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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한
작품등록일 :
2024.08.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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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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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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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반쪽 비극 Ⅱ

DUMMY

#002. 반쪽 비극 Ⅱ


지하열차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나야 상관없었지만, 어린 동생에겐 앉을자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열차를 한 칸 두 칸 나아가도 자리는 꽉 차 있을 뿐 우리를 위한 빈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형··· 다리 아파."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조금씩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달랬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옆에서 보고 있던 할아버지 한 명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학생. 자네 동생 여기 앉으라고 하게."


"아··· 괜찮아요!"


"아니야~ 나는 운동을 많이 해서 서서 가도 상관없어. 어서 앉으라고 해."


마스크로 가려져 그의 표정을 볼 순 없었으나, 할아버지는 왠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인사한 뒤 동생을 자리에 앉혔다.


"귀여운 동생을 뒀구나? 너희는 몇 살이니?"


동생이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인 같았는데 그 처럼 흰머리가 가득한, 못 해도 70세는 넘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인자한 목소리와 함께 동생어깨를 토닥여주었고 동생은 그런 할머니가 싫지 않았는지 손가락 여덟 개를 펴 보이며 할머니를 향해 말했다.


"여덟 살이에요."


"오~ 그래? 네 형은?"


"저는 올해 열여덟 이에요."


"부모님이 늦둥이 막내를 가지셨구나. 금술도 좋아라."


그렇게 어쩌다 보니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떻게 여기 오게 됐는지, 그리고 그전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우리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 등등··· 평소라면 잘 꺼내지 않을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술술 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상황이 비슷하구나. 그나저나 너희 부모님이 걱정이 많으시겠네··· 애들만 이렇게 보내버려서."


할머니는 어느새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게 무슨 비극이야··· 이게 다 보균자들 때문이야. 애초에 정부에서 강하게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애들 앞에서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요.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어요···"


"그렇긴 하지만서도. 내가 틀린 말은 한건 아니잖아?"


할아버지는 아까의 인자했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잔뜩 화가 난 어투로 말했다. 할머니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려 애를 썼다.


보균자를 몇 번 본 적 없긴 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것과 옷차림이 조금 낡은 정도를 빼면은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사람들 같았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애초에 보균자들이 병을 옮기는 것도 엄청 낮은 확률이라고 배웠는데 말이다.


"인권이니 뭐니··· 그런 거 따지다가 다 이렇게 된 거야. 그 녀석들만 없었으면 애초에 우리 세상이 이렇게 폐쇄적일 이유가 없었다고."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성이난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나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치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쳐줬다.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보균자들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된 거란다. 그리고 이건 어른들 잘못이야. 투표도 제대로 하고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냈어야 했는데."


"아유! 그만해요 정말.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점점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할아버지를 말렸다. 할머니 말대로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이야 나처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고, 그와 같은 노인들은 고개를 가로 젔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듯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아이고 알았어. 참, 그러고 보니 너희 이름이 뭐니?"


"아! 저는 '한이로', 동생은 '한수로'예요."


"멋있는 이름이구나. 부모님이 고민을 많이 하셨겠어."


"이 할머니는 '이영미', 그리고 저 할아버지는 '박덕호' 라고해. 편하게 영미 할머니 덕호 할아버지라고 부르려무나."


"네. 할머니."


뒤늦게 서로의 이름을 교환한 우리는 그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영미 할머니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고, 덕호 할아버지와 나는 통로에 서서 주위 사람들 구경을 하거나 하품을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열차 어딘가에서 마이크를 연결하는 듯한 '칙칙'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기 시작했다.


[이 열차는 잠시 후 10분 뒤, 제4 도시 지하열차 승강장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 께서는 각자 놓고 내리는 짐이 없도록 확인 다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도착이구나."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마스크를 고쳐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에서 보던 큰 전투를 앞둔 장군 같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형. 나 배고파."


방송소리에 깬 동생은 천진난만하게도 이런 상황에도 배가 고프다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꺼냈다. 나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초코바를 하나 꺼내 동생에게 건네주었고, 동생은 마스크를 쓱 내리더니 그 작은 손으로 초코바를 잡고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영미 할머니는 그런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 제4 도시에 도착합니다.]


동생이 초코바를 다 먹고 마스크를 다시 올렸을 때쯤, 열차는 목적지인 4 도시 승강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저마다 머리 위 찬장에 올려놨던 짐들을 꺼내기 바빴고,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우리,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너희 이 자그마한 가방 두 개가 전부니?"


"네. 급하게 나왔어요."


"아이고··· 혹시 필요한 것 있으면 할머니한테 말해. 알았지?"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작디작은 나와 동생의 가방을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보였다. 반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짐은 우리가 가진 것보다 두 배는 많은 것 같았다. 가방 사이즈도 훨씬 크고, 무엇보다 무거웠다.


"자자. 앞에 열부터 천천히 저를 따라 밖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그렇게 멀뚱멀뚱 서있던 우리는 어느새 앞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 물에 쓸려가듯 사람들에 쓸려 앞으로 조금씩 걸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열차에서 내린 우리는 제2 도시 승강장과 똑같이 생긴 4 도시의 승강장에서 이번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다.


"일행이 있으신 분들은 인원수에 맞춰서 이쪽부터 2인, 3인, 4인이상 순으로 서주세요!"


버스를 타는 줄은 대여섯 개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버지처럼 공무원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앞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인원수에 맞추어 나누어져 있었는데,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뜻밖의 문제에 조금 당황한 듯 그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여기서 나누어져야 하나 봐요. 일단 저희는 2인 줄로 갈게요."


내가 먼저 침묵을 깨고 말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야. 둘 다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4인 줄에 서자꾸나. 너희 둘만 두자니 뭔가 마음이 너무 쓰여서···"


"그래 그래.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오면 그래도 조금은 더 안전할 게야."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잠깐 고민에 휩싸였다. 분명히 좋은 분들이고 다정하긴 했지만··· 처음 보는 분들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인데 무작정 따라가도 될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동시에 나와 동생 둘이서 어른들 없이 살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기도 했다.


"형아. 같이 가자. 같이 가고싶어!."


"응?"


그리고 나의 이런 고민이 무색하게 동생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나는 동글동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결정에 "안돼."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동생을 핑계 삼아 이 처음 보는 어른들 믿고 기대고 싶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았다.


"그럼··· 같이 가요."


"그래 그래. 이쪽으로 오렴."


할아버지는 잘 생각했다는 듯 내 등을 두드려주며 나와 동생을 4인 탑승 줄로 이끌었다. 할머니도 잘은 모르지만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우리를 바라보았다.


"4인 가족 맞으시죠?"


한 참을 기다려 버스 앞에 도착한 우리는 안내를 하는 남자의 말에 나는 살짝 흠칫했다. '가족'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별로 크게 당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할머니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안내를 하는 사람은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우리를 버스 안으로 들여보냈다.


'가족···'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졌다. 사실 복잡해졌다기보다는 떠올리지 않으려 했던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슬펐다.


"형 울어?"


"어?"


나는 동생의 말에 그제야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나를 바라보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도 내 '가족'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맡긴··· 하나뿐인 가족.


"이렇게 어린 애들이 겪기엔 너무 힘든 일이지···"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이해한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는 내가 다 자랐다고, 거의 어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과 떨어지고 동생과 둘이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니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영미 할머니와 덕호 할아버지를 만나긴 했지만, 언제까지고 이 둘에게 기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버스 출발합니다. 모두 안전벨트 매 주세요."


우리와 함께 여러 사람을 태운 버스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는 캄캄한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밝은 밖으로 조금씩 올라가는 길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똑같은 구조와 모습의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와 보인 4 도시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이거 완전··· 똑같네."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영미 할머니도 놀란 목소리로 창 밖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진짜 똑같구나. 2 도시랑 다를 바가 없어."


창 밖으로 보이는 4 도시의 모습. 적어도 겉모습은 우리가 살던 2 도시와 똑같았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보고 대충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 안을 파보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보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똑같았다.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덕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성난 목소리는 어디 가고 이번엔 무언가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왠지 너무 슬프게 느껴진다고 나는 생각했다.



작가의말

별다른 사유가 없는한 매 주 화요일, 목요일 18시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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