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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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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표상
작품등록일 :
2024.09.01 11:18
최근연재일 :
2024.09.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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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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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인공

DUMMY

슬퍼서 술펐다.


내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것을 성실히 읽어내려간 첫 독자인 난 그렇게 요약하겠다.

결말은 새드엔딩.

복선은 없다.

아프고 힘겨웠던 과거를 보상해 줄 선물상자?

그런 반전 따윈 더더욱 없다.


그냥 술 먹다 죽었다.

뭐, 중간중간 울고, 좌절하고, 자해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것이 끝.

한숨이 픽 나오는 보잘것없는 죽음이다.


‘그 얘기 들었어? 요 앞 빌라 사는 총각 죽었대.’

‘누구?’

‘매일 술 사러 오던 총각 있잖아.’

‘아, 그으? 왜?’

‘왜긴, 밥도 안 먹고 매일 술만 퍼마시니 병이 난거지.’

‘어휴. 진짜 그놈의 술이 문제라니까? 우리 바깥양반도 얼마나 술을 달고 사는지. 징그러워 정말.’

‘우리 남편은 안 그렇고? 지금도 콩나물국 끓여주러 마트 가는 길이야.’

‘어머. 난 불고기 거리 사러 가는데. 우리 새로 생긴 마트 가볼까? 저기 사거리 뒤······.’


나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이럴 것이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기.

딱 그 정도의 감정으로 내 죽음을 대할 테지.


요컨대, 누구도 이 이야기의 뒤를 궁금해하거나 감상에 젖어 뒤늦은 여운을 고하는 사람이 없을 거란 뜻이다.


애석하게도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조차 이제 끝났구나. 라며 덤덤히 받아들이는 마당에 타인에게 무얼 바라겠는가.


‘주인공.’


이 책을 집필한 작가, 그러니까 전지전능한 신이란 게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주지한. 넌 주인공으로서 자격이 없다.”


그리곤 끝내 ‘설정폐기’

또는 원고삭제.

죽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내 인생은,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청년-1

알코올 중독자-1

히키코모리-1

또는,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알코올 중독자 히키코모리.

뭐, 등등.


비참한 엑스트라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런 내게, 이 세상은 또 한 번 강요하고 있다.


「실시간 연재되는 소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최강용사와 함께 마왕 무찌르기’ 소설 속 당신의 역할은 주인공 ‘반’입니다.」


주인공을 맡으라고.



***



난 대짜로 발라당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의미 없는 시선이 두둥실 떠가는 구름을 쫒는다.


“글에 빠졌다라······.”


머릿속을 심란하게 만드는 문장을 입속에서 굴렸다.


글에 빠진다는 말은 퍽 감상적인 수사다.

활자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밥도 거르고 잠도 줄여가며 온전히 책 속에 빠져있는 그런 생활.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이제는 언젠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온종일 판타지 소설을 붙잡고 살았던 때가 말이다.


책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멋졌다.

악에 굴복하지 않고,

시련에 맞서 싸우며,

고난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하는.


그들은 내게 책 속 ‘주인공’을 넘어 그 이상에 무언가로 다가왔다.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말이다.


나이가 많으면 형이요.

비슷한 또래면 친구다.

이쁘면 당연히 누나고.


고민이 있을 적마다 그들을 떠올리며 대화를 나누던 나다. 그렇기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속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할 거에요?’


수많은 주인공을 떠올리며.


‘비유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 하나.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차근, 차근.


‘진짜! 진짜-! 책 속에 빠졌다면요?’


·········.

역시나 대답은 없다.

그러나 깨달은 바는 명확하다.

만 하루를 멍하니 누워 수십, 수백 번 고민하고 도출해낸 바다.


“··· 난 죽지 않았고, 이곳은 소설 속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곤 눈을 떴다.


[모자란 해골 병사는 자신에게 닥쳐올 시련은 꿈도 꾸지 못한 채 그저 누워있었다.]


내 머리 위론 소설이 연재된다.



***



나에겐 심각한 병이 있다.

언제 걸렸는지 누구한테 옮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독한 전염병인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 병이 처음 발현한 것은 초등학교 삼학년쯤 됐을 무렵이다. 집에서 삼십 분 거리에 잔잔한 계곡 하나가 있었는데 친구들과 자주 놀던 곳이었다.

그날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청소하는 엄마를 졸랐다.

같이 놀러 가자고.


간단한 도시락을 꾸려 버스에 올라탄 우리 모자는 이것저것 잡담을 이어갔다,

아니, 사실 조잘거리는 건 나뿐이었다.

엄마를 데리고 내 아지트로 간다는 것이 신이나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최근 반에서 유행하는 장난감이라던가, 창밖에 저 차가 변신할 것 같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내 전염병이 엄마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체 말이다.


“그래? 우리 지한이 멋진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1차로에 길게 늘어진 차들이 하나둘 좌회전을 시작했고 제일 마지막에 있던 우리 버스는 조급하게 그들의 꼬리를 물었다.

사고는 그떄 일어났다.

버스 안에 누군가,


“어? 저기 덤프가······.”


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콰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격통이 버스를 집어삼켰다.


“꺄아악!”


일순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주변 모든 것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물론 그건 어렸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붕 떠오른 내 몸이 버스의 철제 프레임을 향해 쏘아졌다.

충격에 우그러져 삐죽하게 솟은 프레임은 그 자체만으로 창이요,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날 잡은 손이 있었다.

이를 악문 엄마의 두 손이 우악스럽게 내 옷깃을 잡아챈 것이다.


“으으윽!”


엄마의 앙다문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산발적으로 새어 나왔다.

그런데도 엄마는 날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날 자신의 품으로 꼬옥 끌어안았다.


꺠진 창문 조각이 그녀의 팔 언저리에 푹푹 박힌다. 공중에서 이리저리 처박히던 중년 아저씨가 그녀의 머리를 치고 지나간다.


그 이후 자세한 기억은 없다.

기절한 것은 아니다.

뭐랄까······.

모든 순간이 단편적으로 기억 속에 담겼달까?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는 구급차도.

들것에 실려 차로 옮겨지는 엄마의 모습도.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을 자신의 소매로 닦아주던 엄마의 얼굴도.


“네, 네 잘못이 아니야. 지한아. 엄마는 괜찮아.”


그녀의 마지막 음성까지도 말이다.


생각해보면 난 이런 비슷한 말을 꽤나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내가 겪은 죽음의 수만큼 말이다.


“아들아. 네 탓이 아니야.”


눈이 푹푹 내리고 찬 바람이 쌩썡 부는 겨울.

각혈을 토하시다 폐렴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형, 형, 지한이형. 왜 그렇게 울어. 형 탓도 아닌데.”


작가가 꿈이었던 동생 녀석 뇌 속에 종양이 생겨 시한부를 선고받았을 때도.


“오빠. 약속해. 내 수술이 잘못되더라도 절대 자책하면 안 돼. 내가 약속 장소에 일찍 나가서 이렇게 된 거니까. 응? 그러니까, 절대 오빠 탓 아니니까. 자책하면 안 돼. 알았지?”


결혼을 약속한 이 세상 단 하나 남은 내 사랑마저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도 말이다.


이 정도면 내가 그들 모두를 죽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죽음의 사신이지 않은가?

사랑하는 족족 사람이 죽어버리니 말이다.


슬퍼서 술펐다.

술퍼서 죽었다.

그게 끝이어야 하는데······.


「작가가 주인공 ‘반’에게 이야기를 진행하라고 재족합니다.」

「작가가 주인공 ‘반’에게 이야기를 진행하라고 재차 재촉합니다.」


눈을 뜨자 반투명 창이 소란이다.

귓속에선 알람이 쉬지 않고 띠링- 거린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들렸으나 무시했다.

오히려 저 소리를 ASMR 삼아 내 인생을 부유했다.

만 하루를 말이다.


나란 책의 종장을 잃고, 또 한 번 펼친다.

그렇게 수차례.

이틀 밤이 꼬박 지나는 순간이었다.


타다닷-!


하늘에서 예의 그 키보드 타건음이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소리가 거칠다.

무언가 일이 안 풀리는 것인지 타자를 두들기는 것이 아니라 후려치는 느낌이다.


「‘최강용사와 함께 마왕 무찌르기’ 1화 휴재합니다.」


··· 휴재?

머리 위 투명창에는 분명 그리 적혀있다.

1화부터 휴재라.

거참. 나만큼이나 성실한 작갈세.


뭐, 따지고 보면 내 탓이 크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쓸 것이 없다는 뜻이겠지. 미안한 마음이 개미 오줌만큼 들다가도 누가 멋대로 주인공 시키래? 하는 심술이 배로 돋는다.


그렇게 또 하루를 멍하니 생각에 잠기려던 순간,


「작가가 이야기를 진행하지 않는 주인공 ‘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립니다.」

「작가의 형벌이 시작됩니다.」

「5」

「4」

「3」

「2」

「1」


형벌?

그게 대체 무슨······.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난 턱이 빠지라 입을 쩍 벌렸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진다.

눈을 멀게 만드는 샛노란 빛줄기다.

덤으로 이 일대를 찢어발기는 엄청난 굉음이 뒤따른다.

그건 낙뢰였다.


꽈자자작-!


“으그응읅으윾윽윽!”


그것도 무려 한 번도 아니고,


콰아아앙-!


“꼬르띿뿔라를으---!”


두 번씩이나!


무시무시한 고통이 내 뼈다귀 사이를 파고든다.

절로 이가 딱딱 부딪히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후들거린다.


「작가가 주인공 ‘반’을 향해 이제야 정신 좀 차렸냐며 채근합니다.」

「작가가 생각해보니 분이 안 풀려 한 번 더 벼락을 떨궈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콰아아앙-!


「작가가 신들린 듯 중얼거립니다. 벼락! 벼락! 결코 벼락!」


“그, 그만해! 이 씨팔놈아!”


난 땅에 푹푹 내리꽂히는 벼락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전력을 다해 들판을 내달렸다.


“이 개새꺄! 나한테 뭘 바라는데! 작가면 다야? 어? 작가면 다냐고! 씹!”


「작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꽈자자작-!


“뽈레뽈레락---!”


떨어지는 낙뢰에 몸이 관통당한 난 대짜로 엎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무차별 벼락 찜질.


치이이익-


뼈다구에서 하얀 연기가 솟는다.


「작가가 성실하지 못한 주인공 ‘반’에게 실망합니다.」

「작가가 그렇기에 강제로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다짐합니다.」


<메인 퀘스트가 강제로 발동합니다.>

난이도: S

*‘반’ 의 동생 ‘호’를 찾으십시오.

*남은 시간 30일.

*실패 시 벼락 2천 발, 용암 샤워 36시간, 케르베로스의 개껌 되어보기, 오우거의 비치발리볼 속 공 되어보기 체험이 순차적으로 진행됩니다.

보상: ?


<서브 퀘스트 ‘뼈다귀도 배고파.’ 가 강제로 발동합니다.>

난이도: D-

*강제로 허기 상태가 지속됩니다.

*무언가를 사냥하고, 식사를 진행하십시오.

보상: 아이템 검색권 +3


「일일 연재가 종료되어 인벤토리 및 코인상점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보유 코인: 0COIN


난 쉴 새 없이 떠오르는 텍스트를 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벼, 벼락 이천발?

용암 샤워?

케르베로스의 개껌 되기라니······.


“이 미친 또라이 작가 새끼야!”


「작가가 고개를 홱 돌립니다.」


“이··· 이!”


기가 차고 열 받고 아프고.

뭐라고 심한 말이라도 쏟아내야 울분이 풀릴 것 같은 기분에 막 입을 떼는 순간,


「작가가 주인공 ‘반’에게 거래를 요청합니다.」


거래?

거래라고?

웃기고 있네!

사람 튀겨 죽이려던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무슨 거래?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 막 소리치려던 때였다.


반투명 창안에 갇힌 활자들에 이변이 일어났다.


“······ 무슨!”


글자들에 균열이 생기더니 서로 찢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장에서 단어로.

단어에서 글자로.

글자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잘게 쪼개진 그것들은 마치 새카만 개미 떼들처럼 투명창을 바삐 떠다닌다.

수 초 동안 그것을 관찰하던 난 적잖은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만들고 있다.

빼곡한 글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입’을


삐이이-


기분 나쁜 노이즈 소리가 들려온다.

이따금 뭉개진 말소리도 섞여 있다.

출처는 반투명 창 속 ‘입’이다.


“···이, 준다······ 그것.”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발음이 선명해진다.


“이, 소설. 준다.”

“······ 뭐?”


내가 되묻자 잠시 텀을 두고 ‘입’이 움직인다.

이번엔 소름 돋을 만큼 선명한 발음이다.


“이, 소설 완성, 시켜, 준다면.”

“······.”

“네, 소원, 들어, 줄게.”


난 침을 꿀꺽 삼키며 그것을 노려보았다.


“네가 뭐길래?”


순간 소리를 타이핑하던 활자 덩어리의 양 끝이 불쑥 솟았다.


“나는 작가. 모든 세상을 집필한.”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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