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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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휘(消諱)
작품등록일 :
2024.08.3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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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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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DUMMY

「끄아악!」


「우욱!」


그 도끼질에 주변을 둘러싼 무법자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진다.

물론 그들 스스로 나자빠지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의 손으로, 그 손에 든 무기로, 끈적하고 검붉은 피를 묻히며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도 아직 수가 많다.

그 어떤 적을 만났을 때보다도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도끼를 손에서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놓지 않을 것이다.

이 싸움이 전투라는 이름이 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창을 가지고 와! 창으로 쑤셔버려!」


남자를 둘러싸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법자들은, 그제야 무언가 생각났는지 몇 놈을 자신들의 본거지로 내려보냈다.

그는 적을 상대하느라 본거지를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무법자들의 본거지는 땅 위에 있지 않다.


「가지고 왔다! 이놈들아, 이걸로 공격해!」


남자의 눈이 샅샅이 숲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동안, 무법자들은 부랴부랴 가져온 무기들을 들고 다시 공격할 준비를 한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무기 중에는 날이 시퍼렇게 선 장창이 여럿 있었다.

길고 날카로운 날이 달린 위협적인 무기.

용사였던 자는 그 창을 보며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공격해! 사정없이 찔러 버려!」


그리고 무법자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장창을 들고 그를 향해 찔러온다.

자신들의 피가 튀지 않으면서도 그를 괴롭힐 수 있는 수단이 그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는 거겠지.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용사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제대로 힘을 준 무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부질없는 짓을 하는군.」


하지만 무법자의 앞에 선 자는 그 당연한 진실을 온몸으로 부정한다.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낸다.

무너진 하체로 엉성하게 뻗은 무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날 끝에 힘이 없는데 사람을 찌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무기력한 창질에 당할 그가 아니다.

이런 무의미한 공격은 몇 번이나 받아 보았다.


「잘 가게.」


그러니 공격하러 앞으로 나선 자들의 틈을 노리고 도끼로 찍어누르는 거겠지.

남을 죽이려고 했다면 자신도 죽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 영원불멸의 진리는 남자를 여기까지 오게 한 밑거름 중 하나였다.


「커억...!」


「으억...」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 또한 남자가 몇 번이고 마주한 진실이었다.

형편없는 말을 내뱉는 입을 억지로 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높은 곳에 앉은 자도 몇 번이고 닫게 했을 테니까.

그러니 죄책감은 없다.

그런 감정이 있다고 해도 사라졌다.

언제까지 그런 유약한 감성에 빠져 허우적댈 수는 없다.


「말이 없군.」


다만 남자는 쓰러지는 무법자들에게 불만이 있다.

그들이 허무하게 죽기 때문이 아니다.

남자가 볼일이 있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형편없는 끄나풀이 아닌 두목을 원한다.

그들보다 더욱 형편없고 지독한 자를 원한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며 근원일 자를 원한다.


「난감하군.」


그러나 그는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에서 또 수많은 무법자가 나타나 그에게 무기를 겨눈다.

두목에게로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다.


「그러나 이젠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돌아갈 길에는 이미 수많은 적이 그를 죽이기 위해 도사리고 있다.

날카로운 독니를 가진 허름한 색의 뱀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그리고 남자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다.

다행인 점은, 남자 또한 이제 그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땅 속에 있는 토굴에서부터 왔다.

수많은 날을 지새워 파내려갔을 깊고 어두운 땅에서부터 왔다.

그래, 마치 뱀처럼 왔다.


「이놈들아, 둘러싸지만 말고 공격하라고!」


「하지만 이 새끼가 너무 세다고요!」


뱀의 머리다.

방금 들려온 험악한 대화 속에 머리가 있다.

어딘가에는 있다.

그 녀석을 잡아야 희망이 있다.

남자의 발은 이 순간 더 빨라졌다.

빨라진 정도가 아니었다.


「뭐, 뭐야?!」


날아올랐다.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하늘에 잠시 비월했다.

크리스틴과 함께 성벽을 넘었던 그 순간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다시 한 번 날아오르겠다는 듯이 비상했다.


「무, 무슨...?!」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다.

남자조차도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인간의 진리고 공리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날고 있었다.

자유로운 새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두목은 어디에 있지?」


그리고 다음 순간, 한 줄기 희망이 담긴 검은 도끼와 함께 남자가 땅으로 내려온다.

남자의 무게와 땅으로 처박히는 도끼의 무게가 아무 장애물 없이 적에게 내리꽂힌다.

그 무거움과 날카로움에 무법자는 무기를 놓치고 무릎을 꿇는다.

그를 구하기 위해 주변의 졸개들이 달려왔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남자는 그 녀석들도 몇 번의 도끼질로 처리하고 다시 묻지 않겠다는 듯이 도끼를 머리에 가져다 댔다.

그 악의에 힘 없는 자는 입을 뻥긋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겠다는 듯이 뻥긋거렸다.

하지만 남자의 운명은 그리 만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컥!」


날카로운 창이 날아와 적의 등판에 꽂힌다.

왜 그의 희망을 빼앗아 간다는 말인가.

대체 누가 운명과 손을 잡고 남자를 막아선단 말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쉽게 나왔다.


「물러서라, 허약한 놈들아!」


숲이 파르르 떤다.

그 울림은 남자가 두 발을 땅에 대는 것조차 어렵게 한다.

울림이 조금씩 가까워지며 한 형체가 드러난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남자보다도 크고 거대한 몽둥이다.

남자는 그 무기의 이름을 알고 있다.


「마카후이틀이로군.」


「오, 이것을 아나?」


「알다마다.」


한 번 정타를 허용하면, 맞은 부위는 평생 쓸 수 없다고 알려진 무기.

희생자의 몸에서 심장을 꺼내기 위해 사용되는 잔인한 무기.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남자는 어째선지 그 무기의 이름을 알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입에 담는다.


「이상한 놈이군!」


남자의 앞에 선 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자가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떼지 못한다.

그 반응은 작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위화감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이상하리만치 날카로운 감각은 북풍처럼 남자의 손끝을 찔러 온다.

그러나 그 위화감은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가슴 속 한 켠을 묵묵히 찔러올 뿐.

남자는 그 통증이 너무나 시려웠는지 도끼로 바람을 한 번 그어내었다.


「정말로 이상한 놈이야!」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였을까.

남자에게로 거대한 적이 달려온다.

죽음의 화신이 날카로운 죽음과 함께 다가온다.

도끼와 몽둥이가 부딪친다.

그와 함께 파편들이 검은 하늘의 별처럼 허공에 흩뿌려진다.

남자의 무기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적이 들고 있던 몽둥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아마 상대가 들고 있는 것이 평범한 무기였다면 그는 승리를 확신하며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터다.


「눈을 감지 않는군!」


하지만 그는 일격을 가하지 않는다.

대신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하는 적을 향해 다시 한 번 도끼질을 할 뿐이다.

그와 함께 뭉툭한 소리가 남자를 맞이한다.

전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

검고 탁한, 돌가루가 섞인 날카로운 공기가 남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린다.

남자는 그 공기를 피하지 않는다.

운명처럼 그저 받아내며 앞에 선 적을 마주할 뿐이다.


「네놈은 뭐 하는 놈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상대의 질문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답한다.

그 어떤 물음에도 답하지 않을 거라는 듯이 선다.

그런 남자를 향해 다시 한 번 몽둥이가 허공에서 춤을 추다 그에게로 직하한다.

물론 남자는 그런 공격으로 무너질 자는 아니었다.

쉽게 무너질 거였다면 여기에 서 있지도 않았다.

쉽게 꺾일 거였다면 살아있지도 않았다.


「그럴 리가 없다!」


남자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괴물은 몽둥이로 무자비한 맹공을 가하며 그를 쓰러뜨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 없는 고함일 뿐.

듣는 이 없는 발악일 뿐.

소리를 질러도 듣는 사람이 없으면 희미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 사실을 상대는 알고 있을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렇게 길길이 날뛰며 앞뒤 재지 않고 몽둥이를 휘둘러 대는 것일 터다.

곧 운명할 사람처럼 크게 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인간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있다.

남자 또한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는 듯이 살짝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상대가 선택하게 만들어야겠지.

그가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남자 또한 그것을 알기에 하늘을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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