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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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아르
작품등록일 :
2024.08.1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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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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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2)

DUM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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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단은 대충 목에 버드나무 잎을 말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일어나 객잔의 1층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이미 하라와 희령이 만두를 시켜 차와 함께 간단한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도 그들에게 합류해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다. 은은한 녹차의 향기와 함께 카페인이 기분 좋게 잠을 몰아내며 몸에 활력을 내었다.


“왜 목에 붕대를 감고 있는 거야? 백단 오빠?”


희령이 고기만두를 한입에 삼키며 그의 목에 감긴 붕대를 보며 물었다.


“기분 나쁜 꿈을 꿔서 말이야.”


백단은 아직도 흑룡에게 물어뜯긴 목의 감촉이 떠올라, 떨떠름한 표정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꿈을 꿨는데 목에 붕대를 했다고?”


“꿈에서 이상한 검은 용한테 목을 물렸는데 피멍이 들었더라고?”


“꿈에서 물렸는데 현실에서 상처가 생겼다고?”


“어디, 한번 목의 상처를 봅시다. 게세르.”


하라가 백단의 목의 상처를 살펴보곤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상처가 있군요. 마치 뱀에게 물린 듯한 불길한 상처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한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게세르?”


“그러니까 말이지···.”


백단은 그들에게 어젯밤 자신이 꾸었던 꿈을 설명했다.


자신이 꿈에서 백룡이 되어 안개와 구름 사이를 헤엄쳤다는 것.


그러다가 어떤 큰 산을 발견하고 그 위로 올라갔더니 큰 못을 발견했다는 것.


그래서 그곳에서 수영을 즐기는데 갑자기 커다란 먹구름과 함께 거대한 흑룡이 등장했다는 것.


흑룡을 구경하려고 갔더니 갑자기 흑룡이 그를 물어뜯고 공격했다는 것.


그러다가 한 인간을 발견하고 도와달라고 외치다가 결국 흑룡에게 목이 꺾여 죽었다는 것.


“그런 꿈을 꿨다고?”


“그건 심상치 않은 꿈입니다.”


희령과 하라는 백단의 꿈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꿈에서 용이 되었다는 건 예삿 꿈이 아니야. 백단 오빠. 분명 길한 꿈일 텐데···.”


“그런데 흑룡이 나타나 게세르를 물어 죽이다니. 이는 필시 보통 꿈이 아닙니다. 용이 되었다는 길함에 흑룡에게 물려 죽는다는 흉조가 함께 등장하다니.”


하라는 백단의 상처를 하얀 손가락으로 훑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물며 이렇게 상처까지 분명하게 드러나다니요. 이는 분명 무슨 곡절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지몽일지도 모르겠군요.”


“예지몽?”


“예.”


하라는 샤먼인 오트강 밑에서 수련했던 예비 샤먼.


그녀는 기본적으로 영기가 있었고, 천문을 읽을 줄 알았으며, 사람의 운기를 희미하지만 읽을 수 있었다.


하라는 백단의 목에 흐르는 불길한 운기運氣를 보고 불길하다는 읆조렸다.


“꿈에 용이 나온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용이 된다는 것은 보통 꿈이 아닙니다. 용이란 성서로움의 상징. 그런 용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 게세르가 ‘큰 사람’이 된다는 징조겠지요.”


하라는 백단이 용이 된 꿈을 꾼 것이 ‘큰 사람’이 된다는 징조라고 표현했지만, 그녀는 알았다.


‘용이란 왕권의 상징.’


미르. 무두리. 용. 그외 등등.


온갖 표현으로 불리는 용은 보통 왕을 상징하는 신수神獸다. 왕권을 상징하는 성서로운 짐승인 만큼 그 용이 되었다는 것은―――···.


‘게세르께선 정말로 왕의 운명을 타고나셨단 말인가?’


하물며 보통 용도 아니고 백룡이다. 흰색은 귀한 색이다. 흰옷을 유지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흰색 염료도 흔한 것이 아니다.


계급이 높을수록 흰색 옷을 더 쉽게 입고 유지할 수 있다.


거기다 흰색은 청순, 순수 그리고 성스러움을 뜻하는 색. 특히 흰 짐승은 사람들이 더욱 특별하게 여겨 귀히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흰색 용, 백룡이 되었다는 것은 보통 길조가 아니다.


‘오트강. 당신은 백단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건가요.’


“혹시 오빠 왕 되는 거 아니야?”


희령은 용의 상징을 떠올리곤 호들갑을 떨며 백단에게 말했다.


“에이. 설마.”


“하지만 용이 되는 꿈을 꿨잖아? 그건 점괘를 모르는 내가 봐도 길한 꿈이라고.”


그는 희령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흑룡에게 물려 죽었는데 길한 꿈은 무슨.”


“아뇨. 희령이의 말이 맞습니다. 백룡이 된다는 것은 길한 꿈이 맞습니다.”


“거봐!”


“어? 정말?”


“하지만···.”


하라는 백단의 목에 난 상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길한 꿈에 흉조가 끼어들었군요. 꿈에서 흑룡이 등장함은 길함의 연속이라 볼 수 있으나 흑룡이 백룡이 된 게세르를 물어 죽인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용은 길함과 왕권의 상징이다.


그러나 검은색은 반대로 흉함과 죽음의 상징색.


흑룡은 그 자체로 파괴의 헌신이자 파멸, 재앙, 죽음의 상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 흑룡이 성서로움의 극치인 백룡을 물어 죽인 것은 흉조 중의 흉조.


“보통 길한 꿈과 흉한 꿈을 같이 꾸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현실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불길한 꿈은 처음 봅니다. 이 경우는 정말 어떤 흉한 징조를 예지한 꿈일지도 모르겠군요.”


하라는 백단의 상처를 싸맨 붕대를 고쳐 매어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미래에 무슨 곡절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백단은 어쩐지 싸한 기운이 몰려오는 목을 쓰다듬으며 다시금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봤자 꿈이잖아? 별일 없겠지.”


백단은 조금은 불길함을 느꼈으나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볍게 넘겼다.


“어차피 꿈이고 해몽이고 전부 가짜잖아?”


그는 21세기를 살아가던 현대인이었던 자.


전생과 차원 이동, 환생, 회춘, 거기다가 무공이라는 이능력까지 목도했음에도 정작 백단은 점괘를 잘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운명을 점친다는 행위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점괘 그런 거 다 심리학이나 통계학이 뒤섞인 사기 아니야?’


아주 무시하지는 않지만, 굳이 믿자면 일종의 심리학이라고 생각하는 백단은 이번에 꾼 꿈도 특별한 꿈이라기보다 악몽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살다 보면 특이한 꿈을 꾸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백단도 이번 꿈을 그렇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보다 어서 모용세가나 가보자고.”


아니, 그보다는 곧 오대세가 중 일각을 차지하는 모용세가를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흥분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백단 일행은 모용세가로 향했다.


“우와아···.”


“허어···.”


“세상에···.”


그들은 모용세가에 저택의 크기에서부터 압도당했다.


일단 담벼락부터 빙궁의 담보다 거대했다.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리거나 목책으로 둘렀을 뿐인 빙궁보다 모용세가의 담벼락은 더 튼튼한 바위로 지어져 있었다.


일단 아래는 단단한 바위를 다듬어 튼튼하게 지반을 다지고, 그 위로는 벽돌과 진흙으로 꼼꼼하게 쌓아 올려 기와까지 얹어진 진짜배기 담벼락!


거기다가 담벼락은 그들의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담벼락의 넓이만 보아도 그 장원의 크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과연. 이것이 모용세가.”


현 무림의 오대세가라고 불리우는 모용세가는 그만큼 거대한 재력과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게 새외와는 근본부터 다른, 진짜배기 무림의 세가란 말이지?”


모용세가는 과연, 오대세가라고 빙궁의 궁전과 장원의 크기부터 남달랐다. 고작해야 저택이 빙궁의 궁전보다 컸으며 장원의 크기는 이미 빙궁은 가볍게 뛰어넘어 있었다.


“백단 오빠. 그 말은 꼭 빙궁이 오대세가보다 못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백단의 말에 긁힌 빙궁주의 딸 희령이 그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사실이잖아?”


“······.”


백단의 악의 없는 한마디에 희령은 침묵했다.


“···봐줄게.”


아무리 빙궁주의 딸인 그녀가 보아도 모용세가는 압도적이었다. 빙궁보다 따듯한 기후에 풍요로운 대지. 거대한 장원까지.


‘···읏. 모용세가는 왜 이리 큰 거야?’


솔직히 말해 모용세가는 빙궁보다 컸다.


설희령은 빈말로도 빙궁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속으로 한탄했다.


“그보다 어서 들어가 보시지요. 그토록 방문하고 싶어 했던 모용세가가 아니십니까?”


“그러면 그럴까?”


하라의 말에 백단은 그들을 이끌고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목석처럼 가만히 대문을 지키고 있던 모용세가의 수문위사들이 반응을 보였다.


“여기는 모용세가요. 그대들이 누군지 밝히시오.”


수문위사들이 검을 잡으며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했다.


“우리는 이제 막 무림으로 나온 빙궁의 무인들이오.”


“빙궁의 무인들?”


“여기 우리가 빙궁의 무인이라는 상징이 있소.”


“흐음?


백단은 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줄 빙궁의 상징과 서찰을 꺼냈다.


설화령이 그들에게 챙겨준 일종의 무림표 신분증 같은 거였다.


조심히 백단이 건넨 상징을 받아서 든 수문위사는 상징과 서찰을 살펴보다가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어떤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말해줄 수 있소?”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무림 초출이요. 막 무림으로 나왔을 무렵, 모용가의 명성을 듣고 흠모하며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한번 방문해본 것이오.”


“흐음. 모용가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다?”


모용세가를 지키는 수문위사는 모용가 소속. 모용가의 명성을 흠모해 찾아왔다는 백단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흔쾌히 상징과 서찰을 품에 넣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시오.”


수문위사 중 한명이 다급하게 모용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각 즈음 지났을까, 안으로 들어갔던 수문위사가 나왔다.


“그대들의 신분은 확인이 되었소. 들어가도 좋소.”


수문위사 둘이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넓은 장원과 수련장, 그 안에서 수련을 하는 모용세가의 무림인들이 모습을 보였다.


백단 일행은 그 위용에 감탄했고, 곧이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중년의 사내를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고수다!’


백단과 희령, 하라는 단숨에 그가 고수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기척을 못 느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그들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중년의 사내는 희령과 하라를 한번 보다가 백단을 보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백단이 있는지 전혀 눈치를 못 챈 기색이라고 해야 할까. 백단은 이미 거의 자연과 동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고수의 기감으로도 그를 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백단을 점짓 경계하는 듯하다가 이내 그에게 악의가 없음을 파악하고 표정을 웃는 낯으로 바꾸었다.


“가, 가주님?!”


수문위사들이 다급하게 상체를 숙이며 중년의 사내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백단 일행도 기겁하며 다급하게 포권을 올리며 중년의 사내에게 인사했다.


“빙궁의 소궁주 백단이 모용가의 가주를 뵙습니다.”


“빙궁주의 딸 설희령이 모용가의 가주를 뵈옵니다.”


“빙궁 소속, 보우가 모용가의 가주를 뵈옵니다.”


각자 중년의 사내를 향해 인사를 올리자 중년의 사내는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본좌는 모용가의 가주, 모용청淸이라고 한다네. 세간에선 흔히 쇄천검성이라고 부르지.”


“쇄천검성!”


백단은 쇄천검성이란 별호를 들어본 적 없지만 일단 아는 척을 했다.


‘희령아. 쇄천검성이 누군지 아냐?’


‘글쎄요? 저도 들어본 적 없는데요?’


‘다들 조용히 하십시오. 모용가의 가주라고 아까 소개하지 않았습니까. 보통 가주들은 대체로 천하 백대 고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그들 중 한명이겠지요.’


‘아하.’


‘아하.’


“크흠!”


그들의 속닥거림을 들은 모용청은 헛기침하며 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래. 빙궁의 소궁주께서는 여긴 어쩐 일인가?”


“앞서 말했다시피 모용가의 명성을 듣고 흠모하며 그저 방문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첫 무림 초출인지라 유명한 곳을 찾아 방문하고 싶었달까. 그런 이유에서 이곳에 왔습니다.”


“허허. 그런가?”


모용청은 백단을 스윽, 살펴보았으나 거짓으로 꾸미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백단이 모용세가로 온 이유는 정말 ‘그냥 오대세가니까 한번 보고 싶어!’였기 때문이다.


‘허어. 어찌 이런 순진한 아해가 있는가?’


모용청은 빙궁의 소궁주나 되는 인물이 그저 모용세가를 한번 보고 싶어 방문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백단의 기척을 보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리도 자연과 구분과 안 될 정도로 동화되어있다니. 특별한 공법이라도 익힌 것인가?’


모용청은 초절정의 고수였다. 그런데 그의 기감으로도 백단의 기척은 직접 두 눈으로 보기까지 파악하지 못했다.


그는 백단이 빙궁의 것과는 다른 조금 특별한 공법이라도 익힌 것이라 추측했다.


실상은 단전을 만들지 못해서 토납법만 주야장천 훈련하다가 자연과 동화된 거지만.


“아무튼 귀한 손님들이 왔으니 내 환영을 안 할 수가 없지. 오늘 잔치를 열겠으니, 모두 먹고 마시고 즐겨라!”


모용청은 그들을 환대하며 크게 베풀었다.


그들은 모용가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귀빈으로 대우받았다.


그렇게 하루를 내리먹고 마시고 즐긴 다음 모용청은 그들을 불러들었다.


그의 곁에는 훤칠하게 생긴, 백단과 같은 연령대로 보이는 미남이 한명 서 있었다.


“여기 이 아이는 나의 아들 모용우優라고 하네.”


모용청은 그를 자기 아들이라 소개한 다음 백단에게 말했다.


“향후 모용세가를 이을 나의 후계자지. 그대도 빙궁의 소궁주라고 했던가? 어떤가. 한번 서로의 무武를 겨뤄보는 것은?”


“좋습니다.”


‘무협 이벤트 떴다!’


백단은 드디어 무협 소설다운 무협 이벤트(?)가 떴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무협 세계에 들어와 진짜 무림인과 결투를 벌인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모용우는 희령을 힐끔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저. 소저. 소저는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요? 저는 설희령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고아한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이십니다.”


모용우는 설희령의 외모에 푹 빠진 것 같았다.


‘허?’


그리고 그것을 눈으로 직관한 백단!


방금까지 무협다운 이벤트가 떴다고 흥분했던 마음이 단번에 차분히 가라앉으며 그의 안색이 굳었다.


‘이새끼 봐라?’


백단은 무협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21세기 현대인의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무수한 짐승과 악한을 도륙했어도, 적어도 그의 도덕관념은 기본적으로 현대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 그가 17살짜리 사내놈이 14살 제 여동생(같은 아이)에게 작업을 거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분이 팍! 상해버린 것이다.


백단은 슬쩍 희령의 어깨를 잡아 제 뒤로 감췄다.


그리고 모용우를 노려봤다.


“거, 남의 여동생을 빤히 바라보십니다.”


“여동생이었습니까? 성이 달라 약혼자로 보였습니다만. 이거 다행이군요.”


백단의 말에 도리어 안도한 표정을 지은 모용우.


“아뇨. 약혼녀 맞는데요?”


“???”


그러나 이어지는 설희령의 말에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희령아. 나는 네 오빠다.”


백단은 다급하게 희령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어차피 양자였잖아. 그리고 호적에서 파였잖아.”


“······.”


그러나 희령의 한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희령은 당황하는 모용 부자에게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우리 백단 오빠는 양아들이 되었다가 호적에서 파였거든요. 그래서 제 약혼자가 되었어요.”


“······.”


“······.”


모용청과 모용우는 설희령의 말에 침묵했다.


하라는 희령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그냥 대련이나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용우 도령.”


“···그, 그럽시다.”


모용우는 저 기묘한 가족관계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아 백단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모용우와 백단은 서로를 마주 보고 대련장 한 가운데 섰다.


어느새 주위 무사들이나 모용가의 사용인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가장 위의 상석에선 모용세가의 가주와 장로로 보이는 사람들이 줄줄이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자. 모용가주의 아들 모용우라고 합니다. 과분하지만 귀공자貴公子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지요.”


“저는 북해빙궁의 소궁주. 백단이라고 합니다. 별호는 없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뒤 기수식을 취한 그들.


그러자 심판이 징을 치며 대련의 시작을 알렸다.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모용우가 검을 뽑아 오른손으로 쥐고선 왼손으로 검결지를 쥐었다.


백단 역시 그를 마주보며 검을 쥐며 양손으로 쥐었다.


그 단순한 자세에 모용청을 더불어 장로들의 표정에 의문으로 가득 찼다.


모용우도 백단의 자세에 당황하며 그에게 물었다.


“검결지를 쥐지 않으십니까? 특별한 검법 자세로는 안 보입니다만.”


“아. 저는 삼재검법을 익혔습니다.”


“삼재···, 검법 말입니까? 설마 저잣거리의 무인들이 배우는 그···?”


“예. 맞습니다.”


백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위에서 탄식과 야유가 튀어나왔다.


“그,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다른 검법을 배우시지 않으신 겁니까?”


“저에겐 삼재검법만이 전부입니다. 권법도, 다른 무기술도 배운 적 없습니다. 아, 그래도 저 나름대로 무공을 개량해 저는 삼매검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허···. 그렇군요.”


모용우는 백단의 말을 듣고 탄식을 흘렸다.


“빙궁의 소궁주가 고작해야 삼재검법을 익힌 범인이라니.”


삼재검법이 무엇인가!


삼재검법은 말이 검법이지 세로 베기, 가로 베기, 찌르기로 이루어진 극히 단순한 검법.


당장 저잣거리에서 동전 몇푼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삼재 검법이었다.


그런 만큼 낭인들이나 익히는 무공이 바로 삼재검법이었다.


그런데 북해빙궁의 소궁주나 되는 작자가 삼재검법을 사용한단 말에 모용우는 실망하고 말았다.


“오랜만에 제 나이대에 걸맞은 적수를 만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모용우는 백단에게 내심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백단은 몰랐으나 모용우는 나름 세가 내에서 기대를 듬뿍 받으며 성장해온 재능있는 무인.


그는 백단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드디어 적수(라이벌)라고 할만한 존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모용가의 후계자. 상대는 빙궁의 소궁주이니 나름대로 급이 맞는 상대라고 여겼다.


‘그런데 삼재검법이라니!’


그런데 이게 웬걸?


속을 까보니 소궁주는 정작 삼재검법이나 익힌 범인이었다!


‘삼재검법을 개량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검법이라고?’


물론 백단 딴에는 삼재검법을 자기 나름대로 어레인지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삼재검법이라고 생각한 모용우는 크게 실망했다.


“······.”


‘이 새끼가? 내가 이 검법을 마스터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대놓고 실망하는 모용우의 표정에 백단의 머리 위에 혈관이 튀어 올랐다.


그가 지난 10년간 개고생한 세월 전부를 무시한 표정에 그는 분노했다.


“한 수, 아니 세 수 양보해드리겠습니다. 삼재검법을 익히셨으니 세 수는 펼쳐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자. 한번 덤벼오시지요.”


“하. 하하하.”


백단은 모용우의 말을 듣고 그저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모용우의 태도에 분노 이전에 얼이 나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눈에 불꽃을 튀기며 양팔의 근육이 도드라질 정도로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예. 그러시지요. 저는 한 수에 끝내드리겠습니다.”


백단에게 이토록 심한 모욕은 처음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더 나아간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더 나은 인생이 아니라, 더 나아간 인생을 말이다.


후회하더라도 의미가 있는, 미련을 가지더라도 더 나아간 삶을 위해 말이다.


그런 그에게 무공은 그야말로 그의 삶의 정체성!


그가 전생보다 더 나아졌음을 증명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모용우가 무시한 것이다!


‘고작해야 17살짜리가!’


정신연령 37살 백단은 모용우에게 진심으로 분노하며 검에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의 검에서 반투명한 검기가 뿜어지자 모용우는 감탄했다.


“과연, 일류에는 이르셨다는 거군요.”


그러나 이내 그의 검기가 붕괴하더니 검사로 압축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검사?! 설마 절정의 경지에 오르신 겁니까?”


그제야 모용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점짓 진지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아마 백단의 검사를 보고 그가 상상이상의 강자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백단의 경지는 ‘고작’ 절정 따위가 아니다.


그의 검에서 이내 무수한 검사가 뿜어져 나왔다.


검사가 씨실과 날실이 엮이며 직조되듯 얽히기 시작했다.


이윽고 찬란하게 검을 휘감은 빛을 보자 모용청과 장로들이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강?! 검강이라고?!”


백단은 검강을 휘감은 검을 하늘 위로 치켜올렸다.


“분명히 당신이 말했습니다.”


“어어?”


모용우는 백단의 검을 휘감은 검강을 보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세 수 양보하겠다고.”


―――그러니까 한 수 안에 끝내주마. 어린 놈의 새끼야.


백단이 모용우의 옆을 향해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강이 참격처럼 뻗어나가며 모용우의 검을 가르더니 그의 옆을 스치며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군중이 비명을 지르며 마치 홍해처럼 갈라지며 바닥을 굴렀다.


백단이 내지른 검강이 모용세가의 담벼락을 가르며 대지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털썩. 모용우는 그 압도적인 참격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계속, 하시겠습니까?”


백단이 검강을 뿜어내며 사신과 같이 섬뜩하게 그에게 물었다.


“제, 제가 졌습니다···.”


모용우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고개를 필사적으로 저었다.


백단의 압도적 승리였다.


-


“부디 부탁이네. 흑룡을 잡는데 힘을 보태주게.”


“예?”


그리고 그날 저녁, 백단은 모용청에게 흑룡을 잡아달란 부탁을 들었다.


어쩐지 목의 피멍이 아린 백단은 무의식적으로 목을 쓰다듬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역시 무협은 어렵네요. 제대로 묘사하려고 해도 무협을 모르니까 역시 힘든 것...

무협은 도대체 뭘까요. 어서 빨리 대체역사편으로 넘어가야만!

(정작 작가는 역사를 모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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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발해국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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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건국기 13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2) 24.09.04 35 1 16쪽
36 건국기 12화. 도토리 혁명Acorn Revolution 24.09.03 41 1 20쪽
35 건국기 11화. 백단과 비녀羆女 24.09.03 38 1 14쪽
34 건국기 10화. 박달나무 아래 곰이 쓰러지다 24.09.03 41 1 12쪽
33 건국기 9화. 박달나무와 곰, 달과 호랑이(2) 24.09.02 42 1 11쪽
32 건국기 8화. 박달나무와 곰, 달과 호랑이 24.09.02 46 1 12쪽
31 건국기 7화. 키문카무이Kim-un-kamuy 24.09.01 51 1 22쪽
30 건국기 6화. 스톤펑크Stonepunk 24.09.01 53 1 26쪽
29 건국기 5화. 그걸 해결해도 소용이 없다. 24.08.31 47 2 20쪽
28 건국기 4화. 또 하나의 문제가 나오고, +2 24.08.29 49 1 27쪽
27 건국기 3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24.08.29 54 1 17쪽
26 건국기 2화. 총체적 난국 24.08.29 68 0 19쪽
25 건국기 1화. 시작부터 망해버린 이세계, 아니 건국 생활 24.08.28 89 1 23쪽
24 프롤로그 완. 이주Migration +2 24.08.28 76 2 27쪽
23 프롤로그 1년. 그동안의 준비와 만남, 그리고 운명 24.08.27 72 2 31쪽
22 프롤로그 -5~-1년. 인생의 목표, 야망 24.08.26 70 1 18쪽
21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완) 24.08.26 67 1 24쪽
20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3) 24.08.23 71 1 20쪽
»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2) +2 24.08.22 71 2 22쪽
18 프롤로그 -5년. 백룡의 꿈, 흑룡의 꿈 24.08.21 70 1 12쪽
17 프롤로그 -5년. 무림 초출 24.08.21 72 2 20쪽
16 프롤로그 -5년. 검강劍罡 24.08.21 76 2 30쪽
15 프롤로그 -7년. 백단의 청 24.08.20 72 2 12쪽
14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완) +2 24.08.20 84 1 19쪽
13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2) +2 24.08.19 84 3 23쪽
12 프롤로그 -7년. 은호사냥 +2 24.08.19 89 3 29쪽
11 프롤로그 -11년. 심검心劍 24.08.18 92 2 16쪽
10 프롤로그 -11년. 검기상인劒氣傷人, 삼매진화三昧眞火 24.08.16 99 2 29쪽
9 프롤로그 -11년. 늑대 24.08.16 103 2 26쪽
8 프롤로그 -12년. 삼재三才 24.08.15 107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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