리고 빠르게 앞으로 이동하며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르는 펀치는 맞으면 실신이라는 러시안 훅이었다.


그런데 이건 미끼였다.

상체가 이미 허리 아래로 숙여지며 강혁의 두 다리를 동시에 노리고 있었다.

다시 태클이었다.


만약 이번에도 넘길 수 없다면 그냥 잡은 상태로 강혁에게 매달려 있기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 또 떨어졌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혁은 같은 것에 두 번 당하지 않았다.


뻐억!


잔인한 소리와 함께 석두철은 태클하려고 들어오는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움직임이 없자 급히 뛰어온 심판이 엎어진 석두철의 몸을 돌렸다.


실신해 눈이 돌아간 석두철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코는 부러져 돌아가 있었고, 입술은 다 터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관중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곧 리플레이가 나왔는데 그것을 본 관중들은 참혹함에 비명과 함께 입을 막아야만 했다.


강혁은 석두철의 러시안훅을 간단하게 허리만 뒤로 젖히는 스웨이백으로 피하며 몸의 반동을 그대로 살려 무릎을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석두철의 얼굴이 무릎에 직격했다. 무릎에다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처박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 UFL보다 더 정점에 있었던 격투단체 후라이드FC에서 치러진 미르코필리포비치와 후지타카즈유키의 경기가 재연된 것만 같았다.


“두, 두철아! 두철아!”


밖에서 지켜보던 석두철의 코치이자 2살 터울의 친형인 석수철이 케이지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심판은 이미 손을 들어 스파링을 중지시킨 상태였다.


석두철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팔은 차렷 자세로 몸에 붙어 있었고, 두 다리는 뻣뻣하게 붙어서 엄지발가락까지 앞으로 쭉 뻗은 상태로 작은 경련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충격으로 실신하면서 일어나는 신체 반응이고 격투기 경기를 보다 보면 조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스파링에서 자신도 모르게 너무 과하게 손을 쓴 것은 아닌지 조금 마음이 쓰였다.

처음 써보는 현대의 격투 기술들 때문인지 잠시 흥이 났던 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둔다고 해도 석두철이 죽지는 않을 테지만 후유증이 남을 수 있었다.


“두철아! 정신 차려 봐! 정신 차려! 두철아!”


석수철은 동생을 깨워보려고 해도,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실신한 동생의 입에서 거품까지 올라오자 석수철은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잠시 비켜보세요.”


동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와서 비키라고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스파링 중 일어난 불상사일 뿐이었지만, 이미 이성이 반쯤 날아간 석수철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가 뭐 하는 거야! 저리 안 꺼져!”


정면에서 욕이 날아왔지만, 강혁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시로 일관하며 석두철의 단중과 머리에 손을 올렸다.

불괴기로 순식간에 막힌 기혈을 풀고 뚫어버리자 효과가 금세 나타났다.


“컥! 커헙! 우웨엑!”

“두철아! 정신이 들어? 두철아!”


정신이 들자마자 석두철은 실신하며 삼킨 피를 모두 토해냈다.

그러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급한 불은 끈 것이다.

위험한 상태는 넘겼으니 이제 치료만 잘 받으면 곧 회복될 터.


어수선한 분위기에 강혁은 인터뷰도 하지 않고 케이지에서 내려와 곧바로 박정태 PD에게 갔다.


스파링 결과에 거의 공황 상태나 다름없던 박정태는 강혁이 다가오자 얼떨결에 돈부터 보내 주었다.

이강희가 힘내라는 말을 남기고 강혁을 급히 따라가는데도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UFL의 석두철이 이렇게 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컸다.

이는 박정태만의 일이 아니었다.


스파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승부가 나고 강혁이 케이지를 떠났는데도 고요한 분위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던졌다.


“대, 대박··· 이거 너튜브 올리면 조회수 백만은 기본이다!”


녹화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사이, 하나둘 정신이 돌아온 관중들도 멈췄던 숨을 크게 내쉬며 스파링을 찍고 있던 자신의 스마트폰을 급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나와 있던 기자들도 난리가 났다.

찍힌 영상을 확인하며 그 자리에서 기사를 써 내려갔다.

누가 더 빨리 뉴스를 올리나 속도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참 기사를 써 내려가던 김대환 기자의 전화가 울렸다.


“아! 바쁜데 누구··· 보도국장?”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보도국장의 전화였다.


김대환은 대한민국 메이저 방송사 중 하나인 NBC의 기자였고, 이런 작은 행사에 자신을 보낸 보도국장은 격투기 광팬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쓰던 기사를 멈추고 전화부터 받았다.


“국장님?”

“대환아! 영상은? 찍었어?”


다짜고짜 영상부터 물어보는 것을 보면 보도국장도 스파르타쿠스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남동 철벽남요?”

“걔 말고 누구겠어!”

“네. 영상은 찍었죠. 지금 기사 쓰고 있어요.”

“일단 제목만 써서 올려!”

“네? 내용 없이 제목만 써서 올리란 말이에요?”

“그래. 이런 건 먼저 올리는 게 장땡이야! 일단 빨리 올려! 급해!”

“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김대환은 이게 맞나 싶었지만 보도국장 지시라 어쩔 수 없었다.


[UFL 석두철과 KOV 오대수 쓰러지다! 현역 프로 선수들을 KO시킨 격투 천재 일반인의 등장!]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제목과 함께 두 개의 스파링 영상이 뉴스로 올라갔다.

동시에 편집자에게 보낸 영상도 회사 너튜브 채널에 업로드가 되었다.


역시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국장은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라이브 방송의 영향이었던지 한남동 철벽남의 스파링 영상을 다시 보고 싶어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는 장면 하나 없이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하던 석두철이 갑자기 태클을 하다가 쓰러지는 이상한 스파링을 사람들은 신기한 마음으로 다시 찾았다.


짧은 시간 안에 조회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댓글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대, 대박이다!’


속으로 환호를 터트리고 있는 김대환의 뒤로 기사를 쓰고 있던 기자들의 스마트폰이 단체로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화를 받은 기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김대환에게 고함을 질렀다.


“야이 기레기 새끼야!”

“김 기자, 니가 그러고도 기자냐! 이러니까 우리가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야!”

“비겁한 새끼! 반칙을 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것인지 욕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대환은 실실 쪼개며 웃어넘겼다.


“꼬우면 빨리 올리시든가!”


* * *


혼란스럽던 정신을 수습한 박정태 PD는 석두철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임시로 만든 의무실에 앉아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이전에 케이지 안에서 보았던 것보다 상태가 훨씬 좋았다.


“석두철 선수, 괜찮습니까?”

“아··· 박 PD님··· 부끄럽네요.”

“뭐가 부끄럽습니까? 스파링일 뿐입니다.”

“그래도 제 처지가 우스운 건 바뀌지 않겠죠. 파이터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일반인을 상대로 막무가내 스파링을 한 건데 도리어 줘 터져서 실신까지 했으니··· 하하···.”

“상대가 일반인이긴 하지만, 겪으셨다시피 격투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네?”

“맡겨 둔 돈은 줬습니다. 이기면 가져가라고 하셔서···.”

“아··· 하하하··· 하하···.”


몸과 자존심 그리고 돈마저도 모두 잃었다.

그렇게 석두철은 우울증 약이라도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스트라이프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중년의 사내가 다가와 박정태 PD 앞에 섰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정규방송에 내보내면 안 됩니다.”


석두철의 소속사 대표이자 프로모터인 왕도기 대표였다.

이미 서로가 알고 있는 사이였다.


왕도기는 석두철이 실신 K.O 당하는 스파링을 절대 지상파 방송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일반인에게 맞아 실신하는 영상이 지상파로 나가면 석두철의 상품성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었다.

아니, 확실했다.


“이미 너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다 나갔습니다만? 모르십니까?”

“압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자는 거지요. 며칠은 화제가 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곧 잊혀 질 겁니다. 그러니 본방송으로 내보내 이 일을 또 꺼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안 된다고 하면 왕도기의 분위기로 봐서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느낌이었다.

박정태는 당사자인 석두철을 돌아보았다.


괜찮다고는 했지만 얼굴은 엉망이었다.

거기다 나라 잃은 표정까지 하고 있어 애처롭기까지 했다.

바쁜데도 프로그램을 위해 참여해 준 고마움도 있었기에 박정태는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본방송에서는 편집해서 내보내지 않겠습니다. 다만 너튜브는 안 됩니다.”

“너튜브는 건들 생각 없습니다. 여기 한 곳만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찾아볼 사람들만 보는 곳이 너튜브니까요. 그럼 그렇게 정리하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박정태는 석두철에게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남기고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왕도기 대표도 바로 뒤따라 나와 박정태를 잡았다.


“박 PD님?”

“또 무슨 일이시죠? 합의는 다 된 거 아니었나요?”

“그것 때문에 잡은 게 아닙니다.”

“다른 일이 있습니까?”


의무실 안에서의 일 때문인지 박정태 PD는 그리 좋은 말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도기 대표는 처음과는 다르게 웃으며 말했다.


“그··· 두철이와 싸운 상대 말입니다.”

“그게 왜요?”

“연락처 좀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자기 선수를 케어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선수를 저렇게 만든 상대를 찾고 있었다.

아무리 냉정하게 돌아가는 업계라고 해도 다친 사람을 바로 뒤에 두고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박정태 PD는 순간 쌍욕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대답은 순한 양이 되어 나왔다.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말이다.


“길거리 참가자라 모릅니다.”


지금도 격투 서바이벌 오디션 스파르타쿠스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격투기 업계에서 나름 힘 좀 쓰는 왕도기 대표에게 쌍욕을 했다가는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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