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해서 미국 탑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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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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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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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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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내 귀에 메트로놈

DUMMY

“아, 젊음이 부럽다!”


희끗거리는 머리를 염색약으로 감춰야 할 나이의 이 남자는 올해 반백이 된 사나이, 고요한이었다.

그는 평생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어른이 되어서는 남들이 좋다는 대로였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맞이한 나이 50세.

문득 회한이 몰려왔다.

애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고, 그저 일터와 집을 뺑뺑이 도는 인생.

요한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니 인생에서 선택권 같은 건 없었지만,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내 인생인데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요한은 어느 날 무작정 집 근처 실용음악 교습소를 찾아갔다.

딱히 배우고 싶은 악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취미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악기였을 뿐이었다.

그 정도로 요한은 돈 버는 일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대부분의 베이비붐 세대가 그러하듯이.

음악 선생님은 이제 마흔 살 정도인 것 같은 남자였는데, 그가 요한에게 추천해 준 악기는 드럼이었다.


‘드럼이라니? 록 밴드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미친 듯이 북을 치는 그걸 말하는 건가? 나더러 이 나이에 그걸 배우라고?’


해묵은 나이 타령이 거의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요한은 억지로 말을 삼켰다.

어쩌면 나이 핑계를 대며 일을 뒤로 미뤄왔던 버릇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런 취미도 갖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차피 취미를 갖기로 결심한 거니까 일단 해보고 결정하자.

내게 맞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관두면 그만이지.


“자, 스틱은 손등이 위로 오게 잡으시고요. 엄지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스틱을 잡고 나머지 손가락으로는 감싸기만 한다는 느낌으로.”


음악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처음으로 잡아본 드럼 스틱으로부터 요한은 자신이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꼈다고 확신했다.

그것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드럼은 그가 TV에서만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냈다.

겉보기와 달리 가슴을 울리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스네어 드럼, 페달을 밟을 때마다 묵직하면서도 웅장한 소리가 나오는 베이스 드럼, 드럼 연주의 비트를 책임지는 하이햇 드럼 등 수많은 악기를 요한 혼자서 통제하고 있었다.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북들을 자기 마음대로 두들기니, 마치 비와 천둥을 부르는 풍백과 우사가 된 기분이었다.


원래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던가, 요한은 그날로 드럼에 푹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음악을 모르고 살았던 지난 50년을 뼈저리게 후회할 만큼.

보통 음악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게 반해서 음악에 입문하기 마련이었지만, 요한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드럼을 연주하는 그 자체가 좋았다.

교습이 없는 날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거의 매일 연습실에 틀어박혀 배운 것들을 연습했다.

보통 과정이 너무 지루해서 초보자들이 자주 드럼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스트로크 연습조차 요한에게는 즐거웠다.

마치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 러너스 하이에 빠져들 듯이, 자신의 손끝으로 만들어낸 빠른 비트가 끊임없이 이어질 때마다 요한은 묘한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생전 처음 생긴 취미에 신나서 무리하게 연습한 대가는 의외로 금방 찾아왔다.


“이명증이네요.”


“예?”


“뮤지션들에게는 흔한 직업병입니다. 매일 같이 귀를 혹사하니 청력이 상할 수밖에요.”


얼마 전부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병원에 찾아간 요한은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드럼을 배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프로 뮤지션이나 걸릴법한 직업병을 앓다니, 요한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했다.

청력을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요한은 덜컥 겁이 났다.

사실 그보다 더 골치 아픈 문제는 이명 때문에 드럼 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었다.

요한은 아직 드럼 초보였기 때문에 곡을 틀어놓든 메트로놈을 틀어놓든 박자를 들으면서 드럼을 쳐야 하는데, 이명이 계속 방해해서 박자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반주나 메트로놈 소리를 아무리 크게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명은 귀를 막아도 계속 들려왔다.

이제야 겨우 마음을 놓고 푹 빠질만한 취미를 찾았는데 이명이라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차라리 이 이명 소리에 맞춰서 드럼을 연주할까 보다.”


어차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이명이라면, 요한은 마음대로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머릿속에 자신에게만 들리는 메트로놈이 생긴 것처럼.

그런 꿈같은 상상을 하며 요한은 자신이 정말로 드럼에 푹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잠깐만? 방금 이명의 소리가 좀 달라지지 않았어?”


요한은 처음으로 무시하려고만 했던 이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명은 아주 느린 40BPM의 기본 4비트 박자를 정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삑---

삑---

삑---

삑---


‘80BPM’


요한이 머릿속으로 박자를 떠올리자, 이명은 단 한치의 지체도 없이 속도를 높였다.


삑-삑-

삑-삑-

삑-삑-

삑-삑-


‘160BPM’


삑삑삑삑

삑삑삑삑

삑삑삑삑

삑삑삑삑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요한이 앓고 있는 질병은 단순한 이명증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요한의 의지대로 마음껏 빠르기를 조절할 수 있는 생체 메트로놈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자신만의 메트로놈이 생겼다고 해서 그것에 맞춰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온갖 고음이 난무하는 합주 시에 나 혼자만 정확히 들을 수 있는 나만의 메트로놈이 생겼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지만 놀랄 만한 일은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요한의 머릿속에서는 생체 메트로놈이 일정한 박자를 재생하고 있었고, 그 박자에 정확히 맞춰서 드럼 스틱을 쥐고 있던 요한의 오른손이 하이햇 드럼을 두들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차 박자가 뒤로 밀리면서 길게 연주하지 못했던 연주였다.


요한은 침을 삼켰다.

혹시나 연주를 멈추면 이 신기한 현상이 사라질까 봐, 요한은 베이스 드럼 페달에 발을 올리고 왼손으로 스네어 드럼을 두들기며 연주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요한의 손발은 단 0.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였고, 박자의 빠르기 역시 요한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요한은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박자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신데요? 어떻게 전공자도 아닌데 벌써 이 정도까지 하시지?”


음악 선생님도 요한의 갑작스러운 성장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요한은 나이 50을 넘어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 어른이 되고 나면 칭찬을 들을 일이 거의 없으니까.

자신이 가르치던 제자가 느닷없이 폭풍 성장하자, 음악 선생님도 덩달아 흥분한 모양이었다.

선생님도 동네 음악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줌마들한테 통기타나 가르쳐왔을 테니, 진짜 재능있는 음악가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음악 선생님은 자신이 대학 시절에 공부하던 교재까지 꺼내와서 열과 성의를 다해 요한을 가르쳤다.

요한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론적인 것들은 대부분 흘려들었지만, 대신 실리적인 기교들은 전부 습득했다.

그에게는 무적의 생체 메트로놈과 그에 맞춰 정확하게 박자를 쪼개는 손발이 있었다.

요한이 음악 전공자도 버거워할 만한 과정들을 너무도 손쉽게 마쳐버리자, 음악 선생님은 요한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이참에 진짜 공연 한번 해보시죠?”


진짜 공연이라니?

지켜보는 관객이 있는 무대에서 드럼 연주를 선보이라는 말인가?

요한은 그냥 드럼 연주 자체를 좋아할 뿐이지 무대에 올라 박수받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진짜 무대를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럽시다! 까짓거.”


그날 이후로 일밖에 모르던 요한의 인생이 갑자기 휘황찬란하고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드럼이 밴드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합주에서 드럼은 밴드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공연할 때는 드러머가 주목받기 힘들어 인원이 적은 포지션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밴드를 하겠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주목받고 싶어 하므로 드러머 포지션은 귀한 취급을 받았다.

‘기타는 오세요. 베이스는 구합니다. 드럼은 모십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요한은 처음에는 그와 같은 아저씨 드러머를 누가 써줄지 걱정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불필요했다.

구인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자 마치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 듯, 온갖 밴드에서 러브콜이 밀려들었다.

이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에 요한은 감사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에는 별로 사랑받지 못했고, 직장에서도 빨리 은퇴하지 않고 버티는 골칫덩어리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뜨거운 환대에 요한은 마음속으로 눈물이 나왔다.


“아, 고요한 선생님! 여기예요!”


요한이 선택한 곳은 음대 신입생들로 구성된 파릇파릇한 아마추어 밴드였다.

다른 더 유명한 인디 밴드들에서도 러브콜이 왔었지만, 요한은 그가 선택한 밴드의 젊음과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평생 남에게 뭔가를 가르쳐본 적도 없는 요한에게 깍듯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여가며 대접하는 것도.


사실 아들딸 뻘 되는 음악가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하기도 했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데면데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요한의 그런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전문적인 음악 이론이나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 같은 건 끼어들기 힘들었지만, 연주 자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요한은 자신도 놀랄 만큼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평소에 나이 먹은 사람이 가져야 할 체면이나 체통 등을 전부 버리고 나자, 왜 여태껏 체면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 했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한 번 체면을 버리기로 마음먹자,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공연 날짜가 잡힌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본 요한은 생각했다.

무대에 반짝이는 조명을 받으러 올라가는데, 평소에 입고 다니던 낡은 등산복을 입을 순 없다고.

그래서 요한은 징 박힌 검은 가죽 재킷을 샀다.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찢어진 청바지도 샀다.

이마에 불타는 록 스피릿을 묶어둘 화려한 머리밴드도 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 나이에 대체 그게 무슨 주책이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 놈들은 평생 남의 눈치나 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살라지!

요한은 이제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뭐라 하던, 남은 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었다.

첫 공연 무대에 기대하며 공연장으로 향하던 중, 음주운전을 한 고급 승용차에 들이받혔기 때문이다.

요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고, 부러진 드럼 스틱이 천천히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밴드 맴버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던 따끈따끈한 붕어빵도 바닥에 쏟아졌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 평생의 기억 중에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기억은 생전 처음 음악을 접했던 얼마 안 되는 최근의 순간들뿐이었다.


내 인생이 이대로 끝인 건가?

이제야 비로소 인생의 즐거움을 맛본 순간에?

안타까움에 눈이 감기지 않았지만,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마지막 의식을 부여잡으며 요한은 생각했다.

만일 기적이 일어나서 인생을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결심했다.

의식은 끊어졌다.


“헉!”


요한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황급히 자기 몸을 살폈다.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차에 치인 것 치고는 온몸이 멀쩡했다.

그런데 몸이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오랜 세월 쌓여온 똥배는 어디 갔는지 홀쭉해서 오히려 말랐고, 팔다리도 스키니진이 어울릴 만큼 너무 가늘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 푸석푸석 거칠던 피부도 아기 피부처럼 매끄러웠다.


“여기가 어디지?”


그곳은 병원 응급실이 아니라 요한의 집이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마련한 작은 집이 아니라, 과거 미국 이민 당시 요한의 가족이 살았던 낡은 집이었다.

요한은 놀란 눈으로 침대에서 벗어나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것은 막 침대에서 일어나 푸석푸석한 머리의 14살 소년 요한의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설마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온 건가?”


당황한 요한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칼로 자른 듯한 정확한 박자로 반복되는 소리.

한때 의사가 단순한 이명증으로 오진했던,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요한의 생체 메트로놈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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