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연예기획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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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지신
작품등록일 :
2024.09.02 17:16
최근연재일 :
2024.09.0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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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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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 라이징 발견하다 (1)

DUMMY

기획 회의는 늘 지루하기만 하다.

이미 죄다 알고 있는 것들을 확인만 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니까.

그렇다고 기획 회의를 거를 수도 없다. 나는 대표니까.

“다음은 윤 빈 재계약 건입니다.”

윤 빈.

발연기 시전하던 무명시절부터 차곡차곡 스텝을 밟으며 올라왔다. 단역으로 시작해서 투명인간 수준의 조연, 비중 있는 조연, 그리고 주조연급, 서브를 거쳐 지난번에 처음 주연을 맡은 드라마가 비교적 준수한 시청률을 올렸지.

이제 차기작 시청률만 빵 터지면 되는, 소위 라이징 스타라고 해야 할까?

우리 회사에서 한솥밥 먹어가며 동고동락해 잘 견뎌 와서 여기까지 큰 게 장하긴 하다.

그러나.

“윤 빈과의 재계약은 없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지시했다.

“예?”

브리핑을 하던 직원이 아연실색해서 저도 모르게 나를 보았다. 회의실내 직원들도 모두 놀라서 내 안색만 살피고 있었다.

“윤 빈은 대형급 신인이니까 우리가 아니라도 계약하겠다는 회사들이 줄을 설 테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다들 벙 찐 표정이다.

누가 배우 걱정하는 건가? 회사 걱정하는 거지.

대표 앞이라 말들은 못하지만 그렇게들 생각하겠지.

하지만 내 선택이 어디 단 한 번이라도 틀린 적이 있었던가?

윤 빈은 차기작에서 스타 작가와 함께 대형 프로젝트에 주연으로 투입돼서, 사전제작으로 제작한 드라마 첫 방송이 나가자마자 학폭이 터질 예정이다. 그 대형 프로젝트는 급하게 대타를 구해서 재촬영하느라 작품은 엉망이 될 예정이고, 윤 빈은 연예계에서 퇴출될 것이다.

“다른 안건은 없습니까? 없으면 회의 마칠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허둥지둥 따라 일어났다.

“오늘도 잘 해 봅시다.”

나는 여전히 벙 쪄 있는 직원들을 뒤로 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


소속 연예인이 사고치는 확률 0퍼센트.

그게 우리 동행 엔터의 자랑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사고치는 놈이 하나 나오겠지 하고 경쟁 회사들은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나는 소속 연예인들의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


“대표님, 윤 빈 배우 면담 요청입니다.”

나는 인터폰 너머로 들리지 않게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겠지.

“들어오라고 해요.”

데뷔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건 누가 봐도 내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윤 빈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앉아요.”

마주 앉은 윤 빈은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막막한 표정이었지만,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와 재계약 안 하기로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쉽지만 맞습니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지,”

“유석 군은 여기서 나가면 얼마든지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을 겁니다.”

정 유석. 그게 윤 빈의 본명이다. 사석에서는 본명을 부른다.

너무나 명료한 내 대답에, 윤 빈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말이 쉽지 우리 기획사처럼 좋은 조건은 물론 좋은 환경까지 제공해 주는 기획사를 찾기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그래도 정확한 이유를 말씀해 주셔야...”

이유?

별 거 없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 동안 사고 치지 않을 연예인하고만 계약하는 게 내 방침이라고 하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윤 빈과 지금까지 함께 온 이유는 별 거 아니다.

지금까지는 사고 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젠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윤 빈을 이용만 하고 버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성공할 작품만 선택해서 윤 빈을 투입시켰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서로 윈윈 관계였다.

산산조각 나서 사라질 꿈이긴 했지만, 잠시나마 윤 빈에게 성공의 달콤함도 맛보게 해 주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학폭이라는 치명적인 과거는 윤 빈 본인이 안고 가야 할 문제니까 내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벌어놓은 수입으로 앞으로 평생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 없을 것이다. 특별히 사고 쳐서 말아먹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우리 회사의 재계약 거절이 업계에서 징크스 비슷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랑 계약이 끝나고 나서 사고가 안 터진 연예인이 없었으니까.

윤 빈도 지금 내심 그걸 두려워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왔겠지.

“이유는 없습니다. 유석 군은 지금까지 더할 나위 없이 잘 해 줬어요. 대표로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윤 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제보를 받으신 겁니까?”

나는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제보라니?”

윤 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학폭을 저지른 과거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거.

너한테 당한 피해자들이 니가 데뷔한 거 보자마자 언제 터뜨려야 가장 효과적으로 몰락하게 만들 수 있을지 타이밍만 재고 있는 중이란 걸 모를 리가 없겠지.

어쨌든 나는 공식적으로 어떤 제보도 받은 적 없다.

“그런 거 없었는데. 지금까지 뭐 숨기는 거 있었어요?”

윤 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괜찮아요. 이젠 끝났으니까. 하지만 우리한테 숨기는 게 있었다면, 다음 회사에는 숨기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건 진심을 담은 충고였다.

그러나 윤 빈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아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거라고 해야겠지.

탑 스타의 자리가 바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지금, 학폭 과거를 털어 놓는다면 윤빈하고 계약하겠다고 할 기획사는 대한민국에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숨긴 채 끝까지 가 보려고 모험을 하겠지.

터질지 안 터질지 알 수 없는 그 낮은 확률 때문에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전부 포기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재계약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내 의사를 확인한 윤 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동안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끌어 준 게 뭐 있나? 유석 군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지.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잘 해 나가길 응원하지요.”

그래, 정 유석, 항상 깍듯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지.

학창 시절에 좀 그렇게 살지 그랬니?

나도 모르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어떻게 해서든 뜨고 싶어서 온 애들이니 순둥순둥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가끔 자기도 모르게 본성이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아차 하고 넘어가면 그뿐, 상대방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뜨고 난 다음에는 본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뜨고 난 뒤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게 몇 백 배는 더 어렵다는 걸 얘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보다도 훨씬 더 조심한다. 물론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바로 개차반으로 돌변하는 애들도 많지만.

이렇게 조심하다가도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은, 마약, 술, 그리고 마약이나 술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제정신을 잃게 만드는 그 놈의 성적인 스캔들이 결부될 때다. 성이랑 마약이 결합하기라도 한다면 이건 뭐 더블 콤보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초대형 사고인 거고.

윤 빈은 인사를 하고도 머뭇거리며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윤 빈은 마침내 포기했는지 인사를 하고 나갔다.

윤 빈이 나가고 난 뒤,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인간들을 매번 아무 설명도 없이 내치는 것도 못할 짓이다.

너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믿어 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나한테 손해가 안 될 방향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게 대형 기획사를 경영하는 대표로서 내 임무다. 내 선택에 따라 웃고 우는 직원이 수 십 명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대표실을 나섰다.

저녁에는 시상식이 있다. 계속 앉아 있지는 못해도 잠깐이라도 얼굴은 비쳐줘야 하니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들러야 한다. 사진이 찍힐 테니 머리도 만져줘야 한다.

집에 가서 행사용 수트로 갈아입고 헤어샵으로 갔다.

회사에서 협력업체로 지정한 샵이지만, 조금만 떴다 싶으면 개인 헤어 디자이너를 두기 때문에 아직 뜨기 전인 사람들만 이용할 뿐이다. 나는 원장이 해 주는 스타일링이 마음에 들어서 늘 머리를 맡기고 있었다.

“대표님 오셨어요?”

늘 사람 좋게 웃는 원장이 환대했다.

“사진 찍힐 일 많을 거 같으니까 잘 해 주셔야 합니다.”

“맡겨만 주세요.”

실력은 참 탁월한데 못미더워 하는 건지, 아직 원장에게 머리를 맡기러 오는 탑급 연예인은 없었다. 한 번 맡기기만 하면 입소문이 나는 건 순식간일 텐데.

하지만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별로 안타깝거나 하진 않았다. 머지않아 장안의 화제가 되는 초대박 드라마에 출연하는 주연 배우가 우연히 원장에게 머리를 맡기고 나서, 그 헤어스타일이 신드롬 급으로 인기를 끌게 될 테고 동시에 샵과 원장 인지도도 수직 상승할 테니까.

나는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략에서 협력업체로 지정한 것이었다. 나는 늘 이렇게 상대방과의 윈윈을 추구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을 때에는 가차 없이 패를 버린다.

원장은 내 의상 컨셉에 맞춰 헤어스타일을 의논하고는 스타일링을 시작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연예인보다도 스타일링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게 기획사 대표라는 자리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과 이적을 저울질 하는 사람과, 대형 기획사 대표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곳. 그 사람들을 스캔하러 참석하는 사람으로서 신뢰와 위엄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너무 다가오기 어렵게 느껴져서는 안 되고.

탑 스타들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시상식 초대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우쭐해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근자감에 빠져 있을 애들에게 저 사람이랑 함께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물론 나는 오로지 상대방의 미래만 보고 결정할 테지만, 적어도 상대에게 거부감을 줘선 안 된다.

오늘도 원장은 멋지게 스타일링을 해 주었다.

“좋습니다.”

“맘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나는 팁이 든 봉투를 원장에게 건넸다. 원장은 몇 번이고 사양하다가 봉투를 받았다.

수석 디자이너 정도라면 몰라도, 원장은 팁을 받는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장기적인 협력업체 관리 차원에서 감사의 뜻으로 늘 원장에게 팁을 주었고, 원장도 내 의도를 알고 흔쾌히 응했다.

배웅하러 따라 나오는 원장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나는 샵 안을 찬찬히 한 번 둘러보았다.

누군가의 미래를 볼 수 있을까 확인하기 위해.

단조로운 표정으로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 여자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이 아이다.

데뷔하자마자 탑 스타가 될 아이.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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