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연재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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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상
그림/삽화
김표상
작품등록일 :
2024.09.01 11:18
최근연재일 :
2024.09.19 18:35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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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75

작성
24.09.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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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DUMMY

꼬르륵--!


뱃속에서 천둥이 울려 퍼졌다.

반사적으로 입을 쩍 벌리고 깊은 허기를 내뱉는다.


“배, 배고파······.”


허기를 느낀 지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건만, 도무지 이 미칠듯한 배고픔에는 익숙해지질 않는다.


“으으, 이 미친 또라이 작가 새끼. 이게 말이나 돼?”


어?

해골이 배가 고픈 게 말이 되냐고.

소화기관은커녕 식도도 없는 몸인데!


꼬르르륵---!


굴러다닐 기운도 없어 대짜로 뻗은 지 십분.

썰물처럼 휩쓸던 허기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난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시야에 새하얀 백골(白骨)이 잡힌다.


“거참, 더럽게 적응 안 되네.”


한숨을 내쉬며 말이 나온 김에 내 신체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뼈만 남았다 한들 구조가 인간 형태이니 몸을 움직이는 것에 방해는 없다.

아니, 슬라임으로 지냈던 짧은 시절을 회상한다면 지금 육체는 그야말로 감지덕지다.


“십 센치? 더 자란 것 같은데.”


시선이 달라졌다.

원래의 내 몸보다 키가 더 크다는 뜻이다.

뼈마디도 전보다 더 두툼하다.


시험 삼아 높이 솟은 나무에 매달렸다.

턱걸이를 하듯 상체를 들어 올리니 쑥쑥 잘도 올라간다.


‘모자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몸이지만 그래도 술에만 쩔어 살던 원래의 나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신체를 점검하니 괜한 감정이 솟았다.


이 정도라면 뭐라도 잡아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신이 말이다.


꼬르륵-!


주린 배를 부여잡고 들판을 걸었다.


「3시간 21분 후 1화 집필이 시작됩니다.」


허공에 둥실 뜬 반투명 창.

‘연재창’ 이라고 명명한 그것을 보며 남은 시간을 입속에서 굴렸다.


“3시간 뒤라.”


막상 살아남겠다, 마음먹으니 본능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엇인지 모를 힘이 육체에 충만하다.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어렴풋이 짐작한다.

작가 놈이 소설을 완성해주는 조건으로 내걸었던 ‘소원’이 바로 그것이다.


이걸 믿어? 말어?


칙칙한 현실을 살아온 내게 소원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 비현실적인 망상이다.

아니,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전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걸랑 ‘종교는 안 믿어요.’ 하고 지나쳤을 나다.

그러나 그 ‘입’은 포교를 하는 전도사도 아니고 무능력한 미치광이도 아니었다.


나를 이 세계로 불러온 미지의 무언가.

또는 모든 세상을 집필한 작가.


존재만으로 설득력을 부여하니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푸우우!”


복잡한 마음을 한숨으로 일갈했다.

단순히 생각하자.

지금 처한 상황에서 다른 길은 없다.

뭣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엎어져 있다가 벼락 찜질 당하는 일은 한 번이면 족하다.


목표를 정했으니 계획을 세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들판을 걷다 난 뚝 발걸음을 멈췄다.


“······계획?”


내가 한 생각이지만 놀랍다.

뭐?

계획을 세운다고?

목표를 정했어?

이게 근 오 년간 술만 퍼마시던 폐인이 할 법한 생각인가?


더 신기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술.

술.

술 생각이 안 든다는 거다.

누군가 코앞에 오백 잔을 들이밀며 환상의 소맥을 기깔나게 말아준대도 ‘아하하, 지방간 떄문에 금주 중이라.’라며 거절할 정도의 경지다.


“이것 참.”


생전 무기력에 퐁당 빠져있던 머릿속이 웬일인지 바삐 돌아간다. 알코올로 절어있던 뇌가 깨끗이 씻겨나간 느낌이다.

덕분인지 걷는다는 행위가 기분이 좋다.


“나쁘지 않은데?”


몸을 감싸는 묘한 쾌감을 즐기며 한참을 걸었다. 곧 들판이 끝나고 저 멀리 뺵뺵한 밀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리가 있음에도 습한 바람이 넘실거린다.

함부로 저곳에 발을 들이진 않는다.

저 초록빛 바다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보자.”


정글에서 마주치는 것 중 제일 좃 될만한 게 뭐가 있더라?

제일 처음 뇌리에 스친 건 극독을 지닌 독사나 사람을 한입에 꿀꺽 삼키는 아나콘다다.


“만나면 즉사.”


레벨을 정한다.


“늑대?”


정글에 늑대가 살던가?


“있다면 그놈도 즉사 레벨.”


참 그러고 보니 여기 판타지 소설 속이었지?


“몬스터도 분명 있을 텐데.”


임프? 고블린? 오크?

사실 그것들이 몬스터라면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해골 병사이지 않은가.


“해골 병사가 임프를 이겼던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즉사 레벨.”


정글의 끝을 데드라인으로 정하고 둥글게 탐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높은 언덕이 보인다.

거인이 모래성을 쌓아둔 것처럼 경사가 가파르다.


“끄응!”


시험 삼아 그곳을 올랐다.

정상은 생각보다 더 높고 가팔랐다.

내려간다면 뛰는 것보다 구르는 게 빠를 지경이다.

난 그곳에 자리를 잡고 저 멀리 쭉 펼쳐진 정글을 살폈다.

뭐라도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헀다.


“허!”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모습을 보인 건 토끼다.

그러나 내 머릿속 정형화된 토끼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염병, 저게 토끼야. 멧돼지야?”


대형 견에 필적하는 크기하며 몇 가닥 없는 털 사이로 내비치는 쫙쫙 갈라진 두터운 근육들.

턱을 타고 줄줄 흐르는 끈적한 침과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까지.


“맙소사. 토끼가 송곳니라니······.”


새삼 또 한 번 느꼈다.

이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

즉, 소설 속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까 꽃봉오리에서 불덩이가 피어나고 뿔 달린 말이 하늘을 날며 오우거가 피 튀기는 입시 준비로 날밤을 지새운 데도 아하! 이런 세상이구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할 말을 잃은 체 녀석을 쏘아봤다.

저것의 이름을 다시금 정정한다.

토끼는 아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그럴 수 없다.

그건 현실에 있을 수백만 애토인들에 대한 모욕이다.

저놈의 이름은······.


“꼬마들의 순수를 부수는 자.”


조악한 별명이지만 저 꼴을 보면 누구든 납득할 게 분명하다. 십이 세 미만 아동들의 환상을 깨부수기엔 저만한 것도 드물다.


줄여서 꼬자.

난 녀석의 행동을 살폈다.


팍팍팍-!


앞발로 흙을 무참히 파기 시작하던 녀석이 곧 손가락만 한 지네를 발견하곤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배고픔에 지친 나마저 군침이 돌 지경이다.


슬쩍 고개를 들어 연재 창을 바라봤다.


「1시간 2분 후 1화 집필이 시작됩니다.」


소설이 연재되기까지 앞으로 한 시간.

난 나 나름대로 이 세계의 룰을 정했다.


첫째,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 소설을 무리 없이 연재하기 위해서는 ‘코인’의 힘은 절대적이라는 것.

당연하다.

슬라임에서 그나마 나은 뼈다귀 신체를 얻은 것도 코인 덕분이다.

짐작건대 앞으로 이 소설을 완성하느냐, 마느냐의 핵심키워드는 코인일 가능성이 크다.


둘째, 모든 인상적이고도 재밌는 이벤트는 연재 중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코인은 절대적.

그리고 그런 코인은 독자님들이 쏴주신다.

즉, 내가 만든 한편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인상적이었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코인의 양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룰은 앞으로 내 모든 행동의 전반적인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마지막 셋째, 세계관을 충실히 습득할 것.

자신의 역할도 모르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누가 봐주겠는가.

끊임없이 자각해야 한다.

이곳에서 난 ‘주지한’ 이 아닌 ‘반’이라고.


“인벤토리!”


중얼거리자 허공에 또 다른 창이 불쑥 떠올랐다.

게임에서나 볼법한 인터페이스다.

공석인 수많은 칸 사이로 책 한 권이 달랑 존재한다. 그것에 손을 뻗자 마법처럼 내 손안에서 형상화하며 정보가 공개된다.


-캐릭터 북-

‘최강용사와 함께 마왕 무찌르기’ 소설 속 캐릭터들의 서사가 기록됩니다.


겉면이 가죽인 고서를 펼쳤다.

사실 이미 몇 번이고 열어봤다.

신기했으니까.

아이템이라니.

이건 못 참지.


책 안에는 ‘반’에 대한 짧은 설명이 적혀있다.

난 또 한 번 차근히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포르테 백작 가문의 장자 반 포르테, 성년식을 진행 중 마족의 습격을 받아 사망.”


반에 대략적인 서사다.

그 밑에는 현재 내 상태가 기록되어 있다.


[LV2 모자란 해골 병사]

종족: 언데드

분류: 9급 인간형

근력 1 민첩 1

전용특성:X

전용스킬:X


픽- 하고 한숨이 새어 나올 정도로 낮은 수치다.

판타지 소설이라면 으레 있을법한 특성이나 스킬도 없다.

이 수준으론 뭔가를 사냥하기는커녕 뛰다가 죽을 판국이다.

즉,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연재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그동안 데드라인으로 모습을 드러낸 동물이라곤 꼬자가 전부다.

잠깐이나마 저 녀석처럼 땅을 파 지네라도 잡아먹을까 생각을 했다.


“그건 안 되지.”


세상 어느 독자가 땅이나 파서 지네나 짭짭거리는 주인공을 원할까?

그건 주인공의 품위 문제를 떠나 ‘재미’의 영역이었다.


“좀 더 그럴듯하고 재밌는 연출을 하려면······.”


역시나 사냥감은 하나.

꼬자뿐이었다.


난 높이 솟은 언덕을 몇 번이고 오르고 다시 내려갔다.

금세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중간에 미끄러져 구른 적도 있다.

경사가 가파른 만큼 내리막도 아찔하다.

아, 또 한 번 뒈지는구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오케이. 무대는 만들었고.”


무대가 있다면 다음은 소품이다.

난 내 갈비뼈 중 가장 두툼한 녀석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흐읍-!”


따악-!


손쉽게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렇게 쉽게 된다고? 싶을 정도다.


“말도 안 되는······ 아, 소설 속이지?”


손에 들린 갈비뼈를 들고 적당한 바위로 향한다.

그리곤 열심히 갈아댄다.


슥슥-!


바위에 비벼 갈비뼈의 날을 세우고 끝은 뾰족하게 다듬었다.

곧 내 손에는 그럴듯한 단검이 생겨났다.

시험 삼아 땅에 푹푹 박아본다.

손잡이가 없어 미끄럽지만, 이 정도로 만족한다.

이걸 들고 전투를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백 미터?”


조금 더 되려나.

언덕에 올라 데드라인을 서성이는 꼬자와의 거리를 가늠한다.


토끼는 누구나 알다시피 재빠른 동물이다.

특히 저 녀석은 더더욱 그럴게 분명하다.

우람하게 발달한 두 다리가 심상치 않다.


그렇다면 접근전은 사양.


다시 주변을 탐색한다.

언덕 근처에 주먹만 한 돌멩이 몇 개가 보인다.

주섬주섬 서너 개 챙겨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리는 순간이었다.


「‘최강용사와 함께 마왕 무찌르기’ 소설에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1화 집필을 시작합니다.」


시작됐다.

연재가.



***



[모자란 해골 병사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언덕 위에 올라있다. 왼손에는 자신의 갈비뼈 한 대를, 오른손에는 돌멩이를 든 체 말이다.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함일까?]


타건음 소리가 타다닷- 하고 울려댄다.

작가 녀석의 연재에 발맞춰 난 준비해둔 대사를 읊었다.

목소리는 한없이 비장하게 내리깐다.


“··· 지독한 꿈에서 꺠어났다.”


[모자란 해골 병사가 괴로운 듯 몸을 들썩였다.]


“내 이름은 반 포르테. 포르테 백작가의 장자. 성년식을 진행 중 마물에 습격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잊혀진 기억을 꺼내든 모자란 해골 병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곳은 어디지? 난, 난······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대체 무엇이 날 언데드로 되살린 것이냐.”


괴로운 연기를 시작한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앓는 신음을 흘린다.

그런 내 행동을 작가 놈은 빠르게 받아적는다.


“그래, 알 수 있다. 내가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모자란 해골 병사가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원한, 그것이 내 몸을 다시 일으켰구나.”


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마왕! 네 놈을 결단코 용서치 않겠다!”


주인공 ‘반’의 목표의식을 충실히 챙겨준다.

조금 작위적인 맛이 있긴 하다만 내게 공개된 정보가 미약하니 이 정도 선에서 그친다.

자고로 오바는 금물이다.


“아버님, 어머님은 어찌 되셨을까? 내 동생 ‘호’ 는? 우선 포르테 백작령으로 향해야겠구나.”


앞으로 진행될 스토리를 위한 대사도 내뱉는다.


“흐음, 그러기 위해선 먼저 변해버린 이 육체에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겠구나. 익숙하지 않은 이 몸으로 그곳에 도착할 자신이 없으니.”


[모자란 해골병사는 정글 초입을 서성이는 ‘지존토끼’를 바라보았다. 그는 모르겠지만 해골병사가 그것도 ‘모자란’ 수식어가 붙은 그가 상대하기는 벅찬 상대였다.


······ 뭐? 지존토끼?

에라이, 작명 센스하고는.

연재창을 바라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고, 역시 내 예상대로 꼬자는 나보다 강한 상대였다.


“우선은 저놈을 상대로 내 실력을 시험해봐야겠구나.”


타건음 소리를 들으며 점점 꼬자와의 거리를 좁힌다. 연재 전에는 백 미터쯤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멀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긴다.


[둘의 거리가 오십 미터쯤 되었을 무렵 문득 모자란 해골병사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곤···]


“야이 개새끼야! 꼬마들의 순수를 무참히 꺠부순 네 놈의 죄를 이 포르테 백작가의 장자! 반 포르테님이 묻겠다!”


[······.]


잠시 타건음 소리가 멈췄다.

당황한 작가 놈의 얼굴이 보이는 기분이다.

거참, 괜히 고소하네.

그건 그렇고, 너 빨리 안 받아적을래?


“콱 뒈질라고! 어디 토깽이 주제에 송곳니를 달고 있어? 아, 빡돌게하네. 꼽냐? 어 꼬와?”


[··· 모자란 해골병사는 지존토끼를 향해 신랄한 욕설을 퍼부었다.]


“어때? 무섭지? 어? 토껴봐! 토끼니까 잘 토끼겠지. 으허허허!”


[······ 모자란 해골병사는 개도 안 웃을 개그를 내뱉었다. 바로 그 순간, 지존토끼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하더니 곧 모자란 해골병사를 향해 시뻘건 눈알을 부라렸다.]


“어? 그 눈깔은 뭐야, 딸기 탕후루냐? 팍씨!”


내 도발에 꼬자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맹렬히 털을 부풀린다.

명백한 살기가 바람을 타고 불어온다.

난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돌멩이를 치켜들었다.


“에라! 돌팔매 맛 좀 봐라!”


마치 이 순간 투수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한쪽 다리를 든 체 허리를 비틀었다.

그리곤 녀석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슈우우-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돌멩이.

온 힘을 실었건만 위력이 어설프다.

역시나 돌멩이는 꼬자는커녕 녀석의 근처도 못가 맥없이 땅에 떨어졌다.


그런 나를 비웃듯 타건음 소리가 경쾌하다.


[모자란 해골병사는 역시나 정말로 모자랐다. 실컷 지존토끼를 도발할 땐 언제고, 정작 녀석을 맞추지도 못한 것이다.]


어쭈?

아까 일로 당황한 자신의 모습이 창피라도 했는지 작가 놈은 연재를 통해 나를 비웃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저건 맞추려고 던진 것도 아니니까.


케륵-!


꼬자 녀석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뱉는다.

눈깔이 반쯤 돌아있다.

입에선 게거품마저 질질 흘린다.

계속 보고 있자니 꿈에 나올까 두렵다.

그러나 눈을 돌릴 순 없다.

녀석의 우람한 뒷 다리가 거의 두 배쯤 부풀고 있다.

속으로 이거, 좆된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파앙-!


녀석이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아니, 진짜 다리 힘이 얼마나 좋은지 내겐 진짜 그렇게 보였다.


파바바밧-!


맹렬히 내게 질주하는 꼬자!

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모자란 해골병사는 지존토끼가 자신을 향해 내달리자 질겁한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연재 창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한 걸음이라도 달아나야 한다.


호흡 몇 번의 짧은 시간.

벌써 등 뒤가 요란하다.

땅이 진동하고 있다.


그르르-!


얼핏 숨소리마저 들린다.

염병할! 젖먹던 힘까지 보태 달렸구만. 벌써 따라 잡혔네!


[모자란 해골병사는 정말로 모자랐다. 자신보다 빠른 상대를 등 뒤에 둔 체 언덕을 뛰기 시작한 것이다.]


텍스트가 적히는 동시에 녀석의 공격이 시작됐다.


“크윽!”


등 뒤로 아찔한 격통이 느껴진다.

아프다.

뼈가 시린 아픔이란 이런 것일까?


콰앗-!


공격은 재차 이어졌다.

또 한 번 날아든 묵직한 타격에, 달리다 그만 자빠질 뻔할 정도다.

난 고통을 참으며 끈덕지게 언덕을 뛰어올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해골임에도 땀이 흐르는 느낌이다.


케르륵-!


꼬자 녀석도 숨이 찬 듯 헐떡거린다.

고지가 눈앞이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정상을 터치했다.

그러나 쉴 틈은 없다.

오르막을 올랐으니, 이젠 내려갈 차례다.


다다다닷-!


“으아아아아!”


괴성을 내지르며 될 대로 되라는 듯 거칠게 발을 굴렀다.

넘어지지 말자.

넘어지면 안 돼!

속으로 그런 기도만 간절히 빈다.

이변이 일어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케륵-?


날 쫒아 내리막을 달렸을 꼬자 녀석이 문득 영문 모를 울음을 내뱉는다.

동시에 물로 가득 찬 가죽 북이 거칠게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이를 딱 부딪혔다.


“그거 알아?”


[모자란 해골병사는 내리막을 내달리며 턱관절을 삐거덕거렸다.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작가 놈의 말이 맞다.

난 웃었다.

재밌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재밌다.

아주 오랜만에, 그동안 잊고 살던 원초적인 즐거움이 몸을 지배한다.


난 준비했던 대사를 내뱉었다.

듣는이는 없지만 대신 읽는 이는 있다.


“토끼는 내리막을 뛰지 못하는 거?”


토끼는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긴 동물이다.

그 말인즉, 오르막은 오르기 쉬울지 몰라도 내리막에서는 쥐약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내 신들린 도발로 인해 꼬자 녀석은 눈알이 돌아있는 상태다.

머리끝까지 약이 올라있을 녀석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리가 없다.


터더덧-!


원체 큰 몸뚱이 탓인지, 내리막을 구르는 녀석에게서 무슨 타이어 소리가 난다.

녀석은 크고, 작은 바위에 이리저리 몸을 꼬라박으며 나를 앞질러 나아갔다.

그리곤,


콰악-!


거칠게 땅에 처박혔다.


끄르- 끄르-?


꼬자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가 녀석을 살폈다.

잠깐이나마 날 응시했던 새빨간 눈알이 곧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난 갈비뼈 단검을 들어 녀석의 심장 부근을 조준했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녀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 지체할 생각 따윈 없다.


푹-!


핏물이 새하얀 뼈다귀에 튄다.


푹-!


한 번 더,


푸욱-!


총 세 번을 찌르고서야 녀석의 떨림이 잦아든다.

눈에선 더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곳으로 가거라.”


갈비뼈 단검을 아무 데나 휙 던졌다.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이곳은 소설 속.

따지고 보면 방금 죽인 지존토끼 역시 한 줄의 텍스트 따위에 불과하다.


그렇게 위안해보지만······.

한 생명을 끝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


난 침묵으로 일관했다.

입을 열었다간 처량한 목소리를 낼 것만 같다.

내가 떨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 순 없다.

감춰야 한다.

작가에게서.

그리고 독자님들에게서.


토끼 한 마리 죽였다고 덜덜 떠는 주인공이 될 순 없다.


타다닷-!


타건음 소리와 함께 연재 창에 글자가 떠오른다.


「모자란 해골병사는 자신보다 강한 지존토끼와의 전투에서 눈부신 기지를 발휘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1화 집필이 종료됩니다.」

「일일 연재가 종료되어 코인상점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작성되었습니다.-

Fountainpen: 헐. 토끼 불쌍해 ㅠㅠ

Evanescent25: 잘 읽었어요.


「독자 Fountainpen 님이 100코인을 후원하셨습니다.」

「독자 Evanescent25 님이 100코인을 후원하셨습니다.」

보유 코인: 200COIN


띵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재 창이 알람으로 가득 차 주르륵 올라간다.

몸에 묻은 피를 모래로 닦아냈다.

꿀꿀한 기분을 덜어내기 위해 억지 미소를 짓는다.


“자, 그럼 쇼핑 한 번 해보실까?”


동시에 내 눈앞에 커다란 창이 떠올랐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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