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 사무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안경in
작품등록일 :
2024.08.19 21:39
최근연재일 :
2024.09.13 17: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05
추천수 :
2
글자수 :
129,960

작성
24.08.19 21:55
조회
6
추천
0
글자
12쪽

4화 산 넘어 산

DUMMY

드디어 도착했다.

철수의 심장이 묘하게 떨렸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삐걱삐걱.


낡은 소리가 계단과 복도에 울렸다.

그렇게 작은 철제 문 앞에 섰다.

이 문을 열면 된다.

그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리셋 버튼을 누르는 감각으로 철수는 문고리를 잡았다.

심호흡을 길게 한 후 문고리를 돌렸다.


끼이익-.


어두운 사무실 내부에 복도 센서등이 비집고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철수는 본능적으로 이곳에 누군가 있음을 느꼈다.

약자의 본능이었다.

동물적 감각으로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다.


쾅-!!


하지만 문은 시커먼 총신에 걸려 다 닫히지 않았다. 

철수는 그 총구가 자신에게 오지 않게 아래에서 위로 쳐 올렸다. 

총구의 방향은 변환시켰지만 완력으로 문이 강제적으로 열려버렸다.

상대가 철수보다 너무나 건장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철수는 이를 까드득 갈았다.


“라이언···!”


철수는 너무나도 영리하게 도망을 쳤다.

토끼답게 아무런 준비 없이 오직 순발력으로 이런 함정까지 한건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자는 혼자 사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라이언의 워치에선 다람쥐가 좌표를 찍어준 작은 화면이 떠오르고 있었다.

라이언은 총을 까딱이며 철수에게 겨누었다.


“오랜만입니다. 김철수 씨.”


라이언의 총구는 거침이 없었다. 

철수를 겨냥한 채로 다가왔고 철수는 하리를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짧은 대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짧은 침묵 이후에 라이언은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꺄아악-!”

“큿, 크윽···!”


하리는 경악으로 비명을 질렀다.

철수는 가까운 거리에서 고스란히 맞았다. 

얇은 몸뚱이가 총알에 밀리며 맞았다.

다 맞았을 땐 한쪽 무릎을 꿇으며 허물어졌다.


“쿨럭···. 헉, 흐···. 미친···.”


철수의 입가엔 핏줄기가 한줄 흘러 나왔다.

하지만 끝까지 하리를 지키려는 것인지 팔을 뻗어 막아 세웠다.

라이언은 그런 철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역시, 수상한 인간이다. 

일반인도 이정도로 가까운 거리면 여러 번 맞다보면 죽을 수도 있다.


“아저씨! 아저씨!!”

“괜···, 아. 괜찮으니 울지 마.”


철수는 부들거린 채 무릎을 짚으며 일어났다. 

라이언은 알고 있었다.

철수는 안 죽는다고.


라이언은 미리내 문고 김 대리를 보며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철수의 재킷.

라이언은 성큼성큼 다가와 철수의 셔츠를 잡아 뜯었다.

셔츠 단추가 후두둑 떨어지며 셔츠가 찢겨졌다.

라이언은 눈을 찌푸렸다.


셔츠 안쪽에는 푸른 별에선 보기 드문 재질로 만든 얇은 방탄조끼가 있었다.

그의 재킷과 같은 재질이었다.

라이언에게 잡혀 발이 대롱대롱 뜬 철수는 황당했다.

그의 손을 붙잡고 다리가 짧은 철수는 허우적댔다.

바닥에 발이 안 닿잖아!


“이, 이거 놔! 뭔데! 뭐하자는 건데!!”

“당신 정체가 뭡니까?”

“보면 몰라? 회사원이잖아!”


철수는 그렇게 말하며 라이언의 가슴팍을 발로 밀었다.

밀어낸 것까진 좋았으나 총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착지하지 못하고 나동그라졌다. 

우당탕탕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기까지 했다.


“아저씨! 씨이···! 뭔데 우리 아저씨한테 그래요!”


하리는 굴러 떨어지는 철수를 보며 따라 내려갔다.

두 눈에 울분이 가득 찬 눈으로 라이언을 올려다 노려보았다.

그것도 잠시 일어나려고 하는 철수의 몸을 살폈다.

철수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리를 제 뒤로 감출 뿐이었다.


자신이 맞더라도 하리는 절대 맞지 않아야 한다.

철수는 오직 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서 총을 맞은 탓에 온 몸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라이언은 철수에게 밀려나 놓친 손을 잠시 바라보다 거두었다.


“꼭 당신이 해야겠습니까?”

“내가 왜 당신 허락까지 받아야 하지?”


그것에 따지거나 캐묻지 않았다.

이만큼 맞았으니 오히려 제정신으로 있는 것이 용한 편이었다.

이만하면 오래 버텼다.


라이언은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고 총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그의 손가락에 데롱 걸린 총을 본 철수는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을 멈추었다.

경계하느라 움츠린 몸도 서서히 폈다.

마치 이게 뭔가 하는 눈빛이었다.

라이언은 무표정으로 철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우주인들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도 하시겠습니까?”


철수는 라이언의 의중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저 거만한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철수는 라이언이 자신이 이 별을 위해 뭐든 다 하겠다는 이 태도가 심히 맘에 들지 않았다.

과거의 누군가를 보는 것만 같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우주보안원이면 우주보안원답게 일이나 해. 나 같은 평범한 회사원 건들지 말고.”

“요새 평범하다는 말이 많이 변했나 봅니다?”

“우주 해적이나 때려잡고 쓸데없이 비리나 쳐 지르는 녀석을 잡으라고! 그러라고 만들었더니  내 세금 빠지고 있네! 아이고 아까워!”


철수는 정말 심호흡을 하며 계속 짜증을 삭히고 있었다. 

어떻게 만든 우주보안원인데!

이런 식으로 세금 낭비를 한다며 한탄까지 했다. 


라이언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어쩐지 혼이 나는 기분이 들어 그만 두었다.

분명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 같았는데 철수와 대면하면 자신이 한수 접혀지는 기분이다.

매우 낯선 기분이다.


“당신이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해도 전 당신을 우주의 악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

“반드시 다음번엔 당신을 체포할 예정입니다.”

“흥, 증거도 없이? 영장은 들고 다니고?”

“···그건 앞으로 저와 함께할 팀원들과 알아서 합니다.”


우주보안원이 아니라?

철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라이언은 좁은 복도를 철수와 하리를 비껴 지나쳤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아, 하고 뒤돌아 바라보았다.


“아, 개소, 축하드립니다.”

“아아, 그거 대애단히 고오맙네.”

“직원도 벌써 뽑고. 능력이 좋으십니다.”


라이언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며 능청스럽게 웃으며 나갔다.

직원? 철수는 뒤돌아 하리를 보았다.

하리는 바들바들 떨며 철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혹시 철수가 튀어가서 자신을 막을까봐 그런 것 같았다.


더 다치는 것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눈가가 빨갛게 되었다.

토끼같이 빨개진 눈가를 철수는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으로 눈가를 훔쳐 주었다. 

눈물이 철수의 손에 스미며 사라졌다.


“그 아저씨 왜 그렇게 나빠요? 아저씨 맞을 데가 어디 있다고!”

“···음, 근데 그래야 해. 그게 그 사람 일이야.”


어쩌다보니 라이언 변명을 하게 된 철수는 머쓱해졌다. 

하리는 철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꼭 붙잡고 있던 것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라이언도 갔겠다 철수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생각이었다.


“지구 종말 그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씨···.”


하리는 저보다 연약해 보이는 철수가 다치는 것이 속상했다.

다치는 것도 싫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지켜주려고 매번 당연하게 감싸주는 모습이 낯설었다.

항상 스스로 뭐든지 해야만 했었다.

보호 받는다는 기분은 이상했다.

고맙고 또 고마웠다.


“정말 다친 데 없어요?”

“아, 없다니까. 그거 나는 맞아도 안 죽는 총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철수는 결국 허세까지 부리며 답했다.

그러지 않으면 저 소녀가 걱정 한 바가지 할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자신이 이 소녀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리는 철수와 눈을 맞추며 태연한 표정에 안심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좀 쉬어요.”


철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주르륵 풀렸다.


“아, 아저씨!!”


하리가 놀라서 철수를 붙잡았으나 이미 놓쳤다.

철수는 그냥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너무 뒤늦게 풀렸다.

최근에 이렇게 긴장해 본적이 없었다.

칼이 코앞에 있어도 이렇게 긴장해 본적 없었던 것 같다.


너무 아파서 그런가?

온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하리가 힘겹게 철수를 질질 끌고 안으로 이끌었다.


“으으···!!”

“미, 미안. 다리가 힘이···.”

“으윽, 아니에요···!”


하리는 꿋꿋하게 말하며 철수를 사무실 소파에 털썩 떨궈 놓았다.

철수는 전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며 부들거렸다.

으, 느끼고 싶지 않는 저릿한 느낌에 찡그렸다.

체력엔 이상은 없는데 신체엔 역시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운동 꾸준히 하는데···. 

철수는 한숨이 조금 나왔다.


그 사이 하리는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불을 켜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한쪽 창가에 큰 책상과 좋아 보이는 사무용 의자가 하나 있었다.

하리는 그 의자에 앉아 바퀴를 질질 끌며 사무실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슝슝 다니는 것이 거슬렸지만 움직일 기력이 없던 철수는 가만히 힘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상체를 일으킬 힘이 날 쯤엔 하리가 어디선가 버너와 냄비, 라면을 찾아와 탁자에 올려놨다.


“그, 그건 뭐야?”

“뭐긴요. 아까 개소를 했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해야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우리끼리 하니까 소소하게 라면으로 어때요?”


개소식을 하자는 뜻인가?

철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아, 하리의 태평한 말에 그저 웃었다.

철수는 천천히 소파를 짚고 일어났다.


어디서 난 것인지 접시, 젓가락까지 넉넉하게 챙겨 탁자에 올려놓는 하리가 놀라웠다.

여태 보인 반응 중에 제일 빠른 반응이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빨랐다.

그렇게 라면이 끓여질 쯤 하리는 철수가 어른이라고 한 젓가락 접시에 덜어주었다.


철수는 기분이 묘했다.

딱히 생각을 해본 적 없었지만 가족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하리가 준 라면 한 젓가락을 먹었다. 그리고 냄비를 보니 텅 비어있었다.


“···이거 어디 갔어?”

“다 먹었는데요?”

“···어?”

“아저씨 보기보다 늦게 드시는 구나.”


철수는 자신이 고장 난 줄 알았다.

멍청하게 빈 냄비와 접시를 바라보다가 결국 웃어버렸다.

온 몸이 라이언이 쏜 총에 맞아 욱신거린데 하리 때문에 그냥 웃음이 났다.


*** 


다음날.


“안녕하세요. 김이남입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다.

약간 초췌한 느낌이 드는 피곤함이 묻은 얼굴.

하지만 건실한 청년의 이미지도 같이 있는 오묘한 인상.

그런 사내가 철수를 향해 다가왔다.

가볍게 인사한 후 그는 철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철수의 머리가 잠시 굳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철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약간 당황한 것인지 어색하게 웃어버렸다. 

그리고 점점 얼굴이 빨개져갔다.


“그, 그게···. 혜성중공업 대표랑 혜성 재단 이사장도 하고 있고···. 그···.”


아, 서, 설마···. 듣고 있던 철수는 땀이 줄줄 흘렀다. 

드디어 생각났다.


김이남! 

혜성그룹의 회장 김영준의 장남의 이름이었다.

이 사람이 왜?!


김이남은 부끄러워진 얼굴로 계속 철수를 힐긋 보았다. 

어디까지 자신을 소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보통은 이름만 소개해도 다 알아주었기에 그래왔던 거였다. 

하지만 이렇게 말이 없으니 서로 말 없이 눈치 싸움만 하고 있었다.


“그, 기, 김철수 과장입니다.”


철수가 뒤늦게 이해하고 김이남의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떨어지자 그는 미소를 지웠다. 

부끄러워하던 표정도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싹 지워져서 철수는 조금 놀란 눈빛이 되었다. 


“제가 갈 곳이 있어서 일찍이 찾아뵙게 됐습니다. 같이 갈 곳이 있는데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구 종말 사무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월/화/수 오후 5시 연재합니다 24.09.13 0 0 -
24 24화 나야 나 24.09.13 6 0 12쪽
23 23화 도발 24.09.11 5 0 12쪽
22 22화 역할 분담 24.09.09 9 0 12쪽
21 21화 첫 회의 24.09.06 11 0 12쪽
20 20화 달고 퍽퍽한 24.09.04 11 0 12쪽
19 19화 이런 사람들 24.09.02 7 0 12쪽
18 18화 혜성의 눈과 귀 24.08.30 8 0 12쪽
17 17화 까마귀의 흔적 24.08.28 11 0 12쪽
16 16화 감시대상 No. 225 24.08.26 13 0 12쪽
15 15화 호랑이의 습격 24.08.23 11 0 12쪽
14 14화 코스모의 제안 24.08.21 9 0 12쪽
13 13화 혜성의 계승자와 늑대의 수장 24.08.19 10 0 12쪽
12 12화 은밀한 접선 24.08.19 7 0 13쪽
11 11화 휴일의 마무리 24.08.19 6 0 12쪽
10 10화 다시 만난 김 대리 24.08.19 8 0 12쪽
9 9화 휴일의 시작 24.08.19 4 0 12쪽
8 8화 초대 받지 않은 손님 24.08.19 6 0 12쪽
7 7화 천랑 시큐리티 24.08.19 5 0 12쪽
6 6화 사명감이 밥 먹여 주나 24.08.19 8 0 12쪽
5 5화 비정상 회사원 24.08.19 7 0 12쪽
» 4화 산 넘어 산 24.08.19 6 0 12쪽
3 3화 지구 종말 사무소 24.08.19 9 0 12쪽
2 2화 토끼와 사자의 대결 +1 24.08.19 8 1 12쪽
1 1화 버킷리스트 24.08.19 20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