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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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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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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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눈을 뜨자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익숙한 모습 그대로였다.


‘돌아왔다.’


자신이 떠나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몸 상태를 보니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움직이는 것은 눈꺼풀과 손가락 정도구나.’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팔다리는 고사하고 손가락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하체가 아예 감각이 없었다.


‘사고가 날 때 머리만 다친 게 아니었나?’


전역하고 집에서 놀고만 있던 강혁에게 방송국 작가로 들어간 누나가 방송국 진행 보조 아르바이트를 권했고, 재수 없게도 아르바이트 첫날 사고가 터졌다.


방송 준비를 하던 강혁은 어째서인지 출연자들 머리 위에 있는 조명이 조금 신경 쓰였다.

쓰지 않고 꺼져있는 조명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지켜보고 있지 않다면 모를 정도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나며 ‘덜컹’거린 조명이 방송 도중 갑자기 떨어졌다.


조명이 출연자들을 덮치려던 찰나 스튜디오 밖에서 한발 빠르게 뛰어든 강혁이 대신 몸으로 막아냈다.


덕분에 아나운서와 인터뷰 중이었던 외국인은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났지만 강혁은 아니었다.

무거운 조명이 강혁의 머리와 등에 비껴 맞았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명이 직격했다면 즉사였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제법 멋들어진 장면이었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강혁은 바로 정신을 잃었고, 엎어진 자리에는 피가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라이브 방송 중 일어난 일이었기에 강혁이 이들을 구하는 장면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국에 송출되었다.

이 일로 인해 소란스러운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강혁이 구한 사람 중 세계적인 스타인 엘리올슨도 있었다. 그녀는 한류열풍에 따라 휴가차 한국을 방문했고, 방송국 인터뷰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먹방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참극이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참극의 당사자가 자신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았다.

정신적인 충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뉴스가 나오자마자 소식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각종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이번 일을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신의 축복! 사고를 피한 엘리올슨.]

[사고인가? 범죄인가? 사건의 진실은?]

[월드 스타 엘리올슨, 그녀를 구한 영웅은 누구?]

[엘리올슨을 구했지만 식물인간 판정.]

[고결한 영웅의 안타까운 상황.]


그녀를 구한 이강혁의 이름도 잠시 잠깐 세계에 알려졌으나 곧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함께 잊혀져 갔다.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강혁은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강혁은 그때 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녀들을 구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아르바이트나 하는 백수나 마찬가지였다.


음악이나 영화에는 관심이 전혀 없어 엘리올슨이 누군지도 잘 몰랐고, 자신을 희생하여 누구를 구하려는 성격도 아니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누가 뒤에서 떠미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았다.

그 점이 의심스러웠던 강혁의 눈이 조금은 가늘어졌다.


‘설마 앙겔로스(ἄγγελος) 이 X같은 놈이 벌였던 짓인가?’


이세계의 안내자였던 녀석은 음흉하기 짝이 없게도 항상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강혁을 찾아왔다. 처음에는 마교 지존 천마를 죽이면 돌려보내 준다던 앙겔로스는 몇 번이나 다른 세상을 구하게끔 시켰다.


그렇게 강혁은 차원을 몇 차례 옮겨 다니며 마교 지존 천마를 무릎 꿇렸고, 고대 광룡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마지막으로 현세에 강림한 마왕, 그로데스를 소멸시키자 앙겔로스는 강혁을 원래의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강혁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리라.


강혁은 잠깐 지난 일을 파악하려 했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스스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신의 심부름꾼인 앙겔로스를 찾을 수도 없었다.

돌아온 이상 과거는 잊고 현실을 살아야 했다.


‘몸부터 회복해야겠다.’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의 몸을 관조하던 강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체에 감각이 없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가슴 아래로는 기혈이 꽉 막혀 있었고 끊어진 부분도 많았다.

머리로 통하는 길도 많이 좁아져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열려는 있었다.


이러니 몸의 외형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미라처럼 메말라 있었고 가슴 아래로는 그 정도가 더 심각했다.


움직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시체처럼 누워 숨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시 눈을 감고 이번에는 마나를 느끼려 했다.

하지만 또다시 실망감만 가득 들었다.


‘대기의 마나(氣)가 너무 적다. 이런 상황이라면 단전을 만들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 기약이 없어··· 아!’


무언가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전은 아랫배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가슴 아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단 마나가 있어야 단전을 만들 수 있는데, 길이 막히고 끊어져 마나가 있어도 들어갈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고민에 빠진 강혁은 결정을 내렸다.


‘서클을 만들자.’


단전은 기를 축적하는 그릇이라면, 서클은 마나로 성장시키는 고리라 할 수 있었다.


고리를 한계까지 성장시키면 또 다른 고리를 만든다. 이렇게 고리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나간다.

강혁은 고리를 열 개까지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마법사는 심장에 서클을 만들어 마나를 운용한다.

이것은 무인이 아랫배에 단전을 만들어 기운을 운용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마법은 무공과 달리 발현시키는 힘이다.

언령(言靈)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었다.


보통의 인간들에게 언령이라는 권능은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수식과 영창으로 대신했는데, 당연히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의 용언 마법보다 훨씬 느리고 약했다.


물론 강혁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신에게 받은 언령의 권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발현시킬 수 있는 마나만 있으면 되었다.


‘몸을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서라도 서클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 차원을 돌아다니며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을 경험한 강혁에게는 방법이 없지 않았다.


또, 이미 알고 있는 길이었기에 서클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기에 남아 있는 적은 마나가 문제였다.

이 정도로는 정상적인 서클은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몸을 회복시킬 궁리를 하던 중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문소리가 들리자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며 눈을 떴다.


청량한 하늘을 담은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눈이었다.


무심코 병실로 들어오던 간호사는 강혁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을 치다 정신을 차리고서는 뒤를 돌아 뛰어나갔다.


“여, 여기 특실! 환자분 깨어났어요!”


아직은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 시간이었다.

놀라 당황한 간호사는 그것도 잊은 채 소리를 지르며 의사를 찾았다.


* * *


스튜디오 밖에서 라이브 방송을 모니터링하며 댓글창을 확인하던 이강희 작가는 품 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이 느껴졌다.


방송 중이라 받지 않으려는데 옆에 있던 PD가 신경 쓰였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광고 시간이니까 받아봐. 아까부터 울리던데.”

“죄송요. 금방 올게요.”


이강희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간 사이 광고가 끝나고 방송은 다시 시작되었다.


방송은 아침 시사 프로그램 ‘오늘의 뉴스 쇼’였고, 정치평론가나 전·현직 국회의원 등이 나와서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평론하고 토론하는 방송이었다.


아침 방송치고 시청률이 꽤 높은 프로그램으로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고정 출연자 중 하나인 前 국회의원 이정석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자 반론을 펼치려던 참이었다.


“아, 아빠!”


스튜디오로 갑자기 뛰어 들어온 작가 이강희가 이정석을 급히 불었다.


이정석은 자신의 딸이 연출하는 방송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중이었고, 평소 프로페셔널을 입에 달고 살던 딸의 이런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명백한 방송 사고였다.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아는 딸이었기에 이정석은 사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이정석이 일어서자 이강희의 입에서 또다시 생각조차 못 한 말이 튀어나왔다.


“혁이, 혁이가 깨어났데! 엄마는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야!”

“뭐라고! 혁이가!”


이정석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아들이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반년이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자 희망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물론 언젠가는 깨어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반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큰 희망은 더 큰 절망이 되어 찾아온다.

집안의 가장으로 자신이 먼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3대 메이저 병원인 한강병원 특실 비용은 아무리 전직 국회의원이라 해도 청렴하게 일한다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엘리올슨 쪽에서 병원비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옮겨도 벌써 옮겼어야 했다.

그것도 병실이 아니라 병원 자체를 말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엘리올슨은 비공개로 한 번씩 찾아왔고 그녀 덕에 아들은 지금까지 한강병원에서 최상의 관리를 받으며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 아들이 깨어났다.

햇수로는 삼 년.

만으로 이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방송 사고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유능한 앵커는 뭐가 달라도 달았다.

이정석 의원의 아들이라면 자신도 알고 있을 정도로 한때 유명했다.


월드 스타 엘리올슨을 구하고 ‘고결한 영웅’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라 알고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 그냥 방송 사고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었다.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그것도 라이브 방송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엘리올슨이라는 월드 스타와 관련이 있는 사건이었기에 대박 냄새가 솔솔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앵커는 고정 패널로 오랜 친분이 있는 이정석을 생각해서 급히 말했다.


“의원님 어서 가보세요! 지금 방송이 문젠가요!”

“죄, 죄송합니다.”


이정석이 급히 뛰어나가자 방송 PD도 이강희를 보며 손을 저었다.


“너도 빨리 따라가. 이번일 내가 실드는 치겠지만 장담은 못 해.”

“네. 감사해요. 근데 무리하지 마세요. 징계 때리면 받죠, 뭐.”


동생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은지 징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후훗, 너를 누가 말려. 어서 가기나 해.”

“히힛.”


방송 사고에 대한 앵커의 사과 멘트가 흘러나왔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황당해하면서도 눈치 빠른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일어나 댓글창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누가 깨어나? 설마?

- 그 설마가 맞을 듯. 이정석 의원 생방송 중에 뛰쳐나가는 거 봤잖아.

- 고결한 영웅의 귀환인가?

- 이야~ 이러면 엘리올슨 다시 한국 오는 거냐?

- 뭐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누가 정리 좀?


채팅창의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을 끄집어내기 시작했고,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가서 소식을 날랐다.

그 때문인지 이날의 방송 사고는 잠시나마 실시간 검색어 1위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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