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내 펜션을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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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HRAN노란
작품등록일 :
2024.08.3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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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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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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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씨와 밤 산책을

DUMMY

느닷없는 설화 씨의 목소리에 흠칫하면서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뇨, 아뇨.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얼른 문을 열어주니 설화 씨는 관리인실 안을 슬며시 훑어보더니 작게 웃었다.


“뭐예요, 이런 곳에서 혼자 자요?”

“이런 곳이라뇨. 그거 무슨 뜻입니까?”

“앗! 말실수.”


장난스레 입을 막는 설화 씨에게 피식 웃었다.

하기야 펜션 주인 대부분이 따로 집을 두고 출퇴근 형식으로 펜션을 관리한다.

나야 서울의 전셋집을 처분하고 급히 여기로 온 상황이라 따로 집이 없는 것뿐이다.


그리고 굳이 ‘대부분’이라고 말한 이유는, 아버지는 이 관리인실을 집으로 삼고 여기서 사신 듯하기에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으니.


‘만약 내가 여기서 계속 산다고 하면 따로 지낼 집을 알아봐야 할 텐데, 아직은 확신이 안 서니.’


아직 여기 온 지 한 주도 지나지 않았다.

쉬면서 좀 더 생각해봐도 되겠지.


‘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가끔씩 손님 없을 때 객실에서 자도 되고. 거기는 이불에, 침대에 다 제대로 갖춰져 있으니.’


물론 청소하는 건 차후들의 몫이고, 그것도 다 수고니까 자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아무튼 간에.


“그보다 무슨 일이세요? 아, 매점 열어드려요?”


얼른 책상 서랍에서 매점 열쇠를 꺼내자 설화 씨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아직 소화도 덜 됐어요. 배 터질 것 같네.”

“응? 그럼요?”


이 오밤중에 뭐 하러 찾아왔지.

객실에 문제라도 생겼나.


배가 터질 것 같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슬림하고 탄탄한 배를 통통 두드린 그녀가 말했다.


“소화나 시킬 겸 산책이라도 하고 싶은데, 혼자 야밤에 산책로 걷기는 좀 무섭네요? 어디 누구 같이 가줄 사람 없을까요~?”


질문 형태지만 의미는 뻔했다.


‘그런데 대체 왜 나를?’


어이가 없구만!

내가 그렇게 쉬워 보이나!


“가시죠. 저도 소화 좀 시키고 자야겠네요.”

“아하하하! 고마워요, 사장님~.”


설화 씨의 오랜 팬이다.

이런 기회를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특급 팬 미팅이 아닌가.

다만 우려되는 점은 있었다.


“근데 주리 씨나 고 실장님은요? 그분들과 같이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혹시 알게 되면 괜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그 물음에 설화 씨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문제는 무슨. 보는 사람들도 없는데 뭐 어때요? 아무튼 주리는 자고요. 고 실장님은······.”


설화 씨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냥 같이 가기 싫네요. 같이 가면 계속 은근슬쩍 일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고 해서. 아니, 운전할 때도 계속 일 이야기만 하는 건 병 아니에요? 일이 그렇게 좋나?”


고 실장님, 조금 워커홀릭 같긴 했지.

본인 업무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자기 관리도 충실하게 하는 성격이니까, 은연중에 다른 사람들도 자기 같을 거라고 여기는 건 아닐는지.

설화 씨가 말을 이었다.


“그럼 사장님, 가실 거예요?”

“가야죠. 반드시 가야죠.”


잠시만요, 하고 관리인실로 도로 들어가 컨트롤 박스를 열어 산책로 경로의 불을 켜고.

밖으로 나가 설화 씨에게 다가갔다.


“낮에 산책로 한번 가보셨죠?”

“네. 좋던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좀 춥거든요.”


슬슬 가을이고, 밤의 산은 낮과 전혀 다르다.

설화 씨도, 나도 술이 약간 올라서 몸이 조금 달아있기는 하지만.

산책하다가 술이 깨면 다시 추워지겠지.


“받으세요. 이거 두르시면 좀 나을 거예요.”

“오, 담요.”


작게 웃은 그녀가 담요를 받아들고 얼른 어깨에 두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조금 추우려나, 하긴 했는데.”

“뭘요. 그럼 가시죠.”


우리 펜션의 산책로는 정문에서 나가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데, 팻말도 크게 있고 ‘송화 산책길’이라 큼직큼직 적혀 있다.

주혁 씨도, 설화 씨도 첫 방문에 곧장 산책로를 찾아낸 걸 보면 가시성 하나는 기가 막힌 모양이다.


‘아버지, 고생하셨네.’


아버지의 노고에 내심 가슴이 따스해지는 찰나 저 멀리서 ‘사람 썼어~’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긴, 요즘 이런 거 전부 사람 쓰지.


아무튼 달밤에, 산책로의 옅은 불빛을 받으면서 느긋하게 산책을 하던 와중.

옆에서 조용히 걷던 설화 씨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뭐 좀 물어보고 싶은데요.”

“아, 네. 뭔데요?”

“제 오랜 팬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죠.”

“근데 제가 만약에.”


돌연 설화 씨는 목이 탁 막힌 듯 말문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작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제가 배우 접고 은퇴하면, 어떨 것 같아요?”

“은퇴요?”

“네. 배우 생활을 아예 접고 그냥 일반인으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어······. 아예 접는다고요?”


설화 씨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예시. 예시요. 만약 그러면 어떨까~ 물어보는 것뿐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고요.”

“알겠어요.”


잠시 생각해봤다.

연예인 중에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아예 연예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거나,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 좌절하고 그만둔다거나 하는.

그런 경우가 제법 많긴 하지만.


‘설화 씨처럼 크게 성공한 경우라면, 굳이 못 박는 것처럼 은퇴하는 경우는 많이 없지.’


어쩌면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의 숙명일지도.

아니, 연예인이나 유명인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업’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바닥을 떠났는데 나중에 그 일과 관계가 생기게 되면 묘하게 피가 끓는, 그런 느낌?’


특정 직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일을 그만뒀음에도 현재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묘하게 과시하면서 아는 척하는 것이 그 일례다.


그게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지.

몸에 익은 버릇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설화 씨는 오랜 기간 배우로 살았지.’


즉 그녀에게는 배우로서의 삶이 맞춤 정장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울장애’를 겪었다.

아무리 맞춤 정장이라도, 정장이라는 옷 자체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

설화 씨가 등을 찰싹 치며 웃었다.


“아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니까요? 그냥 딱 장설화가 배우 그만둔다! 그럼 무슨 생각이 들어요?”

“예? 어, 음. 아쉽겠죠.”

“아쉽다? 또요?”


진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근데 돈 벌만큼 벌었으니까, 이야~. 앞으로 참 인생 신나게 살겠구나. 부럽다, 부러워. 정도요?”


그 말에 설화 씨가 빵 터졌다.

깔깔깔 웃는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눈물까지 흘렸는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 설화 씨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건 확실하죠. 맞아요. 저 돈 많아요. 다 쓰고 죽는 게 힘들 정도일걸요?”

“······부럽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지네.”


한참 웃던 그녀가 말했다.


“사실, 배우로 사는 게 싫지는 않아요.”

“그래요?”

“뭐, 좀 힘들긴 해도······.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돈도 벌었고 성공도 했으니까요.”


할 말을 고르듯.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해볼래요. 좀 힘들긴 해도, 아직은 더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 말에 웃으며 답했다.


“얼마나 더 버실려고요?”

“아하하하! 많이, 더 많이 벌어야죠.”


불빛 아래에서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웃는 그녀의 미소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밝았다.

영화, 드라마, 예능, 광고, 그 어디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그녀의 미소는 빛나고 있었다.


“그래야 나중에 일 그만둬도 내 남자 하나는 먹여 살리죠. 같이 내 돈 펑펑 쓰면서 평생 일 안 하고 놀고먹고.”


그 말에 절로 눈이 부릅떠졌다.


“사귀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토록 충격적인 일이!

설화 씨가 박수까지 치면서 웃었다.


“아하하학! 아직은 아니고요!”

“어우, 깜짝이야.”


뭐, 만약에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한테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설화 씨가 아이돌도 아니고, 연애나 결혼을 한다고 엄청나게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가십거리로 한동안은 들썩거리겠지. 그러면 기프트박스 엔터도 골치 좀 썩일 테고.’


근데 누가 그런 행운아가 될까.


‘그저······. 부럽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그리 길지 않았던 산책로는 금세 끝났다.

한 바퀴 도는 구조라서, 다시금 보이는 펜션 정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아무튼 그럼 슬슬 주무시죠. 날도 추운데.”

“네~. 여기 담요 반납할게요~. 그럼 사장님, 좋은 밤 되세요.”

“네, 설화 씨도 좋은 밤 되세요.”


담요를 돌려준 설화 씨가 자기 객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후, 관리인실로 들어왔다.

오늘 밤도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 * *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자연스럽게 눈이 번쩍 떠지고, 힘껏 기지개를 켜면서 간이침대에서 일어났다.


“으으으, 하.”


우리 펜션은 늘 힘세고 강한 아침을 제공한다.


‘못 믿겠어요? 그럼 오십시오. 송화 펜션.’


개운하게 일어나긴 했으나, 잠에서 약간 덜 깨기는 했기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실없는 생각을 지우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어디 보자, 그럼 오늘 할 일.’


설화 씨 일행이 퇴실하기를 기다렸다가, 시내로 가서 예정했던 물품들을 사오는 것.

매트리스, 세탁기 그리고 매점의 차후가 쉽게 들락거릴 수 있도록 경사로를 깔아주기.


‘겸사겸사 차후들 이름도 좀 지어주고.’


오늘 일정을 체크하면서 세면도구 등을 챙겨 관리인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공용 세면장으로 향하던 와중.

이미 씻고 나온 모양인지 고 실장이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탈탈 털면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도 꽤 일찍 일어났는데 한 술 더 뜨는 걸 보아하니 자기 관리를 지독히도 잘 하는 모양이다.


“실장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 사장님.”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실장님이라고 하니까 조금 어색하네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정석 씨?”


그가 킬킬 웃었다.


“그것도 좀 어색하긴 한데, 실장님보단 낫네요. 요즘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그렇군요.”


방금 그 이야기로 깨달은 것은, 자기 관리를 잘하는 정석 씨도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애인이라면 이름으로 불러줬을 테니.


아무튼 칫솔에 치약을 쭉 짜면서 말했다.


“퇴실은 11시니까 천천히 쉬다 가시면 됩니다. 아침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술 먹은 다음날은 라면이죠.”

“라면.”


다시금 나의 ‘영업혼’이 되살아났다.

마트에서 라면을 사온 게 있긴 하지만, 차후표 라면이 훨씬 맛있을 테니.


“매점에서 몇 개 꺼내놓을까요?”


정석 씨가 빙그레 웃었다.


“서비스죠?”

“······무무물론이죠. 객실 전부를 빌렸는데.”

“하하하! 농담입니다. 안 그래도 어제 설화 씨가 컵라면 드시면서 이거 다 서비스로 주시면 사장님은 흙 퍼먹고 사냐면서 뭐라 하셨잖아요.”


술자리 도중에 그런 일이 있긴 했었지.


“받을 건 받으셔야죠. 아무튼 그럼 봉지 라면으로 몇 개 정도 부탁드립니다. 아마 한······.”


정석 씨가 손가락을 꼽았다.


“한 여섯 개? 정도면 되겠네요.”


사람이 설화 씨, 주리 씨, 정석 씨 셋인데 뭐 그렇게 많이 먹는가 하고 생각하던 도중.

정석 씨가 말했다.


“사장님도 같이 드시죠. 앞으로 신세 자주 지게 될 것 같으니, 딱히 남도 아니고요. 어차피 사장님도 식사하셔야 하잖아요.”

“뭐, 그렇죠. 그럼 알겠습니다.”

“예. 그럼 저는 설화 씨랑 주리 씨 깨우러 이만.”


깨우러 간다고?

저 인간, 어제 생각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리고 양치질하던 도중.

예상했던 것처럼, 정석 씨가 여자들 객실에서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뭔 벌써!’라는 고함에 얼른 도망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다.’


내심 웃으며 도로 양치질을 하던 도중.


‘응?’


어쩐지 어제는 안 보이던 큼직한 노란색 고양이 한 마리, 송화 어르신의 고양이가 이쪽으로 터덜터덜 다가오고 있는데.

녀석은 웬 편지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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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 씨와 밤 산책을 +5 24.09.13 734 29 12쪽
13 사장님, 주무세요? +6 24.09.12 759 32 15쪽
12 일정은 겹치면 안돼요 +4 24.09.11 795 38 14쪽
11 장설화가 알을 깨고 나왔다 +7 24.09.10 865 37 14쪽
10 고래는 오랜만에 숨을 들이마셨다 +7 24.09.09 894 35 14쪽
9 고래는 숨을 쉬고 싶다 +4 24.09.08 882 37 14쪽
8 물개가 고래를 데리고 왔다 +4 24.09.07 908 36 13쪽
7 물개가 세 마리 +5 24.09.06 933 34 12쪽
6 첫 손님 +5 24.09.05 916 30 12쪽
5 어서오세요 +3 24.09.04 934 31 14쪽
4 앞으로 잘 부탁해 +4 24.09.03 1,022 31 14쪽
3 안 하던 짓을 하게 되네 +4 24.09.02 1,112 30 12쪽
2 매점에 뭐가 있어요 +6 24.09.01 1,293 38 13쪽
1 송화 펜션 +10 24.08.31 1,567 4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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