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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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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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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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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 훈련

DUMMY

다리우스가 미리 예언했던 대로, 요한이 마주하게 된 첫 번째 필드 훈련은 가혹하고도 잔혹했다.

이른 아침부터 지면 위의 모든 것을 다 익혀버릴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필드 훈련을 위해 선이 그어진 드넓은 미식축구 경기장 한가운데 서게 된 요한은 자신이 마치 자신이 달궈진 그릴 위에 스테이크 덩어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살인적인 더위에 요한은 훈련이 시작기도 전에 벌써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왜 하필 이렇게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기 딱 좋은 날 필드 훈련 날짜를 잡았는지, 점차 요한의 머릿속에는 그 한 생각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미식축구 경기장에 정렬한 셰이머스 마칭밴드의 P1 맴버들 앞에 선 플레처 단장은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며 말했다.


“우리가 공연할 때 날씨가 좋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나라에는 ‘화창하다’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 안 되지. 게다가 한창 우리가 공연할 계절에는 오늘처럼 폭염이 내리쬐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실제 공연 때의 날씨도 오늘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플레처의 말은 더위 때문에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린 요한의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없으면 불안해지던 단짝 스네어드럼은 멜빵끈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손바닥에 난 땀으로 드럼 스틱이 슬슬 손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에는 그냥 악기를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드럼메이저의 지휘와 호각 소리에 맞추어 마칭디렉터가 설계한 드릴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요한은 이런 날씨에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지 벌써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식 훈련이 시작되자 요한은 지친 것을 넘어서 슬슬 현기증까지 치밀기 시작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이 눈에 들어가 시야를 방해하고, 단원 한 사람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박자가 꼬이고 합주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교차하며 행진하던 단원들끼리 서로 부딪쳐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가뜩이나 날씨도 덥고 훈련도 힘든데 몸도 마음도 제대로 따라주지 않자 단원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고, 서로 주먹 다툼을 벌이려는 단원들을 다급히 말려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요한은 그저 부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멀찍이서 쳐다보기만 했다.

싸움을 벌인다는 건 아직 주먹 다툼을 할 만한 체력이 남아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셰이머스 마칭밴드가 이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 훈련을 감행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마칭밴드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플레처는 ‘마칭밴드는 날씨와 관계없이 공연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눈치가 빠른 요한은 이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진짜 이유란, 하루 중에서도 그나마 날씨가 괜찮은 시간에는 셰이머스 고등학교의 미식축구팀 비버스의 훈련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미식축구팀의 훈련을 우선시한다고 불평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미식축구 경기장은 원래 미식축구부의 소유물이었으니까.


단원들이 탈진할 듯이 땀을 흘리며 지쳐가는 도중에도 플레처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단원들을 다그치며 밴드를 지휘했다.

하지만 그건 플레처가 더위를 전혀 타지 않는 초인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P1으로 선발된 공연 단원들처럼 직접 필드를 뛰어다니진 않았지만, 위엄을 위해 두꺼운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훈련을 지휘하는 플레처는 이미 와이셔츠와 속옷이 푹 젖을 정도였다.

여러모로 마칭밴드 전원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이 느껴지는 훈련이었다.


“10분간 휴식!”


플레처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기진맥진한 단원들은 어딘가 앉을 장소를 찾을 여유도 없이 그냥 바로 미식축구 필드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요한이 할 수 있는 것 역시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일뿐이었다.

그마저도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뜨거운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단원들에게 휴식을 명령한 뒤에도 플레처는 본인은 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단원들의 짧은 휴식이 시작되자, 다리우스는 조금 전 훈련의 브리핑을 위해 플레처를 찾아갔다.

드럼메이저로서 다리우스도 콘닥이라 불리는 곤봉을 휘두르느라 지치긴 마찬가지였지만, 드럼메이저로 선발될만한 정예 단원답게 지친 기색을 티 내지 않고 플레처 앞에 섰다.

플레처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첫날인 것 치곤 나쁘지 않군.”


다리우스는 미식축구 경기장에 드러누워 다 죽어가는 P1 단원들을 흘깃 쳐다보았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플레처에게 고개를 돌렸다.


“진심이십니까?”


“최소한 아직 아무도 토하진 않았잖아? 다른 건 몰라도 수분 보충은 확실하게 하라고 전해. 이런 날씨에는 어어 하다가 정말로 훅 갈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되었지?”


플레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식으로 슬쩍 운을 띄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리우스의 시선은 순간 저도 모르게 다른 단원들과 함께 미식축구 경기장 바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요한에게 향했다.

잠시 요한을 쳐다보던 다리우스는 머릿속으로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이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 며칠 전에 물어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대답인데?”


“그때 이후로 저도 생각을 많이 해봤으니까요. 특히나 그때 단장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게 뭐지?”


“재능이 있는 자는 특혜를 누려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 말입니다. 여전히 그 말씀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리우스는 여전히 미식축구 경기장 바닥에 쓰러져 숨을 고르고 있는 요한을 힐긋 쳐다보았다가, 말을 이었다.


“요한이 재능을 갖춘 실력자라는 사실은 인정해야겠더군요.”


플레처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다리우스를 쳐다보았다.

요한이 마칭밴드에 들어오자마자 그를 골치아픈 눈엣가시 취급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요한을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플레처는 많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다리우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요한의 실력이라면 이번 일도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나?”


“글쎄요? 요한을 신용한다기보다는, 이 정도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직 천재라 불릴 자격이 없는 거라는 말입니다.”


“내 귀에는 똑같은 말로 들리는데.”


플레처와 다리우스가 요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날씨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느닷없이 드리워진 구름 덕분에 이제 겨우 더위에서 벗어나나 기대했던 P1 단원들은 검은 먹구름에서 쏟아지는 굵은 장대비에 혼비백산해야 했다.

브루클린의 날씨는 변화무쌍했고, 찌는듯한 폭염이 지속되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는 일도 흔했다.

그랬기에 이곳 지역에서는 웬만한 이상기후로는 마칭밴드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없었다.

비바람을 동반한 국지성 허리케인이라도 발생해서, 단상 위에서 지휘하던 단장이 떠밀려 추락할 정도가 아닌 이상.

그래서 당연히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도 요한과 P1 단원들의 훈련은 계속되었다.


“진영을 유지해!”


플레처는 목이 쉬도록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치며 단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플레처의 지시를 정확하게 전달받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후열의 단원들은 플레처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 반쯤은 눈치로 때려 맞춰야 했다.

양동이로 퍼붓듯 잔혹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온몸이 흠뻑 젖었다.

전신을 흠뻑 적신 빗물은 빠르게 체온을 빼앗았고, 얼어붙을 듯한 추위에 악기를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손끝의 감각부터 서서히 마비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실적인 문제로 더 이상 악기 연주는 동시에 진행하지 않고, 행진시의 동선과 타이밍을 맞추는 훈련만 반복한다는 점이었다.

물과 악기는 상극이었다.

값비싼 악기들이 젖지 않도록 방수포로 싸놓았기 때문에 현재 연주는 불가능했다.

다만 아예 빈손으로 하지 않고 굳이 연주할 수도 없는 악기를 들고 훈련을 진행하는 이유는 요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였다.


“연주도 못 할 악기를 괜히 매고 있는다고 불평하지 마라! 맨몸으로 백날 연습해봐야 자기 악기 무기에 맞춰 연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화려한 쇼를 펼치는 모습만 보이는 마칭밴드에서 잘 부각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마칭밴드에서 쓰이는 악기들은 보기보다 훨씬 무거웠다.

요한이 사용하는 휴대식 스네어드럼인 마칭드럼만 해도 계속 매고 있으면 어깨가 짓눌리고 허리가 아파왔다.

거기에 튜바 정도 무게가 되면 더 이상 ‘움직이는 데 불편하다’라는 수준의 무게가 아니었다.

마칭밴드는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를 전부 정밀한 박자에 맞춰서 행동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주위에 어우러지지 못하고 혼자서 눈에 띄게 되고 전열을 망치게 되며, 부딪쳐서 넘어지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플레처의 말처럼 마칭밴드의 동선 훈련에는 자신이 다루는 악기의 무게에 맞춰 적절히 힘을 안배하는 일이 중요했다.

악기를 들지 않은 빈 몸으로 백날 연습해봐야 실전 무대에 오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해가 저물어가자 오늘의 훈련도 점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야간에도 훈련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미식축구 경기장에는 밝은 조명이 켜졌다.

하지만 날이 저물어도 쏟아지는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힘들다···.’


전신에 남은 체력은 이미 낮에 전부 소진하고 없었다.

지금 요한을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는 것은 오직 정신력과 집념뿐이었다.

나머지 P1 단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히려 체력이 부족한 편에 속하는 요한이 경력을 쌓은 선배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신기한 상황이었다.


지치고 탈진한 것을 넘어서서 일종의 트랜스 상태로 진입한 P1 맴버들에게 남은 상황은 하나뿐이었다.

결국 현실적인 육체의 한계까지 찾아와 기절하듯 쓰러지는 것.

한번 쓰러진 사람은 자기 의지로는 절대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지금 누군가 쓰러지는 순간 더 이상의 연습은 물 건너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한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항상 슬픈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P1 단원 중 한 명이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소리 없이 쓰러졌다.

빗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운 상황이었기에 요한도 눈으로 확인한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바닥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미식축구 경기장 바닥에 죽은 듯이 얼굴을 파묻고 쓰러지는 그를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야, 요한은 그가 조율을 핑계로 스네어드럼을 가져갔던 선배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헉···! 헉···!”


그는 비록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지만, 마지막 집념을 담아 두 눈만은 안간힘을 다해서 치켜뜨고 있었다.

자신이 눈을 감는 순간 정신마저 잃어버리리라는 걸 직감한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일어서서 훈련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미 모든 기력을 소진해버린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누가 한번 다시 일으켜주기만 한다면, 계속해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애타는 마음과 제멋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 때문에 그는 더더욱 힘껏 두 눈을 부릅떴다.


그때, 요한이 먼저 움직였다.

머릿속으로 그를 도와야 겠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미식축구 경기장 바닥에 쓰러진 그의 눈을 보고, 그의 눈빛에 담긴 답답한 감정을 읽은 순간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눈앞의 장애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하는 답답함.

자신에게건 타인이건 요한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한! 대체 지금 자네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당장 대열로 돌아와!”


훈련 도중에 느닷없이 대열을 이탈하는 요한에게 플레처는 화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전체 드릴 중 퍼커션 브레이크 직전의 드럼 솔로를 맡은 요한은 단상과 가까운 포지션이었기에 플레처의 목소리를 잘 들렸다.

하지만 플레처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던 요한은 곧장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며 대열을 벗어났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빗소리 때문에 뭐라고 하시는지 잘 안 들리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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