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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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엘1111
작품등록일 :
2024.08.3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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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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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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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DUMMY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폭력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폭력의 정의는 다른 사람을 때리고 상처 입히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심한 압박을 가해 극단적으로 내몰리게 하는, 쉽게 말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모든 행위를 폭력이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쿠구궁······.


그리고 이러한 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대부분은 바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힐 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세간에선 이런 종류의 폭력을 일방적 폭행이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나는 대체 내가 폭력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폭력을 행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이 미친 짓거리를 시킨 강자가 약자인 내게 폭행을 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육체보다 조금 더 강할 뿐인 내 정신이 내 육체를 폭행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 더럽게 묵직한 바위가 나에게 폭행을······.


"······개소리 하고 있네. 미친 놈인가."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꺽꺽 웃으며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것은 명백히 내가 나 자신에게 날리는 언어의 폭력이었지만, 후자의 미친놈에는 비단 나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개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웃길 만큼 어이가 없어서일까. 갑작스레 내 위에 있던 바위도 부르르 떨리더니 발에서 미끄러지······.


"야, 야야야야야! 미친!!"


텁!


나는 내 발에서 미끄러져 그대로 내 머리를 향해 수직 낙하를 시행하는 바위를 간신히 손으로 잡아 멈춰 세웠다. 아슬아슬하게 코앞에서 멈춰 살인미수로 끝난 바위를 향해 내가 말했다.


"내가 하마터면 너를 살인석(殺人石)으로 만들 뻔했구나. 휴우."


사람 하나가 병신이 되기가 이렇게 쉽다.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주일이다.'


일주일.


나 스스로 스승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를 위한 스승님의 암살시ㄷ······아니, 수련이라고 쓰고 지옥도라 읽는 미친 짓을 시작 한 지 벌써 일주일 지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남들에겐 없는 눈부신 재능으로 순식간에 일취월장을 이뤄내기는 개뿔. 솔직히 말해서 근력이 조금 늘어난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싫었어도 결국 검을 휘둘러 본 몸. 그렇기에 강함이란 혜성처럼 나타난 마법 같은 힘이 아닌, 시간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종의 탑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절대 누가 귀에 피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서 알 게 된 것은 아니고.


'그렇다 해도 이건 좀 아니다.'


그래. 시간을 들여 탑을 쌓아가는 것도, 죽을 만큼, 아니. 매 순간마다 삐끗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이 미친 수련도 결국 강해지기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몸이 부서져도 버틸 수 있다.


내가 정말로 버틸 수 없는 건, 바로 지난 일주일 동안 스승님에게 배운 것이라고 할만한 게 단 하나도 없는 사실이었다.


일주일 동안 내가 한 것이라곤 매일 산 아래에 있는 스승님의 집에서 해가 뜰 때쯤 일어나 이 산의 정상까지 왕복 열 번을 달리고, 스승님에 의해서 다리가 일 자로 찢어지고, 팔굽혀펴기 백 번을 한 다음 긴 나무 봉의 끝에 바위가 고정된 웬 이상한 기구를 들었다 놨다를 백 번 하고,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기구를 발로 밟아서 한 시간 동안 움직인 다음엔 중간에 마차의 바퀴 같은 것이 달린 짧은 나무 봉의 양 끝을 손으로 잡고 무릎을 꿇은 다음 팔로 최대한 밀어냈다 다시 돌아오기를 천 번 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발 위에 바위를 올려두고 다리를 접었다 폈다를 백 번 반복하는 수련이 끝나고 나면, 목검을 들어 내려치기, 베기, 찌르기를 각각 백 번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스승님이 주신 역사서를 잠들기 전까지 읽는다.


이것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수련의 전부다.


그나마 배운 것이라고 해봤자 역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이 괴랄한 수련 방식 뿐. 기초적인 마법이라던가, 아니면 스승님이 보여주셨던 마검술의 기초라던가. 이런 건 배우기는커녕 스승님의 입에 한 번도 담긴 적이 없었다.


정작 원했던 것은 배우지 못하고 기본 중의 기본과 운동만을 반복하고 있으니, 미쳐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쿠웅!


"끄허어어······배, 백 번 끄으으읕······!"


대충 바위를 옆으로 밀어낸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져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그래도 사람이 양심은 있는지라 수련 하나를 끝내면 최소 오 분 정도는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고 있는 수련의 양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지만, 주는 것이 어디인가.


"······후우우우우."


호흡을 되찾은 나는 몸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처럼 푸르른 하늘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내 처지는 조금은 변했으나 또한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이걸 대체 언제까지······아니, 그 전에 대체 언제쯤 제대로 된 마법이나 검술을 배울 수 있는 거지······?'


이러한 내 의문에 대한 답을 해주기라도 위해서 일까.


"깊은 산속 옹달샘~ 아빠 곰은 맛있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콧노래에 나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집채만 한 곰을 어깨에 짊어지고 유유히 걸어오는 스승님이 세상 좋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읏차~"


가볍게 곰을 바닥에 내려 놓은 스승님이 내게 말했다.


"그럼 다짜고짜 검술이나 마법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니? 원래 큰 물을 담으려면 큰 그릇부터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야. 몸과 기본기부터 제대로 착실하게 다져야지."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얼굴에 다 쓰여있구만, 뭘."


이 사람은 정말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쯤 되면 좀 소름이 끼치는데.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스승님께 처음으로 항의했다.


"스승님.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뭐가?"


"스승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열 살짜리가 하기에는 수련의 강도가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이러다 제대로 뭘 배우기도 전에 제가 먼저 뒤지겠는데요?"


내 항의에 스승님이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


"원래 수련은 뒤질 만큼 힘들어야 수련이라고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리고 이제 시작점에 섰을 뿐이야. 네가 앞으로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수련의 강도도 그에 맞춰서 더 높아질 거란다. 그때 가면 오히려 지금이 더 편했다고 말할 걸?"


대체 사람을 얼마나 굴려놓을 생각이면 저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인가.


"그래도 뭐, 굳이 네가 마검술을 배울 시기를 따지자면······."


스승님이 잡아온 곰을 가리켰다.


"네가 이 곰을 쉽게 잡을 수준이 되면 본격적으로 가르쳐줄게."


"······제가요?"


저걸요?


말을 마친 스승님은 품에서 식칼을 하나 꺼내 들어 곰의 가죽을 능숙하게 벗긴 뒤, 근처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마법으로 불을 피운 다음 곰의 다리를 잘라 불에 굽기 시작했다.


꿀꺽.


보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데 고기를 굽는 냄새까지 코를 찌르니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곰 고기를 향해 고정되자, 스승님이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쳤다.


"남은 수련은 저녁 먹고 마저 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며칠 굶은 거지처럼 후다닥 달려가 스승님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끼니마다 꾸준히 다 챙겨 먹긴 했지만 수련을 할 때면 이상하게 계속 배가 고팠다.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은 것일까.


잠시 후, 고기가 다 구워지자 스승님이 칼로 곰의 다리를 반으로 잘라 뼈에 나뭇잎을 대충 휘감은 다음 내게 건넸다. 막 불에 구운 참이라 꽤나 뜨거웠기에 나는 입으로 호호 고기를 불어가며 조심히 고기를 뜯었다.


양념이나 소금은 전혀 안 썼기에 간이 되어 있진 않았으나 맛은 그야말로 진미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곰 고기는 맛이 별로라 제국에서 먹는 사람이 드물다던데, 지금의 나에게는 이보다 맛있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승님은 나와는 좀 달랐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요 며칠 사이 고기만 계속 먹어서 그런가. 슬슬 이것도 좀 질리네."


"······외람된 말씀인데요, 스승님."


"그런 있어 보이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가끔 보면 네가 나보다 더 늙은이 같다야."


나는 개의치 않고 스승님의 뒤를 향해 눈짓을 하며 말했다.


"보통 질린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이 먹어요?"


내가 눈짓한 곳에는 수많은 뼈들로 이루어진 뼈들의 산, 다른 말로는 곰들의 무덤이 있었다.


어쩐지 요즘 이 산에 곰이 안 보인다 했더니, 전부 스승님의 뱃속으로 서식지를 옮긴 것이었나.


스승님이 잠시 뼈들의 산을 바라보다 이내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봤다.


"제자야,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


"어우 씨!"


왠지 모르겠지만 등에 소름이 쫙 타고 흘러 올라가는 느낌에 나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지?


순간적이지만 이상한 남자 같은 사람이 눈앞에 보였는데?


스승님이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입꼬리를 쭉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차갑게 눈을 가라앉히며 내게 물었다.


"넌 수련이 뭐라고 생각하니?"


"수련이요?"


스승님의 분위기가 달라졌기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 신중히 대답했다.


"수련은······무구를 만들기 위한 재료라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생각해?"


"예를 들어 제가 목표로 하는 경지를 검이라고 치면, 수련은 그 검을 세간에서 흔히들 말하는 보검이나 명검으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재료죠.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또 재료의 질이 어떠냐에 따라 완성되는 검이 보검인지, 명검인지, 그것도 아니면 싸구려 검이 되는지 결정이 되니까요."


내 말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옳은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명검을 만드는데 꼭 '좋은 재료'만이 필요할까?"


"그건······."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명검을 만드는데 질 좋은 재료가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 하나 질 좋은 재료만으로 정말 명검을 만들 수 있는가?


아무리 질 좋고 무가지보의 가치를 지닌 재료가 있다 한들, 그 재료를 가공하고 무구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풋내기에 불과하다면, 검을 만들었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과연 명검인가, 아니면 싸구려 검인가.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있자 스승님이 대신 입을 열었다.


"제자야, 수련은 직선과도 같은 거란다."


"직선이요?"


"그래. 끝이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직선. 길이 하나뿐이라 떨어지면 안 되니 무작정 달려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걸어서 가자니 끝에 도착은커녕 보기라도 할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이 들겠지. 이해해. 인간에겐 수명이란 게 있어서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을 때 끝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나가고 싶겠지. 그런데 말이야."


스승님이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했다.


투두둑.


"명검이 만들어지는 데 좋은 재료가 전부가 아니듯, 수련에서 중요한 건 끝을 보는 게 아니야. 사람이 어떻게 끝만 보고 앞으로 달리기만 하겠냐? 가끔은 뒤도 보고, 옆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가야지. 중요한 건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에서 끝을 보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끝에 도달하지 못해도 넘어지지 않게끔 길을 넓히는 거야. 검을 완성 시키기도 전에 부숴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냐? 너에겐 아직 시간이 많으니 조바심 내지 마. 지금 하고 있는 게 당장 필요 없어 보여도 결국 훗날 네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토대가 될 테니까."


쩝쩝쩝쩝!


"······스승님."


나는 스승님의 태도에 맞춰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은 진지한 자세로 말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같은 잔소리는 좋습니다만, 그 전에 입에 씹고 있는 것좀 먼저 다 삼키고 말하면 안될까요? 집중도 안 될뿐더러 얼굴에 다 튑니다. 그게 안된다면 쩝쩝 거리는 것만 어떻게 좀······."


"싫은데?"


"······."


그럼 차라리 고개라도 돌리고 먹어주던가. 이 인간아.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스승님을 노려보다가도, 너무나 행복하게 음식을 먹고 있는 스승님의 모습에 금방 표정을 풀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단 하나의 직선이라······.'


끝에 도달하지 못해도 길을 넓혀 천천히 전진하는 것과 끝만을 보기 위해 떨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달리는 것.


그것이 수련이자 내가 걸어야 할 길중 하나라면.


나는······.




* * *




다음 날.


"하아아아암~"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제자가 올라가 있을 산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하늘을 바라보니 중천에 뜬 해가 따듯한 햇살을 쏟아내리고 있었기에, 나는 그 기분 좋은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기지개를 쭉 폈다.


"으그그그극!"


자고로 기지개는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소리로 내주는 것이 도리.


한 번 기지개를 펴고 나니 반쯤 감긴 눈도 완전히 떠졌기에 나는 평소처럼 고개를 돌려 자연에 흘러가는 산의 풍경을 감상했다. 온갖 더러움이 가득한 속세의 세상과는 다르게 역시 자연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졸졸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맑은 강,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작은 새들, 겨울이 다가오는 걸 알리듯 떨어지는 낙엽들과 그 밑에 뒤늦게 피어날 준비를 하는 새하얀 꽃까지······.


"······새하얀 꽃이라."


나는 고개를 들어 아직 거리가 좀 남은 산의 정상을 바라보았다. 옛날엔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라남에 따라 조금이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산봉우리를.


올려다 본 것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산봉우리였지만 내가 보고자 하는 건 산봉우리가 아닌 미숙한 나의 제자였기에.


나는 여러 가지 상념이 섞인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하다 해도 아직 열 살밖에 안된 어린애인데······이 수련을 잘 해내려나."


세상사라면 수없이 겪어봤기에 이제는 초연한 나였지만, 제자를 들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나 또한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승이기에 제자에게 조언을 해줄 수는 있지만, 제자의 선택을 대신하여 해줄 수는 없다. 결국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하고 끝내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일이니까.


"뭐······그러다 못 버티고 도망치면 두들겨 패서라도 데리고 오면 되는 일이고."


단, 이미 선택한 길을 도망치는 것은 두고 보지 않을 생각이다. 선택과 도망은 엄연히 다르기도 하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도 언젠간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물론 인생이란 때로는 도망쳐야 하는 법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인생이란 수없이 뻗어나가는 나무의 가지와도 같은데, 그중에서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늦기 전에 깨닫고 도망쳐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길에 들었을 경우고,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도망치는 것이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도 있는 경우다. 그리고 스승으로서 제자가 잘못된 길에 빠지는 건 당연히 두고 볼 수 없는 일.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진 최대한 해보는 거지 뭐~"


나는 내 자신을 애써 위로하고 조금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일어나면 배에서 밥을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오늘은 배도 제자를 먼저 생각하는지 패악질을 부리지 않았기에 나는 제자의 수련을 먼저 봐주기로 결정했다.


문득 내 제자는 이런 쪽으로는 복이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세상에 어딜 가서 이만큼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겠는가? 아마 돈 주고 찾아다녀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지, 역사를 훑어봐도 나만 한 스승이 없······."


그때였다.


쿠웅!


갑자기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산 전체가 잠깐이지만 흔들렸다. 진동에 놀란 새들은 하늘로 날아가고, 작은 동물들은 순식간에 나무 사이나 돌 밑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의 진동은 익숙했기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래봤자 곰을 잡을 때 곰이 쓰러지면 나는 진동정도······.


"······잠깐, 곰?"


갑자기 뇌리에 스치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나는 발걸음을 빠른 걸음에서 달리기로 바꿔 산의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맞을까? 아직은 이르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었을텐데. 하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타악!


나는 천 걸음을 걸어야 도착하는 산의 정상에 열 걸음만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나를 맞이한 광경은······.


"허억······헉······후. 오셨어요?"


전신에 긁힌 상처가 가득한 채로 쓰러진 곰 위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제자의 모습이었다.


내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제자를 바라보자, 땅으로 내려온 제자가 찢어지고 먼지 묻은 옷을 툴툴 털며 말했다.


"'곰을 쉽게 잡을 수준이 되면 본격적으로 가르쳐주겠다.' 분명 어제 이렇게 말하셨죠?"


"······쉽게?"


그 꼬라지로?


내 생각을 읽은 듯한 제자가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요."


"······하, 하하하하하!"


뻔뻔한 제자의 태도에 내 입에서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주먹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친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한참을 혼자 웃던 나는 그래도 제자에게 할 말은 해야겠는지라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

"이거 어지간히 미친 놈이었네?"


"······."


아, 말풍선이 바뀌었다.


하지만 제자는 오히려 그게 더 낫다는 듯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스승님만 하겠어요?"


"뭐 임마? 그러고 보니 너 말이 계속 이상하게 반존대다? 이참에 수련량 좀 팍팍 늘려줘?"


겁을 주려고 한 말이었으나 되려 제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저야 좋긴 한데, 언제는 천천히 가야 한다면서요."


"달리는 것보다 걸어가는 게 맞다고 했지. 달리지 말란 소리는 안 했다."


"······허, 참."


"그러고 보니 너 진짜 이건 어떻게 잡았니?"


내가 발로 곰의 머리를 툭툭 치자 제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사실 꼼수 좀 썼죠."


"꼼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제자가 손가락으로 쓰러진 곰의 주위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밧줄에 묶인 큰 바위와 여러 함정으로 보이는 것들이 주위에 깔려있었다.


아무래도 내 제자는 검사보단 군사쪽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가운데······.


꼬르르륵!


더 이상은 참들기 힘들었는지 내 배가 지랄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눈 앞에 밥은 있었으나 일주일 동안 곰 고기만 먹어서 물리는 상황. 나는 제자를 굴리는 것은 둘째치고 우선은 내 배부터 해결해야 했다.


지금 내 배가 원하는 것은 조리가 된 요리라 불릴만 한 음식.


하지만 이곳은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못 낼 산의 정상이기에 마땅히 요리를 해줄 사람이 없는 상황.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에 제자에게 물어보았다.


"제자야."


"네?"


"너 혹시 요리도 할 줄 아니?"


"그건 갑자기 왜요."


"삼시세끼 그냥 곰 고기만 처먹을라니 슬슬 질려서 그런다. 저거 가지고 뭐 다른 요리는 못 하냐?"


"스승님, 저 열 살입니다."


"알아, 임마. 그래서 할 수 있냐고, 없냐고."


제자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재료는 있어요?"


"집에 있으니까 가져오면 돼. 아, 아니다. 그냥 지금 내려가서 먹고 식후경 운동으로 다시 올라오면 되겠네!"


"······."


"아, 간은 좀 짭짤하게 해줘. 난 싱거운 건 영 싫더라."


나는 내 천재적인 아이디어와 혜안에 손뼉을 짝 치며 어딘가 뚱해 보이는 제자의 멱살을 잡고 산 아래로 뛰어내려 경사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악!


흙과 돌의 파도가 내가 미끄러지는 발에 맞춰서 함께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흡사 조리를 하는 걸 보는 느낌이 들어 벌써부터 제자의 요리 솜씨가 기대되었다.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물론 내 머릿속에서 맛이 없다는 가정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안되면 될 때까지 굴리면 그만.


그것이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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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사로서 살아가는 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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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1화 발상의 전환이라고 24.09.15 20 0 17쪽
11 제10화 남부 도시의 어둠 24.09.14 21 0 19쪽
10 제9화 다음에 만날 때는 24.09.13 24 0 22쪽
9 제8화 옛 친우들 24.09.08 21 0 16쪽
8 제7화 마른 하늘에 24.09.07 21 0 20쪽
» 제6화 내가 걸어야 할 길 24.09.06 21 0 20쪽
6 제5화 제게 알려주세요 24.09.01 20 0 21쪽
5 제4화 시리도록 아름다운 24.08.31 21 0 18쪽
4 제3화 나의 제자가 있었다 24.08.30 28 0 22쪽
3 제2화 오늘부터 너는 24.08.30 24 0 21쪽
2 제1화 세상이 참 더럽다 24.08.30 32 0 22쪽
1 제0화 전쟁의 나라 24.08.30 50 0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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