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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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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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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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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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2화. 피난(3)

DUMMY

다 함께 인천으로 가기로 결정했지만 그 전에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서울대 캠퍼스에 있는 피난민들에 대한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 최소한 경고라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은 우리가 방금 도망쳐 나온 군부대와 일종의 운명공동체였다.

피난민들은 나처럼 예비군으로 차출되기도 하고 점차 각자의 능력과 경험을 살려 모두에게 필요한 일을 해나가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부대에 벌어진 일에 대해 아는 사람들 중, 아마 유일하게 제정신일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곳의 피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지옥에 빠질 것이다.


난 딱히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인간의 도리는 지키고 살자는 주의였다. 때마침 서울대 캠퍼스는 인천으로 가는 방향에 있기도 했다.


한솔 누님이 우려의 기색을 내비쳤다.


“경고해줘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해. 하지만 그곳 역시 이미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어. 네가 추측한 것처럼 그 이상한 목소리가 전파나 전산망을 타고 이동한다면, 절대 우리보다 느리지 않을 테니까.”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그 경우는... 어쩔 수 없겠죠.”


일단 차를 출발시켰다. 일대는 군부대가 통제하는 구역이라 도로가 뻥뻥 뚫려 있었다.


10분 정도 달려 거의 캠퍼스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난 도로 한복판에서 다급하게 차를 멈추게 했다.


“잠깐만요, 차 세우세요!”

“왜 그래?”

“이 느낌은...”


바늘로 쑤시는 듯한 불쾌한 두통이 찾아올 낌새가 느껴지고 있었다. 군부대에서 날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직 공기 중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확신했다. 그 망할 괴이의 마수가 여기에도 뻗쳐 있었다.


“다들 이어플러그 끼세요.”


세 사람 모두 군말 없이 따랐다. 얼굴에는 긴장감이 차올랐다.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엄청난 공포일 것이다.


우리는 우선 내가 두통을 느끼지 않는 곳까지 물러났다.


이후 필담이 시작됐다. 통성명도 한 상태라 문장은 간결하게.


[혼자 조용히 다녀옴.]

“그건 너무 위험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형.”

[탈환하겠다는 거 아님. 가벼운 정찰. 이상하다는 거 확실해지면 바로 귀환.]


진무 형님이 펜을 들었다. 이어플러그를 낀 사람들에게까지 의사를 전달하려면 그래야 했다.


[나도 따라감. 이어플러그 있으니 문제없음. 만약의 경우 대비.]


그러자 규민이가 그럴 듯한 논리를 제시했다.


[그럼 제가 감. 일이 벌어지면 주먹질하고 싸울 거 아니잖음. 제가 여기서 총 제일 잘 쏨.]


한솔이 누님은 말이 없었지만, 그건 자기 한 몸을 보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따라가야 하는 적절한 이유를 대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총에도 익숙하지 않고 격투기도 못 한다면 위기의 순간에 짐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합의가 이뤄졌다. 캠퍼스 정찰은 나와 규민이가, 차를 지키는 건 형님과 누님이.


[다녀옴.]

[조심.]


우리 둘은 차에서 내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통은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예상했던 것처럼 총성이나 혼란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도 적잖은 군인들이 경계를 서는데 이미 일이 다 끝난 건지.


안으로 직접 발을 들여놓을 엄두는 나지 않아서, 캠퍼스를 병풍처럼 둘러싼 능선에 오르기로 했다. 그곳도 상황을 살피기엔 충분했다.


어둠에 잠긴 숲길을 걸어 적당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였다. 우리는 서울대 피난민 대피소가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했다.

.

건물 몇 채가 완전히 불에 휩싸여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 빛에, 혼란이 휩쓸고 지나간 교내 전경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규민이가 욕설과 함께 신음성을 흘렸다.


“미친, 저게 대체 뭐야. 저 사람들이 지금 뭘 하는...?”


정면으로 드넓은 운동장이 내려다 보였는데, 그곳은 현재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추측하기에 군부대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본, 그 괴이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연병장으로 모으던 이유인 것 같았다. 다만 저건 일반적인 상식을 훌쩍 초월했다.


그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를 힘껏 껴안으면 두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그 일을 실천에 옮기려는 것 같았다.


즉 인간이 다른 인간을 덮고, 그 위를 새로운 인간이 덮었다. 그렇게 인간으로 만들어진 작은 산이 쉴 새 없이 꾸물거렸다.

능선에서 바라본 그 모습은 마치 개미떼 같기도 했다. 가장 아래 깔린 사람은 틀림없이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대체 저게 무슨 짓일까? 놈의 목적이 뭐지? 단순히 사람을 죽이기 위한 방법은 아니 것 같았다.


그 불가해한 장면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규민이를 제지했다.


[그만 봐. 돌아가자. 이미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마트에서 벌레와 싸울 때나, 군부대를 떠나올 때도 울지 않았던 규민이는 지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짓을...? 대체 왜.”


녀석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기억을 지워줄 수 있으면 지워주고 싶었다.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카퍼톤이 소속된 조직이 세상에 존재하는 괴이에 대해 숨긴 건, 어쩌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저것들의 광기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놈들에게 마음대로 정신을 조작하는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방금과 같은 장면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평생토록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잘 모르겠다.


나도 이미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은 것 같다. 끔찍하다는 감상은 있지만 동시에 덤덤하기도 했다. 좋은 변화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규민이에게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5분 정도, 나무에 기대 심호흡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녀석이 말했다.


“...죄송해요, 형. 쪽팔리게.”

[방금은 나도 눈물 찔끔했으니까 신경 쓰지 마.]


녀석이 날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와, 지금 같은 상황에 절 놀린다고요? 형 사람 맞아요?”

[내가 아직도 사람으로 보여?]

“에휴... 됐다, 가기나 하죠.”


음. 예상대로 내 위로가 잘 먹힌 것 같다.


사실 이 정도로 멘탈을 회복한 것도 진짜 대단하다고 본다. 원래부터 차단선 밖을 돌아다니던 군인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차가 세워진 곳으로 돌아왔을 때, 진무 형님과 한솔 누님 모두 총을 멘 채 차 밖에 나와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우선은 대화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방향은 광명 시 쪽으로 잡았다. 인천으로 가려면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어느 순간 두통이 완전히 사라져서, 다들 이어플러그를 뺐다.


형님과 누님한테 보고 온 것들을 전달했다.

다만 아주 구체적으로는 아니었다. 예컨대 우리가 운동장에서 본 그 아우성치는 인간의 덩어리는 굳이 두 사람이 상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점차 멀어지는 관악산을 보고 있자니 복잡한 심경이었다. 우리가 탄 차는 뭐가 숨어있을지 모르는 어둠을 뚫고 전진했다.



* * *



광명시에 진입하는 데에는 약간의 애로사항이 뒤따랐다.


군부대가 통제하던 지역을 벗어나니 주인이 버리고 간 차들로 완전히 막힌 도로들이 흔치않게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15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거의 1시간이 걸려 간신히 이동했을 때, 우리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뒤늦게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생각해 보면 잔 시간은 거의 한두 시간에 불과했다. 거기다 긴장한 상태로 싸우고, 뛰고, 물건을 옮겼더니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한갓진 길옆에 차를 댔다. 주변의 차들이나 기타 여러 환경으로 미루어 보아 일단 어떤 위험 요소가 근처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명씩 두 조로 나눠서 쉬도록 하자. 한 조는 불침번, 한 조는 취침. 재희 너랑 규민이부터 쉬어.”

“...지금 너무 졸려서 사양하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누나.”

“저도 감사합니다.”


보다 편안한 취침 환경을 위해 형님과 누님은 밖으로 나갔다.


SUV를 가져온 건 정말 천만다행이다. 뒷자리의 좌석을 젖히자 그럭저럭 편안한 침대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나 교대했다.


두 사람이 자는 동안 나와 규민이는 차 밖으로 나와 주변을 경계했다. 군인과 2인1조로 초병 짓을 하려니 정말 군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규민이랑은 시덥잖은 얘기를 했다. 세상에 갑작스러운 재난들이 닥쳐왔을 때, 내게 소개팅이 잡혀있었다는 것 따위였다.


...그러고 보니 사진만 받았을 뿐 소개팅 상대의 얼굴도 한 번 못 봤구나. 그 분은 어떻게 되었을까.


“형, 그래도 세상이 이렇게 될 거면 솔로였던 게 다행이죠. 만약에 여친까지 있었으면 진짜 돌아버렸을 걸요. 형 성격에 서울을 횡단해서라도 찾아갔을 거 같은데?”

“흠... 그런가?”

“흠... 그런가?가 아니라 백퍼센트라니까요. 영화 한 편 찍는 거지 이제. 클로버필드 같은 거.”


잘 모르겠다. 그렇게 보이나? 그리고 클로버필드는 또 뭔 영화야.


“근데 그건 너도 그러지 않았을까.”

“저요? 전 글쎄, 이상하게 연애 같은 건 별 관심이 안 생기더라고요. 소개는 몇 번 받았는데.”

“아하, 관심이 없어서 연애를 안 하셨다.”

“말투 뭐에요.”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규민이는 그냥 내 또래의 평범한 남자애처럼 보였다.


잠시 후 형님과 누님이 깨어났다.


우리는 탈출할 때 챙겨온 식량으로 배를 채웠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언제나처럼 배를 채우면 기분이 나아진다.


식사를 하면서 광명시에 대한 정보를 교환했다.

다만, 뭐라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인천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과정에서 주워들은 게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은 좀 조심스러운데, 광명시는 그렇게, 음... 지옥 같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물론 정보가 부정확할 수도 있고, 그새 새로운 위험 요소가 생겼을 수도 있죠. 조심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고요.”


누님이 물었다.


“여기는 뭐가 있다는데?”

“전해 듣기로는 무슨 식물 종류라고 하던데요.”

“동물보단 무조건 낫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어쨌든 도로만 뚫려 있다면 굳이 여기서 시간을 보낼 일이 없을 테니까요. 후딱 지나가는 거죠.”


운전은 이제 누님이 했다.


고백하자면, 일행 중에서는 내가 가장 운전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면허를 따놓긴 했는데 군대에서 수송병도 아니었고 자차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반면 형님과 누님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운전할 일이 있었고 규민이도 차를 끌고 다녔다고 했다.


여튼 시내를 가로지르던 우리는 곧 대단히 독특한 풍경을 보게 됐다.


여길 점령한 건 정말 식물이었다. 그것들에게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탐욕스러워 보인다는 특징이 있었다.


초록의 덩굴들이 높은 빌딩을 완전히 뒤덮었다. 중간 중간 자라난 잎들은 거의 천막 같았고, 특히 빌딩 꼭대기에 핀 꽃은 지름이 몇 미터는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라면 그냥 특별한 수목원에 온 거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 덩굴들은 다른 나무들과 가로등, 심지어는 버려진 자동차까지 뒤덮은 채 무성해지는 중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뿌리 중 아스팔트를 뚫고 들어간 것들도 있었다.


워낙 이상한 걸 많이 봐왔다 보니 저것들이 갑자기 뿌리를 뽑고 일어나 달려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부우웅...


다행히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식물들은 이미 몇 개의 동 정도 되는 면적을 집어삼킨 것 같았지만,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렇게 빠르게 광명시를 통과했다.


마침내, 저 앞쪽에 표지판이 등장했다. 화살표와 함께 인천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 긴장이 됐다. 2주가 넘는 시간이 걸려 드디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작가의말

연휴 시작! 즐거운 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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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5화. 물의 세계(2) NEW 16시간 전 66 11 14쪽
25 24화. 물의 세계 24.09.17 105 13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127 16 15쪽
» 22화. 피난(3) 24.09.14 148 14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58 12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79 14 14쪽
20 19화. 피난처(8) +2 24.09.11 183 15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84 15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200 14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216 18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19 13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27 17 14쪽
14 13화. 피난처(2) +3 24.09.04 241 17 14쪽
13 12화. 피난처 +3 24.09.03 246 17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58 18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55 19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76 17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78 19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79 16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296 16 12쪽
6 5화. 종단 24.08.26 333 16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54 18 12쪽
4 3화. 도래(3) 24.08.23 392 19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33 19 13쪽
2 1화. 도래 24.08.21 563 22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55 2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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