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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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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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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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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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프롤로그. 패륜으로 시작하는 무협 생활

DUMMY


-


백단百檀은 근처 바위에 앉아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 사이로 푸른 수정처럼 얼어붙은 단면이 보였다. 단면 안에는 수많은 자갈이, 살아 숨 쉬는 물고기들이, 또 프리즘 빛으로 갈라진 햇빛이 담겨 있기도 했다.


껑껑! 근처에선 호수에 사는 물범이 손바닥을 치며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었다.


얼어붙은 호수. 산천초목. 기암괴석. 푸른 하늘. 흰 구름과 해.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풍경에 그가 감상에 빠지기도 잠시, 그의 곁으로 소복을 입은 여인이 다가왔다.


갈색 생머리에 정갈하게 소복을 차려입은 여인은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두르고 산호와 진주를 꿴 실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귀가하시자마자 바이갈 누르Baigal nuur를 보고 계십니까?”


“오랜만의 고향···, 이잖아. 그래서 보고 있었어.”


―――고향인가.


백단은 자조적으로 읆조렸다. 감회가 새롭다.


이 얼어붙은, 목가적인 풍경조차 이젠 고향이라 부를 만큼 오래되었구나.


‘저 호수에 빠져서 죽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새삼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 그는 생각했다.


“게세르Geser. 궁주께서 부르십니다.”


“···나는 게세르가 아니야.”


백단은 여인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단어에 학을 떼며 말했다. 여인은 표정의 미동도 없는 채 조용히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이거 실례. 소궁주小宮主님. 궁주宮主께서 부르십니다.”


“일부로 그랬냐?”


“설마요.”


여인은 여전히 입가를 가린 채 눈을 둥글게 휘었다.


“제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텡그리Tengri의 아드님.”


“야.”


“예.”


“다시 말해봐.”


“소궁주님.”


“다시.”


“쪼잔한 게세르.”


“다시.”


“소궁주님.”


“······.”


“······.”


“게세르.”


“하. 됐다. 내가 졌다. 졌어.”


백단은 손을 휘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탁탁, 엉덩이에 묻은 눈을 터는 그의 다리를 한 새가 쪼았다.


그 새는 흰 깃털을 가진 닭이었다.


두툼한 근육을 가진 뒷다리와 새하얀 눈을 닮은 우아한 깃털.


싸움닭처럼 날렵해 보이면서도 눈에는 총기를 띤 흰 닭은 그의 다리를 맹렬하게 쪼며 무언가를 요구했다.


백단은 그 모습에 푸훗, 웃고는 닭을 안아 들고 검지로 조심히 부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계룡鷄龍아. 너도 나 보고 싶었냐?”


닭이 골골송을 내며 그의 품에 몸을 비볐다.


“그 닭만 소궁주님을 보고 싶은 게 아닙니다만.”


“아이씨. 알겠어. 간다. 가.”


닭을 쓰다듬으며 귀찮다는 손을 휘저은 백단은 여인을 뒤로하고 산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에잉. 오랜만의 고향에서 쉬지도 못하고.”


그렇게 투덜대며 내려가는 그를, 여인은 그저 은은한 미소만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얼어붙은 호수를 배경 삼아 끝까지 지켜본 그녀는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하늘을 바라봤다.


“드디어 별이 움직인다.”


하늘에 아스라이 빛나는 별자리를 바라본 그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뺨에 홍조를 띠며 제 입가를 막고 큭큭, 거렸다.


“운명의 굴레가 굴러간다.”


―――역사가 변했다.


“게세르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야.”


-


백단은 빙궁의 정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허억?! 소궁주님! 드디어 돌아오셨습니까?!”


“어.”


문지기의 말에 대충대충 대답하며 그는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장원에서 훈련 중인 빙궁의 무사들을 뒤로하고, 그가 나타나자 기겁하는 시녀들을 무시하며 백단은 빙궁의 가장 안쪽. 궁주가 있을 알현실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알현실의 정문에는 이미 두 시녀이자 호위 무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흰 머리가 돋보이는 미모의 미녀 둘은 백단이 나타나자 놀라면서도 그가 막무가내로 알현실로 들어가려 하자 다급하게 팔을 들어 그를 막아 세웠다.


“소궁주님. 아무리 소궁주님이리도 이리 연락도 없이 무례하게 들어오시다니요!”


“궁주님이 기함하실 겁니다.”


“상관없어. 그 궁주님이 불러서 온거니까.”


백단은 그리 말하고 무사들 뒤, 문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가도 되죠?”


“그래.”


그러자 문 뒤에서 화답이 들려왔다.


그러자 무사들은 쭈뼛 몸을 굳히며 어색하게 몸을 틀었다.


백단은 그들을 지나치며 알현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푸르고 흰 비단과 산호 구슬로 장식된 수실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보인 것은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최고급 계단과 단상, 그리고 그 위에 놓인 하얀 이부자리가 보였다.


그 위에는 얇은 흰옷을 입어 속이 슬쩍 비쳐 보이기까지 하는 미모의 여성이 반쯤 누운 채 턱을 괴고 그를 흥미롭다는 듯 내려보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갓 과년에 든 여인처럼 보이는 그녀.


‘속지마라. 60살이다.’


저 안에 있는 것은 거의 1갑자甲子묶은 노괴.


새외를 합쳐 천하 백대 고수에 들어가는 백명의 괴물 중 하나.


무림십화武林十花 중 하나이자 이 빙궁의 삼화三花 중 하나.


북해빙궁北海氷宮의 9대 당주.


천년설화千年雪花. 설화령雪化靈.


백단은 그녀의 앞에서 공손히 절을 올렸다.


“소궁주. 백단이 궁주를 뵈옵니다.”


“그래. 소궁주. 백단.”


잠시 근엄하게 말하던 그녀는 이내 풋 웃고는 손을 휘저었다.


“돼었다. 딱딱하게 궁주라 부르지 말고, 어머니라 불러라.”


“예. 어머니.”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이상하구나. 친자식도 아니거늘, 그냥 스승님이라 불러라.”


“네. 스승님.”


“아니다. 스승님도 뭣하구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누님이라 불러라.”


“···노괴가?”


“···뭐라고?”


“아니, 아닙니다. 누님.”


“하여간. 농도 안 받아주는 건 여전하구나.”


설화령은 김이 샜다는 듯 침상에 몸을 기대면서 이내 간드러진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무림 초출은 어떠했느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냐. 후후.”


백단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는 후후, 웃고는 이어 말했다.


“네 기세가 정돈된 것을 느끼니 네가 한 차례 더 성장을 얻었다는 것을 내 알겠다.”


“예. 미약하게나마 밖에서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았겠구나.”


“예. 세상이 참으로 넓더군요.”


“그래. 나가서 무엇을 느꼈느냐?”


설화령은 백단의 성장이 기꺼웠으며, 또 궁금했다.


‘평생 우물 안 개구리로만 살 줄 알았더니···.’


밖에서 꽤나 고생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번듯하게 성장해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과연 밖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돌아온 걸까? 설화령은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빙궁이 참으로 좁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이 빙궁은 천하의 한조각에 불과하니···.”


“그래서 꿈이 생겼습니다.”


“오호라. 꿈이라? 그게 무엇이냐?”


“꿈이라고 하기엔 미약하니, 그저 소인의 목표입니다.”


백단은 굳은 눈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는, 왕王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 응? 뭐라고?”


설화령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표정에 금이 간다.


단번에 얼빠진 표정을 짓는 그녀에게 백단은 계속해서 말했다.


“곧 원元이 무너질 것이니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저만의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아니, 그러니까···. 에?”


백단은 상체를 들어 올리며 설화령을 보며 말했다.


“그동안 저를 거둬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만 출가出家하렵니다.”


그리고 일어나는 그.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설화령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예. 백단아.”


“예. 스승님이자 어머니, 궁주시여.”


“네. 십오년 전 죽어가던 너를 거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너에게 무공도 가르치고 또 소궁주로 삼았다.”


“그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가하겠다고.”


“예.”


“왕이 되겠다고?”


“예. 맞습니다.”


꿈뻑, 설화령이 눈을 깜빡이며 백단을 바라보았다. 그의 기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니, 그 의지가 강고해 보였다.


그가 농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설화령은 악귀나찰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네! 이놈!”


그리고 베개를 짚어 그에게 던졌다.


부드러운 거위 깃으로 풍성하게 채워져 있던 베개가 마치 목침木枕처럼 단단하게 변해 그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저 기를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베개조차 흉기로 만드는 고강한 내공! 백단은 베개에 머리를 맞아 피를 주륵, 흘렸다.


“네가 감히 역모를 꾸미는 게냐?!”


“아닙니다.”


“하! 왕이 되고자 하는데 역모가 아니다?”


“저는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고자 합니다.”


백단은 그녀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중화中華는 넓으오나 그 역사가 참으로 깊습니다. 그러니 저라는 굴러온 돌이 들어갈 틈이 없지요. 그래서 저 멀리 토인土人들이 사는 땅에 저만의 국가를 건국하고자 합니다.”


“그곳이 어디더냐.”


“유귀국流鬼國입니다.”


“유귀국?”


“다른 말로는 이미프Yh-mif. 레푼모시르Repunmosir라고도 하지요. 아니면 훗날 사할린Sakhalin이라고도 불리기도 하고요.”


―――뭐라고 불리든.


“그곳은 현재 변변찮은 왕조도 없이 토인들이 사는 땅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저만의 나라를 세워 다음 세대의 중화에 입조하려고 합니다.”


설화령은 백단의 말에 기가 차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곤 침상에 몸을 기댔다.


“백단아.”


“예. 궁주이자 스승님. 노괴님.”


“···뭐?”


“누님.”


“하아. 백단아. 나는 네가 어릴 때부터 봐왔다.”


그녀는 백단의 이국적인 외모를 보며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어린 시절 하늘에서 별똥별처럼 추락해 바이갈 누르에 빠져 죽은 너를 구했다.”


“예.”


“그런 네가 죽어가던 것을 천년화리를 먹여 살려주었다.”


“예.”


“비록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너를 가여이 여겨 일족과 동등하게 여기며 키워주었다.”


“예.”


“그런데 그 은혜를 잊고 감히 이 빙궁을 버리고 출가하겠다?”


“입신양명하겠다는 뜻입니다.”


백단은 굳은 눈으로 궁주를 바라봤다. 자신의 목숨의 은인이자 스승,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동등하게 따라왔던 그녀를.


“궁주님. 아니 어머님. 이 세상은 넓습니다.”


―――그리고 시대는 격변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 빙궁은 궁벽하고, 밖을 모르니 몰락할 것입니다. 저는 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습니다.”


―――곧 격동의 시대가 오리라.


“저는 빙궁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빙궁을 살리려 하는 것입니다.”


“빙궁을, 살린다?”


“빙궁의 명맥을 제 나라에서 잇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백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말해, 말이 북해빙궁이지 무림 세가보다 낙후된 곳이 여기지 않습니까? 변변찮은 장원 말고 여기에 뭐가 있습니까? 백성이 있습니까? 영토가 있습니까? 고작해야 이 작은 호수의 궁주따위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가해 분파分派를 차리겠다?”


“차리다 못해 잡아먹을 생각입니다.”


“네가, 미쳤구나.”


“아뇨.”


그는 누구보다 총명한 눈으로 궁주를 바라보았다.


“저는 누구보다 제정신입니다.”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북해궁주 설화령은 백단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범상치 않았거늘―――···.”


“······.”


백단은 15년 전 하늘에서 떨어졌다.


마치, 천상에서 지상으로 낙화한 것처럼.


그는 마치 옛 전설의 아바이 게세르처럼 하늘에서 추락했다.


“옛 시절의 너를 기억한다.”


다시금 과거를 회상하던 설화령은 아련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떨어지자마자 이상한 스마투폰? 이라는 것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던 시절이 기억나느냐?”


―――백단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었다.


“훗날 살려달라고 빌던 너를 기억한다. 이대로 죽기 싫다고 내 치마를 붙잡던 너를 기억한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고 살고 싶어 설화령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그래서 무공을 가르쳐주었는데 내공과 기를 이해하지 못해 검기조차 발현하지 못한 너를 기억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무공을 배워 목숨을 빌어먹었다.


“실망하던 내 앞에서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다가, 끝내 검기를 발현하지 못해 절망하던 너는 끝내 단전조차 만들지 못했지.”


―――그러나 그에게 무공의 재능 따위 없었다.


“그런 너에게 나는 솔직히 실망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비범한 소년. 북해궁주는 어쩌면 백단이 전설에 나오는 하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백단은 다 죽어가고 있었고, 무공에 재능조차 없어 그대로 객사할 운명이었다.


설화령은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식어가며 이내 그를 방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네가 어떻게든 검기劍氣를 발현하겠다고 검을 휘두르다가 신검합일身劒合一을 이루었을 때는 내가 어찌나 놀랐는지.”


그랬던 백단은 어느날 신검합일을 이루었다.


“단전도 없이, 고작 검기 하나를 발현하겠다고 신검합일을 이루다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 설화령은 푸훗, 웃으며 입가를 가렸다.


“너는 단전 없이 신검합일로 검의 령靈을 깨워 검기를 발현했다. 나중에는 검강劍罡을 만들기 위해 단전丹田을 만들었지. 보통의 무인이 단전을 만들어 검기를 만들고, 깨달음을 얻어 검강을 발현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말이야.”


백단은 보통의 무림인들과 달리 선후가 반대되었다.


검기를 만들기 위해 신검합일을 이루고, 검강을 만들기 위해 단전을 만들었다.


“그때 깨달았지. 이 아이는 무공의 재능이 없을 뿐···.”


설화령의 눈동자가 백단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하늘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재능이 있다고.”


“······.”


“백단아. 너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사고하는 방식도, 사유하는 언어도, 생각하는 시대도 다르다.”


“······.”


“그렇기에 너의 재능이 그렇게 이질적이었겠지.”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구구절절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설화령에 답답하다는 듯 백단이 물었다.


이에 설화령이 차갑게 눈을 뜨며 화답했다.


“너에게 기대를 품었다.”


설화령은 백단에게 기대를 품었다.


“너라면 이 빙궁을 이끌 차기 인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비범한 출생과 재능이라면 빙궁을 한차원 진보시킬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틀렸구나. 너는 이 빙궁이 품을 수 있는 인재가 아니었어.”


―――백단아.


“너는 야망이 있었구나.”


하늘에서 떨어진 소년은 그 비범함만큼이나 야망을 품고 있었다.


“백단아. 너의 어미이자 스승, 궁주로서 마지막으로 묻겠다.”


“예.”


“북해궁주가 될 생각이 없느냐?”


“······.”


“지금이라면 무를 수 있다. 네 약혼녀와 함께 이 빙궁의 모든 재산을 누리며 호의호식할 수 있다.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첩을 들일 수 있을 터이며, 너는 이 빙궁의 권력을 손에 쥘 것이다.”


“······.”


“그러함에도 궁주의 자리를 포기하겠느냐? 기껏해야 토인들의 땅에 가서 무無에서부터 시작하겠느냐?”


“······.”


“지금이라면, 무를 수 있다.”


“궁주님···. 아니, 어머니.”


백단은 굳은 결심을 담아 설화령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결연한 의지를 엿본 설화령은 탄식했다.


“저의 결심에 변심은 없습니다. 저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래. 그렇구나···.”


깊은 한숨이 설화령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돌았다.


1초. 2초. 이윽고 십수초.


잠시 침묵하던 그들 사이로 차가운 목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소궁주. 백단.”


“예.”


“너를 소궁주 자리에서 폐한다.”


“······.”


“너의 단전을 폐하고 너를 종마 삼아 데릴 사위로 삼아야겠다.”


―――네 야망이 그렇게 크다면.


“너를 철저히 부숴 이 빙궁이 품어야겠다.”


―――그 야망을 부숴 차근차근 소화해주마.


설화령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손짓에 대기하고 있던 빙궁의 고수들이 알현실에 집결했다.


각각 검과 냉기를 두른 주먹을 쥔 채 자세를 취하는 빙궁의 무사들.


이 빙궁을 지탱하는 절대 전력.


“소궁주 백단을 내 앞에 무릎 꿇려라.”


“““예!”””


무사들이 대답하며 동시에 백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측면, 위, 아래, 등 뒤, 정면.


전방위로 쏘아지는 무사들을 보며 백단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아시잖아요.”


그리고 주먹을 쥐고 그저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깨져나가는 공간, 마치 허공에 금이 간 처럼 선이 그어지더니 그 사이로 불꽃이 치솟으며 주위를 휩쓸었다.


“삼매三昧.”


―――콰앙!


단번에 거대한 불꽃과 충격파에 튕겨 나가는 빙궁의 고수들.


“이미 저는 강해요.”


“네 이놈! 백단! 네놈이 감히···!”


소궁주 백단이 양손을 펼치며 내공을 휘감고 백호조白虎爪를 펼쳤다.


마치, 하얀 호랑이의 날카로운 손톱처럼 양방향에서 할퀴어지는 고강한 무공을 바라보며 백단은 미동도 없었다.


그는 그저 발을 들어 올려 진각을 밟았다.


그것만으로 바닥이 무너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주위를 휩쓸었다.


한순간 자세가 흐트러진 설화령, 그녀의 두 팔을 주먹으로 빠르게 손목을 쳐 공격을 파훼시킨 백단.


뚜득! 양 손목이 부러진 설화령이 얼굴을 일그러트린 순간 눈앞에 거대한 손이 다가왔다.


“꺄악?!”


덥석. 설화령의 얼굴···, 아니 머리채를 붙잡은 백단이 그녀를 들어올렸다.


“어머니.”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땅에 내리꽂았다.


콰앙! 거대한 충격과 함께 머리 째로 바닥에 처박힌 설화령이 피를 토하며 갈라진 크레이터 사이로 서서히 추락했다.


그는 추락하는 그녀를 향해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몸을 숙였다.


-


1340년. 모월 모일.


북해빙궁의 소궁주 백단이 패륜을 저지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쓸 생각입니다.

고증은 아마 거의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가 잘 모르거든요.


그냥 아, 무협의 탈을 쓴 대체역사도 뭣도 아닌 소설이구나 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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