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림 소 리 소 설 단 편 집- 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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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소리
작품등록일 :
2024.08.23 01:30
최근연재일 :
2024.09.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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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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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닳다

DUMMY

마음이 닳다


그림소리


마을에는 이름 모를 언덕이 있다. 언덕에는 크고 오래된 고목이 하늘로 뻗어있다. 그 고목 줄기 앞에는 예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골렘이 존재했다. 왜 그곳에 기계 골렘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의 가슴에는 PM-1992라는 식별번호가 적혀 있었다. 아는 이 하나 없지만, 그것은 기동이 가능한 기계였다.


PM-1992는 오랫동안 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PM-1992는 얼마나 그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의 하드 디스크에도 기록이 전혀 없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그저 오래되었다는 것만 인지했다. PM-1992는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으며, 그곳에 있는 이유도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그렇게 있었다.


그저 그런 어느 날 일이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다. PM-1992의 전원에 불이 들어오고 내부에서 가동되는 소리가 울렸다. 울음소리가 울린 지 한참을 지나서야 PM-1992는 절전 모드에서 벗어나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늠하기 힘든 길고도 긴 세월이 지나서야 몸을 움직인 것이다. 몸이 이곳저곳 낡았고, 여기저기에서 삐거덕 소리가 났다.


끼익끼익. 보티는 고개를 움직여 나무 반대편에서 우는 아이를 보았다. 울다 지친 아이는 바닥이 내려앉아 고개를 축 늘어트린 채 훌쩍거리고 있었다. 보티의 몸에서 나오는 기계 태엽 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보티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는 한발 두발 슬쩍 걸어가 보티 옆에 앉았다. 아이는 멍하니 보티를 바라보고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앉아 또 울고 울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너도 나처럼 혼자구나?


울음을 그친 아이가 말했다.


“또 올게.”


아이는 일어나 씩씩하게 걸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는 다시 기계 골렘을 찾아왔다.


“그래서 넌 이름이 뭐야?”


아이가 물었다.


기계 골렘은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계적인 이유, 자신에 대한 정보가 텅 비어있었으니까.


“넌 말을 못 하는구나? 난 캐스티야. 이름 이쁘지?”


캐스티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넌 기계 골렘, 로봇 같은 거니까 이름을 보티라고 하자. 오늘 날씨가 참 좋지, 보티?”


“보···티···이. 캐···스···티···이.”


“뭐야, 보티 말할 줄 아네!”


보티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가 출력할 수 있는 소리는 한두 단어뿐이었다. 하지만 캐스티는 말수가 적은 보티가 좋았다. 보티는 말없이 캐스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캐스티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티는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고 판단했다. 아니, 기분이 좋다고 생각했다. 이후 캐스티는 자주 보티를 만나러 와, 옆에 기댄 채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곤 했다.


“오늘은 이야기책을 가지고 왔어. 내가 이야기 책을 읽어 줄게.”


보티는 책을 읽고 있는 그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렌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보티와는 사뭇 달랐다. 그 아이는 금속 재질이 아니다. 보티는 자신의 팔과 다리로 시선을 옮겼다. 불그스름하게 퍼져있는 녹이 보인다. 아이에게는 녹이 없었다. 백옥처럼 깨끗하고 새하얀 피부를 가졌다. 보티는 자신이 녹이 그 아이에게 묻을까 걱정이 되었다.


캐스티는 어느 날 쿠키와 비스킷을 잔뜩 들고 왔다.


“자, 보티도 어서 먹어.”


보티는 가솔린 방식의 오래된 기계 골렘이다.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보티는 쿠키를 받아먹는 시늉을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래야 했다. 보티는 캐스티의 밝은 표정이 좋았다. 과자 부스러기가 기계 속으로 들어가 몸의 부식을 앞당겼지만 괘념치 않았다.


어느 날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해가 내리고 어두워지자, 보티는 차후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해 계산을 했다. 보티의 몸이 한참 하드 디스크를 읽는 소리를 냈다. 답이 나왔다. 보티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철커덩 걷기 시작했다.


철컹철컹. 빗속을 한참 걸은 후 도착한 곳은 기계 정비소였다.


“아니, 그 유명한 언덕 나무 기계 골렘? 이게 움직일 수 있었나?”


정비소 주인 벤은 흥분해서 이래저래 기계 골렘을 훑어보았다.


“PM-1992라니 진짜 오래된 연식 모델이야. 이 자식, 어떻게 아직도 움직이는 거야? 배터리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벤이 보티 가슴의 식별번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정비소에 오셨나?”


보티는 끼익 움직이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몸을 이루는 철판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불그스름한 녹들이 가득했다. 몸에 남아있던 빗물이 하나둘 녹을 만나 선혈의 붉은 빛을 띠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래, 오래된 쇠는 녹슬고 부식되기 마련이지. 특히 습한 날씨라면 진행이 더 빠를 테고.”

벤은 보티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이곳저곳 많이 닳았네. 어때, 많이 아픈가?”

“···.”

“그래, 기계 골렘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벤이 말했다.


“나도 나이가 많아서 온몸이 삐걱대고는 해.”


벤은 흰 머리에 메마른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이 많이 졌으며 검은 기름때가 가득했다.


“그런데 왜 굳이 이제 와 정비를 하려는 거지? 무슨 이유라도 있나?”


“···캐스티.”


“캐스, 뭐?”


“아니다. 언제부터 일에 이유를 따졌다고···.”


정비가 진행되는 동안 보티는 하드 속 사진첩에 저장된 한 이미지를 반복해 떠올리고 있었다. 캐스티가 보티의 다리를 베게 삼아 누워 잠든 사진이다. 사진 일부를 확대했다. 보티의 다리에는 녹이 많았고 캐스티의 옷에 녹이 많이 묻어 있었다. 벤은 그런 보티의 몸에 구석구석 기름칠을 했다. 겉의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를 칠했다. 새카매진 엔진 오일을 갈고 언제 방전될지 모르는 태양열 전지도 교체했다.


“그런데 깡통, 너 돈은 있냐? 값은 치를 수 있겠어? 아까 OS에서 확인해보니 따로 충전된 코인은 없던데?”


“···.”


보티는 말이 없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마침 야간 업무를 해줄 일꾼이 필요해. 어차피 깡통, 너도 연식이 오래되었잖아? 아무래도 자주 정비하는 것이 좋아. 밤에는 이곳에 머물며 일을 돕도록 해. 내가 정비는 무료로 해주마.”


정비가 끝나고 보티는 더 삐거덕 소리가 나지 않았다. 보티는 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정비소 주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해가 지면 정비소의 잔업을 돕고 새벽에는 스스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정비를 했다. 해가 뜨면 정비소를 벗어나 언덕에 앉아 캐스티를 기다렸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 동안 캐스티가 오질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보티는 철컹거리는 몸을 움직여 그 아이의 집을 향했다. 그 아이의 집 근처에 있는 나무에 올라 얼굴에 있는 카메라 렌즈의 줌을 당겼다.


캐스티는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떨고 있었다. 캐스티의 팔에는 투명한 줄이 꽂혀 있었고, 그것을 통해 연료를 주입받는 것으로 보였다. 그 옆으로는 하얀색 가운을 입은 사람과 울고 있는 여성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보인다. 캐스티는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의 이미지 자료를 검색해 캐스티가 병을 앓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캐스티가 아프다 기계 골렘인 보티는 고통이라는 것을 겪어 본적이 없다. 하지만 보티는 몸체와 부속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에도 마치 자신도 큰 기계 고장이 발생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보티는 캐스티가 오지 않은 그 순간부터 몸의 변화를 느꼈다. 온 몸이 삐걱거리며 각종 부속품이 잔고장을 일으켰다. 보티는 캐스티 없이 자신이 구동 중일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절전 모드로 돌아가 이전처럼 엔진을 멈춘 채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정비소 벤이 가끔 찾아와 기름칠을 해주고 배터리를 충전해주었지만, 보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장대비가 내렸다.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핀 날 보티의 전원이 다시 켜졌다. 눈앞에 핼쑥한 모습의 캐스티가 웃고 있었다. 그 해맑은 미소 때문일까? 보티는 마치 새 고급 엔진 오일를 주입받은 듯 몸을 일으켰다.


캐스티의 렌즈에 비친 보티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캐스티는 보티를 바라보며 다시금 몸에 이상을 느꼈다. 특히 엔진이 크게 돌았다. 마치 신체가 큰 운동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반응이다.


“보티, 이건 선물이야.”


캐스티는 보티의 가슴에 귀여워 보이는 사자 모양의 캐릭터 스티커를 붙였다.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내가 몸이 좀 아프다고 해. 머리가 아주 아파. 그래도 보티가 보고 싶어서 왔어.”


보티는 자신에게 기대어 새근새근 잠이 든 캐스티를 커다란 손 위로 들어 안았다. 보티의 커다란 두 손은 보트를 편안히 감싸기에 충분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떨어져도 충분히 막아주리라. 보티는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 혹시 캐스티가 잠에서 깰까 봐 정말 느릿느릿하게 발을 내디뎌 캐스티의 집으로 향했다. 누가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면 실웃음을 지어 보였을 것이다. 토끼의 세상에서 느림보 거북이가 발을 내딛는 장면 같달까?


보티는 캐스티를 문 앞에 편안히 눕힌 후 초인종을 눌렀다. 캐스티의 유모 캐시가 문 앞으로 나왔다. 캐시가 문 앞에 나왔을 때 보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잽싸게 보티가 향한 곳은 정비소였다. 다시금 삐걱대는 그의 신체. 그는 다시 정비소 야간 업무를 시작했다.


잔업을 수행하는 내내 보티의 머릿속에는 한 단어가 출력되었다. 이례적이다.


‘캐스티.’


그날따라 정비소에는 벤이 늦게까지 있었다. 벤은 묵묵히 보티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의 왼손에 값싼 스카치위스키 한 병을 들고 있었다. 벤은 매우 실력이 있는 정비사다. 보티는 기기적인 이상이 거의 없을 터였다. 하지만 보티의 몸과 엔진은 여러 가지로 삐걱대고 있었다. 무슨 고장일까? 보티의 인공지능은 매우 뛰어나고 학습능력이 출중하다. 하지만 자신도 이상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론이 나질 않는다.


“사실 나도 몸이 썩 좋진 않아. 나이를 먹기도 했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점점 사람도 기계처럼 낡아 가는 것 같아. 자식들은 먹고살겠다고 멀리 떠나 못 본 지 오래지.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 거야. 외로움은 사람을 낡게 만들어. 너도 오랫동안 혼자 언덕에 방치되어 있었지, 아마? 그게 원인일지도 모르겠구먼. 홀로 남은 외로움, 고독 같은 거.”


벤은 손에 쥔 병 속 위스키를 들이켰다.


“내가 기계 골렘에게 무슨 소리를···.”


벤은 보티의 등에 기대 잠이 들었다. 보티는 하던 일을 멈추고 벤이 계속 기댈 수 있게 자세를 유지했다. 벤의 체온이 보티의 등을 따뜻하게 데웠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제 벤이 세상을 떠났다. 캐스티는 벤의 활동 정지에도 작업에는 오류가 없었다. 평소대로, 그저 하던 대로 일을 마치었다. 단지 조금, 아주 조금 평소와 다르게 몸의 잔고장이 늘었을 뿐이다. 캐스티는 캐시와 함께 정비소로 찾아왔다. 보통은 언덕에서 만날 터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정비소로 찾아온 것이다. 캐스티는 어느새 키가 부쩍 자라 보티와 비슷해졌다. 보티는 들고 온 종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보티, 이제 벤 아저씨 장례식에 가야 해. 보티는 원래 옷을 안 입지만 그래도 오늘은 예를 갖추자.”


캐시의 도움으로 보티는 검은 양복을 갖추어 입었다. 보티는 어색한 차림이지만 성큼성큼 장례식장으로 나아갔다. 수많은 사람의 애도가 끝나고 보티도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보티는 여전히 음성 기능에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캐스티는 보티의 등을 떠밀었다.


“벤 아저씨의 마지막을 함께한 보티잖아? 수년을 같이 정비소에서 보냈으니까 무슨 할 말이 있지 않아?”


캐스티가 속삭였다.


보티의 데이터베이스와 웹에 검색된 정보에 따르면 가장 걸맞은 표현은 ‘REST IN PEACE. 편히 쉬세요’ 였다. 하지만 보티는 이윽고 다른 말을 스피커로 출력했다.


“가···지···말···아···요.”


캐스티는 보티를 대신해 크게 울어주었다.


벤은 가족도 친지도 없었기 때문에 정비소를 물려줄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는 여전히 정비소가 필요했고 사람들은 보티에게 정비를 계속 맡겼다. 자연스레 아무도 없는 정비소에 보티 홀로 남게 되었다. 벤의 남은 친구들이나 캐스티가 와서 가끔 청소 등을 돕거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곤 했다. 시끌벅적하다가도 아무도 없을 땐 매우 고요하다. 보티는 그런 생활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엔진은 돌아갔다.



십 대 후반이 된 캐스티는 예전과 달랐다. 그녀는 어릴 때 앓던 병이 나았으며 많은 친구가 생겼다. 그녀는 키가 부쩍 자라 늘씬한 몸매를 유지했고 소년들의 마음을 독차지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지식에도 해박하고 정비소에서 보티를 도와 정비일도 배워 마을에서는 최고의 신붓감이라며 며느리로 탐내는 어른들도 많았다. 최고의 규수 감으로 옆 마을에 소문이 났을 정도다.


“아이참, 남자들이 날 귀찮게 한다니까? 남자는 대체 왜 그럴까?


여느 때와 같이 캐스티는 일하는 보티의 등에 기대어 하소연했다. 여전히 보티는 캐스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상담사이자 가장 좋은 친구였다. 가정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캐스티는 이젠 보티가 가족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티가 없었으면 자신이 이렇게 밝게 자랄 수 있었을까?

“보티는 무슨 생각하며 일을 해?”


캉캉. 캐스티가 보티의 머리를 살짝 치며 물었다. 보티는 평소대로 답이 없었다. 하지만 보티가 캐스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답을 들은 것만 같았다. 캐스티가 돌아가고 보티는 OS에 내장된 캘린더에 업무기록 및 청소 일을 점검했다.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캐스티가 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캐스티는 이제 한가한 어린애가 아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기록은 그랬다.


첫눈이 수북이 쌓이게 내리던 날 밤. 캐스티는 퉁퉁 부은 눈으로 보티를 찾아왔다. 그녀는 왼손에 보드카 병을 하나 든 채 정비소 안으로 들어왔다. 보드카는 이미 반이나 없어진 상태였다. 캐스티는 아직 술을 배운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보티는 다짜고짜 캐스티의 등을 안으며 큼직한 눈 방울을 내리 흘렸다. 그리고는 캐스티는 보티 등에 기대 펑펑 울면서도 발을 동동 굴렀다.


“도미닉! 도미닉! 이 나쁜 놈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


보티는 도미닉이라는 키워드로 내부 아카이브에 저장된 기록을 검색해 보았다. 도미닉은 캐스티와 같은 고등학교 학우이다. 일찍이 그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캐스티와 같이 정비소에 온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는 항상 기타를 메고 다녔고 자주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한적한 장소에 있는 정비소의 비는 시간을 빌려 동년배기 친구들과 결성한 밴드의 합주 연습을 하기도 했다. 마르고 큰 키에 장발의 히피 스타일의 친구였다.


19살의 어린 친구지만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다. 정비소에서도 몇 번 피려고 했지만, 기름이 많은 곳에서 담배는 금기라고 살아생전 벤이 절대적인 규칙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보티는 매번 그를 제지하곤 했다. 그때마다 캐스티가 보티 편을 들면서 도미닉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권유하곤 했다.


“보티, 도미닉이 이 마을을 떠나겠대! 날 두고 가버리겠대.”


캐스티는 보티의 가슴을 두드리며 오열했다. 툭. 보티가 손을 가슴에 툭 대었다.


“보티, 네가 있지 않냐고?”


캐스티의 말에 보티가 끄덕였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결국 넌 기계 골렘이고 난 그냥 사람이야. 너와 나는 친구이자 사랑하는 가족 같은 존재야. 하지만 연인은 될 수 없는 거잖아! 난 도미닉이 필요해. 사랑을 나눌 연인이 필요하다고!”


캐스티는 주저 앉아 큰 눈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보티는 미동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캐스티를 바라볼 뿐이었다.


“도미닉, 이 나쁜 자식.”


그렇게 상처를 끌어안은 채 캐스티는 오랜 시간 울고 또 울었다.


일주일 후, 캐스티는 마을에서 사라졌다. 캐스티가 사라진 이후 보티는 무의미한 작업을 반복했다. 몇 달이 지나도록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 보티가 자각할지는 모르나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보티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정비소를 들락거리던 벤의 이웃이나 캐스티의 친구가 자주 보티를 살펴주었다.


어느 흐린 날, 캐시가 캐스티를 찾아왔다.


“잘 있었어요? 캐스티?”


캐시는 캐스티의 보모이자 집안의 가정부로 보티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캐스티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지금 읽어 드릴게요.”


『보티에게.

보티 잘 있어?

나는 우리가 살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 머물고 있어. 여객선을 타고 바다 건너 동쪽으로 3일 걸려 도착한 땅에서 또 이틀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이야. 이곳 지명은 비밀이야.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말이지.

나는 이곳에서 도미닉과 약혼을 했어. 난 지금 너무 행복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바보같이 나를 기다리지도 말고. 도미닉과 나는 이곳에서 자리를 잡을 거야. 돌아가지 않아.

보티!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정말 미안해. 사랑해, 보티. 이젠 진짜 이별이야.

캐스티로부터.』


캐시는 편지를 곱게 다시 접어 보티에게 전해주었다.


“캐스티는 부모님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요. 보티에게만 특별히 편지를 보낸 거예요.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하다고 전언을 남겨 주었어요.”


캐시가 보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편지를 손에 쥔 채 멍하니 멈춰 있던 보티가 고개를 들어 캐시를 바라보았다.


“···보티, 마음이 닳아요.”


보티가 말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는 캐시를 뒤로 한 채, 보티는 오랫동안 멈춰 있었던 그 언덕 위로 향했다. 나무 앞으로 터벅터벅. 그는 맨 처음 그랬던 것처럼 털썩 주저앉아 조용히 멈추었다. 그렇게 낮과 밤이 여러 차례 바뀔 동안 보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절전 모드도 켜지지 않은 채 그저 공회전이 반복되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계기판에 연료 부족 경고등이 떴다. 오랫동안 갈지 않았던 엔진 오일도 어느새 메말랐다. 그렇게 보티의 엔진은 균열이 났다. 그렇게 엔진이 서서히 멈추었다. 그리고 엔진은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보티가 렌즈를 통해 지켜보던 세상이 하얗게 빛났다. 보티는 그제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보티의 연료통을 열고 가솔린을 넣었다. 보티의 렌즈에는 많은 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이다.


“보티, 네 녀석이 없으니까, 마을 기계들이 당최 돌아가질 않아.”


“힘들겠지만, 모두를 위해 조금만 힘을 내줘, 보티!


마을 사람들은 보티의 기름통과 엔진 오일을 채우고,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 칠을 했다. 그들은 보티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애정을 담아 수리를 했다. 보티는 담담하게 일어나 정비소로 향했다. 보티는 다시 묵묵하게 일을 했다. 예전으로 돌아갔다.


몇 해가 지났다. 보티는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언덕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시곗바늘이 반 바퀴를 돌고 다시 정비소로 향할 때가 되자 보티가 기동을 했다.


“안녕, 보티.”


보티는 몸이 굳었다. 눈앞에 캐스티가 있었다.


보티와 캐스티는 예전처럼 언덕 나무 아래에 앉아 등을 맞대었다. 캐스티는 많이 변했다. 앳되던 얼굴은 사라지고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많이 상해 보였다. 그리고 캐스티의 배가 산만했다.


“보티, 내 배에 손을 대볼래?”


배를 감싼 커다란 손에서 콩닥콩닥 심장 뛰는 진동이 느껴졌다.


“보티···.”


캐스티가 울면서 보티의 이름을 불렀다.


“도미닉이··· 도미닉이 죽었어.”


캐스티가 서럽게 운다. 보티는 다시금 마음이 닳았다.


이후 찾아온 캐시는 캐스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도미닉은 도박에 빠졌고 큰 빚을 냈다. 그는 이후 술과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집 역시 캐스티가 떠난 이후, 사업에 실패했고, 가족 모두 뿔뿔이 헤어졌고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캐스티가 돌아온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도 모두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났다. 여전히 근처에 살고 있던 캐시 만이 그녀를 맞아 주었다. 캐스티는 덩그러니 낡은 집에 홀로 남았다. 이제 캐스티에게 남은 것은 보티 뿐이었다.


캐시는 생계를 위해 낮에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해야 했다. 그녀 역시 가족 없이 혼자이기 때문에 카페에서 일하는 시간 외에는 보티와 캐스티 곁을 지켜주었다. 어릴 때 유모로서 캐스티를 키웠기 때문에 사실상 캐스티가 딸이나 다름이 없었다.


“캐스티는 지금 혼자에요. 보티가 같이 있어 주지 않을래요?”


캐시는 보티에게 제안을 했다.


보티는 정비소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캐스티의 곁을 지켰다. 보티가 없을 때면 으레 사채업자들이 캐스티를 찾아왔다. 남편이 진 빚을 갚으라고 아우성치었다. 기계 골렘인 보티의 덩치는 매우 컸다. 사채업자들은 그의 크기에 큰 위압감을 느꼈다. 물론 전쟁용이 아닌 기계 골렘이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세상은 모르는 일이니까! 어떤 사이코패스 미치광이 과학자가 사람을 공격하는 기계 골렘을 만들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사채업자들이 자발적으로 가진 망상 덕분에 적어도 보티의 근무 시간 외에 캐스티는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보티는 특별했다.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보티는 정말 특별했다. 사채업자들도 쉽게 보티를 공격해 해체해버릴 수는 없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는 데 계속 이곳에 아이에게 이상이라도 생길 것 같아요, 아가씨.”


하지만 사채업자들의 행패가 날로 심해지자 캐시는 정비소에 머물자고 제안을 했다. 캐스티는 정비소의 기름 냄새가 아이의 건강에 어떤 해를 입힐지 몰랐지만, 적어도 사체업자의 고함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비소는 한동안 기계 정비하는 소리만 가득했었다. 가끔 오는 손님들의 주문 외에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온전히 보티 혼자만의 공간으로 기계만의 공간이었다. 캐스티가 돌아오자 예전 그때처럼 말소리가 가득한 공간으로 돌아왔다.


“있잖아, 보티? 나와 도미닉이 있던 그 도시는 말이야. 몹시 추운 나라야. 눈이 많이 올 때는 글쎄 내 얼굴이 있는 높이까지 눈이 내리더라니까?”


“보티, 보티! 내가 있던 그곳은 여름이 되면 말이야. 때론 해가 지지를 않아. 낮에도 밤에도 하늘이 맑고 파래. 그래서 백야라고 불려.”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기억할 나이가 되면 같이 그곳에 돌아가 보고 싶어.”


캐스티는 보티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북동쪽에 먼 나라 이야기였다. 보티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저 묵묵하게 계속 들어주었다.


하늘이 너무나 나도 맑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그날따라 정비소의 일이 배로 많았다. 반가운얼굴의 마을 사람들이 정비소를 많이 들렀다. 보티가 자동차나 트렉터, 재봉틀, TV, 냉장고 등을 정비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캐스티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하루가 외로움의 연속이었던 캐스티는 오늘 하루만큼은 고독감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캐시도 그날은 월차를 내고 캐스티의 곁을 지켰다. 가게에서 가져온 베이커리와 헤이즐넛 향의 커피를 나눠 마시며 소박한 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평소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졌고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졌다.



손을 마주 잡은 보티와 캐스티 그리고 캐시는 환하게 빛을 내는 별빛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보티, 오늘 별들이 완전 환하지 않아? 이 마을은 그 마을처럼 별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속이 시원할 정도로 별들이 선명하게 보여. 정말 많은 별이 내 아이를 축복해주는 것 같아.”


캐스티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캐스티. 앞으로도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집으로 향하는 10분이 10초가 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현관 앞에 거무칙칙한 그림자가 보였다, 거칠어진 양복을 입은 남자 여럿이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예의 사채업자들이었다.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그 앞에 캐스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말이야. 우리가 정비소를 찾아가려고 했어. 근데 무슨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정비소 안과 밖으로 가득 차 있더라고. 문밖에서도 아저씨들이 진을 치고 있더라고. 오늘이 딱히 주말도 아니잖아? 일을 안 갔는가 봐? 아무튼 말이야. 우리도 할당량이라는 게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거거든?”


“이봐요! 아무리 그래도 임신한 여성에게, 그것도 이 밤에 꼭 그렇게 해야겠어요? 당신들이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캐시가 말했다.


“앗, 배가···.”


갑자기 캐스티가 배를 부둥켜안고 땅에 주저앉았다.


“캐스티 아가씨!”


“뭐, 뭐야!?”


“아가씨, 어서 침실로 들어가요. 보티, 이 사람들 좀 내보내요!”


캐시가 캐스티를 이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저 여자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우리도 이제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응?”


사채업자들이 고개를 돌리자 보티가 근접해 사채업자들의 리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앗! 뭐야, 너! 해볼 테냐?”


사채업자 리더는 의기양양한 말과는 달리 뒷걸음치다 넘어질 뻔했다. 현관문에 겨우 등을 대 부하들 앞에서 모양이 빠지는 꼴을 면했다. 보티는 말없이 계속 리더를 쳐다보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무언의 시선에 리더의 등에는 땀이 한가득 흘러내렸다. 하지만 돈이라는 거대한 목적의식에 사로잡힌 리더는 그에게 무언가 말을 시작했다.


“마침 네놈에게 전할 말이 있었어. 네놈이 저 임산부를 그렇게 아낀다지?”


10여 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보티는 집에 들어왔다.


“다행히 캐스티는 별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잠시 놀라서 그런 것 같네요. 지금 막 잠들었어요. 보티는 무슨 일 있었나요? 혹시 저들이 무슨 해코지라도 했어요?”


보티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자신이 머물던 캐스티의 방 밖의 복도에 앉아 평소대로 아침을 기다렸다. 캐시는 원래 보티가 과묵한 것을 으레 알고 있었지만, 평소와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다음날이 밝았다. 안개가 끼고 흐린 날이었다. 평소보다 이른 아침이라 피곤했지만, 캐스티가 눈을 떴다. 아침부터 뱃속의 아기가 발을 힘껏 찼기 때문이다. 배가 많이 무거워진 것 같았다. 이제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아침이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는데 평소와 달리 캐스티가 없다. 내가 늦게 일어났나? 캐스티는 캐시를 찾았다.


“보티요? 저도 못 봤어요. 주방에 메모를 남기고 갔더라고요. 옆 마을에 급한 출장이 생겨서 아침 일찍 나갔다고 해요. 오늘은 집에 못 온다는 군요, 아가씨. 보티가 글을 쓸 줄 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그래? 한 번도 글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신기하네. 옹.”


“기계 골렘의 글씨라 뭔가 특별하거나 딱딱할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남자 글씨 같아요. 조금 악필인 남자요.”


“그거 재밌네. 돌아오면 물어봐야겠다.”


아기가 배가 고픈 걸까? 캐스티는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지만, 뱃속 아이를 위해 따뜻한 빵 한 조각을 먹고 싶었다. 캐스티를 위해 캐시가 아침 일찍 베이커리에 들러 아침을 준비했다. 둘은 식탁에 앉아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감자 수프, 블루베리 머핀을 함께했다. 창문 밖에서 보이는 둘의 모습은 흡사 모녀 같았다.


“오늘은 날이 흐리네요. 안개가 많이 꼈어요, 아가씨.”


“그러게, 캐스티는 조심히 잘 갔는지 모르겠네. 캐스티야 다치지는 않겠지만···.”


“그렇죠? 캐스티가 누구랑 부딪히면, 캐스티가 아니라 부딪힌 사람이 다칠까 봐 걱정이네요.”


“그 말이 맞네. 캐스티 몸이 좀 단단해야지. 안심되네.”


“아가씨, 오늘은 날도 흐린 데다 보티도 먼저 나갔으니 오늘은 집에서 쉬세요. 몸도 안 좋으시고.”


“사채업자들이 또 안 올까?


“사채업자들도 어제 그렇게 까지고 했는데 또 오늘 오겠어요? 아까 마크 보안관님에게 전보를 보내놨어요. 집 앞을 자주 순찰해 달라고요. 괜찮을 거예요. 저도 오늘까지 휴가니까, 온종일 곁에 있을게요.”


“그럼 다행이고. 내일 보티가 빨리 돌아오면 좋겠네.”


하루가 지나고 또 날이 밝았다. 창가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캐스티는 이윽고 눈을 떴다. 수중에 캐시는 보티가 아침에도 돌아오지 않아 캐스티가 걱정되었는지 휴가를 하루 더 늘렸다.


어제 내내 습하던 안개는 거짓말 같이 개었고, 오늘은 꽤 상쾌한 날씨였다. 캐시는 햇빛이 강하게 내려 앉은 김에 이불을 널러 나왔다. 캐스티도 집 안이 답답했는지 집 앞 테라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태교를 위한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마당 앞쪽으로 자전거를 탄 노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집배원 브레이였다. 그의 모자속 머리는 새하얗고 얼굴에 주름 한가득하지만, 그는 집배원 제복이 썩 잘 어울렸다. 자전거로 단련된 건강한 체형 덕분일까?


브레이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한 편이었다. 브레이는 평소의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캐스티에게 다가왔다. 매번 안 좋은 내용의 우편물을 주로 받는 캐스티였지만, 브레이가 싫지는 않았다. 브레이의 건강한 미소 덕분이다.


“날씨가 참 좋죠, 캐스티 양.”


“그러게요, 브레이 씨. 식사는 하셨나요?”


“하하, 마침 점심을 먹으러 요 앞 식당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캐스티 양에게 전할 편지가 있었는데 가는 길이라 들고나왔지요. 자, 여기 있습니다.”


“설마 또 법원에서 온 송달인가요?”


“하하, 다행히 아닙니다, 캐스티 양.”


캐스티는 브레이를 보낸 후 봉투를 캐시에게 건네었다. 봉투는 꽤 두껍고 무거웠다.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마을 우체국이었고 사람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캐시는 종이칼로 봉투를 열었다.


“세상에나!”


놀랍게도 봉투 안에는 상당히 많은 거금이 들어있었다. 남편의 빚을 다 갚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에구머니! 대체 누가 이런 큰돈을 보낸 거죠?”


캐시는 놀라 봉투를 떨어트릴 뻔했다.


봉투를 건네받은 캐스티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혹시 편지라도 들어 있을까 하여 지폐를 훑어 보였다. 편지는 없었지만, 안에는 여객선과 기차의 표가 들어 있었다. 캐스티와 도미닉이 머물렀던 그곳으로 향하는 교통편이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천사들이 가져온 선물같이 느껴졌다.


“이제 빚을 갚을 수 있겠어요, 캐스티 아가씨!”


“그러게. 하지만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보티에게 좋은 엔진 오일을 넣어주고 싶어. 보티가 자기가 정비소로 번 돈, 모두 내 빚 갚는 데 쓰고 있었지? 나 알고 있었어. 보티 자신은 저렴한 가솔린에 엔진 오일 쓰면서 말이야. 항상 곁에 있어 준 보티에게 보답하고 싶어.”


“좋은 생각이에요. 항상 아가씨 곁에 있어 주었죠.”


“보티, 얼른 돌아와,”


캐스티가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 맑았다.


보티는 옆 마을의 한 허름한 정비소에 있었다. 사채업자들이 보티의 곁을 둘러싸고 있었다. 보티의 앞에는 한참 구타를 당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허름한 정비소의 주인 게이브였다.


“저, 정말 괜찮겠어요?”


게이브가 사채업자들에게 물었다.


“기계 골렘 본인이 괜찮다고 하잖아! 작업해주는 대신 네놈 도박 빚도 감해주는 거니까 어서 진행하지 못해?”


“하지만 그러면 이 기계 골렘은 정지되고 말 텐데요?”


“시끄러워! 어서 하지 못해! 이 기계 놈의 부품은 매우 희귀해서 귀중품이나 다름없어. 수집가들에게는 황금보다 귀하다고!”


게이브가 보티의 가슴을 열었다. 보티는 캐스티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보티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게이브는 보티의 녹슨 엔진을 꺼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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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림 소 리 소 설 단 편 집- 몽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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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닳다 24.09.07 2 0 33쪽
2 썩은 사과와 파리 떼의 왕 24.08.31 4 0 12쪽
1 고문의 사유 24.08.23 10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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