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만 키워도 강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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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스
작품등록일 :
2024.08.30 09:47
최근연재일 :
2024.09.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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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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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도 덮어야지

DUMMY

카카환이 내가 있는 자리를 돌아봤다. 뒤늦게 나를 발견했다.


내가 방금까지의 일을 모두 훔쳐봤다는 걸 알 것이다.


“너 내 스토커냐?”


카카환이 뻔뻔스레 씹어뱉었다.


맨 처음에 촌장 집 앞에서 만난 것을 기억한다는 말이었다. 그 도둑질은 자기가 살금살금 가다가 꼴사납게 들킨 거면서 말이다.


성큼성큼 카카환이 다가왔다. 내 멱살을 꽉 움켜쥐었다. 나는 발뒤꿈치가 반쯤 대롱대롱 매달렸다.


카카환의 입가에 비웃음이 달렸다.


“PVP 켜. 못 켜? 아, 튜토리얼을 못 했나?”


놈은 약올리듯 말했지만, 별로 약오르진 않았다. 그딴 건 내게 도발거리가 되지 않았다.


‘난 몇 년 전부터 너 새끼의 개지랄을 받아 왔어.’


그때의 인성질에 비하면 지금은 약과지. 튜토리얼을 못해서 애초에 PVP 기능이 없는 덕에, ‘쫄?’ 같은 도발을 듣지 않아도 되니 편하다.


그런데 분명, 카카환은 내가 빙의시켜줘인 걸 모르는데.


“내가 너는 찍어서 괴롭힌다. 처음 봤을 때부터 개 구렸어.”


왜 난 다른 계정으로도 카카환의 픽을 받는 거냐.


나는 그런 놈에게, 딱 잘라 일침을 가했다.


“정신 차려.”


카카환의 표정이 싸해졌다.


“아직도 니가 게임 속에 있는 줄 알아? 이제 이건 현실이야. 남을 등쳐먹는 게 장난이나 재미가 아니라 진짜 범죄가 되는 세상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카카환의 등 뒤로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PK를 당하고 농장으로 숨었던 패랭이꽃이었다. 그녀가 문 뒤에서 우리를 엿보고 있었다.


카카환이 내게 한눈이 팔린 사이······. 패랭이꽃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에서 다시 손톱이 길러져 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러는 사이 카카환의 뒤를 치려고?


‘오지 마. 당신이 뒤치기 하라고 시선 끈 거 아니야.’


나는 카카환 몰래 눈으로 아니라는 사인을 보냈다.


다행히 패랭이꽃이 알아들었다. 분노를 삭히는 얼굴로, 그녀는 일단 내가 하는 일을 지켜봤다.


“니가 지금 제일 잘난 것 같냐? 제일로 잘 나가는 것 같아?”


나는 카카환을 내 농장으로 유인할 생각이었다. 그런 고로, 나와는 어울리지도 않는 박애주의 설교를 시작했다. 카카환 이 새끼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알면서.


‘바로 이 다음이 목표니까 말이지.’


나는 놈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카드를 꺼냈다.


인벤토리에서 불려온, 운석으로 된 옛스러운 검이 내 손에 쥐여졌다.


엑스칼리버였다.


“······뭐냐. 어떻게 한 거냐?”


과연, 카카환의 눈빛이 바로 변했다.


엑스칼리버는 20레벨이 되면 자연스럽게 땅에서 나오는 것.


나 말고는 아무도 엑스칼리버를 직접 땅에서 꺼낸다는 공략을 모르니, 놈의 시점에는 내가 20레벨 퀘스트까지는 거뜬히 수행한 힘숨찐으로 보일 터다.


“튜토리얼도 못한 주제에, 그게 어떻게 나왔어?”


카카환의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욕심이 비쳤다. 눈빛만 보면 날 밀치고 바로 검을 뺏어갈 기세였다.


단, 내 것을 빼앗는 식으로는 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각자 자신만의 엑스칼리버를 써야 한다.


“알려줘? 내 농장에 가면 볼 수 있어.”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농장으로 유인하는 게 너무 티가 나겠지.


그래서 아까의 설교를 이어서, 나름 그럴 듯한 개연성을 부여한다. 놈이 나를 착한 호구로 여기게 만드는 거다.


“봐봐. 니가 아무리 남을 등쳐먹어도 최고가 될 수는 없어. 서로 잘하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는 거잖아. 지금이라도 마음 고쳐먹고 훔친 물건 돌려놔. 그럼 엑스칼리버 해제하는 방법 알려줄게.”


카카환의 눈알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 속내가 뻔히 보였다.


‘뭐야, 이 병신은?’이라고 속으로 비웃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만만히 보인 덕에, 카카환이 거짓으로라도 내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다.


“단물 다 빨아먹은 갑빠만 내놓으면 된다고? 개이득이네.”

“훔쳐간 식량이랑 골드도 줘야지.”

“그깟 푼돈 뭐.”


카카환이 가증스럽게 씩 웃었다. 거짓으로 된 거래 성립이었다.




* * *




플레이어의 개인 농장 안에서는 모든 악의적인 행위가 엄금된다.


공식적인 PVP 금지 구역. 농장 주인도 초대받은 사람도, 서로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공격도, 절도도, 농장 훼손도 다 안 된다.


이건 카카환처럼 썩은물일수록 더욱 잘 알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우셩은 오두막집 안에서 침을 꿀꺽 삼켰다. 틈 날 때마다 창문으로 밖을 살피고 있었다.


‘온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정말로 치나리 님이 카카환, 이시벨롬아, 닉네임뭐하지를 모두 농장으로 초대해 데려왔다. 문으로 들어오는 네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우셩은 들키기 전에 창문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집안에 함께 숨어있던 친구, ‘과금은나빠요’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윽고 둘은 긴장한 채로,


둘은 아까부터 치나리의 농장 오두막집 안에 숨어 있었다. 치나리의 지시를 받고서였다.



-여기 있다가, 제가 신호하면 소리 빽 지르면서 달려나와요. 카카환 일당을 놀래켜주면 돼요.



치나리 님은 손에 엑스칼리버를 들고 있었다. 저것이 카카환 일당을 낚아 온 낚싯대나 다름 없었다.


카카환과 클랜원들은 방화라도 할 것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농장을 둘러봤다. 엑스칼리버의 비밀을 알아내겠다는 탐욕이 그득그득했다.


그걸 지켜보며, 우셩은 한번 더 침을 꿀꺽 삼켰다.


치나리가 그들을 밭 중앙으로 안내한다. 그들에게 말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기 아래 들여다 봐. 이게 내 농장이 다른 점이니까.”


밭 한 가운데에 있는 수상쩍은 커다란 구덩이.


하지만 그건 구덩이가 아니라······.


뒤주 뚜껑을 열어서, 딱 맞게 땅에 파묻어 놓은 깊은 구멍이다.


바로 지금이었다. 치나리가 지시한 순간이. 카카환 일당 셋이 구덩이를 들여다보는 순간.


하지만 그때까지도, 우셩과 과금나빠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농장 안에서 플레이어끼리 공격은 안 돼도 물리력 행사는 가능한 거 알고 있는데요······. 그래도 우리가 힘으로 안 될 걸요. 초기 레벨 차이가 개크잖아요. 우리 셋이 밀어도 카카환 하나도 못 밀 걸요?



그건 아무리 뉴비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레벨 차이에 따르는 근력의 차이.


이건 랭킹 1위 빙의시켜줘가 와도 컨트롤 같은 걸로 극복할 수가 없다. 순수한 스탯 차이이므로.


그런데도 그때 치나리 님의 얼굴이 너무 담담했어서.



-그건 알아서 할게요. 일단 제가 신호할 때 나와주기만 해요.



우셩과 과금나빠는 망설임을 떨쳐냈다. 그들은 눈빛을 교환하고 발에 힘을 가득 실었다.


덜컹!


“우와아아!”


둘은 어마어마한 괴성을 지르며 집에서부터 튀어나왔다.


카카환, 이시벨롬아, 닉네임뭐하지는 화들짝 놀랐다. 황당하단 얼굴로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본다.


‘그럼 그렇지’라는 얼굴로, 복싱 가드를 올리듯이 이쪽을 향해 전투 태세를 가한다. 망했다. 우셩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다 치나리 님이 시킨 거예요? 애초에 오두막집이랑 밭이랑 거리가 있는데······!’


한데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컥!”

“으악!”


낯선 비명과 신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우셩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치나리 님이 이시벨롬아의 무릎 뒤를 발로 콱 찍더니, 그대로 허리를 접어서 구덩이에 두더지처럼 넣어버리는 게 아닌가.


물 흐르는 듯한 동작은 다음 타깃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닉네임뭐하지였다.


앞선 동료의 추락을 보고 당황하는 닉네임을, 허리를 뒤로 눌러서 구덩이에 빠뜨려버렸다. 붕붕 팔을 휘저으며 안 떨어지려고 하던 폼이 애잔할 정도였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상대는 무개념 등신들일지는 몰라도 초짜는 아니다. 레벨 5짜리 치나리의 손에 순순히 낙하할 덩치들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치나리의 손아귀가 그들을 멸치 다루듯 휘어잡는 모습이······.


‘전혀 스탯이 꿀리는 걸로 안 보여. 오히려 더 강하잖아?’


우셩의 머리가 혼란으로 뒤흔들렸지만.


당사자, 치나리는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근력으로 세 명을 모두 압도하리란 걸 알았다.


그에게만 보이는 상태 창이 축복하듯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

‘농장의 수호자’ 칭호

당신과 농장은 긴밀히 상호작용합니다. 농장의 레벨이 오르면, 당신의 능력치도 오릅니다.

--



그래, 분명 치나리의 레벨은 겨우 5다. 카카환 한 명도 이기지 못하는.


그러나, 그 세부 스탯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

레벨: 5

농장 레벨: 26 ‘미래가 창창한 농장’


체력: 4495

근력: 5665

민첩: 3891

지력: 5102

--



치나리의 능력치는 농장 레벨까지 더하여, 총 31에 버금가는 능력치였다. 카카환 일당이 셋이 덤벼도 속수무책일.


이제 마지막, 카카환만을 남겨두었다. 치나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새나왔다.


“이 새끼······!”


카카환은 짧은 찰나에 준비를 단단히 했다. 역으로 치나리를 구덩이에 처박아 주려고, 두 손을 거미처럼 뻗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크억!”


바닥과 하늘이 뒤바뀌고, 곧 양옆이 새까매졌다. 볼썽사납게 구덩이 속으로 파묻혔다. 에퉤퉤, 카카환이 입으로까지 들어간 흙을 마구 뱉었다.


끼이이이······.


그때, 그들의 머리 위로 굉장히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어?”


부딪힌 허리를 잡으며 일어나던 시벨롬의 눈이 튀어나왔다. 하늘이 닫히면서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잠깐!”


닉네임이 급하게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악! 하고 닫힌 귀주 문에 손을 찧었을 뿐이었다.


달칵. 뒤주 문이 밖에서 제대로 잠겼다.


빛 한 점도 없는 어두컴컴한 암흑이 찾아왔다.


“이 미친 새끼! 문 열어! 안 열어? 이거 범죄야 시발놈아!!”


카카환이 천장을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시벨롬과 닉네임도 가세했다. 뒤주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그러나 농장의 일부인 뒤주는, 그 주인이 아니면 절대로 문을 열 수 없다.


치나리는 덜컹거리는 뒤주 위에 무상한 얼굴로 걸터앉았다. 뒤주가 마구잡이로 흔들려도, 어떤 욕설이 들려도 개무시하면서.


“하하, 하······.”


우셩이 얼빠진 헛웃음을 흘렸다.


하루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땀이 뻘뻘 날 때까지 뜨거운 찌개를 먹다가 얼음물을 쫙 들이켜도 이보단 시원하지 못할 거다.


“와, 존나 끔찍하겠다······. 땀내 나는 남자 셋이 갇혀서······.”


과금나빠는 입을 틀어막고 뒤주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또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지는 않았다.


“호우!”

“나이스!”


우셩과 누가 먼저일세라 주먹을 꽉 움켜쥐었을 따름이다.


둘은 하이파이브를 하고 크흑! 감동하며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이내 감탄하는 시선으로 농장 주인을 내려다봤다.


“끝났는데요?”

“와 진짜 사이다 원샷한 거 같다······.


번갈아 떠드는 두 남자의 마음이 기대로 부풀었다.


몇 날 며칠 가둬두면, 이 새끼들이 싹싹 비는 꼴도 볼 수 있겠지. 통쾌함은 곧, 이 작전을 성공시킨 치나리 님에 대한 존경심으로 발전했다. 둘이 동시에 말했다.


“형님.”

“형님······.”


게임 잘하는 놈은 다 형이다. 치나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벨 5인데 어떻게 그리 힘이 세시죠? 존경합니다.”

“비결이 뭘까? 음······.”


한참 곰곰이 생각하던 우셩이 갑자기 주먹을 탁 친다.


“알았다!!”


뭘 알아. 본계의 정체를······? 치나리가 눈을 가늘게 뜬 그대로 우셩을 주시하는데-.


“혹시 전생에 헌터였어요?”


전혀 헛다리였다.


요즘 세상은 피지컬 쩌는 사람에게 ‘운동선수세요?’가 아니라 ‘헌터세요?’라고 묻게 된 세상. 치나리는 마음을 놓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물어볼 필요도 없나?”


과금나빠는 초면인 주제에 친근하게 물었다.


“이대로 협박해서 훔친 물건 돌려주게 할 거죠? 엑스칼리버는 안 알려주고.”


치나리가 입을 열었다.


“아니요?”


뒤이어 말하기를.


“그냥 평생 가둬둘 건데요. 아, 흙도 덮어야지.”


그 말은 뒤주 안까지도 똑똑히 들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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