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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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엘1111
작품등록일 :
2024.08.30 00:59
최근연재일 :
2024.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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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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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DUMMY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약 십 년 동안 살면서 한 가지 느낀 바가 있다.


세상에는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꽤나 많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 비상식(非商識)의 논리를 가진 자들인데, 세간에선 보통 이런 자들을 한데 묶어 미친 놈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러한 미친 놈들조차 뒷걸음을 치며 기피하는 놈들, 비상식으로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


나는 이런 놈들이 왜 존재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옛 신화에서 말하길,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인간도 같이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만들 때 평범하고 사람인 자들만 만들면 될 것이지, 왜 굳이 이런 놈들도 끼워서 만들었을까?


아무튼, 만약 이런 놈들을 만났다면 유일한 대처법은 좋게 말해서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고, 나쁘게 말해서 *병먹금을 하는 것이다. 이런 놈들을 상대해봤자 본인의 입만 아플 뿐이고, 본인의 아까운 시간만 소모될 뿐이다. 그런 곳에서 시간을 쏟을 만큼 우리들의 시간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다.


*병먹금 : 병신에게 먹이 금지


차라리 그 시간에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게 인생에 도움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놈들을 만나면 무조건 피해라. 절대로.


"······아직 열 살 까지 밖에 안 살았는데 남들에게 교훈을 받질 못할 언정, 내가 남들에게 교훈이나 주는 꼴이라니······."


"너 뭐래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 그러면 나처럼 될테니까.


빌어먹을.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있는 곳보다 조금 더 앞, 풀이 자라지 못한 검은 흙바닥에 던전처럼 보이는 동굴, 그리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얼핏보기엔 던전 준비 중인 모험가들 같은 인신매매범들 까지.


아무래도 여기가 리아님이 말한 마력의 흐름이 이어진 목적지이자 소녀가 잡혀있는 장소인 듯했다.


"여기에요?"


나는 보다 정확한 확신을 얻기 위해 리아님께 슬쩍 떠 물어보았다.


"그래, 아마도 여기야."


내 질문에 답한 리아님이 손가락을 튕기자 내 눈에도 보이는 반딧불이가 내는 밝기 정도의 푸른 빛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빛줄기는 동굴의 앞쪽까지 이어져 있었음에도 밑에 있는 놈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듯 했다. 이것은 대체 무슨 마법일까?


리아님이 손가락으로 빛줄기의 끝이 가리키는 곳, 동굴의 입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에서 마력의 흐름이 끊겨있어. 아마 높은 확률로 저기에 소녀가 있겠지. 아직 흐름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로 봐선 여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 문제가 있다면 저 흐름의 주인으로 생각되는 음침이가 지금 보이는 놈들 중에는 없다는 건데······뭐, 나로서는 술래잡기 할 일이 없어져서 좋지만."


"······그런데요."


"왜 그러니, 제자야?"


"제자 아닙니다."


나는 리아님의 눈치를 살짝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리아님이 강한 건 아주 잘 아는데요. 절대 의심하는 건 아닌데요."


"의심하고 있네. 됐으니까 편하게 말해봐."


"······."


티났······아니, 아니. 이게 아니지.


리아님의 말대로 나는 아주 편하게,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내뱉었다,


"쟤네 대충 세어봐도 숫자가 오십은 족히 넘잖아요. 아무리 리아님이 강하다지만 저 많은 놈들을 전부 상대할 방법이나 피할 전략이 있는 거예요? 방심하다가 뒤에서 칼이라도 찔리면 답이 없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말하면서도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어른이 할 법 할 생각을 아이인 내가 하고, 어른인 이 인간이 철 없는 아이처럼 무작정 돌진할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정녕 맞는 일인가?


"걱정마라, 제자야! 이 스승에겐 이런 때를 대비해 생각한 방법이 있단다. 그것도 예로부터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유서 깊고도 효율적인 전략이 있지!"


그러니까 제자 아니라고.


"······그래서 그게 뭔데요."


"후후후. 일점돌파(一点突破)라고 들어봤니?"


"아니요?"


"저길 봐봐."


리아님이 손가락의 방향을 조금 틀더니 인신매매범들이 모여있지 않은 곳, 아무도 없는 빈 흙바닥만이 있는 공간을 가리켰다.


그래도 이 인간이 생각이 비어있지는 않는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리아님의 설명을 집중해서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기만 텅텅 비어있지?"


"그렇죠?"


"착지하기 딱 좋은 곳이지?"


"그렇······예?"


"동굴까지 딱 일직선으로 돌진하기 좋은 거리지??"


"······."


아, 설마.


나는 서둘러 리아님을 말리려고 소리를 치려 했으나, 문득 이대로 소리를 지른다면 밑에 있는 놈들에게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은 곧이어 후회로 이어졌다.


리아님이 내 목덜미를 다시 덥썩 붙잡곤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준비됐어, 제?"


"······됐겠냐고요오오오오오옥!!!!!"


이걸로 한가지 확신했다.


이 인간은 미친 놈들조차 기피하는 가장 위험한 미친 놈이란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지켜주지 않을 거란 말이 자기가 직접 죽인다는 소리였나.'


이래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 거구나. 내가 건너려던 게 돌다리가 아니라 돌다리처럼 보이는 절벽이었을 줄이야.


쿠우우우웅!!


"끄허헉!!"


"뭐, 뭐야?"


의도한 바인지 아니면 운이 나빴는지는 몰라도 하필 리아님의 착지 지점으로 걸어오던 한 놈이 그대로 리아님의 발에 밟히면서 땅과 함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


입에는 게거품을 물고 동공은 뒤집힌 채 차가운 바닥에 쓰러진 놈의 꼴을 보자 하니, 나는 이놈들이 동정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들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하다못해 남에게 피해 안주는 나무로 태어나기를.'


뚜둑! 뚜두둑!


내가 짧은 명복에 빠진 사이, 리아님이 손에서 섬뜩한 소리를 내며 말했다.


"제자야, 첫 번째 수업이다. 잘 지켜봐. 적이 많을 때는 말이야, 속도와 정확도가 관건이란다. 이놈들이 진짜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건 아니라서 한 놈으로 상대가 안된다는 걸 알면 벌떼마냥 떼로 덤벼들거든."


퍼억!


"바로 이렇게."


리아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한 놈이 달려와 리아님께 단도를 휘둘렀으나, 곧바로 리아님이 턱에 주먹을 꽂으며 공중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다른 놈들도 리아님의 말처럼 하나 둘 품 속에서 단도를 꺼내들어 리아님께 단체로 달려들었다.


수많은 화살이 사방에서 날려드는 것만큼 답도 없는 무서운 상황. 하나 리아님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빠르고!"


푹!


"정확하게!"


뻑!


"한 놈, 한 놈 상대할 시간이 없으니 급소만 노려서 빠르고 정확하게 조져버려!"


퍼버버버벅!


"근데 아주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급소를 맞고도 일어나는 미친 놈들이 있거든? 그래서 포인트는 확실하게 조질 수 있도록 한 번 때릴 때 동시에 최소 두 곳 이상의 급소를 때리는 거야."


리아님의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말과는 달리, 리아님의 손은 매 초마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리아님의 손이 사라질 때마다 누군가는 목이 찔려서 뒤로 날아가고, 누군가는 허리가 구부러졌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명치를 맞고 토를 하고, 아주 가끔, 절대 맞아서는 안 될 소중한 부위를 맞는 이들도 있었다.


내 눈에는 한 곳만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 두 곳을 맞고 있는 것 이겠지.


나는 그 광경을 차마 더 보진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분명 저들은 죄가 있으나 저들 안에 있는 수많은 죄 없는 생명들이 무차별적으로 깨지는 걸 보니, 그 학살(?)의 광경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빠각!!


"······."


물론 볼 때마다 괜히 내 소중한 부위가 더 아픈 것 같은 이유가 더 컸지만.


대체 사람 힘이 얼마나 강하면 아무리 저 곳이 급소라지만 저렇게 쉽게 깨질까.


"무야~ 호~!"


그보다 저 인간, 이젠 그냥 즐기고 있잖아.


"······휴우."


나는 오싹거리는 몸의 떨림에 힘 입어 긴장을 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뭐라도 해야 되나 싶어 리아님이 인신매매범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홀로 동굴 안으로 들어가 소녀를 구해오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관뒀다.


혹시라도 동굴 안에 숨어있는 놈들이 있을 위험성도 있고, 무엇보다 여기까지 왔으면 저 사람에게 맡기는 게 훨씬 안전하고 빠른 최선책이다.


부스럭.


내가 그렇게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풀 소리?"


잠시 땅에 발을 딛어봤다고 해서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다. 망각하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 지옥이라는 것을, 세상은 항상 내가 원하는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다 이내 크게 떠진 눈으로 다시 리아님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세상에 찾아온 적막이 점점 내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어쩌지? 일단 리아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아니, 이건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임에도 아직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도리어 이쪽이 꽤나 소란스럽기 때문이다. 이 '소란'이 위기이자 곧 기회가 된 셈. 근데 여기서 내가 리아님께 말을 걸어 혹여나 눈치라도 챈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그럼 차라리 리아님이 남은 놈들을 전부 제압할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하나?


아니, 이것도 악수다. 지금 얼핏 보이는 수만 봐도 아직 이십 명이나 남아있다. 저놈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 같은 건 내게 없다.


그렇다면······.


"······나도 참 병신이다. 이제 이런 것 까지 고민을 하고 앉아 있냐."


그래. 여기에 온 순간부터, 아니, 그 아이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민 순간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던 거나 다름없었다. 엎어진 물을 도로 담을 수 없듯이, 내 선택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내 삶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리아님."


나는 나를 구해준 은인에게 미처 하지 못한 짧은 인사와 나를 배려해 주었던 그녀의 상냥함을 무시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건네며 푸른 멍이 든 다리를 억지로 일으켜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사람의 아이를 집어삼키고 있는 검은 늪을 향해. 끝이 보이지 않는 추악함의 바닥을 향해.




* * *




"멍청한 새끼들, 흔적 하나 제대로 지우지도 못해 꼬리를 달고 오다니."


일찍 일어난 새는 일찍 잠들고, 환히 피어났던 아름다운 꽃들도 고개를 숙인 고요한 밤의 숲 속에서 검은 복면을 써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한 남자가 혀를 차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의 얼굴은 복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시야를 위해 일부러 가리지 않아 유일하게 보이는 그의 눈매는 짐승의 것 처럼 사납게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왜 저런 잡졸들이나 하는 '상품'을 운반하는 일을 나에게 의뢰했나 했더니, 과연 이런 미연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나. 최근 '시장'의 수입률이 떨어진 이유가 설마 저런 미친 놈이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일 줄은."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허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아이가 들어갈 정도는 되는 자루 하나가 무언가를 넣은 듯 묵직한 상태로 남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래도 결국 상품은 무사히 옮기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녀석의 안목이 옳았다고 볼 수 밖에 없겠네. 내가 알아낸 정보를 흥정하면 보수를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잘하면 오늘은······."


그때였다.


터엉!


"······뭐야?"


대뜸 남자의 앞으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나뭇가지 하나가 공중을 돌며 날아오더니, 그대로 남자의 얼굴을 지나 뒤에 있던 나무에 부딪혔다. 남자가 그 나뭇가지에 잠시 시선을 뺏겼다. 그리고······.


타앗!


그 순간 검은 인영 하나가 반대편 수풀에서 튀어 오르더니 그대로 남자의 허리에 있는 자루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분명 소녀가 들어있을 자루를 향해 팔이 찢어져라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손끝이 자루에 조금이지만 닿았다.


'잡았······!'


그러나.


뻐억!


"커헉?!"


일순간 내 눈앞에서 자루와 함께 남자의 몸이 땅으로 꺼지듯 사라지더니 곧이어 내 복부에 살이 터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나는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그대로 공중을 날아가 나무에 처 박혔다. 당장 오늘만 해도 많이 맞았는지라 이젠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오만이었던 모양이다.


"······?"


나를 발로 차 날려버린 남자가 비어있는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려다가, 달빛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곤 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애새끼잖아?"


"끄으으······."


"애새끼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옷차림으로 보나 피골이 상접한 걸로 보나 딱 봐도 며칠 굶은 거지 새끼 같은데, 내 말 알아들으면 잘 들어라.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한 번 더 달려들면······."


"······놔."


"뭐?"


나는 피가 섞인 거친 숨을 토하며 방금 전 내가 날렸었던 나뭇가지를 손에 잡은 채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아이를 내놔······."


"······잠깐, 이 애새끼 자세히 보니 아까 먼지 나게 처 맞고 있었던 그 새끼잖아?"


나를 알아본 남자가 콧방귀를 뀌더니 마치 나를 농락하듯 손에 든 자루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해봐라. 내가 미쳤다고 하나 밖에 안 남은 귀중한 상품을 '아이고, 여기 있습니다~'하고 너한테 주겠냐?"


"내놔······!"


"어쭈? 이 새끼 눈빛 봐라? 이거 완전 사람 하나 죽일 기세네? 왜, 그 조그마한 나뭇가지로 찌르기라도 하게? 자, 어디 한 번 해봐."


남자가 나를 향해 해보라는 듯 팔을 과장스럽게 벌리자 나는 남자를 향해 다시 한 번 온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던졌다. 이번엔 확실하게 얼굴을 노린 것 이었지만 남자는 마치 벌레를 대하듯 날아오는 나뭇가지를 가볍게 쳐 냈다.


나는 발악하는 심정으로 주위에 떨어진 돌이며 나뭇가지며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잡이로 남자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때때로 내 손보다 큰 돌이, 팔보다 두꺼운 나뭇가지가 손에 잡힐 때 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이 생겼지만, 그 희망은 남자가 날아오는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가볍게 처 낼때 마다 함께 무너져내렸다.


추하기 짝이 없는 무의미한 발버둥, 하나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이 발버둥을 멈출 수 없었다.


"쯧."


남자의 입에서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또다시 남자의 몸이 내 눈앞에서 땅이 꺼지듯 사라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재빨리 손을 내렸지만, 그때는 이미 남자의 발이 내 복부에 틀어박힌 이후였다.


"······!"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게 만드는 고통이 내 몸을 휘감는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점점 멀어졌지만 이번에 의식을 잃으면 진짜 죽는다는 공포가, 아직도 남아있는 삶에 대한 나의 집착이 내 다리를 지탱하고, 내 눈이 완전히 뒤집히는 것을 막아주었다.


나는 이가 부러질세라 꽉 깨물며 핏발이 선 눈으로 남자를 쏘아보았다. 복면에 가려져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아까와 같이 나를 날려 보내려다가 문득 발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나를 유심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남자는 나를 날려 보내는 대신 발끝으로 살짝 밀어내 넘어뜨리고는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자세히보니······외모도 꽤 번번하고 아직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 게······딱 '시장'에 내다팔면 값 좀 칠 것 같은 매물인데? 머리색이랑 눈 색도 하얀색인게 꽤나 희귀해보이고. 이거 오늘은 잘하면이 아니라 아주 제대로 한탕 치겠는걸?"


남자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내 머리카락을 웁켜잡고,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눈을 마주쳤다. 마주친 눈동자에는 적을 향한 날카로운 살의도, 귀찮은 벌레를 대하는 듯한 너저분한 짜증도 아닌, 오로지 이득을 갈망하는 '욕망'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 진절머리가 나는 욕망의 눈동자에 경멸을 가득 실은 주먹을 내질렀지만,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자루를 내려놓고 내 주먹을 가볍게 잡고는 역으로 오른팔을 꺾어버렸다.


뚜둑!


"윽!"


"그나저나 너도 참 멍청한 꼬맹이로구나."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굳이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왜 굳이 나서서 스스로 목숨을 내버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이 상품이 네게 소중한 사람이라도 되더냐? 처음 보는 인간에게 왜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 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생판 남을 구하려고 네 목숨까지 걸려고 하냐고? 이상하다고 생각 안해? 이 밑바닥에서 살아왔으면 잘 알 거 아니야. 여기서 네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어. 네가 그걸 모를 만큼 멍청해 보이지도 않고, 대체 이유가 뭐야?




"······."


왜일까.


왜 하필 지금, 그 사람이 내게 물었던 질문이 떠오르는 것일까.


어째서 그때 떠오르지 않았던, 아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외면했던 대답이 떠오르는 것일까.


'알고 있다.'


지금 내가 말해도 눈앞의 이는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 대답을 기다렸던 자에게 내 목소리는 더 이상 닿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이것은.


"내가 한 행동 중에 '의지'라고 불리울만한 걸 가지고 움직인 행동은······한 번도 없었거든."


그저 세상에 버려진 작은 소년의 고독한 비명일 뿐이니.


"태어나는 것도······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았던 검을 잡았던 것도······살기 위해서 바닥을 기거나 추하게 목숨을 구걸한 것도······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선택이었거나······혹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살기 위해서 움직였던 거야······거기엔 내 의지도, 내 선택도 없었지······."


"무슨 헛소리를······."


"그래도 말이야?"


이 소리를 듣는 자가 아무도 없다 해도, 눈앞의 이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토록 원하고 갈망했던 생존을 포기한다고 해도.


"눈앞에서 그런 걸 봐버리면······어쩔 수 없이 품게 되거든······."


상관없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닿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 소년의 고독한 비명.


이 비명을 듣는 것은 오로지, 나 한 명 이면 충분했다.


"나도 구할 수 있다고······그 사람처럼 곤경에 빠진 사람을, 세상에 버려진 사람을 이런 나라도 구할 수 있다고······착각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품어버리거든······! 괜찮잖아? 지금껏 내겐 내 의지로 행한 선택이라고 불리울만 했던 건 없었으니까, 꿈이라고 불릴만한 것도 끽해봤자 살아남는 게 다였으니까. 태어나는 건 내가 원하지 않았던, 결정할 수 없었던 선택이었지만, 적어도 이렇게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선택해도 되는 거잖아?"


"······."


"그 아이는 내게 기다리겠다고, 고맙다고 말했어. 그런데 내가 대체 어떻게 귀를 막고 눈을 가려가며 외면할 수 있겠어?!"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얇은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난다.


귓가에 적막이 날아와 찾아든다. 코끝을 찌르는 불쾌한 피냄새가 흐려지는 내 시야를 더없이 맑게 만들어준다.


"너희들은 모르겠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벌레 이하로 보는 너희들은, 제 이득을 위해서라면 선을 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모르겠지!"


목소리에 응축된 물기가 불꽃으로 바뀐다. 울분은 곧이어 분노가 되고, 나는 나를 버린 세상에 분노하고, 나를 구해준 그 사람에게 내 삶을 전한다.


"나는 누가 뭐라 해도 그 아이를 구할 거다! 설령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내버린다고 해도!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자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이다!!"


퍼억!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주먹이 내 얼굴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머리채가 잡혀있던 나머지 내 몸이 뒤로 밀려나는 일은 없었다.


뒤이어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미운 털처럼 박혀있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이해도 되지 않는 이상한 개소리만 지껄이고 있구나. 이런 헛소리를 들어준 내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야.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짜증의 깊숙한 곳에는 전에는 없던 살기가 아주 조금이나마 어려있었다.


"너는 너무 시끄러워서 그냥은 못 쓰겠어. 고객들이 마음에 안 들어 할뿐더러 반항심이 심해 아무도 너를 사지 않겠구나. 그냥 죽인 다음 필요한 부위만 골라서 챙겨 가야겠다. 그러면 이 자루에 딱 둘이 들어갈 수 있겠어. 뭐, 냄새는 조금 배겠지만."


스릉.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가에 긁혀온다. 푸른 달빛이 조명처럼 비치고, 그 아래에 선 남자의 주머니 속에서 뱀처럼 휘어진 칼날의 단검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단검이 내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최후라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 * *




서걱!


칠흑의 커튼으로 가려진 깊은 숲 속에서 뼈가 잘리는 소리와 함께 이질적인 붉은 피가 튀어오른다.


피가 튀어버린 나무는 마치 처음보는 것을 경계라도 하듯 바람과 함께 나뭇가지를 떨었으며, 주위에 있던 작은 동물들은 놀라 도망친다.


그리고 그 피의 주인은······.


"으아아아아아악!!!"


제 팔을 떠나가 버린 손을 부여잡으며 처절하게 울부짖는다.


촤악!


나는 검신에 묻은 피를 한 번 털어낸 뒤, 몸을 돌려 뒤를 향해 한 걸음 걸어갔다.


"잘 지켜보라고 했더니······."


"······."


그곳에는 핏자국이 묻은 자루 하나를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부여잡고 벌벌 떨고 있는······.


"여기서 혼자 뭐하고 있어?"


"······아."


나의 제자가 있었다.


작가의말

처, 처음 글 쓰는 거라 오타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검사해서 쓰긴 했는데 계속해서 확인하며 수정해 나가겠습니다. 마,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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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1화 발상의 전환이라고 24.09.15 20 0 17쪽
11 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24.09.14 21 0 19쪽
10 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24.09.13 24 0 22쪽
9 제8화 옛 친우들 24.09.08 21 0 16쪽
8 제7화 마른 하늘에 24.09.07 20 0 20쪽
7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24.09.06 20 0 20쪽
6 제5화 제게 알려주세요 24.09.01 20 0 21쪽
5 제4화 시리도록 아름다운 24.08.31 21 0 18쪽
»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24.08.30 28 0 22쪽
3 제2화 오늘부터 너는 24.08.30 24 0 21쪽
2 제1화 세상이 참 더럽다 24.08.30 32 0 22쪽
1 제0화 전쟁의 나라 24.08.30 50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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