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아포칼립스 생존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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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다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0 08:49
최근연재일 :
20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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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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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물의 세계(3)

DUMMY

첨벙, 첨벙, 첨벙.


인간을 먹이, 혹은 장난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괴물이 다가온다.


“씨발.”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 욕이 많이 늘었다. 근데... 달리 해소할 방법이 없어. 심지어 이 정도 욕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다.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적의 키는 내 키의 두 배가 넘는다. 다리 길이도 그쯤 되고, 이동속도는 그 이상이다. 힘이나 체격은 말할 것도 없다. 도망치면 바로 잡히겠지.


카퍼톤의 신비한 단검이 있기는 하지만 차이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서너 살짜리 꼬마가 아주 잘 드는 커터 칼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지지는 않을 것이다. 저것과 나 사이의 차이가 그 정도다.


첨벙, 첨벙.


점점 더 가까워지는 파충류 인간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진다.


나는 수능을 치렀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나마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서 침착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게 내 무기다.


뭘 어떡해야 하지?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런데, 정말로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죽은 어인이 말했던 것, 내가 가진 것, 주변 지형, 그리고 저 괴물이 보이는 여유롭고 오만한 태도 등을 이용한 작전이다.


여러 가정과 운에 기반한 것이며, 아주 잘 풀린다고 해도 놈을 쓰러뜨리는 방법은 아니다.

다만 굳이 내가 다윗이 될 필요는 없다. 승리의 조건은 여러 가지다. 도주도 그중 하나고.


나는 한 차례 심호흡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 오, 오지마...!”


당황한 어조로 소리쳤다. 쩔쩔매는 제스처는 덤이다. 놈을 방심시키기 위함이다.


직후 가장 가까운 위치의 건물로 뛰어 들어왔다.


건물은 퀴퀴한 냄새가 나고 차오른 물 외에는 텅 비어 있었다. 그다지 넓지도 않았다. 복도에 서자, 양 옆으로 자리한 네 개의 방이 보였다.


나는 이를 악문 뒤 단검을 들어 팔을 깊이 베었다.


스윽.


“윽...”


섬찟한 통증과 함께 선혈이 줄줄줄 흘러내린다. 그걸 첫 번째 방 안에 들어가 물속에 마구 뿌렸다.


이어 두 번째 방, 세 번째 방, 그리고 네 번째 방에도 같은 짓을 했다.


이건 방금 죽은 어인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거다. 그는 횡설수설했지만 저 파충류 인간이 자신의 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듯한 뉘앙스의 말을 했다.


작전대로라면 괴물은 이 건물에 들어온 뒤 내가 어느 방에 있는지 몰라 시간을 잡아먹을 것이다. 모든 방에 피를 잔뜩 뿌려놨으니까.


물론 여기에는 놈이 나와의 숨바꼭질에 ‘신사적’으로 응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느긋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냥을 즐기는 것 같다. 난 이 점에 주목했다.


다음으로, 마지막 방의 벽 구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카퍼톤의 단검을 벽에 밀어 넣었다.


쑤우욱.


안도감이 들었다. 이게 작전의 두 번째 가정이었다. 건물의 벽이 내가 은밀하게 부술 수 있을 정도일 것.


다행히 카퍼톤의 군용 대검은 그야말로 마법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건물의 벽은 주먹으로 쳐도 부서질 정도로 약화된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벽의 가능한 낮은 지점에 자그마한 통로를 만들었다. 이어 그 통로를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크르르륵...”


그때쯤 놈이 건물의 입구에 도착했다.


우지직, 하고 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가 크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제법 잠잠했다. 아마 나와의 숨바꼭질을 즐겨볼 생각인 것 같다. 어쩌면 정말로 짙은 피 냄새에 혼란을 느끼는 중일 수도 있고.


나는 즉시 움직여 근처의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방이 두 개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전 건물에서 한 것과 같은 짓을 했다.


방마다 피를 마구 흩뿌린다. 그리고는 가장 안쪽 벽에 작은 구멍을 낸 뒤 밖으로 나왔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건물에도 똑같이 했다. 그렇게 여섯 번째 건물에 들어섰을 때였다.


“크르륵, 카아아...!!”


콰지직, 쿠르르르릉.


분노에 가득 찬 괴성과 함께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을 살피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유는 뻔하다.


놈은 숨바꼭질에 몰입해서 방 하나하나를 샅샅이 뒤지다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그 건물을 진작 빠져나갔다는 걸.


도마뱀 대가리라 그런지 시간이 좀 걸렸네.


“후욱, 후욱, 후욱!”


놈이 잔뜩 흥분해서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린다. 이어지는 첨벙거리는 소리, 그리고 벽 일부가 무너지는 기척. 아마 새로운 집에 들어간 거겠지.


일곱 번째 건물에 처리를 마치고 나온 뒤, 잠시 숨어서 지켜보았다. 놈은 두 번째 건물에서 거의 시간을 쓰지 않았다.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었다. 신중한 탐색이고 뭐고,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에 무작정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쾅, 쾅, 쾅!!


4미터의 근육질 거구가 쇄도하자 간신히 틀만 유지하던 건물들이 모래성처럼 스러졌다.


...오래 가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날뛰는 타이밍이 너무 빠른데.


작전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신속하게. 이런 식으로는 놈의 속도에 대처할 수 없었다.


건물에 들어섰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방마다 피를 뿌렸다. 마지막 가장 깊은 방 벽에 자그마한 통로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서 새로운 건물로 향하는 대신 이미 빠져나온 곳, 다시 말해 피를 뿌려 놓은 건물 중 하나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괴물은 아직 이곳에 다다르지 못한 상태였다.


이건 목숨을 건 승부다. 아마 놈은 내가 자신과 가까운 건물로 굳이 돌아와서 숨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할 거다. 이미 섬세하게 찾을 생각도 사라진 것 같고.


스스로 상처를 낸 팔목을 살폈다. 어느새 피가 조금씩 멎고, 상처는 아무는 중이다. 이게 바로 망설임 없이 손목을 베었던 이유다. 재생력에 대한 신뢰.


이 정도라면 잠수할 수 있겠어. 물이 깨끗해 보이진 않지만 당장 붙잡혀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는 것보단 낫지.


놈이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쿵! 쾅! 콰지직.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얼마 동안 잠수하고 있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마침내, 때가 왔다. 내가 숨은 건물의 벽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격렬한 파열음이 들렸다. 놈이 이 집에 들어온 것이다.


즉시 숨을 한껏 들이마신 뒤 잠수했다.


꾸르륵, 꾸르르륵.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단지 거센 물살이 몸을 밀치고, 무언가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벽과 천장의 잔해들이 내 위로 마구 쏟아졌다.


난 머리를 감싼 채 버텼다. 즉사만 안 하면 된다, 오로지 그 생각이었다.


혼란 속에서 몇 십 초 정도가 흘렀다. 수면 밖으로 고개를 들기가 무서웠지만 숨이 딸려서 더는 버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몸을 일으켰다.


직후 소름끼치는 고함이 들려왔다.


“크워어어...”


그러나 그건 저 멀리서 비롯된 것이었다. 벽과 천장이 무너져 밖이 훤히 보였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안도감이 차올랐다. 내 급조한 노림수가 통했다. 저 괴물이 이 건물을 그대로 지나쳐 다른 곳을 때려 부수는 중이었다!


나는 곧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100미터... 200미터 정도 거리를 벌리고 난 후엔 좀 더 속도를 올려도 될 것이다.


그렇게 연달아 부서지는 건물들과 포효를 뒤로하고 전진했다.




도주를 시작하고 30분 정도가 흘렀다. 수위는 더 올라 거의 명치 부근에 다다랐다.


나는 휴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생각보다 피를 많이 흘린 것 같았다.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지만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갈증으로 목이 타는 듯했다.


주변에 보이는 아무 건물에 진입했다. 당장이라도 이 물을 꿀꺽꿀꺽 삼키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차라리 물을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힘을 빼고 수면 위에 몸을 누였다.


...이러고 한 시간만 잤으면 좋겠네. 졸음이 몰려온다.


그때였다. 돌연, 비늘로 뒤덮인 근육질의 거대한 팔이 벽을 뚫고 들어왔다.


콰지직!


구멍을 통해 건물 안쪽을 들여다보는 파충류 인간의 얼굴이 보였다. 내 존재를 확인한 괴물이 히죽 웃었다.


“...미친 새끼.”


오판했나 보다. 놈의 집요함에 대해.


우르르르르.


벽 전체가 통째로 뜯겨 나갔다. 그 앞에 놈이 서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크다. 내게는 움직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는 물이, 놈에게는 기껏해야 무릎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괴물이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마치 다 잡은 고기를 대하는 듯한 태도다.

아까는 화나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다시 여유를 부리는 꼴을 보니 짜증이 치밀었다. 이렇게 순순히 당할 수는 없지.


촤아악.


“크아아아아...!”


칼날의 날카로움은 경이로웠다. 순식간에 놈의 손가락 일부가 잘려나가고 나머지는 덜렁거렸다. 덩칫값 못하고 엄살을 떠는 걸 보니 속이 시원했다.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칼날은 몹시 부드럽게 놈의 무릎을 파고들었다.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두부처럼 갈랐다.


푹푹푹푹.


불과 2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베고 찌르고 쑤셨다. 최소한 다리 하나는 작살난 게 분명했다.


직후.


후웅ㅡ 뻐어억.


“......!”


순간적으로 찾아온 엄청난 고통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부유감이 몸을 감싸고, 몸 전체가 으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콰지직, 첨벙, 첨벙!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방금까지 건물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하늘이 보였다. 아, 뭔가에 맞고 튕겨 나온 거구나.


필사의 의지로 몸을 추스르는데 팔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걸 깨달았다. 건물 벽을 뚫고 나오면서 다친 건지 이마에서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뭔가가 울컥 치밀어서 토해내고 보니 핏덩이였다.


철썩, 철썩.


괴물은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듯 긴 꼬리를 휘둘러 수면을 거세게 때렸다. 방금 날 공격한 것도 저 꼬리가 분명했다. 이제 방심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난 악에 받쳐 내뱉었다.


“그러게 도마뱀 새끼가 왜 되도 않는 여유를 부리고 지랄이야. 덤벼, 죽기 전에 손가락 두어 개는 더 잘라줄 테니까.”


스스로도 놀란 사실인데, 팔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무기는 놓지 않았다. 그걸 다른 손으로 바꿔 잡았다. 그리고는 모든 분노를 끌어모아 놈을 쏘아봤다.


물론, 나도 안다. 이기지 못할 거란 거.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다. 최대한 놈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어주는 거지.


괴물이 마치 짐승처럼, 네 발을 짚었다. 그 상태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박력이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나 역시 마주 달려들었다.


기이이이잉ㅡ


...찰나의 순간 어디선가 그 독특한 기계음이 들려왔을 때, 난 머리를 잘못 박아서 내가 듣고 싶은 걸 멋대로 듣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환청이 아니었다.


파바바바바밧.


“크아악, 카아아악!”


나를 덮치려던 괴물이 갑자기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몸에 실시간으로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렸다. 팔 하나는 완전히 작살나 떨어져 나갔다. 푸른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첨벙, 청벙!


놈이 속수무책으로 물러났다.


난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저 익숙한, 총성 없는 사격이 가해진 바로 그 방향으로.


그곳에 미래적인 디자인의 군복을 입은 군인이 서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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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물의 세계(3) NEW 11시간 전 47 7 12쪽
26 25화. 물의 세계(2) 24.09.18 87 11 14쪽
25 24화. 물의 세계 24.09.17 123 13 13쪽
24 23화. 피난(4) 24.09.16 147 16 15쪽
23 22화. 피난(3) 24.09.14 161 14 12쪽
22 21화. 피난(2) 24.09.13 172 12 12쪽
21 20화. 피난 +3 24.09.12 192 14 14쪽
20 19화. 피난처(8) +2 24.09.11 191 15 15쪽
19 18화. 피난처(7) +1 24.09.10 197 15 15쪽
18 17화. 피난처(6) 24.09.09 213 14 13쪽
17 16화. 피난처(5) +2 24.09.07 230 18 13쪽
16 15화. 피난처(4) +1 24.09.06 233 13 15쪽
15 14화. 피난처(3) +1 24.09.05 238 17 14쪽
14 13화. 피난처(2) +3 24.09.04 256 17 14쪽
13 12화. 피난처 +3 24.09.03 259 17 13쪽
12 11화. 종단(7) 24.09.02 272 18 12쪽
11 10화. 종단(6) 24.08.31 265 19 13쪽
10 9화. 종단(5) 24.08.30 288 17 12쪽
9 8화. 종단(4) +1 24.08.29 288 19 14쪽
8 7화. 종단(3) +1 24.08.28 290 16 12쪽
7 6화. 종단(2) +1 24.08.27 309 16 12쪽
6 5화. 종단 24.08.26 350 16 14쪽
5 4화. 도래(4) +1 24.08.24 372 18 12쪽
4 3화. 도래(3) 24.08.23 409 19 14쪽
3 2화. 도래(2) 24.08.22 452 19 13쪽
2 1화. 도래 24.08.21 589 22 11쪽
1 프롤로그 +2 24.08.21 686 25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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