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균자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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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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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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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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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반쪽 비극 Ⅰ

DUMMY

#001. 반쪽 비극 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제 엄마는 출근을 하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만 했다. 정부의 지침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막 입학할 예정이었던 어린 동생은 학교를 못 가게 됐고, 그저 엄마와 같이 집에 있다는 사실에 헤벌쭉 웃으며 행복해 있었다. 학교를 못 가게 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 사실 처음 며칠은 학교에 안 가서 좋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일주일 이 주일··· 점점 길어지니 친구들도 보고 싶고 무언가 너무 지루했다.


이 모든 일들은 단 몇 개월 만에 일어났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괜찮아질 거야."라고 저녁 식사자리에서 우리들에게 얘기했다.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는 공무원인지 잘 모르지만, 엄마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우리 도시에서 10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자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바이러스에 면역이면서 동시에 병을 옮길 수 있는 '보균자'들을 관리하는 게 아버지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보균자들을 보면 치를 떨었다. 이야기만 나와도 저녁 식사에서 숟가락을 내려놓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보균자들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떤 보균자가 집중 검사소?라는 곳을 탈출했다던가··· 보균자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특정 구역을 좀먹기 시작한다던가 하는 이야기였다.


처음에 나는 이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학교와 도소매 지구 정도만 오다니는 학생인 내가 그런 보균자들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점점 예민해져 가는 걸 보면서 이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달았다. 어느 날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듯한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와 대판 싸우기도 했다. 그전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던 분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무언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나였지만 어린 동생은 충격이 더 컸는지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잘 안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엄마와 아버지는 대화를 크게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한 공간에 있었지만 무언가 단절된 느낌이었다. 거기다 정부에서 외출 자제령이 떨어지면서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밖으로 나가기도 어려워졌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밖을 자유로이 오가는 사람은 공무원인 아버지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창백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에게 짐을 싸라고 했다. 엄마는 그때부터 무언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버지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 짐만 싸라고 했다. 우리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이유도 모른 채로 짐을 쌌다. 커다란 캐리어 두세 개에 간신히 필요한 물건들만 담았다. 아버지는 평생 안 피던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차만 타면 어디 놀러 가는 줄 아는 동생은 그저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불렀지만, 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굳은 얼굴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바깥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바깥 풍경에서 놀라웠던 것은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치안대 사람들만이 간혹 보일 정도였다.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치안대 사람들은 보균자들을 관리하는, 그러니까 아버지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검은 헬멧과 옷을 입고 게임에서 나올 법한 삼단봉과 권총을 차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들 잘 들어."


그렇게 치안대의 모습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정적을 깨고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은 운전대를 꽉 잡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제2 도시는 봉쇄될 거야."


"뭐, 뭐라고?"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말을 더듬었다. 나는 '폐쇄'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이 상황에 어떻게 쓰이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말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 도시를 빠져나갈 기회가 전혀 없을 거라고."


아버지는 피우던 담배를 차의 창밖으로 던져버리며 연기를 내뿜었다. 동생은 매캐한 담배연기에 콜록콜록 기침을 했고, 엄마는 그런 동생을 잠시 돌아봤다가 이내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지금 우리는 어디 가는 건데?"


"우린···"


아버지는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철인 같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자 나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애들은 다른 도시로 갈 거야. 제4 도시로··· 그리고 당신과 나는 일단 남아있어야 해."


"당신 미쳤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제 16살 8살밖에 안된 애들을?!"


엄마는 내가 들었던 것 중에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동생은 엄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동생을 어루만지며 "괜찮아."라고 달래주었지만, 속으론 너무나도 불안했다. 부모님이 없이 나와 동생 둘이서 다른 도시로 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나마 우린 사정이 나은 거야! 알아?! 우리는 그래도 애들이라도 보낼 기회라도 있다고! 다른 사람들?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그 사람들 전부 다 이 도시에 남아있어야 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이곳에서 갇혀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도 큰 소리로 엄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도 그제야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 엄마, 아버지, 모두가 눈물을 흘리자 나 또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나까지 울어버리면 이 조그마한 차 안이 더 슬퍼질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 다른 도시로 가는 게 애초에 가능한 거야?"


"일반인들은 모르지만··· 공무원들이나 주요 기업인들이 도시를 오갈 때 쓰는 '지하열차'가 있어. 그곳으로 가는 거야."


"거기서··· 애들만 태워서 보낸다고?"


엄마는 믿기지 않는지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로 흐느꼈다. 아버지는 말없이 입술을 꽉 깨물고 계속해서 운전을 했다. 나는 울다 지쳐 잠이 드는 동생을 토닥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거기서 어떻게 살죠··· 돈도··· 집도 없는데. 두 분도 나중에 오실 수 있는 거죠? 그런 거죠?"


내가 끌어 오르는 울음을 짓누르며 묻자 아버지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곳에 가면 담당자가 있을 거야. 그 사람말 따라 행동하면 돼. 다 얘기 돼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그럼 두 분은 언제 오실 건데요?? 저희 끼리 계속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나의 다음 질문에 아버지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엄마는 이제 자포자기한 건지 카시트에 늘어지듯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난생처음 보는 어둠 속으로 조금씩 흘러들어 갔다.


좁디좁은 터널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에는 아버지의 말대로 열차가 하나 서있는 승강장이었다. 그곳엔 이미 우리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아이들 혹은 부모를 데리고 줄을 서서 열차에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 한부장. 때 맞추어 잘 왔구먼. 늦는 건 아닌가 싶어서 전화해 보려던 참인데 말이야."


"먼저 와계셨군요. 얘들아 인사해야지. 아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셔.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딱 봐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상사? 인 것 같았다. 우리는 그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고, 아저씨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열차 쪽으로 안내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걷는 도중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아저씨는 아버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한부장이 여태까지 해준 게 있는데 내가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애들만 보내게 돼서 걱정이 많겠지만··· 내가 전에 얘기했듯이 4 도시 담당자랑 다 정리된 사안이라 애들이 큰 문제없이 정착할 수 있을 거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기로 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염려 말게."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아저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는 멋쩍은 듯 자신의 흰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돌려 반쯤 눈을 감고 있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손을 잡고 서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큰애가 듬직하게 다 큰 모양이니. 믿고 맡겨도 되겠는걸?"


"아직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아주 어린 편은 아니라서···"


"그래··· 너무 걱정 말게."


아버지가 말끝을 흐리자 아저씨는 괜찮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열차 쪽에서 큰 소리로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4 도시 행 긴급 수송열차 탑승 마감이 10분 남았습니다. 탑승 예정이신 분들은 속히 열차에 탑승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제4 도시···]


"이제 다들 인사하고··· 열차에 타도록 하게."


아저씨는 방송 소리를 듣더니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곤 그렇게 자리를 피해 주었다. 방송소리를 들은 엄마는 입술에 피가 나도록 입을 꽉 깨물고 울음을 참으며 우리들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가서··· 어른들 말 잘 듣고··· 알았지?"


태어나서 이렇게 가까이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까이서 본 엄마의 얼굴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얼굴 전체를 덮은 투명한 눈물이 지금 엄마가 얼마나 힘에 겨운지 말해주는 듯했다.


"엄마는 안 가?"


동생이 상황을 조금 알아차린 건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엄마는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랑 아빠는 조금 이따 갈 테니까. 먼저 형이랑 가있어. 알았지?"


"알겠어!"


엄마의 말에 동생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리알 사이로 보이는 엄마는 동생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뒤로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제4 도시 행 긴급 수송열차 탑승 마감이 1분 남았습니다. 탑승 예정이신 분들은 지금 즉시 열차에 탑승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제4 도시···]


"어서 가!"


우리를 떠미는 듯한 방송소리에 아버지는 나와 동생의 손을 붙잡고 열차로 향했다. 열차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동생이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갑자기 가기 싫다고 소리쳤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화를 내며 그런 동생을 열차로 밀어 넣었다. 그러더니 아버지는 열차 계단 위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하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차 문이 닫혔다.


작가의말

이 이야기는 본편인 '보균자'의 후속작 겸 에필로그입니다.

최초 3부작을 생각하였으나 현실적인 문제들로 어려움이 있어 2부로 매듭지으려합니다.

본업이 따로 있어 연재를 이전처럼 주 4회 진행은 어려우나 최대한 힘 닫는 대로 써보겠습니다.

주인공도 바뀌었고 이야기의 장소에도 변경이 있어 난해하고 평이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계속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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