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약점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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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트레인
작품등록일 :
2024.08.15 05:24
최근연재일 :
2024.08.1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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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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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DUMMY

사직구장에 울러퍼지던 응원가가 어느덧 잦아들었다.

아직 9회가 남아있었지만, 이미 승부는 1회부터 크게 점수를 내준지 오래였기에.

관중들은 이미 낙담하고 떠난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란 스포츠는 9회가 끝나야 경기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닝을 끝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게 나라는 것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27살이란 나이.

야구선수로는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였고, 그렇기에 은퇴를 코 앞에 둔다는 건 생각도 못할 나이일거다.

허나 젊은 나이와는 상반되게 내 몸은 이미 헐어버린지 오래된 상태니까.


‘그나마도 이제 끝이겠네.’


지긋지긋한 야구 인생도 이제 끝이었다.

동시에 그동안 있었던 프로에서의 생활들이 떠올랐다.


‘첨엔 좋았었는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시점.

처음 서는 1군 무대가 너무 좋아서 선발 불펜 너나할거 없이 200이닝을 던져도 아무렇지 않았던 시절.

신인왕과 더불어 골든글러브까지 먹었던 환상적인 시절이었다.

그것과 동시에 젊음이라는 기적으로 고장나는 줄 모르고 계속 공을 던졌었고.

그것도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결국 고장났지만···.’


너무 많은 공을 던졌다.

3년간 던진 이닝수만 해도 600이닝을 넘겨버렸으니까.

멀쩡할 거 같던 어깨도 팔꿈치도 허리도 모두 한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수술···.’


무려 어깨 수술.

투수로서 재기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여겨지는 회전근개 수술을 받고 말았다.

그로인한 구속 20km 이상 저하.

최전성기때는 160km 마저도 찍었던 구속이 이제는 138 클럽 수준.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고.


‘그냥 투수가 아닌거지.’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야구만 바라본 인생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본래 던지던 투구폼도 버려버렸고 생전 쓰지 않던 구종들도 연마해보았다.


‘잠깐이긴 했지만···.’


단기적으로 부활하긴 했다.

좌완이라는 이점 때문인지 느려터진 공으로도 1달 정도는 막을 수 있었으니까.

허나 그게 끝.

1달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등판을 하지도 못했다.


‘그때, 관리만 받았더라면···.’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당시 나를 중용했던 감독도, 그런 상황을 만든 구단도, 나 대신 이닝을 먹어주지 못했던 다른 투수들도.

이런 생각이 다 의미없지만, 그럼에도 원망스러웠다.


‘구단도 양심은 있는지 올해까진 하라고 했지.’


하지만 구단도 나도 알고 있다.

더 이상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지금 있는 마운드가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플레이 볼!”


심판의 마지막 콜.

상념에 젖어있던 나는 그제서야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상대는 백업 야수들.

이미 상대팀 주전 선수들은 죄다 빠진 상황이었다.


“스트라이크.”


그럼에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세게 던졌다.

초구, 이구, 삼구.

그저 있는 힘껏 짜내어 공을 던져대었다.

허나.


‘134km···.’


전광판에 찍힌 터무니 없는 숫자는 힘이 쭉 빠지는 거 같았다.

알고 있지만, 아니 알고 있기에 왜인지 공을 던지기가 너무나도 싫어졌다.

다행인건 제구는 나름 잘되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위안 삼을 거리였다.


“후···.”


2s-1b.

왠만해선 투수가 질 수 없는 카운트가 완성되었다.

게다가 상대 타자는 키도 작고 삐쩍 말라서 제대로 된 타구를 못 만들어 낼거 같았다.


“흐읍!”


기합이라도 내며 기운을 차려보려 했다.

구위가 비록 썩 나쁘더라도 이번 타자만큼은 이기고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왜인지 공은 평소보다 비실비실 움직이고 있었고.


딱!


“씨발!”


타구가 하늘 높이 뻗어가면서 결국 담장을 넘어가고 말았다.


‘은퇴식조차 배드엔딩이구나···.’


그리고 타자는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치지 말아야 할 공을 쳤다는 듯이.


“하···.”


이젠 나는 투수도 아니라는 건가.

타자랑 싸워야 하는 투수가 이제는 동정심이라니.

정말이지 짜증나고 한탄스러운 상황일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렇게 끝나지 않을 은퇴.

화려하진 않아도 박수를 받고 내려왔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현실을 잊기 위해서.


“어라?”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돌아온 것이었다.




###




“이게 말이 돼?”


방금 전까지 마운드에 있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눈을 뜨니, 눈 앞에는 내가 어릴때부터 쓴 방이 존재했다.


“술도 안마셨는데···.”


심지어 사고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잠시 깝깝해서 눈을 감았을 뿐인데···.

마치 몰래카메라라도 한 듯 눈 앞이 바뀌어 있었다.


“설마?”


혹시 내가 화병으로 돌아갔나 싶어서 뺨을 때려보았다.

그것도 쎄게.


짝-!


“아프네···.”


이건 꿈이 아니다.

믿을 수 없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정신부터 차리자.”


적응해야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선은 내 방에 온 것은 확실하니 화장실부터 가보기로 했다.

세수라도 하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어라?”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려졌어···?”


27살의 나이.

아직은 어린 나이였지만, 그간 야구로 인해 고생이 심해 늘 30대 소리를 듣던 나였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

확 늙었던 그때의 모습이 아닌 앳된 소년의 얼굴이 비춰져 있었다.


“···.”


나는 멍하니 거울을 계속 바라봤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눈으로 계속 내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든 생각.


‘돌아온건가···?’


그와 동시에 내 시선은 팔로 향해있었다.


“흉터가 없어···?”


그간 나를 괴롭혔던 흔적들.

원래라면 계속 붙어다녀야 했던 것들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것이 사실이라는 것 마냥.


‘아니, 사실이 맞지.’


적응을 좀 더 해봐야 아는 사실이긴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현상들은 모두 다 내가 과거를 거슬러 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어째서인지 왼쪽 어깻죽지 부분.

그곳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건 마치 무언가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별 희안한 일이 다 있구나.”


과거로 돌아온지 1시간도 채 안되었을 거다.

일단 씻고 정리를 하자.

곧 있으면 아빠가 올수도 있으니까.




###




“아빠, 왔다.”


늦은 시간.

혼자 있던 집에 아빠가 돌아왔다.


“왔, 왔어?”


살짝 어색한 감이 있었다.

미성년자 시절이던 때에는 관계가 좋았지만, 어른이 되서는 사이가 뜸해졌기 때문.

그래서 그런지 이런 아빠의 반응이 꽤 낯설었다.


“어, 넌 뭐하고 있었니? 어제 시합있어서 하루종일 쉬었을텐데.”


아, 그래서 몸이 조금 피곤한거였나?


“응, 뭐. 계속 집에 있었지.”

“그래, 열심히 운동했으면 하루 쯤은 쉬어야지.”

“응, 그치.”


어색해서 미칠 거 같다.

아빠는 아무 생각없이 답하는 데 나는 왠지 간지럽게 느껴진다.

이게 원래 맞는건데···.


“진하야. 무슨 일 있어? 왜, 아빠가 말하는데 어색해해.”

“응?”


어색하는게 들킨건가?

나는 잠시 변명을 하기 위해 생각했다.


“아니야, 아빠. 그냥 게임해서 그래.”


게임 따위 한 적도 없지만 꽤 괜찮은 핑계였다.


“그래? 너 이 녀석 게임을 얼마나···.”


과거 아빠의 습관.

잔소리를 하면서 슬쩍 나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시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었다.


“아빠?”


오른팔을 올리려던 아빠.

하지만 왠지 멈칫 거리는 동작으로 이어졌다.

평소에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어째서···.


‘응?’


그때였다.

희미하게 빛나는 아빠의 오른쪽 어깨.

아빠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그 빛은 서서히 더 커져가기 시작했다.


“아, 아니다. 진하야. 요즘 어깨가 안좋아서 운동을 좀 했더니···.”


단순 근육통이라면서 너스레를 떨기 시작한 아빠.

겉으로 보기에도 어깨가 비틀렸다는 지 그런 점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다만.


‘저 빛은 뭘까?’


계속해서 보이는 저 빛을 향해 다가가고 싶었다.


“아빠.”

“응?”

“잠시 어깨 좀 내어줄래? 스트레칭 해줄테니까.”


아빠의 오른 어깨를 잠시 손으로 쥐었다.

또한 뭉쳐있던 근육을 넓게 펼쳐서 부드럽게 펴 발라 주었다.


“으악!”


처음에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긴 했다.

하지만 이내 시원함을 느낀 아빠는 안색이 무척이나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졌어···.”


아빠가 느끼던 고통이 사라진 것처럼.


“뭐가 사라졌다는거니?”

“응? 아니야. 나 잠깐만.”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과거로 온 것조차 머리가 지끈거려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일어나다니.

과연 신이 있다면 얼마나 절과 기도를 해야 한다는 걸까.


“후···.”


화장실 앞.

문을 열고 곧장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재꼈다.

동시에 거울에서 나오는 빛을 향해 손가락을 꾹 눌러보았다.


“윽···.”


느껴진다.

그토록 싫어했던 감각 하나가 내 어깨를 찌르듯이 다가왔다.

하지만 내 얼굴은 어째서인지 웃고 있었다.


“미친건가···?”


아니.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은 것 뿐이다.


‘그래. 바로 이거야!’


희미한 고통 속에 나는 어깨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빠와 마찬가지로 빛이 스멀스멀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만, 단순 근육통이던 아빠와는 달리 남아있는 빛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이건 어쩔 수 없나···.’


나는 절로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진하야?”


화장실 밖을 나오니 아빠가 나를 마중나와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안에서 했던 짓거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젠장.


“아···. 음···. 그냥 못 본척 좀 해줘요.”


그나마 아까 어색함을 풀고 갔었는데.

다시금 어색함이 집안을 맴돌기 시작했다.


“···.”

“···.”


나와 아빠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떠날까 말까 고민할 뿐.

그러다가 먼저 말을 연 건.

다름 아닌 아빠였다.


“···밥은 배달 시킬까?”

“···.”

“뭐 먹고 싶니?”

“뜨근한 어묵···.”


참고로 지금은 여름이었다.

그건 아빠가 오기 전 잠시 바람쐬러 갔다가 바로 깨달은 사실.


“그래. 좋다.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잖니. 나도 뜨끈한게 먹고 싶었단다.”

“아, 어. 아빠도 어묵 먹게?”

“어? 난 튀김우동 먹을건데. 엄마가 참 좋아했었거든.”

“···.”


내가 태어나자 마자 돌아가신 우리 엄마.

솔직히 기억에는 없지만 사진 속에 있는 우리 엄마는 꽤 이뻤다.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근데 갑자기 엄마는 왜···?”

“아니, 그냥. 어묵하면 우동이고, 우동하니 튀김우동이 떠올라서.”

“그렇구나.”


알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화.

그런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 어느 덧 배달 음식이 찾아왔다.

메뉴는 튀김, 어묵 우동.


“그보다 머리는 괜찮니? 아까 막 소리지르길래.”

“푸흡.”


먹는데 그런 이야기 하기 있는 건가 싶었다.


“아, 됐어. 그 이야기는 그만.”

“···그래. 어디 아픈거 아니면 됐다. 아프면 야구 못하잖니. 너가 좋아하는.”

“그건 그렇지.”


돌고 돌아 이번에는 야구 얘기가 되었다.

그래.

이번에는 아프지 않고 야구 해야지.


“나 이제는 건강하게 야구 할거야. 오래 오래.”

“전에는 건강하지 않았던거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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