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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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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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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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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일그러진 가면 Ⅰ

DUMMY

#004. 일그러진 가면 Ⅰ


"불청객이네."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이나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어린 이나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거란 생각에 나는 무슨 말인지 구태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란 뜻이야. 환영받지 못한다는 거지."


"아···? 아빠가 초대한거아니야?"


이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상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나의 말에 한숨을 짧게 내뱉고 네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에 떼거지로 몰려있는 2 도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못해도 이번 그룹까지 이백 명은 되는 것 같은데, 하나 같이 쓸모없는 노인들이나 장애인 그것도 아니면 내 또래의 애들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바이러스 노출에 가장 취약한 노약자들만 먼저 올 거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들이 그런 것 같았다. 흰머리에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가득한 노인들,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가녀린 아이들. 하나같이 우리 도시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불청객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간혹 이쁜 애들도 보이는걸?"


"그게 중요해?"


"너보단 중요하지."


옆에 서있던 형은 정말이지 머리가 빈 것 같은 소리를 평소처럼 쏟아냈다. 어떻게 첫 째라는 사람이 우리들 중에서 제일 멍청할 수 있을지 정말 내게는 큰 미스터리였다. 형은 관심 없는 듯한 표정을 애써 지으면서 힐끗힐끗 2 도시 무리에 섞인 여자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애초에 형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옆에 계신데 저렇게 티 나게 행동해도 되나 싶었다. 이럴 때면 그 큰 덩치와 멀쩡한 얼굴이 다시 한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하나 약속 드릴 수 있는 건. 이곳은 임시 숙소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오래 계시지 않을 겁니다. 정확한 시점은 저도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4 도시 안에 여건이 조성되면 순차적으로 이주를 시작할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들 마시고 저희를 믿어주시면 됩니다!"


그런 우리들 옆에선 아버지가 확성기를 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혼을 담아서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진짜처럼 하고 그것에 정말 탁월했다. 나는 아직 정치라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 뒤에 우리끼리 있을 때 나누는 대화를 보면 아버지가 얼마나 천부적인 거짓말쟁이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저 사람들 도시로 오면 저기 여자 애들도 오려나?"


"참··· 형은 그런 생각뿐이야?"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형은 그 와중에도 무리 속 여자아이들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쓸데없는 소리를 해댔고, 나는 그런 그에게 질려 고개를 가로 졌다가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치게 됐다. 나와 한 두 살 정도 차이 날 것 같았는데, 피곤에 찌든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런 아이들이 혹시 감염된 채로 도시로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이야 감염되면 금방 죽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뉴스도 있었는데 혹여나 저것들이 들어오면 향후 이 도시가 2 도시 꼴이 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오빠 뭐 해?"


"꺼지라고 신호 보내고 있는 거야."


내가 녀석을 뚫어지게 보는 게 궁금했는지 이나가 옆에서 내 손을 툭툭 치며 물었고, 나는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한 채로 기분 나쁜 말들을 뱉어냈다. 그러자 이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시선을 따라가며 말했다.


"불쌍하다. 내 친구들 같은데."


이나는 언제나처럼 마음 약한 소리를 해댔다. 이전에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어대던 이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약한 마음이 저 불청객들을 향하는 모양이었다.


"이나 너는 저것들 신경 쓰지 마. 알았지?"


"왜?"


"오빠가 이나 대신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저것들 만날 생각도 하지 마."


"오빠가? 왜?"


"넌 내 동생이잖아. 지켜줘야지."


이제 졸업을 앞 둔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냐만은, 적어도 동생을 저것들 사이에서 떨어트려 놓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를 잘 구슬리면 될 일이었다.


"부시장님 이동하시죠. 자녀분들도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아~ 힘들구만 진짜."


아버지의 연설 아닌 연설이 끝나자 치안대 사람들이 부리나케 달려와 우리를 차로 안내했다. 우리가 가까워지자 차에서 장기사가 내려서 문을 열어주었고, 우리는 차에 바로 올라탔다.


"빨리 가자고. 시끄러워지기 전에."


"예. 부시장님."


아버지는 차에 타자마자 장기사를 재촉했고, 장기사는 여느 때처럼 능숙하게 운전하여 현장을 벗어났다. 차는 순식간에 2 도시 사람들에게서 멀어졌고, 이런저런 소란스러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휴~ 다들 고생했다. 정치 수업이 쉽지 않지?"


"네."


"응!"


"고생하셨어요."


여유를 찾은 아버지는 넥타이를 풀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놈의 '정치수업' 이 끝나면 항상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래서 다들 이번 수업에서 느낀 점이 뭐지?"


아버지의 말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그는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그런 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이나가 먼저 얘기해 볼까?"


"응!"


이나는 마치 학교에서 웅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평소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2 도시 사람들은 불쌍해. 그런데 아빠가 도와주니까 괜찮아질 거야. 우리 아빠는 좋은 부시장이니까요!"


"하하하하 그래 그래. 우리 이나 말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이 아빠의 일 아니겠니? 하하하. 그래 좋아. 다음은··· 음 우리 첫 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혁아?"


"아···"


아버지가 형을 바라보며 묻자, 형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뜸을 들였다. 나는 그런 형이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정치 수업'을 나보다 더 많이 겪은 사람이 어떻게 당연히 질문할 내용에 대해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건지 말이다. 아무튼 형은 그렇게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2 도시 사람들이 와서 우리 도시에 돈이 많이 들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아야 될 것 같은데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게 그렇게 까지 고민하고 나올 이야기인지는 모르겠구나 혁아?"


"아···"


아버지의 말에 형은 그의 시선을 피했고 아버지는 됐다는 듯 손을 저으며 다음 차례인 나를 바라보았다.


"유환이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이지 지겨운 일이었다. 이미 아버지의 눈동자에서 무언가 기대가 가득하다는 걸 바로 읽을 수 있었다. 투명 마스크 속으로 보이는 그의 입가도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분명 내가 그가 만족할만한 답을 내놓으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2 도시에서 저희 도시로 노약자들이 유입된 건 윤리나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이었지만, 저희 입장에서 봤을 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형이 말한 것처럼 그들을 지원하는데 들어갈 자원이 많이 필요할 텐데 이전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도시의 재정상태가 낙관적이진 않으니까요. 거기다 이들을 관리할 인적 자원도 부족한 상태이니··· 이를 해결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하하하! 그래 그래! 역시 우리 환이가 수업을 아주 잘 들었구나? 좋아 좋아."


아버지는 나의 대답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형이 말한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그거에 덧 붙인 것뿐이었지만, 그 포장된 답변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어린 학생이지만 어린 학생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 마치 어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장기사 우리 아이들 어때? 대단하지 않아?"


"역시 다들 뛰어나십니다. 특히 둘째 도련님은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장기사는 눈에 띌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에게 맞장구 쳐주었다. 이미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좋아. 그렇다면 유환아. 네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이 뭔지 말해보렴. 아~ 너무 부담 가질 것 없어. 이미 해결 방안은 어느 정도 마련돼 있으니까. 네가 이 아빠처럼 부시장이라고 생각하고 너라면 어떻게 했을지 한 번 편하게 말해봐."


"음···"


아버지의 질문에 머릿속에 수 백 가지의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 현실성 없고 가능하다고 해도 리스크가 큰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초단위로 수십 개씩 버리고 남은 생각들을 갈무리해보니 여전히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나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이 떠올랐다.


"제가 아버지라면, 아니, 부시장이라면 우선 2 도시에 연락해서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요청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요청은 엄청 강하게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아쉬운 건 그쪽이니까요. 우리 입장에선 2 도시 사람들을 받아준 것 많으로도 엄청나게 큰 위험을 떠안은 거고 그걸 강조하면서 말하면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에 지금 도착한 2 도시 사람 중에서 감염자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금상천화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너무 리스크가 크겠죠?"


"역시 우리 아들. 놀랍구나. 이미 우리가 해결 방안으로 계획해 둔 것에 대해 정확히 파악했어. 물론 네 말처럼 감염자가 나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지만 말이야. 그래, 그래서 만약 그게 잘 되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할 거냐? 예를 들어 2 도시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던가 아니면 도저히 형편이 안된다던가 할 때 말이야."


나는 아버지의 다음 질문에 조금 뜸을 들였다. 머릿속에 이미 답은 있었지만 일부러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게 아버지에게 잘 먹힌다는 것은 처음 정치 수업 때부터 배운 일이었다.


"제 생각엔. 그런 상황이 된다면 2 도시 사람들이 우리 도시에 돈을 벌어다 주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면 하다 못해 우리 도시의 비용을 줄이는 데에 협조한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오··· 그건 생각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 사람들이 뭘 하면 좋겠냐?"


나는 다시 한번 뜸을 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었지만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표현인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른들 말로 '노역'이라고 하나요? 그런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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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 반쪽 비극 Ⅱ 24.09.03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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