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NBA 서머리그(NBA Summer League)(1).
올슨 파크 아파트먼트(Olson Park Apartment).
토니의 집 (Tony's House).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MN).
[TIMBERWOLVES MESSENGER]
[공지사항]
[7월 4일. 07:00 pm.]
[팀버울브스 구성원 모두에게 알려 드립니다. 서머 리그(Summer League) 일정에 따라 로스터가 확정되었으니 확인하여 주시기 바라며, 참여 선수들께서는 특히 부상에 주의 바랍니다.]
딸깍-.
팀 메신저를 확인한 후 새로 구한 숙소에 누워 몸을 뒹굴거린다.
하얗게 칠해진 벽은 마음에 쏙 들고, 신축 건물이라 그런지 편의 시설도 완벽하다.
Nice.
편한 아파트. 나의 공간.
아 물론, 앞으론 혼자만의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칼렛, 그녀가 오면 침대는 아주 비좁아지고 많이 삐걱거릴 테니까.
그녀는 오클라호마에 정리할 일이 있다며 돌아갔고, 며칠 후 다시 오겠다고 했다. 다음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계속 같이 있자는 건가 싶다.
그녀가 오면 물어봐야겠다.
난 에드윈의 도움을 받아 타겟 센터 주변에 이곳을 구했다. 9A 버스를 타면 경기장까진 2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
월세가 제법 비싸긴 하지만, 통장으로 월급이 격주로 들어올 예정이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셰어하우스는 어때?"
"글쎄."
팀 동료에게 그런 조언을 받기도 했지만, 프로 선수에게 있어 휴식은 가장 중요한 요소.
차라리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게 훨씬 낫다.
자자, 내 지갑 사정을 한 번 볼까?
첫해 연봉 $398,762.
루키 스케일(Rookie Scale) 계약.
NBA 신인은 뽑힌 순서대로 연봉을 받게 되어있고 먼저 선택되면 그만큼 월급도 많이 받는다.
내 통장엔 한화로 5억 3천만 원 정도의 돈이 나눠서 입금 예정이다.
잔뜩 기대 중이지.
1순위로 뽑힌 앤드류 보거트의 $4,340,520 까지는 안 되지만⋯ 신인인 지금 연봉이 내가 한국 리그에서 받은 것과 비할만하다.
한국은 FA 최대 금액이 9억원 정도 되었으니까.
나도 'FA 대박'을 한 번 쳤었고, 한 달 동안 청담동 소고기 쏘러 다니느라 정신없었다.
친구놈들이 얼마나 잘 들 먹던지.
하지만, 이건 소고기로 끝날 규모가 아니다.
미국은 어떻냐고?
농구만 잘하면 9억이 아니라 90억, 아니 광고 수입이나 CF 및 스폰서 등까지 포함하면 900억 까지 노려볼 수 있는⋯ 꿈의 무대다.
아디다스 나이키는 기본이고, 소규모 브랜드와 계약해도 기본이 100만 달러. 그들이 제공하는 농구화를 신어주는 아주 간단한 조건이다.
이곳은 바로 위대한 미합중국.
Great America.
그리고 NBA.
여기서 성공하면 부자가 되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생각하며⋯ 구단에서 보내 준 자료를 천천히 읽어본다.
서머 리그 (Summer League).
작년부터 NBA에서 개최하고 있는 소규모 리그.
저 연차 선수 또는 NBA 언드래프터. 그리고 이곳에 직장 얻고 싶어하는 해외 리그 선수들이 기량을 어필하는 좋은 기회다.
회귀 전, 나도 이 리그에서 뛸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물론 생각에 그쳤었지만.
NBA 15인 기본 로스터 중, 거의 끝자락. 그러니까 마지막 열 다섯 번째 의자 하나를 두고 몰려드는 도떼기시장.
경쟁률은⋯.
체감상 한 50대 1 정도 된다고 보면 될까?
그 경쟁자들은 핫바리가 아니다.
그래도 한 도시에서 농구를 가장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인재들이지.
문제는 여기서 이기더라도, 또 험난한 여정이 선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다. 구단은 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약으로 마지막 선수를 붙잡고, 그 비보장 계약(Non-guaranteed)은 결코 그의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전날 집에서 잘 자고 있는데,
'이봐!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야.'
라고 전화가 오면 영문도 모르고 쫓겨 나가는거다.
그런 면에서, 난 정말 다행이다 싶다.
어쨌거나 서머 리그 뛰는 선수 중 신분이 확실한 선수는 드래프터 들이고, 다른 선수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을 테니까.
"으으음. 그건 그렇고⋯."
자자, 그럼 이제 준비해야지?
구단에서 정리 해놓은 자료를 보니 앞으로 경기는 딱 5개.
[Jul 6, 2005 / vs Sacramento Kings]
[Jul 7, 2005 / vs Phoenix Suns]
[Jul 9, 2005 / vs Portland Trail Blazers]
[Jul 13, 2005 / vs Dallas Mavericks]
[Jul 14, 2005 / vs @ New Orleans Hornets]
다행히도 4경기가 홈에서 있는 데다, 원정 뉴올리언즈는 마지막이니 이동에 부담은 없다. 정규 리그에선 열심히 적응해야겠지만⋯ 지금부터 너무 홈-원정-홈-원정 할 필요는 없잖아?
[어떤 경기에서 제일 날뛰고 싶으냐. 인간.]
(글쎄?)
그 출발점인 새크라멘토 킹스전.
정규리그 멤버들은 나오지 않는데다, 난 20분 이상의 출전시간이 보장되어 있기에 리그에 적응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팬들도 기대하고 있는 첫 리허설.
올해 뽑은 루키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지 볼 수 있는 좋은 찬스다.
특히 각 팀의 올드 팬들은, 전 경기 티켓을 예매하는 게 기본 중 기본이다.
["올해야말로 제대로 하겠지?"]
["우리 팀엔 가드가 너무 없어. 멋진 녀석 하나 구해 와!"]
["KG! 그를 보좌해 줄 좋은 선수는 없나? 크리스찬 레이트너(Christian Laettner), 그 녀석만 제대로 성장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건데! Shit!"]
["그 바보는 잊어버려. 떠난 지 오래야."]
그런 기대쯤,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 있지.
우리 팀 커뮤니티엔 내 이야기가 종종 올라오고, 꽤 전문적인 분석을 해 놓은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내 플레이를 주목하겠다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팬들에게 인사하러 가볼까?
***
7월 6일. 새크라멘토 킹스 전. 타겟 센터.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는 코트를 뒤덮었고, 생각보다 관중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천장에 설치된 화려한 조명은, 선수들을 슬쩍슬쩍 비추며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Minneapolis!!]
[It's time to hear you howl for your Minnesota---Timberwolves!!]
[We are Ready! to win!]
한국 리그가 엄숙함, 그리고 진지함이라면 NBA의 분위기는 축제, 그 자체다.
경기 시작 전 열광적인 랩이 흘러나오며, 선수들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치어리더들은 아름다운 율동을 선보인다.
관중들 또한 선수들을 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Oh--.
신난다.
워밍업을 하며 몸을 충분히 데워놓은 난, 음악이 흘러나오자 도파민은 미친 듯이 뿜어나온다. 이런 분위기에서, 바보처럼 찌그러지고 싶은 선수는 아무도 없을 거다.
모두 스타팅 멤버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헤이-."
"웰컴-."
서머 리그 멤버들은 며칠 전 처음 만났고, 그런 우리에게 정규 시즌 정도의 완벽한 호흡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거다. 그건 새크라멘토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개인 역량과 흐름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경기다.
"자신 있어?"
"그럼. 킹스는 내가 잘 알지. 저 멍청이들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어."
"난 이 리그에서 살아남아야 해-. 나에게 계약을 달라고."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경기에 대한 의욕을 보이며, 장내 아나운서는 선수들을 소개했다.
난 그중에서 브레이시 라이트(Bracey Wright)라는 텍사스 더 콜로니(The Colony) 출신의 선수를 주목하고 있다. 훈련 때 잠깐 봤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더 열정적이고 진지하다. 우리 팀 코치들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며, 오늘 주전 슈팅가드 자리를 그에게 맡긴다.
나와 거의 비슷한 키.
그리고 비슷한 포지션.
"이봐. 난 네가 참 부러워."
"어떤 게?"
"적어도 다섯 경기가 끝난 후,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난 그의 말을 받으며 런지를 시작했다. 그때, 장내 아나운서가 나를 소개했다.
["From Southeastern Oklahoma State, who graduated from an unknown university."]
["No.3-3----3-!!!! Tony, Jeon!]
"Whoooo-."
"Unknown-!"
선수 소개부터 내 어록을 가져다 쓸 줄 몰랐는데, 장내 아나운서에게 커피 한 잔 산 게 효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끄러워서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팬들이 Unknown을 떠들고 있는 걸 보면⋯ 잠시 유행이 될지도?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민수 선수의 'Chooo-' 같은 느낌으로, 난 함성을 실컷 즐기고 있다.
라샤드가 이 자리에 없었기에, 오로지 나만 이 팀의 선택을 받은 드래프터다. 그 자부심은 화려한 조명 속에서 진하게 빛나고 있다.
"헤이- 유명 인사군."
"무명이 아니라 유명 같은데."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난 천천히 코트로 들어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난 NBA의 첫맛을 달콤하게 느끼고 있다.
***
<2Q, 02:15>
<Minnesota Timberwolves 32 : 30 Sacramento Kings>
코트 위는 전쟁터다.
Basketball is War.
지금 이곳엔, 정규 시즌과 맞먹는 에너지가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든 관계자의 눈에 띄려는 선수들의 발버둥은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
미식축구도 이렇게 과격할까?
글쎄요- 모르겠지만, 만만치는 않을걸요?
거의 바디 체크를 연상케 하는 골 밑 전쟁. 그리고 가드들 또한 얄짤 없다.
내 매치업 상대도 마찬가지고.
"휴우우-. 무서운데."
파아앗-
킹스 유니폼을 입은 로니 프라이스(Ronnie Price) 라는 녀석. 그가 흉흉한 눈빛을 쏘아대며 빈틈을 노리고 있다.
퉁퉁-.
"이봐. 방심하지 않는 게 좋아."
"글쎄?"
"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내가 드래프트 되지 않은 건⋯ 멍청이 같은 병신 단장 놈들 때문이지."
경기 내내 투덜거리는 녀석은 미네소타에서 만났던 케이딘 패스트(Kadyn Past), 패스라곤 안 하던 그 볼호그 녀석과 똑 닮았다.
우리 코너 쪽은 수비가 허술하지만, 그 쪽으론 패스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다.
같은 새크라멘토 팀원들은 그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너 혼자 다 할 셈이냐-."
"혼자 돋보일 생각이라면 때려치워. Fuck up-."
로니 프라이스는 그런 야유 따위 상관 않겠다는 듯, 림을 향해 달려들다가 볼을 놓쳤다.
어이없는 Turn Over.
휘이익-
난 앞에 있는 브레이시에게 롱 패스를 건넸고, 그는 아주 가볍게 득점을 추가한다.
앞선에서 이렇게 쉽게 턴오버가 나올거라 예상을 못한 듯, 상대 선수들은 얼어붙었다.
"Thanks, Tony."
"뭐⋯ 이 정도야."
내가 넣어도 되지만, 난 벌써 5점이나 넣었다. 이 정도 양보는 문제없지.
경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내 매치업이 멍청이인 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녀석은 너무 흥분했고, 몸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며 밸런스는 무너져 내린다.
저래서는, Oh boy.
3점을 절대 넣을 수 없지.
난 슬쩍 공간을 벌리며 돌파만 막는 수비 자세를 취했다. 그러면 아마 녀석은⋯.
티이잉-.
예상대로 밸런스가 깨진 던진 슛은 림을 맞고 튀어나온다.
'프로' 출신이라면 누구나 감을 잡을 수 있다. 날아가는 볼줄 모양만 봐도, 저 슛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80% 정도는 눈에 보인다.
"Shit. 그건 너무 무리잖아-."
"이런! 패스 좀 하라니까!"
그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며, 난 우리 팀 덩어리에게 볼을 건네받았다.
수비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적게 쓰면⋯ 나중에 몰아치기를 하기에 아주 좋다.
언제 스킬을 써볼까?
오늘도 역시 4쿼터에?
[이봐. 그전에 교체 될 수도 있어. 잘 생각해.]
(음.)
그래. 오늘은 정규 시즌이 아니고, 난 4쿼터에 자리를 비울 예정이다.
뛰고 싶다는 의견은 전달했지만, 팀 닥터는 첫 경기부터 무리하다간 햄스트링이 올라올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 모습을 관찰하며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하고 있다.
그렇다면⋯ 슬슬 게임을 폭파시켜도 상관없잖아?
로니 프라이스, 저 바보에게 드래프터의 위엄을 보여줄 시간이다.
[스킬 – '대한민국 양궁 만세 Lv.1'가 발동합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저 멋진 문구.
하지만, 로니 프라이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볼이 붉게 타오르자, 난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타겟 센터에서, 적어도 스킬 발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
"헤이- 맨."
"뭐?"
"스킬빨이라고 들어는 봤나?"
"스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녀석의 머리 위로 슛을 쐈다. 볼의 감촉이 느껴지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휘이익-
철썩-
["Bang! Easy Money. 우리 팀 루키가 서머 리그 첫 3점을 적중시킵니다."]
["그는 두려움이 없고 승리를 아는 선수죠. 앞으로 이런 모습을 자주 보게 될 겁니다. 약속하죠."]
["저 친구가 이번 우리 팀 루키야!"]
["토니, 진짜 너를 보여줘."]
관중들의 환호에 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코트는 점점 편하고, 플레이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초반엔, 패스 위주로 팀을 이끌 생각이었다.
하지만, 슬슬 공격이나 좀 해볼까?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자자! 이번엔 돌파로 찢어버려.]
(좋아.)
스킬창은 내 눈앞에 반짝였고.
로니 프라이스의 이마엔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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