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만 키워도 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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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스
작품등록일 :
2024.08.3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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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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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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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깨는 히든 엔딩

DUMMY

게이트가 열려서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몬스터에게 뜯겨 죽었다.


나 또한, 헌터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그게 내가 전생에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다시 눈을 뜬 곳은 새 소리 짹짹 나는 숲속.


나는 다 낡아빠진 오두막집 안에 있었다.



--

<숲 마을 - 플레이어 농장>

--



‘설마.’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풍경이 너무 익숙했다. 깨진 창문의 나뭇가지 같은 균열 모양도. 바닥의 판자가 삐져나온 개수도.


난 모두 다 알았다. 수천 번 리플레이한 모습이기에.


짚으로 된 지붕에서 정확히 물방울이 일곱 번 떨어지면-.


띠링!


상태 창이 나타난다.



--

퀘스트 1, 대망의 시작

‘첫 농기구를 제작하십시오.’

--



나는 벅찬 숨을 들이쉬었다.


틀림없다. 이곳은 내가 죽기 전날까지도 8시간씩 꼴아박던 게임 속이다.


게임의 이름은 <탑 오브 콜롭스>.


직역하면 멸망의 탑. 이름만 보면 아포칼립스나 심각한 전쟁 게임이 떠오르지만.


‘겨우 그런 게임이었다면 내가 긴 시간을 투자했겠어?’


이미 현실에 게이트와 몬스터가 판을 치는데?


<탑 오브 콜롭스>는 위험한 세상에 질린 나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한 게임이었다.


메인 콘텐츠는 레벨업과 탑 공략이지만, 농장 콘텐츠가 탄탄히 기반으로 있는 게임.


‘모든 플레이어가 기본적으로 농장을 갖고 있지.’


주변에 몬스터가 있으니 레벨업하는 재미도 적당, 하지만 본질로는 텃밭이나 가꾸는 일상.


완벽하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삶이다.


나는 이 게임에 내 영혼을 팔았다. 밭에 쫑쫑 난 푸른 잎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꽉 차는 기분이었다.



필요한 재료: 고산 지대 몬스터 ‘바히알’의 송곳니



거기다 지루하지 않게, 성취감을 배로 불려주는 몬스터 퀘스트까지!



전투 레벨 1위: ‘빙의시켜줘’

농장 레벨 1위: ‘빙의시켜줘’



내 닉네임이 플레이어 랭킹과 농장 랭킹을 모두 차지했을 때. 그때의 희열을 기억하는 나에게.


<탑 오브 콜롭스>로의 빙의는 꿈만 같았다.


나는 내 뺨을 몇 번 꼬집었다.


‘나 진짜 빙의한 거지? 이게 현실이지?’


혼란스러운 감정 따위, 설렘에 묻혀서 미친놈처럼 사라져버렸다.


‘근데, 빙의시켜줘 닉넴은 그냥 농담인데 좀 쪽팔리네. 나 빙의시킨 신도 미친놈이라서 해준 듯.’


그렇지만 쪽팔림이 대수냐? 지금 한시가 급하다.


나는 서둘러 스탯 창부터 열었다.



--

이름: <치나리>

레벨: 1

소속: 숲 마을

마을 거주: 1일차


직업: - (잠금: Lv.10)

포지션: - (잠금: Lv. 30)

계열: - (잠금: Lv. 30)

스킬: - (잠금: Lv. 10)


세부 스탯 (잠금: Lv. 10)

체력: F

근력: F

민첩: F

지력: F

--



두근, 두근.


게임과 똑같은 기본 1레벨 상태 창이다. 눈앞에서 실물로 보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다.


‘닉네임이 치나리?’


나는 저런 닉네임을 쓴 적이 없다. 본캐 ‘빙의시켜줘’ 밑으로, 부부부부부부···부부부부캐까지 다 떠올려봤지만 마찬가지.


거기다가 또.


‘커마가 자동으로 되어 있네?’


뒤뜰의 작은 흙웅덩이에 내 모습을 비춰봤다.


‘흑발에 붉은 눈. 소년 같은 얼굴.’


다양한 커마를 해보긴 했지만, 이런 색깔 조합은 하지 않았었는데.


‘왜 본캐나 부캐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다른 커마가 되어 있는 거지? 다른 계정에 빙의한 건가?’


의문점이 남지만 일단은 제쳐두기로 한다.


이름이 어떻고 커마가 어떻든, 고인물인 내게 아무 문제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건 내가 아는 계정이 아니니, 상태 창에서 확인을 해야겠지.



--

소속: 숲 마을

마을 거주: 1일차

--



일단 소속은 내가 딱 선호하는 스타팅 장소다.


플레이어는 스타팅 장소를 두 평화 지역 중 하나로 정할 수 있다.


하나는 ‘숲 마을’, 다른 하나는 ‘바닷가 마을.’


양쪽이 무슨 차이가 있냐면.


난이도나 진행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차이는, 세부 퀘스트와 스토리에서 생긴다. NPC가 다르니까.


특징으로는 숲 마을은 동양풍 캐디, 바닷가 마을은 서양풍 캐디.


‘바닷가 마을이 더 인기가 좋았었지.’


NPC 여캐 의상이 노출도가 높아서.


하지만 농장은 숲에 만들어야 제격이라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일편단심 숲만 봐왔다.


그리고 굳이 상태 창에까지 언급되어 있는, ‘마을 거주 1일차.’


‘역시, 닉네임이나 커마는 멋대로 되었어도 이건 동일하네.’


<탑 오브 콜롭스>의 시나리오는 자유도가 높은 편이었다. NPC들과 적대 관계여도 진행 가능하고, 퀘스트를 아예 안 해도 되고.


다만 딱 하나 자유롭지 못한 게 있었는데······.


바로 기간이다.


시나리오상 모든 플레이어는 마을 거주 1000일차에 동일한 사건을 겪는다.


‘일명, 농부에서 용사까지.’


1000일째가 되는 날, 마을 옆에 ‘멸망의 탑’이 솟아오른다.


시나리오상 마을의 핵심 인물이 된 플레이어는 NPC들의 지지를 받으며 탑을 공략한다.


즉 농장을 가꾸고 레벨업을 하는 천 일이, 탑이 솟아오르는 메인 스토리에 대비한 준비 기간인 셈.


‘그런데 이게 현실이 되었단 말이지.’


나는 탑 공략은 하기 싫다. 매우, 존나, 절실히.


이유는··· 굳이 설명해야 아나? 내 농장을 두고 그 지옥으로 가라고?


문득 게임 출시 이후로, 내가 처음 탑 공략 시나리오에 들어갔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그때 <탑 오브 콜롭스>를 접을 뻔했었다.


‘탑을 공략하는 동안은 농장에 귀환 불가.’


그때 내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던지.


결국 본캐로는 탑을 공략하고, 부캐로 새로 농장을 만들고서야 나의 힐링 금단증상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빙의하고서는 부캐가 없잖아.


‘탑에 들어가면 나는 죽어. 비록 탑 정복을 59번쯤 해봤지만 농장을 못 봐서 죽는다.’


차라리 군대를 다시 가고 말지.


오늘부터 시한부 인생 1000일인가······. 나는 한탄하며 흙바닥에 털썩 누웠다.


아니지, 잠깐.


다른 방법이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탑 오브 콜롭스>에는 ‘농부에서 용사까지’ 엔딩 말고도,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또 다른 엔딩이 있다.


탑이 애초부터 솟아오르지 않는 엔딩. ‘농부의 삶.’


현실로 따지면, 게이트 브레이크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던 대한민국 같달까.


농장과 작은 몬스터만 있는 삶이라니! 나는 죽기 살기로 이 엔딩에 대해 연구했다.


나 말고도 콘텐츠가 메마른 고인물들이 미친 듯이 파헤쳤다.


그러나 모두 존재만 유추할 뿐,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온갖 방해가 다 들어오니까.’


이 엔딩은 개발자의 의도와 어긋난다는 설정이다.


고로 플레이어가 이걸 시도하는 낌새가 보이면, 게임이 스스로 움직이듯이 막으려 든다.


갑자기 멀쩡한 NPC가 어디서 저주를 받아 와서 퀘스트 진행이 안 되거나.


탑 제물을 건드린 영향이라며 레벨이 너무 높은 몬스터가 튀어나와 그냥 게임오버되거나.


수많은 억까가 패턴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생했다. 그 내로라하는 고인물들이 죽고 또 죽었다.


그러나, 나는 이 엔딩을 보는 데 성공했었다.


‘패턴을 정리한 게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죽지는 않게 피지컬을 쏟아부은 거지만.’


결론. 무지하게 빡셀 거다, 이거.


기껏 빙의했는데 또 죽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한번 해봤는데 두 번을 못할까?’


잠깐 고생하면 평생 유유자적 살 수 있다는데, 내가 마다할 리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히든 엔딩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

퀘스트 17, 동사는 안 돼!

‘오두막집의 벽난로를 깨끗이 청소하십시오.’

--



생각 중에도 나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새 퀘스트 17까지 왔다.


‘음,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3, 2, 1.


“똑똑.”


그렇지.


내가 완벽히 외운 타이밍에, 누군가가 등 뒤에서 입으로 노크 소리를 냈다.


문짝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노크할 데가 없었겠지. 담장도 모조리 무너졌으므로, 대문 밖에 있는 사람의 외관이 잘 보였다.



--

NPC: 검술학교 학생 <희인>

레벨: 5

소속: 숲 마을

직업: 검사

--



“넌 누구니? 멀리서 왔구나? 여기서 살 거야?”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반짝거리는 눈동자. 한복처럼 고름이 달린 수수한 가죽옷을 입었다.


그녀는 튜토리얼 NPC다. ‘사람 좋아!’ 성격이고, 경계심 없는 강아지 같아서 무조건 플레이어의 아군이다.


“응. 여기서 살아도 될까?”


NPC에게 직접 입으로 말하려니 잠깐은 어색했다.


희인이 활짝 웃었다.


“물론! 그렇지만 촌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해. 따라와. 안내해 줄게.”


희인을 따라가는 동안, 그녀는 튜토리얼 NPC답게 게임의 기본 정보를 차근히 떠먹여 주었다.


나는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라 적당히 흘려 들었다.


그런데, 낯선 말이 하나 들렸다.


“원래도 마을 밖에서 몬스터에게 당해서 오는 사람이 많지만, 오늘은 유독 새로 온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 다들 촌장님께 가 있어.”


‘새로 온 사람’이라니?


나 말고 다른 플레이어도 빙의한 건가?


그렇게 희인을 따라가니,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카카환>

<이시벨롬이>

<닉네임뭐하냐>



모르는 닉네임을 단 3인조가······.


촌장 집에서 밀가루 포대와 은식기, 돈을 훔쳐서 살금살금 나오는 광경을!


그 순간, 내 상태 창에 퀘스트가 떠올랐다.



--

돌발 퀘스트, 촌장의 분노

‘숲 마을 촌장님이 도난당한 물품들을 모두 찾아오십시오.’

--



어?


히키코모리같이 농장에만 처박혀 있던 나지만, 카카환의 닉네임만은 잘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저놈은.



1위: ‘빙의시켜줘’

2위: ‘카카환’



나 때문에 만년 2등 하던 그놈.



[전체][카카환]: 야

[전체][카카환]: 빙ㅇ신 어딨어?



클랜 가입 거절한 걸로 앙심 품고 겁나 방해하던 놈이니까!


때는 게임 런칭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서였다. 클랜 기능이 막 생겼을 때.



[카카환]님의 귓속말: 님

[카카환]님에게 귓속말: ?

[카카환]님의 귓속말: 우리 클랜 들어와여



닉네임을 보고 이놈이 2위란 걸 알았다. 카카환도 내가 1위니까 먼저 왔겠지.



[카카환]님에게 귓속말: ㅈㅅ바쁨



탑 오브 콜롭스의 클랜이 하는 일이라는 게 PVP 아닌가. 난 매일매일 농장 가꾸느라 바빴다.


밑에 놈들이 하는 PVP는 하등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거기서 카카환이 돌변했다.



[카카환]님의 귓속말: 찐따 ㅅㄲ

[카카환]님의 귓속말: 사람이랑 말할 줄 모름?

[카카환]님의 귓속말: 존1나 성의없네



나중에 카카환의 클랜을 나온 어느 랭커와 채팅할 일이 있었다.


카카환 그 새끼는 왕 같은 놈이라고,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정치질해서 내쫓는 데 재미 들린 놈이라고. 본인이 산 증인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 님 고생하셈



그리고 그 랭커는 내게 애도를 표했다.


카카환이 PK 가능 지역마다 날 따라나서서 암살 시도를 하거나. 전체 채팅으로 대놓고 나를 찾거나. 시비 터는 게 이미 다 퍼져 있었으니까.


그 카카환이 저기에 있었다.



--

이름: <카카환>

레벨: 1

소속: 숲 마을

--



게임과 똑같은 닉네임, 똑같은 커마를 하고서. 촌장의 집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있었다.


추하게 촌장 물건이나 쌔비면서.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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