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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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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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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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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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2년. 삼재三才

DUMMY

-


결과적으로 백단은 세로 베기를 통해서만 검기를 발현할 수 있었다.


더 정확히는, 세로 베기를 통해서만 신검합일을 잠깐 이뤘다.


그 외의 베기(가로 베기 좌우라던가, 찌르기)를 하면 신체와 검의 조화가 무너지고 여지없이 근육과 관절이 꼬여 주저앉았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설화령은 백단의 몸을 보며 경악했다.


그의 몸은 그야말로 ‘세로 베기’에만 최적화된 몸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세로 베기의, 세로 베기에 의한, 세로 베기를 위한 육체!


그는 세로 베기의 숙련도만 극한으로 높였다.


“검기란 본디 기의 완급으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 기본이거늘···.”


백단은 오직 세로 베기를 통해서만 ‘아주 잠깐’, ‘희미하게’ 구현되는 백단의 검기를 보고 허탈해했다.


“선후가 반대되어서 그런가? 기를 쌓기 이전에 검을 통해서 기를 다루기에, 검에 내재한 기를 끌어내기에 이런 것인가?”


비유를 해보자.


기를 MMORPG 게임에 비유해 ‘마나’로, 검기를 ‘패시브 스킬’로 생각해보자.


대충 [검기 : “검” 카테고리의 무기를 장착했을 때 초당 기를 -1씩 소모하고 공격력 +300% 증가]라는 스킬이라고 가정해보자.


백단은 그 패시브 스킬을 ‘액티브 스킬’로 이해했다.


[세로 베기 : 스킬을 사용할 시 공격력 +300% 증가]라고 말이다.


심지어 마나에 해당하는 기는 검 자체에 내재한 기를 끌어다 쓰는 것이기에 소모조차 없다.


일종의 아이템에 붙은 스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차이가 생긴 이유는 백단의 세계관이 달라서였다.


천지 만물, 기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무림인들과 달랐다.


살아왔던 세계가, 시대가, 상식이, 언어가 달랐기에 백단 나름대로 어레인지해서 이해한 결과이다.


천지 만물, 더 나아가 ‘세계에 흐르는 기’를 백단은 일종의 ‘만물이 품은 잠재력’이라고 이해했고 ‘검기劍氣’란 ‘검기劍技’를 통해 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있어 기氣란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었으며 ‘모든 물질과 생명에 깃들어 흐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기’란 ‘신체와 검이 조화를 이룰 때 발휘되는 극한의 퍼포먼스’, ‘최대치로 끌어올려진 검의 포텐셜(잠재력/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단은 세로 베기를 통해서만 기를 다루고, 검기를 방출할 수 있었다.


올바른 자세, 올바른 기수식을 취할 때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몸에 흐르는 영기가 검령과 공명해 검에 내재한 기를 폭발시키듯 드러내는 것이다.


즉, 백단은 세로 베기의 달인이 되었다.


―――세로 베기만.


“속, 속았다···!”


설화령은 백단의 상태와 경지를 이해하자 털썩, 땅에 엎드리고 말았다.


세상에! 기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세로 베기밖에 못 하는 무인-머저리가 있다?


심지어 검기는 세로 베기를 할 때만 깔짝, 나오고?


“네가 끝, 끝까지 가르치겠다고 했거늘! 사실은 이런 폐급 중의 폐급이었을 줄이야!”


“······.”


“······.”


궁주 앞에서 대놓고 폐급 취급을 받아버린 백단!


그리고 제 어미의 치졸한 모습을 목도해버린 설희령!


그 둘은 차마 입조차 벌리지 못하고 허탈하게 궁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기연인 줄 알았거늘, 이런 상폐급의 폐급이었을 줄이야···.”


‘하늘의 아이라고 해놓고 기조차 느끼지 못했다가, 대뜸 기를 발현하기에 좀 특이한 아해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이 새끼(백단)는 진짜 폐급이 맞았다.


무재無才를 노력으로 극복했을 뿐인 범재.


그냥 괄목할만한 성과 하나 가지고 자신 앞에서 공갈을 친 사기꾼!


‘게세르고 뭐고 이 새끼는 답이 없다!’


설화령이 핏발 선 눈으로 백단을 노려봤다.


그 흉흉한 기세에 흠칫 몸을 떤 백단은 다급하게 그녀 앞에 부복하며 말했다.


“어머, 아니 누님! 다른 베기도 금방 마스터···, 아니 숙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버려진다!’


백단은 설화령의 성정? 성격에 대해 서서히 감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자기한테 이득이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전형적인 좀생이.’


그게 바로 북해빙궁의 지존! 설화령이었다!


“이놈! 누가 궁주를 누님이라 부르느냐! 내 제자가 되었으면 스승이라 불러라!”


“···전에는 누님이라 부르라면서. 좀생이 어머니가.”


“뭐라고?”


“아니, 아닙니다.”


백단은 공손히 그녀에게 절을 올렸다.


“반년···! 반년 안에 가로 베기와 찌르기를 마스···, 숙달하여 증명하겠습니다!”


“이익! 그래! 좋다! 그럼 어디 보여봐라!”


그렇게 설화령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한 백단의 지옥 수련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날부터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수련장으로 나가 미친 듯이 가로로 검을 휘둘렀다.


한번 벨 때마다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꼬이며 뒤틀려도 역근세수경의 구결을 외며 회복해 다시금 휘둘렀다.


좌우.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일만 번. 총 이만 번의 베기를 끝내면 잠이 들었다.


“오라버니. 검을 휘두르면 어떤 느낌이야?”


가로 베기를 수행하던 어느 날, 희령이 그에게 물었다.


“매일 같이 같은 베기만 하고 있잖아. 안 지루해?”


“응? 글쎄.”


백단은 휘두르던 검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들어올려 햇볕에 비춰보았다.


검날에 반사되어 비치는 백단의 얼굴.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루하진 않아. 오히려 재미있지.”


“재미있다고?”


희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단은 수련장에 비치된 근처 바위까지 걸어간 다음 세로 베기의 기수식을 취했다.


“네가 볼 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부 다른 베기를 하고 있단다.”


“다른 베기? 같은 베기가 아니라?”


“그래.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나의 베기에는 만개의 베기가 숨겨져 있단다.”


그가 검을 부드럽게 내리그었다.


“그중 검이 가장 최적의 포텐···, 아니 잠력을 뿜어낼 수 있는 궤적을 찾아 그릴 뿐이지.”


그의 앞에 있던 바위가 반으로 조각나 갈라졌다.


“그럼 이렇게 검에 내재한 기가 발해지며 검기를 통해 검기가 발현되는 거란다.”


“흐응.”


“내가 들고 있는 검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검로를 찾는 과정. 그 과정이 재미있는 거지.”


하나의 궤적에서 만개의 궤적이 피어난다.


그런데 그 궤적이 검이 최대치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궤적은 고작 한 두어개가 전부.


‘마치 보물을 찾는 기분이지.’


검이 지닌 가능성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과정은 마치 모래사장을 파헤쳐 진주를 찾는 느낌과도 같았다.


그는 전생에서도 별로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을 제2의 인생에서, 무공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렇구나.”


희령은 백단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대충 끄덕인 다음 근처에 있던 검을 하나 들고 왔다.


그리고 검에 기를 불어넣더니 백단이 세로로 자른 바위를 가로로 갈라버렸다.


쩌억! 그녀의 어설픈 가로 베기에 바위가 그대로 조각나 무너져내렸다.


“이렇게?”


“어···.”


자신이 검이 최대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궤적을 찾아 그렸을 때만 발현되는 검기.


그런데 설희령은 단순히 기를 검에 불어넣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검기를 발현했다.


‘이것이 기를 다룰 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


백단은 자신이 지난 삼년간 수련해왔던 나날들이 단 1초 만에 따라잡힌 상황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상해. 저번에 느꼈던 질투심은 느껴지지 않아.’


백단은 희령을 반쯤 여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 생과는 달리, 제2의 인생에서 처음 생긴 가족.


그래서일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는 오히려 설희령이 보여준 경지가 오히려 기꺼웠다.


“그건 검기劍氣는 맞지만 검기劒技가 아니야. 단순히 검에 기를 불어넣어 검기를 발현시켰을 뿐이지. 내가 말한 검기는 올바른 궤적을 찾았을 때 발현되는 것이란다.”


백단은 그녀에게 차분히 그와 그녀의 차이점을 설명해주었다.


“그래? 그럼 나도 오빠처럼 할 수 있을까?”


“연습만 한다면 충분히.”


“그래?”


그날, 설희령은 설화령에게 찾아가 말했다.


“어머니! 저도 검을 수련하고 싶어요!”


“아니?! 너는 도대체 왜? 희령아. 너에게는 백호조白虎爪라는 상승무공上乘武功을 가르칠···.”


“아! 몰라요! 저도 검 배울래요! 오라버니처럼 저도 검을 다루고 싶어요!”


“이, 이것들이 쌍으로 나를 미치게 하는구나! 어억!”


“아이고 궁주님! 여봐라! 어서 어의를 부르라!”


설화령은 뒷목을 붙잡고 쓰러졌다.


-


설화령이 뒷목을 부여잡으며 그대로 넘어갔다. 그렇게 한차례 소란이 있었으나 결국 설화령은 희령의 고집에 못 이기고 그녀에게 검법을 사사師事해주기로 했다.


“대신 조건이 있다. 검법과 더불어 백호조도 함께 배우기로 하거라.”


“네에.”


“하아.”


설희령은 건성건성 한 대답에 한숨을 쉰 설화령.


“너에게 알려줄 것은 영설천검詠雪千劍이다. 호위무사들이 배우는 검법이지만, 질은 나쁘지 않다.”


못내 북해빙궁주의 비전무공이 아닌 검법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그 사실이 마냥 못마땅한 설화령은 백단을 더더욱 싫어하게 되었다.


“이놈! 아직도 가로 베기에 숙달하지 못한 거냐! 검기는 도대체 언제 보여줄 거냐!”


“석, 석 달 안에 보여드리겠습니다!”


덕분에 백단은 하루 일만 번씩, 총 이만 번의 베기를 두배로 늘려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 영설천검을 수행한 설희령은 나날이 성취를 높여갔다.


“에잇!”


“오오! 벌써 검로가 안정되었구나. 초식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다니. 세달 안에 이 정도로 능숙해졌구나.”


설희령은 단순히 기를 불어넣어 억지로 구현한 검기가 아니라, 안정된 검로에 따라 올바른 검기를 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싸! 드디어 성공했다!”


“그 말은 또 무어냐. 그런 천박한 말투는 어디서 배웠누?”


“오라버니가 가끔 중얼거리던데요?”


“어억! 네놈이···!”


설화령이 눈에 불을 켜며 백단을 노려봤다. 백단은 얌전히 눈을 깔 뿐이었다.


하여튼 그 다음날, 백단은 드디어 가로 베기를 통해 검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눈앞에서 가로로 갈라진 바위를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성공했다!”


백단이 가로로 갈라진 바위를 향해 세로 베기를 날렸다.


그러자 이번엔 十자로 갈라진 바위가 해체되듯 땅으로 흘러내며 굉음을 내었다.


“궁주님인지 스승님인지 누님인지 어머님! 드디어 성공했―――···.”


쩌억!


설희령이 바위를 향해 영설천검의 제일초식을 날렸다.


“영설천검. 제 1초. 영설.”


그러자 가로로 갈라진 바위가 얼어붙으며 조각났다.


“아싸! 어머니! 제가 1초식을 성공했어요!”


“허어! 성취가 남다르구나!”


“······.”


백단은 말없이 자리로 돌아가 찌르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달이 지났다.


삼개월 동안 백단은 무식하리만치 찌르기에만 집중했다.


자고 일어나서 찌르기. 다시 자고 일어나서 찌르기. 또 일어나서 찌르기.


설희령이 영설천검의 십초식 중 삼초식까지 익히는 데에는 세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약 백호조의 수련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면 칠 초식까지 익혔을지 모른다.


백단은 하루 삼만 번의 찌르기 끝에 드디어 찌르기에서도 검기를 발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천천히 눈앞의 바위를 보며 자세를 취했다.


검 끝에서 뻗어나간 선에서 일만 개의 선들이 분화했다.


그 하나하나가 전부 검의 내지름, 그 궤적.


백단이 눈을 부릅뜨며 집중하자 하나둘씩 궤적들이 퇴색해가며 가라앉고 이윽고 반짝이는 궤적 하나만이 남았다.


“삼재. 지르기.”


백단이 궤적을 따라 검을 내지르자 그의 손에서 검의 무게가 사라졌다.


한순간 검의 무게를 잊고, 검과 신체가 짧은 순간 합일된 것이다.


궤적을 따라 그대로 쏘아진 찌르기는 부드럽게 바위를 파고 들어가 틀어박혔다.


백단이 천천히 검을 뽑아 보았다.


바위에 뚫린 구멍을 보며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성공했다!”


드디어 찌르기까지 마스터한 백단은 이어서 가로 베기를 날렸다.


바위를 가른 검이 이어 하늘로 치솟더니 부드럽게 직선을 그렸다.


“좌 베기. 세로 베기.”


구멍이 뚫린 바위는 이내 十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무너져내렸다.


백단은 납검하며 제 손을 펼쳐 주먹을 쥐어보았다.


예전에는 다른 베기나 찌르기를 할 적에 느껴졌던 몸의 관절이 꼬이는 증세, 근육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이 가로 베기와 찌르기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다.


백단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설화령을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 보십시오! 이 불초 백단! 드디어 삼재三才를 마스···, 완벽하게 숙달했습니다!”


“이놈! 누가 감히 하늘 같은 궁주를 어머니라고 부르느냐!”


“그, 그럼 누님?”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난 너 같은 동생을 둔 적 없다!”


“그럼, 스승님. 드디어 제가···!”


“너 같은 둔재가 내 제자라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스승이라고도 부르지 마라.”


“그럼 궁주님?”


“너 같은 놈을 이 빙궁에 들이다니···. 옛 시조께서 한탄하시겠구나.”


“······.”


‘아니, 시발 어쩌라고?’


백단은 슬슬 설화령이 짜증나기 시작했다.


‘이게 불효자의 마음인가?’


이전생에 고아로 살아왔던 백단은 드디어 불효(?)에 대해 깨우치기 시작했다.


한편 설화령은 백단의 속을 박박 긁으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그의 성취에 감탄했다.


‘꽝 중 꽝. 폐급 중의 폐급. 둔재 중의 둔재인 줄 알았거늘, 노력이란 재능 하나만큼은 굉장하군.’


설화령은 백단이 설마 반년 안에 삼재三才를 숙달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신검합일을 통한 검기를 발현할 정도로!


‘기를 느끼지 못하면서 오직 삼재를 통한 신검합일을 통해 극히 짧은 순간만 검기를 이끌어내다니. 도대체 이 무슨 해괴망측한 재능이란 말인가.’


쯧, 짧게 혀를 찬 설화령.


‘만약 반년 안에 성취가 없다면 다시 내치려고 했거늘. 이래선 명분조차 없군.’


그 잠깐 사이 백단 코인이 떡락했다고 버리려고 했던 설화령이었다.


‘내 눈으로조차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재능 같은 것)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노력가인가? 모르겠구나.’


그녀가 보기에 백단의 성취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기를 느끼지 못한다. 단전도 없다. 운기조식을 행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신체와 검의 조화를 통해, 검령劍靈을 일깨워 검이 내재한 기를 극한까지 끌어내는 극도로 비효율적이면서 효율적인 방법을 행하며 검기를 발현하고 있었다.


‘무武의 재능은 있는 것 같다만···.’


무의 재능이란 곧 노력의 재능.


무궁한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백단은 무의 자질만큼은 있었다.


그래서 설화령은 고심했다.


‘이걸 버려야 해? 계속 키워야 해?’


고심 끝에 설화령은 결단을 내렸다.


“예. 희령아. 이리 오거라.”


“예. 어머니궁주님.”


“그 표현은 무슨 해괴망측한 표현이냐? 설마 백단이에게 배운 게냐?”


“그런데요?”


“네놈!”


설화령이 눈에 불을 켜며 백단에게 기를 토했다.


백단은 그 기에 위축되면서도 당당히 서 있었다.


“하아. 됐다. 백단아. 희령아. 너희 둘이 서로 마주보고 서봐라.”


“예.”


“예.”


백단과 설화령은 서로 마주보고 섰다.


“희령이는 검기를 발현해보거라.”


“예!”


희령은 단숨에 검에 기를 넣더니 이내 검에 새하얀 눈과 같은 기를 드러냈다.


육안으로 시인視認되는 검기에 백단은 눈을 부릅뜨며 희령의 검기를 바라봤다.


‘아름답다···.’


마치 천년설과 같이 은은하게 빛나는 검기.


백단은 그것이 설원에 펼쳐진 눈밭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얗고, 은은하게 빛나는 설원의 눈밭 말이다.


“백단아. 검기가 눈으로 보이느냐?”


“예.”


백단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희령아. 검끝을 저 바위에 한 번 가져다 대보거라.”


“예. 어머니궁주님.”


“그 표현···. 하아. 됐다. 아무튼 해보거라.”


희령은 검을 들고 바위에 다가가 검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검이 채 닿지도 않았는데 바위에 흠이 가기 시작했다.


“무슨?!”


백단이 잘못봤나?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봐도 검은 바위에 닿지 앉아 있었다. 대략 1cm 정도. 분명 떨어져 있었는데 검에 베인 것처럼 바위는 흠집이 나 있었다.


“저것이 바로 검기상인劒氣傷人의 경지다. 네가 목표로 한다면 앞으로 도달해야 할 경지지.”


“검기상인···.”


“그러나 저것보다 앞서 네가 도달해야 할 경지가 있다. 희령아.”


“예. 어머니궁주님.”


희령이 천천히 검에 흐르는 설기雪氣를 가라앉혔다. 그러자 검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백단은 알았다. 지금 저 검의 내부에선 기가 끊임없이 흐르며 순환하고 있다.


희령이 검을 잡고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대각선으로 잘린 바위가 매끄럽게 내려앉으며 바닥에 닿았다.


“그것은 바로 검기다.”


“저는 이미 검기를 발현했습니다. 어머니궁주스승님.”


“······하. 일단 다시 희령과 마주 서봐라.”


설화령은 이젠 대꾸도 하지 않고 지친다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 손을 휘적였다.


희령과 백단은 다시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둘이 검을 휘둘러 맞대보거라. 희령이는 검기를 쓰고.”


“예?”


“잘 못 들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서로 해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 해보거라.”


희령과 백단은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검을 붙잡았다.


희령은 가로 베기를, 백단은 가장 익숙한 세로 베기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서로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쩌엉―! 큰 소리와 함께 둘의 검이 서로 반발을 못 이기고 튕겨 나갔다.


“이것이 검기와 검기의 부딪힘이다. 허나···.”


설화령은 다시금 손짓했다.


“이번엔 백단이 검을 들고만 있어라. 희령아. 너는 오직 백단의 검만을 베어보아라.”


“예!”


희령이 백단의 검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이번엔 백단의 검이 마치 두부처럼 썰렸다.


“차이를 알겠느냐? 왜 검이 잘렸는지?”


“제 검에는 검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 너는 상시로 검기를 발현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너는 검기劍技를 통해 검기劒氣를 발현하는 것을 넘어, 상시 검기를 발현해야 한다.”


“그럼 기를 쌓아야 하는 겁니까?”


“그래.”


그렇다. 설화령은 결단을 내렸다.


‘그래. 한번 키워보자.’


그녀는 백단 코인에 투자해보기로 시작했다.


‘썩어도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다. 의외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어.’


지금도 이렇게 그녀를 다른 방식으로 놀래키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를 느끼고 쌓게 해주겠다.”


그렇게 설화령과 백단의 삽질은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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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2) +2 24.08.19 84 3 23쪽
12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 +2 24.08.19 89 3 29쪽
11 프롤로그 -11년. 심검心劍 24.08.18 92 2 16쪽
10 프롤로그 -11년. 검기상인劒氣傷人, 삼매진화三昧眞火 24.08.16 99 2 29쪽
9 프롤로그 -11년. 늑대 24.08.16 103 2 26쪽
» 프롤로그 -12년. 삼재三才 24.08.15 108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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