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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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엘1111
작품등록일 :
2024.08.30 00:59
최근연재일 :
2024.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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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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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DUMMY

<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었다.


장비를 맞추러 가자며 스승님 끌고 온 웬 허름한 상점. 그곳의 문을 다짜고짜 발로 차 부수며 들어간 스승님과 스승님이 안에 들어가자 마자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사방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무구들. 그리고 그걸 태연하게 처 내며 더욱 깊숙이 들어간 스승님.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거구의 노인과 스승님이 각각 검과 도끼로 서로의 목을 겨누고 있는 광경까지.


대체 어디서부터 걸고 넘어져야 할 지 모르겠다. 이딴게 진짜 상점이라고?


'보통 상점이 들어가자 마자 공격을 하고, 여기저기에 함정을 깔아놓나?'


이건 흡사 요새에 가깝지 않은가?


내가 지금이라도 검을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 스승님의 앞에 있던 노인이 내 허리춤에 달린 목검을 보곤 작게 중얼거렸다.


"목웅검(木熊劍)······."


나는 내 목검의 이름을 아는 노인을 보고 한층 더 몸을 움츠리며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제 검의 이름을 아시는 거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지."


노인이 스승님의 목에 겨누고 있던 도끼를 천천히 거두며 말했다.


"내가 만든 검이니까."


"······예?"


노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가 나오자 나는 당황해서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자신이 만든 검이라니.


"그럼 이 사람이······."


"트라겐이야."


마찬가지로 노인의 목에서 검을 거둔 스승님이 트라겐이라 불린 노인에게 말했다.


"환영인사 규모가 어째 더 줄어들었는데?"


"불평하지 마라. 세월 앞에선 모든 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법이니까."


스승님이 가게 바닥을 툭툭 치며 작게 웃었다.


"그래서 가게도 이 모양이구만?"


"이건 그냥 손님을 안 받은 거다."


"안 오는 게 아니라?"


"그것도 맞는 말이지."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농담에도 노인이 익숙하다는 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스승님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나는 입을 멍하니 벌렸다.


방금 전까지 서로 죽일 기세로 달려들던 두 사람이 갑자기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바꾸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정신을 번뜩 차리고 일단 가게 안으로 발을 한 발 내디뎠다.


"아, 거기는 조심······."


까앙!


그러자 아주 청아한 소리가 내 정수리에서 울려 퍼졌다.


"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이번에야말로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비명을 참지 않고 질렀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일단 머리를 손으로 부여잡고, 고개를 들어 내 머리와 부딪힌 국자를 바라보았······.


응? 국자?


"아니! 저런 게 왜 저기 있어?!“


그리고 왜 하필 국자야??


그 모습이 한심했는지 스승님을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저었다.


"조심하라고 말해줘도 피하질 못하니?"


"그런 건 좀 더 일찍 말해달라고요! 끄으으으으······."


"고작 그 정도로 엄살부리기는. 하여간,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아직 멀었구나."


스승님의 말에 눈을 살짝 크게 뜬 트라겐씨가 스승님에게 물었다.


"가르쳐? 설마 제자인가?"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몇 년 전에 들인 제자야. 보다시피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트라겐씨가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허······네가 제자를 들이다니.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있는 거군."


"그치? 그러니까 첫 제자 들인 기념으로 조금이라도 할인······."


"뒤지고 싶나?"


"······야박하기는."


트라겐씨를 향해 손을 싹싹 비비던 스승님이 흥정을 거절당하자, 노인처럼 허리를 굽힌 스승님 몸을 돌려 무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진열대를 향해 다가갔다.


저렇게 보면 정말 노인이 따로 없다. 외견은 아직 이십 대 초반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나는 스승님을 따라 진열대로 가 무구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물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진열대 놓인 무구들은 모두 먼지로 덮여있어 가게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느낌이 났지만, 먼지를 손으로 살짝 털어내자 하나하나 전부 날이 살아있는 훌륭한 냉병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검들은 명검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가게가 대체 왜 손님이 없는 것일까.


나와 함께 무구들을 둘러보던 스승님이 트라겐씨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가볍고 튼튼한 보호구들은 어딨어? 예전엔 이 근처에 있었는데 자리를 옮겼나?"


"없다."


"그래 없······뭐?! 없다고?"


트라겐씨가 재차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가죽으로 만든 보호구들은 몇 개인가 남아있으나, 철로 만든 건 갑옷 외에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전부 녹여서 새로 무기를 만들거나 폐기했지."


"아니, 왜??!"


"안 팔리니까."


"그럼 인정이지."


아주 간결하고도 명료한 대답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가죽으로 만든 거라도 줘.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알았다."


트라겐씨가 허리를 숙여 서랍에서 가죽으로 만들어진 보호구들을 하나하나 꺼내더니 그대로 탁자 위에 턱 올려놓았다.


"입어봐라."


스승님이 나를 바라보며 보호구를 향해 턱짓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 올려진 가죽 보호구를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과 배에 착용하기 시작했다. 크기가 조금 맞지 않아 끼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 찢어진 곳 하나 없는 훌륭한 보호구였다.


마침내 내가 보호구를 다 입자 트라겐씨가 나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트라겐씨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냥 차가운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면모도 있었다.


문득 나는 스승님의 평가도 궁금하여 스승님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으나, 어느새 스승님은 다른 곳으로 가 다른 무구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워낙 즐거워 보였기에 나는 굳이 입을 열어 방해하지 않았다.


모처럼 스승님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는 건 좀 내키지 않기도 했고, 어차피 평가를 듣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내 사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트라겐씨가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뭐냐."


"매튜입니다."


"매튜, 매튜라······."


무언갈 골똘히 생각하듯 턱수염을 매만지던 트라겐씨가 나에게 공격을 하듯 질문으로 위장한 정곡을 찔렀다.


"너, 리아를 좋아하는 거냐?"


"푸흡?!"


입에 물을 머금고 있지 않았음에도 나는 물을 뿜는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흡사 스승님과 대련할 때 한 합만에 궁지에 몰린 느낌이었기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뺨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내 반응에 트라겐씨가 살짝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맞는가보군."


"쿨럭! 쿨럭! 어,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모르는 게 이상한 법이지."


"······티 났나요?"


"아주 많이. 그나저나 너도 참 힘든 길을 택하는구나."


트라겐씨의 말에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내가 내 정곡을 찔러넣은 셈 이었구나.


그러다 갑자기 없던 걱정도 절로 생겨 트라겐씨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스승님도 알아챘을까요?"


트라겐씨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여 스승님을 잠시 보곤 다시 나를 보며 대답했다.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눈치 챘겠지."


"눈치 채지 못했단 소리군요. 휴, 다행이다."


"······."


트라겐씨가 대놓고 쿡쿡 웃으며 말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더니······과연 리아가 왜 널 제자로 들였는지 알겠구나."


"그거 욕이죠?"


"칭찬이니 편하게 들어라."


그렇게 말한 트라겐씨가 다시 허리를 숙여 밑에 있던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먼지가 가득 쌓인 긴 유리관 하나를 꺼냈다.


트라겐씨가 유리관을 입으로 후 하고 불자 유리관 위에 쌓여있던 먼지들이 날아가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이 검만 따로 유리관을 씌워놓은 이유는 아마 그만큼 소중한 물건이리라. 나는 그렇게 추측했다.


그런 귀중한 보물을 트라겐씨가 내게 건네며 말했다.


"가져가라."


"네?"


"이제 네 검이다."


"아니, 그게······."


내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트라겐씨가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런 보물을 내게 주느냐'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구나."


"······."


이번엔 정말로 트라겐씨가 내 정곡을 찔렀기에 나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물이라 칭한 것을 보니 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도 같기에 더 의문이었다.


달칵.


트라겐씨가 덮여있던 유리관마저 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검에는 내 일생이 담겨있다. 아직 내가 모험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검을 쓰는 자와 한 판 붙었는데, 그때 내 모든 무기들이 검 하나에 전부 부서졌지. 참으로 허망해서 말도 안 나오고 있을 때, 내 무기들을 부순 놈이 이리 말하더구나."


"······."


"'얼마나 약하면 검 한 자루에 무기가 다 부숴지냐' 라고."


농담으로 들으라고 한 말이었는지 트라겐씨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웃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입은 가벼웠지만, 분명 분위기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트라겐씨가 어느새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험가를 포기하고 오로지 무기를 만드는 일에만 열중했지. 특별한 이유도, 거창한 꿈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내가 지고는 살 수 없는 성격이라 그런 것이었다. 그 후로도 수많은 검과 창, 도끼를 비롯해서 세간에 명검이라 불릴 정도의 병장기란 병장기들을 만들어왔지만, 지금에 이르러서까지도 내가 만든 수천 개의 병장기 중 그 어떤 것도 아직 그 검을 이기진 못했다."


나는 그 말에 어떤 대꾸도, 추임새도 넣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넣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지. 무릇 병장기란 철로 만들어진 것이라 아무리 경도가 높고 날카로워도 결국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고 녹슬기 마련이거늘. 그 검은 몇 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더구나. 내가 만든 병장기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도, 방금 막 재련을 마친 날이 살아있는 것도 전부 그 검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 아니면 도 라는 식으로 그 검과 똑같은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트라겐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물었다.


"그 검이 어찌 됐을 것 같으냐?"


"······이겼나요?"


내 질문에 대한 질문에 트라겐씨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부러졌다."


"예? 그럼 이건······."


"새로 만든거다. 그 검이 부러지고 나서."


트라겐씨가 살짝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그 검마저 부러지자 결국 나는 참다 못해 그 놈에게 물어보았다. 대체 그 검에는 무슨 재료가 들어갔고 누가 만들었기에 부러지지도, 녹슬지도, 무뎌지지도 않냐고. 겉으론 침착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실상은 벼랑 끝까지 몰린 패배자의 추한 칼부림이었지. 그런 내 물음에 그놈이 뭐라 대답했는지 아느냐?"


굳이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었기에 나는 조용히 트라겐씨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약하다고 하더구나. 어이가 없었지. 검이 부러지지 않는 이유를 물어본 마당에 갑자기 나보고 약해서 그렇다니, 처음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트라겐씨의 목소리가 흥분한 듯 살짝 높아졌다. 그러다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은 듯 천천히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금만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했지.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검사와 검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겨루면 당연히 검사가 이기지 않겠느냐?"


"그렇죠."


그제야 내가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추임새를 넣었다.


트라겐씨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그 녀석은 검의 경도나 재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검을 잡는 이의 강함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다. 그때 녀석이 약했다고 말했던 것도 내 무기들을 향해 말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말한 것이었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세계 제일의 장인이 만든 명검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휘두른 자의 마음이 약하다면, 그 검은 싸구려 검만도 못한 검이 된다는 것이겠지."


"······."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료와 만드는 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야. 리아도 아마 네게 말했을 거다. 좋은 재료만이 명검을 만드는 데에 전부가 아니라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누구보다 붓을 가리는 것 또한 명필이다. 이것은 장인도 마찬가지지만 정작 장인 또한 그렇다. 이 두 가지는 검을 만드는 데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필요 없는 것 또한 아니다."


트라겐씨가 천천히 유리관 속에 있던, 이제는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검을 집어 들었다. 스승님의 검과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검을.


스르릉.


검이 뽑혀나오는 소리가 선율이 되어 몸을 타고 흐른다. 검집에서 뽑혀나온 검신은 스승님의 검신과는 다르게 아주 새하얀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검 손잡이는 역시 검게 물들어있었지만, 어쩐지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보단 영롱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티잉!


트라겐씨의 손가락이 검신을 한 번 튕기자, 검집에서 뽑혀나온 것과는 전혀 다른 음색이 선율이 되어 울려 퍼졌다. 검신은 앞면과 뒷면 뿐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수백 개의 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것은 확실히 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할 무가지보의 보물이었다.


탁.


날의 상태를 확인한 트라겐씨가 도로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내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노인의 거대하고도 주름과 굳은살이 가득한 손이 내 손을 감쌌다.


"나무를 보면 꽃이 생각나듯, 나이가 들면 젊음이 생각나는 법이지. 말했다시피 나는 검을 만들 때도 특별한 이유라던가 거창한 꿈이라 불릴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아직 모험가였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태생부터 누구보다 지기 싫어했던 인간이었으나, 사실은 누구보다 약했던 한 명의 인간이었어. 내 의지라 불리울 만한 것이 정작 없었으니."


"······트라겐씨, 저는······."


내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트라겐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동정은 필요 없다. 마치 그리 말하는 것만 같았다.


"기억해라. 의지가 없는 검은 결코 의지를 품은 검을 벨 수 없다는 걸. 너는 나와는 다르게 그 순백의 눈동자에 푸른 의지가 깃들어있으니, 이 사실을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이 검이 부러지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


"값은 받지 않으마. 네가 이 검으로 너의 의지를 행한다면, 그것은 곧 나에 대한 값이자 나에 대한 의지가 될 테니까. 세상을 변화시킬 의지를 품은 자에게 의지를 행할 검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내 의지이자 지금의 내 강함이다."


나는 천천히 트라겐씨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이제 트라겐씨의 손에서 내 손으로 검을 완전히 옮겨왔다. 이것은 내가 원해서 받은 검은 아니었지만, 마지못해서 받은 검 또한 아니었다.


스릉.


내가 검을 뽑자, 역시나 소리가 맑은 선율이 되어 내 몸을 타고 흘렀다. 나는 선율이 내 몸을 타고 흐르는 흐름을 따라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따뜻하고도 선명한 푸른 빛이 검신을 타고 맑게 빛나며 검명을 토해냈다.


우우우우웅.


"어떠냐?"


트라겐씨의 물음에 나는 뭐라 대답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좋네요. 날도 잘 서있고 마력도 잘 통해요. 튼튼해 보이고요. 이보다 좋은 명검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좋은데? 날도 잘 서있고, 마력도 잘 통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네가 만든 검들 중에서 제일 단단해 보이네. 내가 본 것 중에서는 제일 좋은 검이야.




"······허."


갑자기 실소인지, 아니면 자조한 것인지 모를 웃음소리를 내뱉은 트라겐씨가 내게 물었다.


"인생에서 젊음은 너무나도 짧으나 달리 말하자면 인생은 젊음보단 긴 법이다. 그러니 하나 물으마.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


"저는······."


그때와 다른 곳, 그때와 다른 질문, 그때와 다른 사람.


하지만 그때와 같은 의도.


내가 할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내뱉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세상을 버려진 이들을······모두 구하고 싶습니다."


"······그렇군."


짧은 대답. 하나 트라겐씨는 지금까지 보여준 미소 중 가장 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꿈이구나."


"너무 큰 꿈이죠."


"꿈은 클 수록 더욱 좋은 법이지."


탁.


나는 다시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고, 트라겐씨를 향해 고개를 한 번 숙인 뒤 그대로 몸을 돌려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때, 트라겐씨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멈춰 세웠다.


"매튜야."


"네?"


트라겐씨가 긴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리아를······내 친우를 잘 부탁한다."


"······네."


그 말에는 딱히 특별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의미또한 없었다. 말 그대로, 잘 챙겨주라는 뜻이었다.


스승님은 워낙 주변에서 걱정을 살 만한 인물이기에, 나도 그러려니 하고 트라겐씨의 말을 별 뜻없이 쉽게 받아들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

.

.

그 짧은 한 마디의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 * *




"······."


고요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름 시끌시끌했던 공방이, 다시 예전처럼 쥐 죽은 듯한 고요가 잠식했다.


그리고 그 고요 속 한 가운데 서 있는 거구의 노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어둠 속에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을 향해 무언가를 들고 걸어갔다.


"······."


어둠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트라겐의 눈앞에 실로 오랜만이라 할 수 있는 햇빛이 그를 반기듯 화창하게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트라겐은 그 햇빛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다 무너져가는 자신의 가게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베어 하우스'라고 적힌 가게처럼 허름해진 현판이 있었다.


덜컥.


마침내 현판 없는 가게가 오 년 만에 베어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하자, 트라겐은 어딘가 후련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리아······."


이윽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은 오로지 그의 귀에만 틀어박혔다.


"다음에 만날 때는 분명 이 세상이 아니겠지만······그래도 함께 술잔을 들자꾸나."


그리고 그 바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 * *




"스승님."


"왜?"


나는 스승님께 조심히 물었다.


"역시 지금이라도 보호구 값은 트라겐씨에게 주고 오는 편이······읍!"


"제자야, 제자야. 사람만 좋은 우리 제자야."


스승님이 내 입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말했다.


"트라겐은 말이야. 할인은 커녕 흥정도 안 받아줄 정도로 엄청 야박하게 군단 말이야. 아까도 봐봐. 내가 할인 소리만 꺼냈는데도 죽고 싶냐고 정색했잖아. 그리고 제 집이 장사가 안 되는 이유가 뭐겠어? 다 저 야박한 심정 때문이지."


"······그렇게 보이진 않던—"


"쉿!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트라겐이 공짜로 무언갈 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그냥 받으면 돼. 왜, 어른이 용돈 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다들 받잖아?"


"······어른이 용돈을 준 적은 커녕 저를 버려서."


"아, 미안."


의도치 않게 내 상처를 후벼 판 스승님이 헛기침을 몇 번 하곤 화제를 전환했다.


"크흠! 그럼 이제 진짜 서머시스로 가볼까?"


"그런데 스승님."


"응?"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어 스승님에게 물어보았다.


"스승님은 서머시스로 가려는 목적이 뭐에요."


"뭐냐니, 그야 네가 말한 대로 노예시장을······."


"그건 제 목적이지, 스승님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스승님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남을 구하려는 성격이 아닌 건 제가 가장 잘 알고 있고."


"······그것 참 괘씸하면서도 반박 불가능한 소리구나."


스승님이 내 말에 사람 하나 죽일 것 같은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목적이 뭔데요."


어차피 저 인간이 저러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목적······목적이라······."


잠시 손으로 턱을 괴고 한참을 제자리에 서서 생각하던 스승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굳이 말하자면······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게 목적이랄까? 마침 서머시스도 그 중 한 군데여서 먼저 가자고 한 거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게 목적이라고요?"


"그래. 그냥 맘 편하게 동부 제국 전체를 나랑 한 번 여행한다고 생각해. 왜, 그런 거 있잖아. 대마법사인 엘프가 인간 제자 한 명을 우연히 들여서 여행을 떠나는······."


"그게 대체 뭔데요."


나는 한숨을 쉬며 스승님에게 마저 질문했다.


"그럼 스승님."


"왜?"


"저는 어디까지 같이 가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끝까지지."


"······."


이거 혹시 청혼······아니, 아니다.


저 인간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있을 리가 없지. 머리에 든 거라곤 싸움이랑 술, 먹을 것 밖에 없는 인간인데.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트라겐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그나저나 너도 참 힘든 길을 택하는구나.




내겐 사사로운 감정보다 꿈이 더 중요하긴 했지만, 그걸 다 감안하고서라도 스승님과의 여행은 정말 힘든 길이 될 것만 같았다.


이래서 내가 독립하려고 했는데. 같이 있으면 마음이 더 복잡해지니까.


"제자야! 안 오냐?!"


"······혼자 마음 편해서 좋겠네."


"응? 뭐라고?!"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가요!!"


이렇게 해서······.


다소 앞날이 걱정되는 나와 스승님의 길고도 험한 여행길이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좋아하는 상대와 평생 여행하기, 이거 쉽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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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8화 옛 친우들 24.09.08 21 0 16쪽
8 제7화 마른 하늘에 24.09.07 20 0 20쪽
7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24.09.06 20 0 20쪽
6 제5화 제게 알려주세요 24.09.01 20 0 21쪽
5 제4화 시리도록 아름다운 24.08.31 21 0 18쪽
4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24.08.30 27 0 22쪽
3 제2화 오늘부터 너는 24.08.30 24 0 21쪽
2 제1화 세상이 참 더럽다 24.08.30 32 0 22쪽
1 제0화 전쟁의 나라 24.08.30 49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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