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내 펜션을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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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RAN노란
작품등록일 :
2024.08.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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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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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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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DUMMY

단순한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저것이 매점 안에 있는 물건들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

자연히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얼른 몸을 날리려는 찰나.


-차후! 차후우웃!

“······.”

-차후우웃!


손가락만 한 게 뛰어봐야 얼마나 빠르겠는가.

나름 열심히 뛰고 있긴 한데, 저게 매점 밖으로 나가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길을 가로막고 낚아챈 후 엄하게 정체를 캐묻고 싶었지만.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일단 거리를 두고 쫓아가기로 했다.

절대로 저게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신중한 거다.


‘독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다시 말하지만,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건강을 염려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뿐이다.

아무튼 마침내 조그만 털 인형 같은 그것이 매점의 출입구에 도달했다.


말했듯 매점은 컨테이너 가건물이다.

출입구와 지면이 약간 붕 떨어져 있었다.


-차, 차후우······.


손가락만 한 저것에게는 조금 버거운 높이.

어떻게 내려가려나 싶어 가만히 지켜보니, 잠시 망설이던 그것은 이내 큰 결심을 했다.


-차후우!!


펄쩍 점프한 그것이 지면에 착지했다.

이윽고 매점 밖으로 나간 그것이 다시금 쪼르르 달리기 시작하고.

이내 도착한 곳은 관리인실 뒤편이었다.

매점 바로 옆 말이다.


-차후욱! 차후우욱!


딴에는 열심히 뛰어왔는지, 무릎을 짚고 연신 숨을 할딱대던 그것이 허리를 펴더니.


-차후욱······. 무사히 따돌린 차후!


진짜 뭐지? 말까지 하네.

근데 따돌리긴 뭘 따돌렸다는 말인가.

바로 뒤에 있는데.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마음에 뒤에서 잠자코 그것을 관찰하고 있으려니,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을 하던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

“·········.”


정체불명의 그것이 갑자기 냅다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차흐흑! 살려 주시는 차후!


내가 뭘 했다고 이러는 걸까.


“안 죽여. 울지 말고 진정해.”

-저, 정말이신 차후?

“그러엄.”


정체불명의 생물을 조심스레 살펴봤다.

헌터 길드에서 일한 게 10년이다.

몬스터의 정보는 꿰고 있다.

이 정도로 지성이 있는데, 일단 도망치고, 죽은 척을 하고, 목숨까지 구걸한다?

보통은, 자기 보호 수단이 없다는 뜻이다.


‘독은 없겠지. 아마도.’


조심스레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정체불명의 생물은 움찔하면서 작게 보이려는 듯이 몸을 움츠렸다.


-차, 차후는 맛없는 차후······.

“안 먹어. 근데 차후? 네 이름이니?”

-이름은 아닌 차후······. 그냥 차후인 차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무튼 차후~ 하는 울음소리를 내고, 이렇게 조그만 마스코트 같은 몬스터는······.’


헌터 길드 10년 짬밥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져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진짜 뭐지 이거? 생전 처음 보는 건데? 애초에 이런 몬스터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어.’


대화가 통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몬스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몬스터는 대부분 위험하다.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 인정의 욕구가 강하고, 던전의 험한 환경을 고려하면 그 욕구는 곧 단련으로 이어진다나.

단련한 만큼 인간에겐 위협적이고.


‘그렇다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몬스터가 안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화가 통하는 몬스터는 일단 경계부터 하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내 손바닥 위에서 오들오들 떨며 이쪽을 올려다보는 ‘차후’는 내가 이대로 홀랑 잡아먹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아버지가 남긴 수첩. 그걸 감안하면 아버지는 이 차후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런 아버지가 어제의 통화에서 ‘절대로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었다.

내 판단도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은 위험하지 않다고 가정하고.’


위험 유무는 차치하고, 의문이 많다.

손바닥 위에 올린 차후를 얼굴과 가까이 하면서 말을 이었다.


“뭐 좀 묻자. 저 매점, 지금까지 네가 관리하고 있었던 거니?”


그 물음에 차후가 허리를 조금 폈다.

갑자기 태도가 당당해졌다.


-그런 차후! 차후가 관리하는 차후!


어쩐지 엄청 깔끔하더라.

아버지가 저렇게 깔끔하게 관리하실 리가 없지.


“그럼 안에 있는 음식들은? 혹시 그것들 전부 네가 만든 거니?”


포장지에 차후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추측.

그 물음에 차후가 가슴을 쭉 폈다.

조금 전보다 더욱 당당해진 태도였다.


-차후후훗! 그런 차후! 차후가 매점에서 음식들을 잔뜩 만들고 있는 차후!

“그렇구나. 대단하네.”


대단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아까 마셨던 음료의 맛은, 시장에 나온다면 순식간에 음료 시장을 석권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만든 건지는 상당히 의문이지만, 나중에 그 의문을 풀 기회가 있겠지.


‘아까 보니까 과자에, 라면 같은 것들도 있던데, 그럼 그것들도 전부 그런 엄청난 맛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군침이 싹 돌았다.

시내 편의점까지 나가서 컵라면, 삼각김밥 등을 사 와서 쓸쓸하게 먹는다?

그것보단, 놀라운 맛을 예상할 수 있는 ‘차후표’ 음식을 먹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그리고 흘린 듯 중얼거린 ‘대단하다’는 말에 차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단한 차후? 차후는 대단한 차후?

“응? 그럼. 대단하지.”


그런 걸 만드는데 어찌 대단하지 않을까.

하지만 알쏭달쏭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후가 중얼거렸다.


-큰 주인님은 그런 말 하신 적 없는 차후.


큰 주인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네 걸 먹고 대단하단 말이 없으셨어?”

-큰 주인님은 제가 만든 걸 안 드신 차후.

“뭐? 안 드셨다고?”

-그런 차후. 큰 주인님께선 텃밭에서 자란 상추 같은 것만 잔뜩 드신 차후. 제가 만든 건 몸에 무슨 탁기? 같은 게 쌓인다고 드시지 않은 차후.


의기소침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차후.

그걸 보니 아버지가 자연인으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셨구나 싶다.


‘적어도 내가 어릴 땐 아버지도 라면도 드시고, 커피도 마시고 그러셨던 것 같은데.’


차후가 만든 건 인스턴트 식품 형태.

결국 ‘극단적인 자연인’이 된 지금의 아버지라면 입에 대시지 않을 만도 했다.


‘그냥 한 번쯤 먹어줄 만도 한데, 아버지가 주변에 조금 무심한 성향도 있으시니.’


아까 차후도 가건물과 땅의 단차 때문에 회심의 점프를 하지 않던가.

주인님이라고 부를 정도면, 다니기 쉽게 경사로 하나쯤은 만들어줄 만도 한데 말이다.


물론 아버지가 정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사소한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것뿐이지.

그 증거로 수첩에 매점에서 물건을 판 날엔 음식을 하나 열어두고 나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게 차후 먹으라고 그런 거였구나.’


그 사실을 깨닫자 묘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서 이쪽의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 차후를 발견했다.


“왜 그러니?”

-차후······. 젊은 주인님은 차후를 싫어하는 차후?


젊은 주인님이라.

아버지가 큰 주인님이니 나를 젊은 주인님이라 부르는 거겠지.

아무튼.


“아냐, 내가 너를 왜 싫어해.”

-저, 정말이신 차후?

“그러어엄!”


아까처럼 맛있는 음식들을 만드는데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위험하지도 않고.


-그럼 아까 왜 차후를 공격하신 차후······?

“어?”


내가? 차후를 공격했어?

언제 그랬지?


‘아, 설마······.’


아까 매점 문을 힘껏 열었을 때 박스가 날아갔었는데, 그때 차후는 박스 밑에 깔려 있었다.

정황상 박스 안에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차후 입장에선, 내가 갑자기 매점에 들어와선 박스를 냅다 던지며 행패를 부린 느낌일 거고.


‘그래서 일단 도망부터 친 거구나.’


그 사실을 깨닫고 얼른 차후의 조그만 머리를 손가락으로 슥슥 쓰다듬었다.

엄청 부드럽다.

쓰다듬는 맛이 훌륭하다.


“아니, 오해야. 오해. 내가 차후를 왜 공격해? 아까 그건 바람 때문에 박스가 날아간 거야.”

-······정말이신 차후?

“그러엄!”

-정말, 정말 차후를 싫어하시지 않는 차후?

“하하! 그렇다니까!”


나의 확언이 끝나자마자 손바닥 위의 차후는 허리와 가슴을 쭉 펴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차후후후훗! 역시 그런 거였던 차후! 젊은 주인님 차후가 차후를 싫어할 리가 없었던 차후!!

“하하, 그래.”

-차훗! 차후후훗! 하기야 이 보들보들한 털을 가진 차후가 싫을 차후가 어디 있는 차후!

“하하······. 그래.”

-차후후훗! 역시 차후······.

“그만, 거기까지.”

-알겠는 차후.


차후는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무튼 차후라······.’


아무래도 몬스터인 모양이다.

그것도 지성을 가진.

그런 것을 펜션에 계속 둬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있긴 했지만.


‘뭐, 요즘 몬스터를 기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잘 다루면 쓸 구석이 많으니.’


예를 들면 슬라임 같은 몬스터는 요즘 청소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 같은 것도 몽땅 소화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기에, 대부분의 청소 업체들은 슬라임을 적극 이용하는 추세다.


‘조만간 가정에도 개량종이 보급될 거라던데.’


그렇듯 지금은 ‘안전한 몬스터’의 경우엔 인간과 공존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다.

어쩌면 일방적인 착취일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그런 시대다.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차후도 잘 부탁드리는 차후!


그나저나 매점을 둘러보고, 뭘 먹어볼까 했던 것이 어쩌다가 ‘차후와의 단결’까지 흘러왔을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좋아, 그럼 뭘 좀 먹어볼까.”

-차후?

“네가 만든 음식 말이야.”


그 말에 차후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음껏 드시는 차후!!

“하하, 그래.”

-근데 돈은 꼭 내셔야 하는 차후.


나도 돈 내야 하는구나.


* * *


평상에 앉아 멍하니 사색에 잠겨있던 와중.


부우웅-


맞춰뒀던 3분 알람이 울렸다.


“오, 다 익었구나.”


얼른 사색에서 빠져나와 컵라면을 들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살살 흔드니,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면발이 춤을 춘다.

매점에 먹을 게 쌓여 있으니 편의점에 가질 않아서 삼각김밥은 없지만.


‘그래도 차후가 만든 컵라면. 삼각김밥이 없는 것쯤은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겠지.’


게다가 아까 마셨던 차후표 음료도 함께니, 오늘의 아침 식사는 만족도가 높으리라.


“그럼 잘 먹을게.”

-맛있게 드시는 차후!


차후는 내가 컵라면을 직접 먹는 모습을 보고 싶은지 부득불 평상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정좌(正坐)까지 하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부담되네.’


괜한 어색함을 느끼면서 면발을 후후 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아, 참고로 나는 ‘면치기’라는 행위를 싫어한다.

후루루룩 거리는 소리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조용하게 이로 끊어 먹는 걸 선호한다.


물론 면치기를 하는 다른 사람더러 ‘거 좀 조용히 하고 먹읍시다!’ 하고 꾸짖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조용히 먹는 것을 선호한다.

아니, 선호했었다.


“후루루루루룩!!”

-차후후훗!!


이로 면발을 끊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다.

면치기를 안 하던 내가 저절로 하게 될 정도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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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설화 씨와 밤 산책을 +5 24.09.13 733 29 12쪽
13 사장님, 주무세요? +6 24.09.12 758 32 15쪽
12 일정은 겹치면 안돼요 +4 24.09.11 795 3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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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래는 오랜만에 숨을 들이마셨다 +7 24.09.09 894 3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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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물개가 세 마리 +5 24.09.06 933 34 12쪽
6 첫 손님 +5 24.09.05 916 30 12쪽
5 어서오세요 +3 24.09.04 934 31 14쪽
4 앞으로 잘 부탁해 +4 24.09.03 1,021 31 14쪽
»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4 24.09.02 1,112 30 12쪽
2 매점에 뭐가 있어요 +6 24.09.01 1,291 38 13쪽
1 송화 펜션 +10 24.08.31 1,566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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