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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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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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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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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일그러진 가면 Ⅱ

DUMMY

#005. 일그러진 가면 Ⅱ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공부 열심히 하고!"


허리 숙여 아버지에게 꾸벅 인사를 하자 차가 떠나갔다. 차가 완전히 멀어진 걸 보고 나서 한숨을 길게 내뱉은 나는 괜히 '노역'이란 말을 한 건가 싶어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평소였으면 엄청나게 반색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마음에 안 든다는 식으로 뭐라도 얘기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아예 없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흔치 않은 일이라 역시 괜한 소리를 했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르겠다.'


나는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학교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 학생들이 등교했으면 이미 지각이어도 한참 지각일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의 위치 덕분인지 내게는 그런 불이익이 없었다. 오히려 왜 이제 왔냐고 반겨주면 모를까···


"어이고 오셨어요?"


"아. 안녕하세요!"


교문을 지나자마자 경비아저씨가 모자를 벗으며 밖으로 뛰쳐나와 내게 인사를 해주었다. 꼬질꼬질한 근무복에 머리는 다 빠져서 모자를 쓰고 있지 않으면 상당히 오묘한 인상을 주는 아저씨였는데 매번 등교할 때마다 거의 빼먹지 않고 나와서 인사를 하는 편이었다. 듣기론 아버지 아는 분이 부탁을 해서 아버지가 이곳에 경비 자리를 하나 마련해 준거라고 하던데 아마 그래서인지 내게 유독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하는 듯했다.


"매번 그렇게 안 나오셔도 돼요. 제가 나이도 훨씬 어린데···"


내가 난감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경비아저씨는 오히려 크게 손을 저으며 답했다.



"아유 그래도 부시장님을 생각해서라도 인사드려야죠. 오늘 늦게 등교하신다는 이야기는 아까 교무실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아··· 네. 맞아요. 아버지 따라 행사가 있었어서··· 점심 끝나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에고 그러면 더 이상 불편하시게 잡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는 안부만 한 번 전해주십시오."


경비아저씨는 다시 내게 꾸벅 인사했고 나도 그에 맞춰 허리 숙여 인사했다. 마음 같아선 인사고 뭐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고 싶었지만 혹시 모를 부스럼은 만들지 말자는 게 내 나름대로의 소신이었다.


몇 분 더 걸어 학교 건물에 도착하니 쥐 죽은 듯 조용한 복도에서 선생님들이 수업하는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소리 위로 겹쳐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수업이 한창 중인 우리 반을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감염병의 역사' 과목을 가리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감염병의 역사 과목은 정말이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목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FOD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여러 추측들과 보균자들의 탄생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방역 시스템과 백신의 개발 단계까지 하나씩 되짚어보는 그런 시간이었다. 다른 것들이야 그렇다 쳐도···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추측들을 다루는 부분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실했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가장 유력한 설은 먼 옛날 인수감염으로 발생한 바이러스가 변이와 진화를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것인데 그 시점이나 모든 게 두루뭉술하게 표현돼 있어 사실상 아무도 그 기원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다름없었다.


보균자들의 탄생도 이와 비슷한데, 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면역체계를 갖춘 사람들이 하나씩 생겨난 배경이 다름 아닌 그들의 희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감염병이 온 세상을 휩쓸었을 때 개인에 따라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저항력에 차이가 있었는데 이중 저항력이 컸던 일부의 자손들이 대를 거쳐 자연스럽게 보균자로서 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 무슨 호모사피엔스 같은 인류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들 뿐이었다. 설사 정말로 그렇다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자료는 어느 정도 있어야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냐는 말이다.


"유환이 안 들어오고 뭐 하니? 무슨 일 있는 거야?"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니에요 그냥 잠깐 생각 좀 하느라···"


교실 앞에서 혼자 그런 잡스러운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는지도 몰랐던 것 같았다. 내가 허리 숙여 인사하자 선생님은 투명 마스크 속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라는 듯 손짓하고는 교실 문을 열어두었고 나는 옷매무새를 마지막으로 한 번 다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늦었네?"


"응 아버지 일 때문에."


내가 자리에 앉자 짝꿍인 지수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특이하게도 학교에서 몇 안 되는 금발머리를 하고 있는 지수는 동그랗게 큰 눈동자와 뚜렷한 이목구비로 학교에서는 나름 인기스타였다. 모르긴 몰라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일 테지만 말이다.


"음 '그 수업?'"


"맞아. 그 수업."


지수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베베 꼬면서 '큭큭' 소리와 함께 조그맣게 웃었고 나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짧게 내뱉으며 칠판 앞 선생님에게 집중했다. 언제나 그렇듯 지수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거의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였고, 무엇보다 지수네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과 워낙 가까워 거의 남매처럼 붙어 다녔다. 우연히 계속해서 같은 학교, 같은 반으로 올라가면서 이제는 거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그래서인지 지수는 학교 안에서 유일하게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런저런 포장을 해서 말하는 편이지만 함께 계속 자란 지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거의 모두 파악하고 있는 편이어서 포장 따윈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칭찬 좀 들으셨나?"


지수가 짓궂게 펜으로 팔을 찌르며 말을 걸어왔고 나는 시선은 선생님께 고정한 채로 마치 복화술을 하듯 말했다.


"글쎄. 80점 정도."


"오?"


나의 말에 지수는 놀랍다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더 바싹 내쪽으로 붙였다. 나는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붙어있는 '학생 간 거리두기 유지.' 스티커를 가리키며 그런 지수를 노려봤고, 그러자 지수는 '흥' 소리를 내며 다시 나에게서 멀어졌다.


"여러분도 최근 바이러스로 인해 2 도시에 일어난 일을 알고 있죠? 그리고 2 도시 사람들 중 일부 노약자들이 우리 도시로 온다는 것도요. 그것에 대해서 우리 4 도시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발표해 볼 사람 있을까요?"


수업은 막바지에 다 달았고, 여느 때처럼 선생님은 발표로 마무리를 하려 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선생님의 질문에 그 누구 하나 손을 들고 나서지 않았다.


"선생님!"


"오 지수가 한 번 해볼까?"


그런데 웬일로 지수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란 눈으로 그런 지수를 쳐다봤고, 지수는 눈가에 잔뜩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들고 있던 손을 내려 나를 가리켰다.


"그게 아니라. 오늘 유환이가 관련된 행사에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가장 먼저 2 도시 사람들을 직접 본 유환이가 발표해 보면 좋지 않을까요?"


'이지수··· 이런 미친··· 지금 뭐하자는거야?!'


나는 눈빛으로 지수에게 이런저런 욕을 날렸고 지수는 개의치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그럼 유환이가 한 번 대표로 발표해 볼까?"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지수에게 이런저런 욕 한 바가지를 해주고 싶었지만, 학교 같은 공공장소에서 그리고 선생님 앞에서 그런 건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체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숨을 한 번 고르고 오늘 봤던 2 도시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지수의 말대로 직접 2 도시 분들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아버지의 권유였지만 저 스스로도 한 번 정도는 상황을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요. 그렇게 만난 2 도시 분들은 모두 지쳐있었습니다. 마음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다들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제가 그분들 모두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그래도 단순히 생각해 봐도, 갑자기 집, 가족, 친구··· 모든 걸 뒤로한 채 이곳에 와야만 했던 그분들 심정이 어떨지 모두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 4 도시 시민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지친 이웃을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이 바이러스와 함께 싸우는 공동체이니까요. 이상입니다."


[짝짝짝짝]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특히 지수는 귀가 떨어질 정도로 큰 소리로 박수를 쳐댔다. 나는 간단히 목례를 한 뒤 자리에 앉았고, 앉자마자 옆에서 "뻥치시네."라고 속삭여대는 지수를 노려보았다. 선생님은 인상적이었다는 듯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나의 발표 내용에 대해 얘기했다.


"역시 유환이는 생각이 참 깊은 친구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죠? 맞아요. 2 도시 분들은 너무 힘든 상황에 직면했어요. 유환이 말처럼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하나의 큰 공동체이니 만큼 서로 힘들 때 보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이번에 숙제는 따로 업습니다."


"와! 감사합니다!"


숙제가 없다는 소리에 환호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선생님이 교실을 떠났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충 책상을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급식실을 향해 걸었고 그 뒤를 지수가 바짝 쫓아왔다.


"야 너 삐졌냐?"


"삐지긴 뭘."


내가 귀찮다는 듯 무시하자 지수는 내 등을 손으로 툭툭 건드리며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그래도 괜찮은 발표였는데 왜?"


"괜찮겠지 당연히. 괜찮은 말만 했으니까."


"원래 생각은 뭔데?"


"그건···"


순간 머릿속에 아버지와의 대화내용이 떠올랐다. 순간 입 밖으로 그걸 꺼내려다 주위에 다른 친구들이 급식실로 뛰어가는 걸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넌 몰라도 돼."


"칫. 재미없어."


지수는 평소처럼 삐진 연기를 했고 나는 이젠 안 속는다는 듯 그냥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런 우리 뒤에서 어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저기···"


"준수~! 무슨 일이야?"


지수가 크게 오버를 하며 맞아주던 이는 다름 아닌 우리 반 반장 준수였다. 두꺼운 뿔테안경에 거북목이 눈에 띄는 준수는 말이 반장이지 학교에서 허드렛일 다 하는 불쌍한 녀석이었다.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평소에 말도 잘 안 거는 준수가 갑자기 왜 말을 거는지 의문이었다.


"아니. 별건 아닌데 유환이한테 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오? 내가 아니라 유환이한테?"


"응."


준수의 말에 지수는 "브로맨스?"라고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한 발 자국 뒤로 물러났고, 나는 준수를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내가 지금 학교에서 자원봉사 동아리를 만들어볼까 생각중이거든. 근데 아까 네 발표내용을 들어보니 너도 혹시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간접적으로라도 2 도시 사람들을 돕는 그런 동아리를 계획 중인데··· 어떻게 같이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준수의 말에 나의 입가에 억지로 걸린 미소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미소가 부서지기 직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준수에게 답했다.


"그럼! 너무 좋은 생각인데?"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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