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부동산 헌터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육개장.
그림/삽화
DDD
작품등록일 :
2024.09.02 17:46
최근연재일 :
2024.09.17 14:20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615
추천수 :
133
글자수 :
60,416

작성
24.09.13 14:21
조회
266
추천
14
글자
13쪽

상경(5)

DUMMY

5


양아치 송기철은 씨발씨발하며 땅을 팠다. 물론 속으로. 목소릴 꺼내놓았다간 보다 끔찍하게 죽을 것 같았다. 


삽 대신 건네받은 오크 연장은 통짜 철이었다. 자루가 묵직했다. 이 묵직한 걸 엿가락처럼 구부려? 길고 영겁같았던 스물 세 살 송기철 인생에 저 정도 각성자는 본 적이 없었다.


‘사실···.’


각성자 자체가 드물었다. 서울 땅에선 더더욱 그랬다. 각성이야 서울 놈이라고 적게 하진 않겠지. 문제는 전부 빠져나간다는 점이었다. 거의, 하자마자, 신나게도.


송기철은 문득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이진웅을 떠올렸다. 그 새끼도 신체 강화계열 각성자였지. 어느 날 각성하더니 동네에서 날랐더랬다.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았다.


- 조뺑이쳐라, 병신들아!


그 뒤로 크하하하, 하고 삼류 악역 같은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혼자 팔자 폈다 이거지? 울산에서 온 브로커가 선심 쓰듯 초코바 한 박스를 뿌리고 갔는데, 비참하게도 정신 차리고보니 송기철 자신마저 그 박스에 달려들고 있었다.


좌우간에 세상 참 불공평했다. 내가 아니라 왜 이진웅 그 찐따 새끼가? 진짜 거지같았고 그건 오늘 맞닥뜨린 저 괴물도 마찬가지였다.


“···개···.”


송기철이 중얼거렸다. 그 사이 파올린 구멍이 허리까지 찼다.


이 정도면 사람 하나 충분히 묻을만한 깊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묻힐 줄 알았던 송기철이었으나, 서울 똥통에서 구른 짬바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아니겠지.’


눈치가 빠르게 돌았다. 배운 건 없었지만 눈치는 하수구 같은 이 도시가 알려주었다.


저들이 이 구멍에 묻으려던 건 송기철 자신이 아니었다. 화단에 먼저 쓰러져 있던 시신이 있었고, 각성자로 보였던 자와 그 동행인 아저씨는 흘끔흘끔 시신을 쳐다보았다.


몇 마디 나누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래도 묻어는 줘야한다느니, 그러게 왜 혼자 튀려고 했느냐는 둥. 그 소릴 줏어들은 순간부터 삽질하는 속도가 훅훅 빨라졌다.


“···후. 다했습니다.”


송기철이 삽을 화단에 꽂고선 보고했다. 초코바 박스에 달려들던 그 날처럼,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말이 길어져 있었다. 이게 맞다. 버러지에겐 버러지대로 사는 법이 있었다.


각성자, 강한성이 슬쩍 구멍을 살폈다.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쓰러진 시신을 붙잡았다. 동행한 중년이 다리 부분을 맞잡는다. 이때까지도 혹시 모른다, 역시 나를 묻을지도 모른다며 긴가민가하던 송기철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휴.


“야.”


강한성이 송기철을 불렀다. 송기철에겐 서울 시궁창이 교육해준 눈치가 있었다. 그는 시키지도 않은 삽을 다시 쥐어들고선 헤헤 웃었다. 비굴하게 물었다.


“덮을까요? 흙?”

“정신 좀 차렸네?”

“···알아먹어야죠. 그래서 덮을까요?”

“어, 덮고.”

“예.”

“옆에 하나 더 파.”

“···?”


안도했던 송기철의 마음이 방금 판 구덩이 속에 쿵, 떨어진 듯 싶었다.


왜지? 왜지··· 자문하면서도 삽을 드는 송기철이 있었다. 구멍 하나를 늘려가는 중엔 먼 곳에서 바라보며 피식 웃는 박씨 아저씨가 있었다.


“죽일 건 아닌 거 같은데.”

“네. 물어볼 것도 있고, 아유 뭘 영양가가 있다고. 괜히 꿈자리 사나워져요.”

“근데 저건 왜 파게 시켰노?”

“재밌잖아요?”


박씨 아저씨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한성도 피식피식 웃었다.


삽질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렸다. 아마도 다 파는 순간 삶의 끝을 볼거라 생각했던지, 양아치는 미묘하게 태업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간에 대빵이라. 그래,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들이 지들끼리만 돌아다니진 않겠지. 그런데 어케 알았노?”

“딱 보이잖아요?”

“뭐가?”

“아까 지들끼리 중얼거리더만.”


강한성이 기억을 떠올렸다. 


양아치 대장, 송기철을 한 방에 때려눕혔다. 나머지 것들도 두들겨주려던 순간에 지방 방송이 울었다.


- 아오씨, 각성자야? 그런 말 없었잖아.


‘그런 말’이라. 누가 말해줬을까?


강한성은 송기철을 바라보았다. 터지지도 않는 총이나 들고 삥 뜯으러 순회하는 것들. 그 우두머리.


특별히 체격 조건이 좋지 않았다. 깡다구가 대단한 것도 아니요, 나이로 친다 한들 아까 몰려왔던 것들 중에선 더 나이 먹은 이도 있었다. 그나마 특이한 게 있다면 어린 나이에도 이미 M자 탈모 기미가 보인다는 점 정도였다.


“하지만 눈치는 있었죠. 지금 보니 아까 인력거 아저씨 묻으려는 것도 알아챈 거 같더만.”

“말인즉슨, 잘 닦아준다?”

“예. 이 놈들 같은 양아치 애들 데려다가 쓰는데 쌈박질을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겠어요? 어차피 게이트 터지면 우르르 뒤질 것들인데.”

“니 말이 맞다. ···근데 한성이 니 생각보다 예리하네. 대가리 좀 돌아간다야.”

“후, 제가 좀 칩니다.”


강한성의 머릿속엔 각성 사실을 잊고 게이트에 맞서던 일이나, 노획한 칼 덜렁거리며 발차기만 날리던 기억이 옅어져 있었다.


“아무튼, 요지는 저 놈이 열세 명이나 되는 것들 이끌 깜냥이 안 된다는 거죠. 총이라도 진짜였으면 그러려니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뻔하잖아요? 누가 시킨 거지.”

“니가 대가리 해라고?”

“예. 근데 그 새끼도 빡통인 건 마찬가진가. 사람 수 둘인 건 눈 달렸으면 다 보이는 건데, 둘이서 게이트 진압했으면 당연히 경계해야 맞지 않나? 이 못 사는 동네에 머리 팽팽 돌아가는 위인이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박씨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보아도 사계주공 5단지 부근에서 주먹질하는 이들이 희대의 전략가처럼 생각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약간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연륜이었고 관록이었다. 박씨 아저씨는 이걸 찔러줘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고민하다가는 필요없었음을 바로 깨달았다.


“뭐, 멍청한 거하곤 상관 없었을 수도 있고요.”

“응? 무슨 말이고.”

“두 명인데 게이트를 닫았다. 요행 바라고 뻥총 든 열세 놈 보내면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런데 그게 중요했을까요? 보낸 놈한테.”


강한성이 송기철을 바라보았다. 비쩍 곯았다. 같이 왔던 놈들도 비슷했다. 때린 게 언젠데 이제야 쩔뚝거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전형적인 영양실조. 자급자족이 안 되는 이 콘크리트 도시에선 남의 삥을 뜯는 것들마저 풍족하지 못했다.


“야.”


강한성이 쓰러졌다 갓 몸 일으키던 네 놈을 불렀다. 그들은 도망칠 각을 재다 곱게 포기했다.


“니들도 하나씩 받아들고 땅 파.”

“예, 예?”

“파라고 씨.”


강한성이 도끼창을 하나씩 던져주었다.


그들은 콩밭에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비쩍 곯은 것들이라 속도도 더럽게 느렸다. 시선은 송기철에게 모였다. 남이 꽂은 대장이라도 대장은 대장이라고, 송기철이 오크 연장으로 땅 파는 법을 알려주었다.


강한성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별 생각 없이 보냈다. 바꿔 말하자면 뒤지든 말든 상관이 없다. 저것들 마른 것 좀 보세요. 혈관 터지겠네.”

“입이 부족하다?”

“죽으라고 보낸 거죠.”


이걸로 설명되는 부분이 있었다.


강한성은 처음 송기철과 맞닥뜨렸을 때 놈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방아쇠를 당겨도 탄환이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쏘는 걸 두려워했을까.


“물론 당기는 순간 모든 게 들통날까봐, 그래서 떨렸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쏘는 시늉만 했어야 했죠. 방아쇠에 손가락 걸 게 아니라.”

“틱, 하고 걸리는 순간 다 끝나니까.”

“실수로라도 당기는 순간엔 지들이 뒤지잖아요? 그럼 손가락을 빼놔야지.”

“후루꾸 아니겠나?”

“그런 깡은 없는 놈이에요. 유사시엔 쏴야겠다 생각했으니 손가락 건 거고, 그러고도 쏠 깡이 없어서 못 쏜 병신이죠.”


신랄한 평가였다.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 양아치 놈은 지 총 망가진 걸 몰랐어요.”

“그럼 점마들 대빵은.”

“뒤지라고 보낸 거죠. 운 좋으면 삥 뜯는데 성공하는 거고, 아니면 입 줄이고.”


강한성은 그게 참으로 현명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조직을 이끄는 장으로서 할 만한, 손해보지 않는 자원 분배.


판단은 그리 내렸으나 동시에, 강한성은 누나를 생각했다. 그 멍청한 여자는 자기가 도살장 앞에 섰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나 때문에.’


죽을 사람이 그녀 등 뒤에 있었다는 걸 아니까.


“마음에 들진 않네요.”


강한성이 말했다.


“각 보이면 줘패겠습니다. 청소도 할 겸.”

“잘 생각했다.”


박씨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양아치들을 불러모았다.


거진 한 시간 째 삽질하던 송기철은 물론이요, 나머지 양아치 놈들 팔뚝도 후들거리고 있었다.


“연장 반환~”


박씨 아저씨가 도끼창을 걷어갔다. 강한성이 그 앞에 나서, 화단에 걸터앉았다.


그가 말했다. 


“너희에겐 선택지가 둘이 있어.”

“뭡···니까?”

“하나. 니들 대빵이 누군지 순순히 분다. 둘. 불기 전까지 이 아파트 단지 지반공사를 한다.”


삼십 분 삽질로도 떨리는 팔뚝이었다. 양아치들은 어렵지 않게 선택을 내렸다. 


못 배우고 못 먹었겠지만 놈들도 머리는 있었다. 대가리에게 쥐여준 총마저 뻥총이다. 살라고 보낸 게 아니라는 건 너무 뻔한 일이었다.


* * *


“그래서··· 정찰이었고, 또 약탈이었다?”


강한성이 내용을 정리했다. 양아치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긍정했다. 털어놓다보니 화딱지가 치밀었는지, 괜히 목소리 커지는 놈도 있었다.


“···씨, 우리가 뭔 총알받이도 아니고.”

“니들 총알받이 맞잖아.”

“아니, 그래도 말입니다! 말은 해줘야···.”

“총? 니들 대가리 나빠보여서 말 해줬어도 어차피 연기 못했다. 그리고 이 새끼가 어디서 목소릴 높여?”


강한성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그러기 직전, 송기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빽 소리지르던 놈을 밀어뜨렸다.


“이 새끼! 이 새끼!”


송기철이 쓰러진 놈을 신명나게 밟기 시작했다. 강한성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눈치가 빨랐다. 나한테 맞는 것보단 저한테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겠지. 더욱이 시신경이 강화된 강한성의 눈은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송기철의 발이 어떤 구석을 노리고 싸커킥 날리고 있는지.


‘두들겨맞을 만한 곳만 때리네.’


맞아도 크게 탈 나지 않을 곳. 급소가 아닌 부위. 


“어디서! 어? 어디서!”

“오바 그만.”

“넵.”


송기철이 즉각 지시에 따랐다. 흘끔 살피는 눈을 보니 이미 강한성이 사정 다 알아챘음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쓸만 하네.’


눈빛을 살피니 박씨 아저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그가 헛기침을 크게 한 번 쳐내더니,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그래서 니들 대빵 말이다.”

“예, 예···.”

“각성자라꼬?”

“예, 맞습니다. 사실 본거지는 저쪽 은행사거리쪽인데··· 거긴 이 동네에서도 쫌 살던 사람들 동네라 다 튀었거든요? 수금할 곳이 없어요.”

“각성자냐고 물었는데 뭔 말이 그리 기노? 됐고, 금마 머하는 놈인지나 불러봐라.”


송기철이 사정을 설명했다.


“원래 이 동네 출신은 아니었고요, 반 년 전에 나타난 사람입니다.”

“반 년 전? 뭐 줏어먹을 게 있다고 서울, 그것도 이 동넬 들어오지?”

“인천에서 왔다고 하더라고요. 짱깨들 피해서.”

“아.”


중국인들, 그리고 인천.


강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서울이 먹을 게 없다한들 인천만큼은 아니었다.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었으나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뒤숭숭한 동네였다. 소문만으로 충분히 역겨웠다.


“중국인들은 네 발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는다지···?”


강한성이 중얼거렸다. 인천은 아니지만 그 근처까진 가 본 적 있었다. 삼 년 전 부천 토벌전. 인천-부천-시흥 라인에 산발적으로 터져나가던 게이트 참사를 피해 도망 나온 인천 유민들이 있었다.


피난이 아니라 도망이라 부른 이유가 있었다. 군에서 그들을 사정청취한 바, 인천 본토 자체는 중국인 헌터팀으로 충분히 방호되고 있노란 소식을 얻었다.


‘그럼에도.’


인천 유민들은 인천 땅을 벗어나 부천으로 나왔다. 게이트 진압도 제대로 되지 않아 기어이 토벌 작전까지 벌어지는 아수라장에, 차라리 게이트가 낫다는 듯 꼬리를 말고.


도망쳐왔다. 늑대 우리에 뛰어들었다. 사자를 피해서.


‘···한 오십 명 됐었나. 전부 외팔이였지.’


그들은 주저하다 인천 도시 내에서 저들의 쓰임을 고백했다. 강한성은 그때 사람도 가축일 수 있음을 알았다.


“야 양아치.”


강한성이 송기철을 불렀다. 이 자리에 양아치는 다섯이나 있었지만 송기철은 찰떡처럼 알아먹었다. 놈이 자세를 빠릿하게 펴고 대답했다.


“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한성이 피식 웃었다. 설설 기는 게 유치해보였으나 막상 띠꺼운 것보단 나았다.


“그 놈 각성자라 했지? 능력이나 불어 봐. 아는대로 전부.”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 부동산 헌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 터전(4) +1 24.09.17 177 11 17쪽
8 터전(3) +1 24.09.16 213 15 14쪽
7 터전(2) +4 24.09.15 244 10 14쪽
6 터전(1) +1 24.09.14 234 13 16쪽
» 상경(5) +1 24.09.13 267 14 13쪽
4 상경(4) +2 24.09.12 294 18 14쪽
3 상경(3) +1 24.09.11 319 15 14쪽
2 상경(2) +4 24.09.10 375 14 13쪽
1 상경(1) +2 24.09.09 493 23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