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d급 전사는 저승에서 탈주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꽃의망령
작품등록일 :
2024.08.26 10:56
최근연재일 :
2024.08.28 11:14
연재수 :
5 회
조회수 :
57
추천수 :
0
글자수 :
27,402

작성
24.08.27 21:18
조회
7
추천
0
글자
11쪽

살의의 도시

DUMMY

나와 유목 상단 일행은 퓌리엘 계곡에서 나와 한참 펼쳐진 황야로 나아갔다.

황야에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허허벌판 위에 뜬금없이 나 있는 사람들의 행렬을 발견했다.

그리고 앞서가던 유목 상단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엥? 이게 그 퓌레츠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대기열이야?

왜?

"훌륭한 표정이군."

가이텐이 씩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보는 거지? 이게 다 그 잘난 도시로 들어가는 녀석들이라고."

"대체 이 허허벌판의 어디에서 이놈들이 다 쏟아져 나온 거야?"

"우린들 알겠냐, 여긴 원래 이랬어. 뭐, 우리처럼 유목 생활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야."

"그래도 오늘은 짧은 편이에요."

이게?!

아주아주 느리게 줄이 줄었는데, 조금씩 앞으로 가자, 저 수평선에 굵은 펜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성벽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체는 더 심해졌다.

우리가 섰던 줄만 줄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멋대로 끼어든 놈들이 중구난방으로 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줄의 형태는 일직선이 아니라, 그냥 덩어리였다.

이게 '줄'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합의가 맞는가 의심이 드는 지경인데, 이 줄을 대상으로 텐트치고 노점상을 여는 장사치들도 있어 더더욱 혼잡해졌다.

그저 순서고 뭐고 눈치껏 끼어드는 지경이 되었는데,

심지어는..

"이새끼야, 여기 내 자리야! 뒤져!"

라며 큰 소리를 치더니 칼을 꺼내들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저 위협용이 아니라, 실제로 살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싸우지 않는 자들도 모두 무기를 꺼내 자기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 공간에 공권력 따윈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와 함께 갔던 유목 상단도 무기를 꺼내고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던 녀석들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눈을 피하며 길을 내주기 시작했다.

"엥? 나랑은 안싸워?"

"오빠랑 어떻게 싸워요."

오...오빠?

레테린의 급격한 호칭 변화로 잠시 놀랐다.

"그래, 자기 꼴을 한번 보라고. 덩치는 산만해서 왠만한 사람 머리가 명치에 오지, 눈은 걸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지, 거기다 늑대 대가리를 무기라고 가지고 다녀. 그러면서 자기는 아무 이상 없는데? 하는 표정이나 짓고 있고 말야. 거기에 옆에 있는 검정 유령같은 거까지 말야."

신랄하시구만요, 아저씨.

"뭐, 덕분에 우리 일행도 조용히 지나갈 수 있어요."

내가 다가가자 쉽게 돌파되었다.

그렇게 성과 가까워지자, 그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엄청 높네."

전생에 있던 그 잘난 왕도의 성보다도 높아보였다.

게다가 성문은 얼마나 화려하게 꾸몄는지, 예술작품이 따로 없었다.

성문 위에서 이름모를 짐승의 조각상이 움직이더니, 방문자들을 차례로 훑어보다 나에게서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어딜가나 경계하더니, 돌덩이 마저 이러냐.

뭐,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앞서간 유목 상단은 내 몫의 판금랑 가죽이 가득 든 포대기를 주더니 자기들 볼일 보러 떠나고, 나와 레테린, 가이텐은 여관을 잡으러 갔다.

그런데 뭔가,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겁을 먹은자와, 유달리 날카롭게 째러보는 자로 나뉘는 것 같았다.

뭐, 이런 시선쯤이야 익숙하니까.

"저쪽에 여관이 모여있는 것 같아요."

레테린이 말한 곳으로 걸어가는 데, 누군가 우리를 불러서더니,

"여, 형씨들, 혹시 우리 여관에서 머물지 않겠수?"

라며 말했다.

뒤이어 뚱뚱한 여자가 걸어오더니,

"그래요, 시원한 술과 갓 구운 고기가 있다고?"

라며 거들었다.

부부관계인가?

"그럼, 그럴까?"

뭔가, 눈초리가 이상한 것 같은데...

"저 아줌마 아저씨들, 아까 나락 오빠를 째려보던 거 같은데요?"

"그래, 뭔가 낌새가 좋지 않군. 다들 경계하는데 저들만 반갑게 맞이 하는것이 뭔가 이상해."

가이텐과 레테린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너희, 지쳤잖아? 빨리 쉬고 싶지 않아?"

"그건 그런데..."

여관 안은 듬성 듬성 술과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을뿐, 특별한 건 없었다.

"1인 1실로, 괜찮죠?"

아줌마가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아마 형태가 질문일 뿐, '1인 1실 하라'는 강요처럼 들렸다.

"아뇨, 방 한개로 괜찮은데요?"

"아가씨는 가만히 있어! 벌써부터 남자들이랑 같은 방에서 자다니, 어쩌려고 그래? 그냥 1인 1실 해!"

뭔가 과하게 화내는 것 같은데,

"그럼 방 두개로 잡지."

"그쪽의 아가씨랑 아저씨 둘이서 방 하나, 그리고 그 크신 분이 방 하나, 맞나?"

앗, 또 아저씨라고...

"아니아니, 당연히 여자애 하나, 아저씨 둘이서 하나인게 당연하잖아?"

"왜 당연한 건데! 그냥 1인 1실해!"

뭔가 비논리적이고, 억지로 1인 1실로 몰아붙이려는 수작.

이건 확실히...

"까짓거, 그렇게 해보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오빠! 누가봐도 이상하다구요?"

"그래!"

그러나 급격히 표정이 밝아진 아줌마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러면서 방의 열쇠를 주는데, 얼씨구, 나 혼자 앞자리가 달라.

층이 다르단 거지.

이거 참, 노골적이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면으로 부딪혀 보자고. 뭘 꾸미는지.

그리고 사실, 나 혼자 아니야.

여관 방으로 들어온 뒤, 그 녀석을 오늘 해 뜨고는 처음으로 불러봤다.

"대화 상대는 있어서 다행이네, 깜댕아."

"깜댕이? 나 부르는 거야?"

"그래, 안깨우니까 길게도 쳐 잔다 영체주제에."

"여긴 어딘데? 갑자기 나무 벽에 둘러싸여있어? 너, 감옥 갔냐? 내 그럴줄 알았어."

"여관인데, 감옥 같지?"

혼자 그 생각을 한게 아니라 다행이다.

그래, 아니, 감옥도 아냐. 이건 침대가 아나 놓였을 뿐 헛간이나 다름 없었다.

"너, 혹시 싸울 줄 아냐?"

"날 뭘로 보는 거야. 나 이래뵈도 망자 호송 영체라고. 근데 내가 싸워야 되냐? 너 강하잖아, 나한테 도와달라고 해야하는 수준이야?"

"그럴지도 몰라서."

"뭐, 걱정마. 나, 무슨 일이 있어도 망자를 안전히 데려가는 영체라고."

"못 데려갔잖아?"

그러자, 깜댕이에게서 강한 분노의 감정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갈거라고!"

그때, 똑똑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에요, 레테린."

"들어와."

그러자, 이대로 떨어지는 거 아냐? 싶을 정도로 심한 끼이익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말한데로 레테린과 가이텐이었다.

이 방을 처음 본 그들의 눈이 당혹, 연민, 분노의 3단계를 거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여관 정말 거지같다고 말하러 왔는데, 여긴 더 심하네."

"그러게요! 이게 여관이에요? 우리 부족 천막이 더 낫잖아요!"

"뭐, 이유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 날 상대로 뭔가 꾸미는 거 같아."

"대체 뭘까요?"

"장기 팔려는 거 아냐? 몸도 크니까 장기도 클 거 같아서?"

"장기 척출이 가능한 세계였어?"

"뭐 성공률이 높진 않지만. 아니면 의료용으로 못팔면 안주거리로 삼을 수도 있고."

이 유목민들의 도덕 관념은 때때로 사람을 아찔하게 한단 말이지.

"제가 지켜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쪼그메 가지고 지키긴 누굴 지켜. 가이텐에게 지켜달라고나 해."

"우습게 보지 말아요, 여차하면 웃기지도 않는 나무 바닥 부셔서 다이렉트로 내려올 테니까요!"

"근데 그거 아냐? 여기, 내가 살던 곳중엔 손에 꼽게 편하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왜요?"

"말했잖아. 주로 산에서 살았다고."

그러자 두 사람이 보는 연민의 눈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겁니까..."


저녁시간이 되자, 주인 아저씨가 불렀다.

1층으로 내려가보니, 상다리 부러질것 같은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지. 얼른 드시오."

정말로, 진심으로, 빨리 쳐 먹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특히, 유난히도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가이텐에게도 술을 권했지만, 나에게 권하는 술과 다른 병에 든 술이었다.

그때, 검댕이가 속삭였다.

'독이라고?'

뭔가 신나하는 목소리.

알고 있어.

엥? 그러고 보니, 나 죽을 수 있는 거였나?

나 귀신이라며?

'....맞네.'

저승으로 데려간다고 신나한 거였나. 멍청하긴.

들을리 없는 독주를 마시니 기쁜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혹시, 몸이 이상하지 않으신지...?"

라며 노골적인 질문을 하는 아줌마.

그제서야 가이텐도, 레테린도 내가 마시는 술이 이상함을 깨달았는데,

"응. 아무 문제 없는데? 봐, 목소리도 꼬이지 않았고, 눈꺼풀도 말짱하잖아?"

라는 말에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저씨, 아줌마.

"그러십니까...그럼, 마음껏 드시고 올라가시지요. 저는 일이 있어서 이만."

이라며 다급히 여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라진 뒤,

"오빠, 독이에요?"

"독 먹은거냐."

라고 황급히 묻는 레테린과 가이텐.

"맞아. 근데, 나에게 듣지 않아."

"휴, 다행이네요."

"독도 통하지 않는다니...넌 대체..."

나는 여관 바깥에서 다수의 인원이 이쪽에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네."

"그럼, 올라 가볼까?"

축제를 준비해야 하니까.

준비한 걸 확실히 즐겨주겠다고 생각했다.




여관 주위에 많은 장정들이 모여있었다.

'검은 괴한'의 손에 아들을 잃었다는 주안댁이 운영하는 여관의 협조로, 그 거대한 남자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만일 우리가 실패하면 신호를 보낼테니, 여관을 통째로 태워버리라고."

"그래도 되겠소?"

"뭐, 이제 여관도 잘 안되고, 아들도 없는데, 더 살아봤자, 여관을 더 남겨봤자 뭐하겠나?"

"...."

그 말에, 잠시 숙연해진 군중.

그때, 한 무리의 장정들이 앞으로 나섰다.

"잠깐, 두 분은 빠지시고, 우리에게 맡기시오."

그렇게 말한 것은 풍채가 좋은 남자이자 은퇴한 군인, 장 르벨이었다.

그는 본디 이 도시를 지키던 군의 장교였으나, 영주가 영민들을 지켜주지 않는 것에 실망해 뜻 맞는 몇 명의 병사들과 함께 군을 떠나 자체적으로 자경단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이 어중이떠중이들 중에서는 무력도, 무기도 가장 출중했다.

"놈이 아직 무력화 되지 않았을 수 있으니, 우리가 가장 먼저 진입할 것이오."

그 말에 군중들 사이에서 존경의 감탄과 애도의 눈물이 퍼져나갔다.

"확실하지?"

"뭐가 말이냐?"

"그놈이 그 '검은 괴한'이라는 거 말이야."

그러자, 주변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의 눈빛에서 무언가에 홀린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너, 지금까지 뭘 들은거야? 거대한 덩치에 큰 무기, 그런 놈이 흔할리가 없다고!"

그거 다 심증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면, 너 저쪽의 내통자야?"

라는 발언과 함께 자신에게 광기와 살의의 눈빛이 날아드는 바람에,

"아니야..."

꼬리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정의의 분노에, 논리따윈 필요없었다.

"자, 슬슬 시간이 됐겠군. 다들 무운을 빕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들의 뒤에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id급 전사는 저승에서 탈주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 여관 공성전 24.08.28 6 0 11쪽
» 살의의 도시 24.08.27 8 0 11쪽
3 요새도시로 향하다. 24.08.27 10 0 11쪽
2 나락 장군 24.08.26 12 0 11쪽
1 탈주합니다 ㅂㅂ 24.08.26 22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